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L 칼럼] 나이듦에 대하여

기사입력 2015-02-16 08:45 기사수정 2015-02-16 08:45

‘근대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푸시킨은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젊은 시절에 젊었던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늙은 시절에 늙은 사람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 젊은 나이에 젊은 것이며 늙은 나이에 늙은 것인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이와 삶의 단계에 대해서는 공자의 말이 유명합니다. 공자는 40이 불혹(不惑), 50이 지천명(知天命), 60이 이순(耳順), 70이 종심(從心)이라고 했습니다. 마흔이 되면 판단이 흐려지는 일이 없게 되고, 쉰이 되면 천명을 알며, 예순이 되면 생각하는 게 원만해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일흔이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사람들도 과연 그럴까요? 불혹이 아니라 다혹(多惑)이라고 해야 할 만큼 요즘의 마흔은 분별이 모자라고, 천명을 알기는커녕 천명의 존재 자체를 우습게 볼 만큼 요즘의 쉰은 여전히 역동적입니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옛사람들은 “마흔이 되면 매지근하고 쉰이 되면 쉬지근하다”는 말을 해왔습니다. 예순 일흔에 대해서는 그런 말도 없을 정도였고,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하듯이 일흔을 넘기는 것은 대단한 장수로 치부돼왔습니다.

지금은 생활환경이 나아지고 의료와 복지의 발달로 인해 평균수명이 늘어나 원래 나이에서 20%를 깎은 게 실제 나이라는 말도 합니다. 40세는 청춘의 노년, 50세는 노년의 청춘이라고 말하는 장수시대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50이 불혹, 60이 지천명이라고 해야 할 판입니다. 나이의 Norm(표준)과 틀이 없어지는 세상입니다.

칠순을 넘기면 신선이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고 말한 분도 있습니다. 서른은 가정과 사회에 모든 기반을 닦는다는 이립(而立)의 나이이지만 요즘 서른에 결혼하거나 취직해 삶의 기반을 닦는 젊은이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전통적인 나이의 규범에 따라 삶과 세상을 생각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루소는 <에밀>에서 10세에는 과자, 20세엔 연인, 30세엔 쾌락, 40세엔 야심, 50세엔 탐욕을 좇는 게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60세 이후엔 뭘 추구하나요? 벤저민 프랭클린은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에서 20세에 중요한 것은 의지, 30세에 중요한 것은 기지, 40세에 중요한 것은 판단이라고 했는데, 50세 이후에는 뭐가 중요할까요?

영국 시인 에드워드 영(1683~1765)은 “나이 마흔에도 바보인 사람은 정말 바보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자는 “40, 50이 되도록 이름이 나지 않는 사람은 두려워할 게 없다”고 했습니다. “20세에 용모 수려하지 않고 30세에 건장하지 않고 40세에 부자가 안 되고 50세에 현명하지 않으면 평생 수려 건장 부자 현자가 될 수 없다”고 한 사람(영국 시인 조지 허버트 <이국풍의 격언집>)도 있습니다. 83세까지 장수하면서 다방면으로 큰 업적을 남긴 괴테는 “무언가 큰일을 성취하려 한다면 나이를 먹어도 청년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자꾸 초조해집니다. 귀한 생을 받아 이 세상에 왔으니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거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떠나고 싶은데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꼭 오래 살아야만 이름을 남기는 건 아닐 것입니다.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는 겨우 24세로 죽었지만 그의 작품은 탄생 200년이 지난 지금도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역사상 유명한 천재들 중 요절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삶을 완성하고 갔습니다. 44세로 사망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20세에 취했고, 30세에 파멸했고, 40세에 죽었다.’고 노트에 썼습니다.

천재들은 예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 나오는 말처럼 ‘사람은 일생을 두고 가능하면 아주 오래오래 살아서 우선 꿀벌처럼 꿀과 의미를 모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최후에 가서는 아마 10행쯤 되는 좋은 시를 쓸 수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시는 감정이 아니라 사실은 경험인 것이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지고 진보하는 존재일까요? 판단력이 여물면 상상력은 시들어갑니다. 외적 아름다움과 내적 충실을 뜻하는 춘화추실(春華秋實)이라는 말이 있지만 봄의 꽃과 가을의 열매를 동시에 즐길 수는 없습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는 라라의 약혼자이자 러시아혁명 주체인 스트렐리니코프가 악덕 변호사 코마로프스키에게 “인간은 연령으로 진보하지 않는다”는 말을 합니다. 코라로프스키가 나이가 들면 관대해진다고 대답하자 스트렐리니코프는 다시 “자기 자신에게만 관대해지는 것”이라고 면박을 줍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자신에게만 관대해지고 꽉 막힌 외고집 벽창호가 된다면 그런 나이와 삶은 많고 길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대개 좋은 것, 유리한 것만 기억하려 합니다. 969세까지 살았다는 성경 속 인물 므두셀라의 이름에서 유래한 ‘므두셀라 증후군’은 지나간 일 중 좋았던 기억들만 남겨 청춘을 ‘좋았던 시절’로 치부해 버리는 성향을 뜻합니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자신의 가장 좋은 샷만 기억하거나 가장 좋았던 점수를 평소 실력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런 착각과 교만을 경계하면서 겸손과 배려의 나이를 쌓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92세로 타계한 핀란드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는 83세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최근에야 지상에서 내가 존재하는 시간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우리가 이사 왔을 때 정원의 나무는 아주 작았고,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이제 나무는 내 머리 위에서 나부끼면서 ‘당신은 곧 떠나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수백 년을 더 머물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기 때에는 앞으로 넘어지지만 철이 들면 뒤로 넘어진다고 합니다. 앞으로 넘어졌다가 똑바로 섰다가 뒤로 넘어지는 게 사람의 일생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이는 남이 알려줘야 자기 나이를 알지만 노년에 이른 사람은 힘겹도록 스스로 자기 나이를 압니다. 설날이 들어 있는 2월은 나이와 늙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되도록이면 똑바로 서서 의미 있는 삶을 완성해 가야 하겠습니다.

미국의 여성 시인 메이 스웬슨(May Swenson 1913~1989)의 ‘어떻게 늙을까’(How to be old)라는 시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젊기는 쉽지. 모두 젊어, 처음엔. 늙기는 쉽지 않아. 세월이 걸리지. 젊음은 주어지는 것, 늙음은 이루어지는 것, 늙기 위해선 세월에 섞을 마법을 만들어 내야 돼.’

그 마법을 찾아야 합니다.


▲임철순 미래설계연구원장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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