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하반기가 되면 서점에는 이듬해를 전망하는 트렌드 도서가 쏟아진다. 사회와 산업의 첨예한 변화, 결국 돈이 될 분야를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런 서가에서 몇 년째 우직하게 노년학과 장수경제를 붙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시니어 트렌드’ 시리즈를 펴내는 최학희 시니어라이프비즈니스 대표다.
그 자신도 이 분야의 책이 돈과 독자를 끌어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매년 책을 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길잡이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경사가 급한 초고령 고갯길을 달리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버스가 어디서 속도를 줄이고, 어디서 길을 바꿔야 할지 보여줄 지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책의 부제는 ‘초고령사회 대전환 지도’다.
오는 15일 출간하는 ‘시니어 트렌드 2027’는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최 대표는 이 시리즈를 통해 고령화가 돌봄·일자리·주거를 어떻게 바꾸는지 살피고, 개인과 기업이 준비해야 할 과제를 제시해왔다. 이번 책에서는 부모를 어디까지 돌봐야 할지, 은퇴한 뒤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몸이 불편해져도 살던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을지 등을 묻는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도 함께 살핀다.
은퇴자 늘어나는데, 다시 일할 자리 있을까?
최 대표가 2027년을 앞두고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은퇴자들이 다시 일할 수 있을지다. 직장을 떠나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AI가 기존의 일을 대신하면, 이들이 경력을 활용해 돈을 벌 기회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해오던 리서치와 교육, 컨설팅에서 일감이 사라지는 그 자신의 경험은 이러한 우려를 키웠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감 감소가 재취업을 찾는 은퇴자들에게도 닥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은퇴 초기에는 직장생활 동안 쌓은 경력과 인맥으로 1~2년을 버티더라도, 이후까지 같은 방식으로 일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최 대표는 “매년 100만 명에 가까운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자가 되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며, “이들이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그가 예상하는 일자리의 변화 중 하나는 업무와 근무시간이 더 잘게 나뉘는 것이다. 하루 몇 시간, 일주일에 며칠씩 일하는 방식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자녀를 부양하고 부모를 돌봐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 정도 수입만으로 생활을 꾸리기 어렵다.
“일의 필요와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생계가 급한 분에게는 안정적인 소득과 노동조건이 우선이고, 다른 분에게는 관계나 역할을 이어가는 일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책의 ‘작은 수입’은 내 경험과 시간을 어떤 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살펴보자는 질문입니다. 건강과 돌봄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합니다.”
생활비 걱정이 적은 사람도 일을 그만둔 뒤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직장에서 맡았던 직책과 업무가 사라지고, 사람들과 만날 기회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 대표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도 힘들 수 있다고 말한 배경에는 이러한 역할과 관계의 상실에 대한 우려가 있다.
“직함이 사라진 뒤에도 나를 설명할 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 다른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일, 배우고 싶은 것을 돌아보면 새로운 역할의 실마리가 생깁니다. 그 역할은 꼭 돈을 벌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 시간을 어디에 쓰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건강·생활비·시간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
최 대표는 노후를 준비할 때 건강·현금흐름·시간을 함께 보라고 강조한다. 몸의 상태, 매달 들어오고 나가는 돈,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를 따로 계획하기 어려운 이유는 부모 돌봄의 상황만 떠올려도 알 수 있다.
“한 축의 변화가 다른 두 축에 곧바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 병원 동행이 잦아지면 가족의 시간이 줄고, 근무를 조정하면서 소득에도 영향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후 준비를 점검할 때는 몸이 어떤지, 매달 돈이 어떻게 흐르는지, 내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책의 독자를 40대 이상으로 넓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모의 병원과 생활을 챙기는 일이 늘어나는 시기에 자신의 건강과 은퇴도 준비해야 한다. 자녀를 부양하고 있다면 세대가 다른 가족들의 필요를 동시에 감당하게 된다.
부모 돌봄을 나눌 때는 가족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최 대표는 말한다. 병원에 동행하는 일뿐 아니라 예약, 약 챙기기, 비용 정산, 전화로 안부를 확인하는 일도 돌봄이다. 직접 시간을 내기 어려운 가족이 비용이나 행정 업무를 맡는 방법도 있다. 한 사람이 모두 떠안다가 일을 그만두거나 건강이 나빠지면 돌봄도 오래 이어가기 어렵다.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집 밖의 생활도 중요하다. 문턱을 없애고 욕실을 고쳐도 장을 보거나 병원에 갈 수 없다면 혼자 생활하기 어렵다. 몸이 조금 불편해졌을 때도 식료품을 구하고, 진료를 받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생활비를 준비할 때는 보유 자산과 매달 쓸 수 있는 돈을 구분해야 한다. 집 한 채가 있어도 생활비와 돌봄비가 계속 부족할 수 있다. 최 대표는 큰 금액의 노후자금을 일률적으로 제시하며 불안을 키우는 방식을 “공포 마케팅”이라고 표현했다. 기본적인 자산 준비가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각 가정의 수입과 지출을 먼저 확인하자는 뜻이다.
연금 등으로 매달 얼마가 들어오는지, 기본 생활비로 얼마를 쓰는지, 부족한 돈은 얼마인지 적어보면 필요한 준비도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소득이 줄거나 돌봄비가 늘어나는 상황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같은 자산을 가지고 있어도 가족을 부양하는 정도와 건강 상태에 따라 필요한 돈은 달라진다.
