2026.09.02

[선진국의 역설 ③] 아는 사람은 많은데, 의지할 사람은…

입력 2026-09-02 13:47

젊을 땐 OECD와 사회적 지원 비슷, 70세 넘으면 20%p 이상 격차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한국은 부유해졌다. 그런데 그 성공은 노년의 삶 어디까지 도착했을까. ‘선진국의 역설’은 돈·일·관계·생활환경을 따라 한국인이 잘 늙어갈 수 있는 조건을 살펴본다. 세 번째 질문은 사람이다. 한국인의 관계 안전망은 처음부터 약한 것이 아니다. 젊을 때는 OECD 국가들과 비슷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OECD가 2026년 펴낸 한국 웰빙 보고서는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언제든 도움을 청할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가’를 연령별로 비교했다. 2015~2023년 자료를 합쳐보면 한국의 18~29세 가운데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비율은 여성 95%, 남성 93%였다. OECD 평균은 남녀 모두 94%였다.

나이가 들면서 그래프가 갈라진다. 60~69세에서는 한국 여성 70%, 남성 62%로 내려갔다. OECD 평균은 각각 87%, 88%였다. 70세 이상에서는 한국 여성 65%, 남성 61%였다. OECD 평균은 여성 87%, 남성 89%였다. 70세 이상에서 격차는 여성 22%포인트, 남성 28%포인트다.

OECD도 사회적 지원이 나이 들면서 줄어드는 현상은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지만, 한국의 감소 폭은 훨씬 크고 특히 고령 남성에게 두드러진다고 짚었다. 그렇다고 ‘한국인의 관계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같은 자료에서 2015~2023년 한국인의 사회적 지원 수준은 2006~2014년보다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오히려 높아졌다. 예컨대 여성 60~69세는 60%에서 70%, 남성은 55%에서 62%로 상승했다. 70세 이상도 여성 60%에서 65%, 남성 58%에서 61%로 높아졌다.

전체적인 관계 여건은 나아졌는데, 노년기에 나타나는 낙폭은 여전히 컸다. 한국의 문제는 ‘관계가 없는 사회’라기보다 나이 들수록 관계의 안전망이 빠르게 얇아진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노인이 되면서 주변 사람 자체가 사라지는 걸까.

국내 조사에서는 다른 장면이 보인다. 2023년도 노인실태조사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89.4%는 친구·이웃·지인이 있다고 답했다. 평균 3.7명이었다. 자녀가 있는 노인도 94.0%였다.

교류도 적지 않다. 친구·이웃·지인을 주 1회 이상 만나는 비율은 59.7%, 주 1회 이상 연락하는 비율은 64.5%였다.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차이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나타났다. 노인실태조사에서 낙심하거나 우울할 때 도움받을 사람이 있다는 노인은 92.0%였다. 몸이 아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있다는 비율은 85.2%, 갑자기 큰돈을 빌려야 할 때는 63.0%였다.

세 상황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도 도움받을 사람이 없는 노인은 6.6%였다. 그런데 이 비율은 65~69세 4.6%에서 85세 이상 13.0%로 세 배 가까이 높아졌다. 후기고령기로 갈수록 ‘주변에 사람이 있느냐’와 ‘그 사람이 실제로 나를 도울 수 있느냐’ 사이의 간격이 커지는 셈이다.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인포그래픽]

‘젊을 땐 비슷한데, 노년에서 벌어진다’

곤란할 때 의지할 친척·친구가 있다

18~29세

한국 여성 95% / 남성 93%

OECD 여성 94% / 남성 94%

60~69세

한국 여성 70% / 남성 62%

OECD 여성 87% / 남성 88%

70세 이상

한국 여성 65% / 남성 61%

OECD 여성 87% / 남성 89%

70세 이상 격차

여성 22%p / 남성 28%p

한국 노인에게 친구·이웃·지인이 있다 89.4%

주 1회 이상 만난다 59.7%

어떤 상황에서도 도움받을 사람이 없다

65~69세 4.6% → 85세 이상 13.0%

여기서 예상과 다른 숫자가 하나 나온다. 혼자 사는 노인이 오히려 친구·이웃·지인을 더 자주 만났다. 독거노인이 친구·이웃·지인을 주 1회 이상 만나는 비율은 67.6%로 다른 가구유형보다 높았다. 배우자가 없는 노인도 67.1%로 배우자가 있는 노인 55.0%보다 높았다. 연구진은 배우자 부재로 줄어든 관계를 친구와 이웃, 지인과의 교류로 보완하는 경향으로 해석했다.

혼자 산다고 반드시 관계까지 끊기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잦은 교류가 돌봄 공백까지 없애주는 것도 아니다. 노인 단독가구가 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 가운데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아플 때 간호해 줄 사람이 없음’으로 25.2%였다. 경제적 불안감 11.5%, 일상생활 문제를 처리하기 어렵다는 응답 10.6%보다 높았다. 다만 42.3%는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고 답했다. 사람을 만나는 관계와 몸이 아플 때 돌봐줄 수 있는 관계는 다시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가족 구조도 바뀌고 있다. 생존 자녀가 있는 노인의 비율은 2008년 98.2%에서 2023년 94.0%로 낮아졌다. 평균 생존 자녀 수도 4.0명에서 2.7명으로 줄었다. 65세 이상 가운데 생존 자녀가 없는 노인은 6.0%, 자녀가 있어도 연락 가능한 자녀가 없는 노인은 3.2%였다.

같은 조사에서는 2020년 이후 친구·이웃·지인 같은 비혈연 관계의 비중이 커지는 흐름도 확인됐다.

앞으로의 노년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이나 친구가 몇 명인지만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그 관계가 실제 도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정말 어려워졌을 때 연락할 사람이 있는가.’ 노년의 관계 안전망을 가르는 질문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사람이 있어도 서로 만나러 갈 수 없다면 관계는 작동하기 어렵다. 몸이 불편해졌을 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폭염 속에서도 도움을 받으러 이동할 수 있는지는 관계를 넘어 생활환경의 문제가 된다. ‘선진국의 역설’ 마지막 편에서는 그 조건을 살펴본다. 폭염을 피할 수 있는 것도 노후의 능력일까.

[이 기사에 활용한 주요 자료]

OECD, Inclusive and Sustainable Well-being in Korea: 30 Years of OECD Membership and Future Policy Opportunities, 2026

→ 연령별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사회적 지원 수준을 비교하고, 한국에서 노년기에 감소 폭이 특히 큰 현상을 분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3년도 노인실태조사」

→ 친구·이웃·지인 관계망과 교류 빈도, 상황별 도움 가능 여부, 독거노인의 사회적 교류와 단독가구의 생활상 어려움을 분석.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최신 뉴스

  • 65세 정년의 그늘, 중장년은 이미 53세에 일터 떠났다
    65세 정년의 그늘, 중장년은 이미 53세에 일터 떠났다
  • 국민연금 후기 고령 수급자, 75~80세 비중 줄고 80세 이상 늘고
    국민연금 후기 고령 수급자, 75~80세 비중 줄고 80세 이상 늘고
  • [다음 삶의 설계] 웰니스 한 달 살기, 나에게 맞을까
    [다음 삶의 설계] 웰니스 한 달 살기, 나에게 맞을까
  • [60+궁금증] 건강검진, 매년 똑같이 다 받아야 할까
    [60+궁금증] 건강검진, 매년 똑같이 다 받아야 할까
  • 이기일 미래설계연구원장 “독자가 찾아오는 잡지 되어야”
    이기일 미래설계연구원장 “독자가 찾아오는 잡지 되어야”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브라보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