1년간 1500개의 트렌드 키워드 중 28개 추려
이런 내용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최 대표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에는 자신과 전문가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를 정리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전문적인 지식을 많이 담는 것만으로는 독자가 책을 구매하고 읽게 만들기 어려웠다.
초창기에는 다양한 전문가의 글을 모았다. 여러 분야의 지식을 담을 수 있었지만, 책 전체의 균형과 흐름을 맞추기 어려웠다. “2025년에는 50명의 전문가와 함께했는데, 어떤 분은 10페이지를 쓰고 어떤 분은 2~3페이지를 쓰는 식으로 원고 분량이 제각각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책 전체의 통일성을 맞추기 어려웠고, 읽을 때 맥락이 끊긴다는 문제도 있었죠.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처음부터 집필하면서 그 문제를 최소화하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전체 원고를 직접 쓰는 동시에 독자가 궁금해하는 질문을 앞에 놓았다. 잠을 다루는 장은 “왜 자도 피곤할까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최 대표에게 수면은 하루의 상당 시간을 차지하는 중요한 산업 분야다. 그러나 독자가 먼저 알고 싶은 것은 자신의 피로가 왜 풀리지 않는지다. 그 질문을 설명하면서 수면 관련 서비스와 시장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번 책에서는 독자가 자기 이야기로 읽을 수 있도록 생활 질문을 앞에 놓는 데 힘을 줬습니다. 몸의 변화, 돌봄, 돈과 일, 관계를 따로 떼어 보지 않고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연결했습니다. 그렇게 읽은 개인의 고민을 28개 미래 신호로 확장해, 생활과 산업을 함께 이해하도록 구성했습니다.”
자료를 조사하고 추리는 과정에는 AI도 활용했다. 최 대표는 매일 여러 자료를 읽고 그중 약 다섯 개 주제를 골라 심층 조사한다고 설명했다. 축적한 자료를 AI로 분류한 뒤 자신의 현장 경험을 더해 책에 담을 내용을 골랐다.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사람들이 어떤 주제를 많이 찾는지, 전문가들과 대화할 때 어떤 질문이 나오는지도 살폈다.
“지난 1년간 연구한 1500개의 트렌드 키워드 가운데 28개를 추렸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관찰하고 준비할 변화의 신호입니다. 모든 지역과 모든 고객에게 같은 속도로 나타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생활이나 사업에서 그 수요가 실제로 생기는지 확인하며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고객은 무엇이 불편하고, 누가 비용을 낼까
최 대표가 2027년에도 주목할 분야로 꼽은 것은 신탁을 비롯한 자산 관리, 재활, 수면 관련 서비스다. 인지기능이 떨어졌을 때 누가 재산을 관리할지, 몸이 불편해져도 어떻게 활동할지, 잠을 자도 왜 피곤한지 등 노년의 생활에서 생기는 문제와 관련된 분야다. 다만 고령자가 늘어난다는 사실만으로 특정 서비스의 고객이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인구가 늘어나는 것과 특정 서비스의 고객이 늘어나는 것은 다릅니다. 같은 나이여도 건강, 소득, 가족관계에 따라 필요한 것이 다르고, 이용하는 사람과 돈을 내는 사람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신청 과정이 어렵거나 이동이 불편하면 필요해도 이용하지 못합니다. 고객이 무엇을 계속하고 싶었고, 어디에서 막혔는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그는 사람 한 명을 “소우주”라고 표현했다. 각자가 살아온 경험이 다르고, 지금 가장 급한 문제도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와 주소, 구매 기록만으로는 그 사람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기 어렵다. 하루를 어디에서 누구와 보내는지, 건강은 어떤지, 돈을 어디에 쓰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지, 부모를 돌볼 시간이 필요한지에 따라 찾는 서비스도 달라진다.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은 이용자와 가족,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의 입장을 함께 살펴야 한다. 보행을 돕는 기술을 예로 들면, 이용자는 더 멀리 나갈 수 있게 된 것을 반길 수 있다. 반면 돌보는 가족은 안전을 걱정하거나 돌봄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할 수 있다. 같은 기술을 두고도 필요한 것이 다른 셈이다.
“기술이 도움을 주려면 실제 생활에서 작동하는 과정까지 갖춰져야 합니다. 이상을 감지하는 기기가 있어도 알림을 받고 확인할 사람, 필요한 도움을 연결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설치 이후의 사용과 관리도 중요합니다. 저는 기술을 평가할 때 이용자가 계속 쓸 수 있는지, 돌보는 사람의 일이 실제로 줄어드는지까지 보고 싶습니다.”
기업에는 고객이 얼마를 부담할 수 있는지, 그 비용으로 서비스를 계속 운영할 수 있는지 따져볼 일이 남는다. 누가 이용하고, 누가 돈을 내며, 이용 과정에서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 대표가 업계에 전하는 메시지는 고객 한 사람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라는 데 있다. 독자에게 건네는 당부도 그 생활에서 시작한다.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상 하나를 떠올려 보셨으면 합니다. 친구와 만나는 일일 수도 있고, 내 집에서 밥을 해 먹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일상을 이어가려면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누구와 연결돼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겁니다. 이 책이 여러분의 다음 선택을 돕는 지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