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얽히고설킨, 소우주라 불리는 ‘뇌’는 인간이 생산해내는 모든 것들이 중심이 된다. 하나의 뇌세포는 수천 개의 뇌세포로부터 전기 신호를 받아 다른 수천 개의 뇌세포에 전달하게 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의식, 인지, 감정이 발현된다. 인간의 마음은 이러한 과정의 연속이다. 즉, 뇌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글 박근빈 기자 ray@etoday.co.kr 도움말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김영보 교수
어디까지 왔을까? 뇌로 마음을 읽는 것. 너무나도 복잡하기에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뇌 영상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의 상상은 현실이 되고 있다. 여기서 잠깐, 10여 년 전 발간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를 살펴보면, 뇌의 쾌락 중추에 전극을 심어 쾌락 감도를 외부의 제3자가 조절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내용은 당시 뇌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공상과학 소설로 분류됐다. 소설 속에서는 해당 부위를 찾지 못해 마구 찔러대는 대목이 나오고 있지만 이제는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허구가 아닌 실제로 가능한 이야기가 됐다.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김영보 교수를 만나 마음과 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감정의 중추, 새로운 발견
김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뇌에서 감정의 중추는 대뇌의 변연계(limbic system)로 알려져 있다. 이 변연계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관장하는 신경망이 고리처럼 연결돼 있다. 각각의 신경줄기 다발이 담당하는 감정의 종류를 파악하면 이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소설 ‘뇌’처럼 말이다. 해부학적 경로가 복합해 뇌-감정을 주관하는 변연계에 관한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조금씩 밝혀지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마음을 보는 뇌 연구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가 세계 최초로 분노, 슬픔, 우울 등 부정적 감정에 관여하는 신경섬유(ATR)와 기쁨, 웃음, 행복, 사랑, 보상 등 긍정적 감정에 관여하는 신경섬유(sIMFB, imMFB, SPT)를 발견해 냈다. ‘7T PET-MRI’라는 장비를 통해 뇌 영상을 찍고 분석해서 나왔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사람이 어떻게 울고 웃는지, 기분이 좋고 나빠지는지에 대한 근거를 찾게 된 것이다. 이 신경섬유의 존재는 감정 이상을 연구하는 데 포인트가 된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는 대략적인 연구 성과만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더욱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뇌세포의 활동을 정확히 분석하면 범죄를 일으키는 감정을 제거하고 스스로 뇌를 좌지우지하게 되는 평화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신중년, 뇌도 품격 있게 자란다
김 교수에 의하면 뇌의 기능은 나이에 따라 점점 쇠퇴해져 간다는 통념 때문에 가벼운 건망증 현상이 오면 덜컥 겁부터 내는 것이 신중년의 모습이지만, 뇌 과학 분야에서는 이와 상반되는 결과들이 나왔다고 한다. 특히 뇌의 가소성(Neuronal Plasticity)측면에서 인간의 인지기능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발전해 50~60대에 절정에 이른다는 보고들이다. 실제로 뇌가 더 탄력적이고 유연해지며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인식 시스템을 갖추고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다는 것.
김 교수가 집필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UCLA 신경학자 조지 바트조키스는 “중년이 돼야 뇌에 들어오는 직접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가공해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극대화된다”고 강조했다.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바트조키스는 MRI를 사용해 18~75세 300명을 대상으로 백질(白質)양과 분포를 측정했다. 대상은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등 뇌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과 건강한 젊은이들이었다. 그 결과, 건강한 50대 신중년 대부분은 ‘미엘린(myelin)’ 양이 절정에 달했고 중요한 사고를 하는 뇌 전두엽과 측두엽에 가지고 있었다.
뇌는 신경세포, 회백질, 백질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백질은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여기에 미엘린이라는 지방성 물질이 덮개를 형성해 미세한 신경섬유를 감싸준다. 미엘린은 신호가 전달되는 동안 신호가 톡톡 튀거나 합선되는 것을 방지한다. 전선 피복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미엘린은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물질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미엘린을 다른 영장류보다 20~30% 더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유아기나 어릴 때는 미엘린 중 많은 부분이 운동신경이나 감각기관에 놓여 있지만 중년이 되면 대부분 뇌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세포 축색돌기 주위에 나타난다는 것. 이곳이야말로 인간이 정교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게 하는 부분이라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나이가 들어 뇌는 전체적인 조직을 젊을 때보다 더 잘 작동하도록 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는 소화할 수 있는 정보량은 적을지라도 일상생활에서 더욱 잘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김 교수는 “신중년이 되면서 대학시절 시험을 볼 때만큼 많은 정보를 기억 속에 욱여넣을 수는 없을지 모른다. 단기기억 역시 예전 같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보를 다루고 말과 문장에 대한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능력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성격마저 변해 모호한 상황에서 더욱 편안하게 적응하고 좌절이나 초조에 덜 민감하게 대응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인성 치매 등을 겪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은 결코 뇌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좋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뇌를 비워야 미래가 열린다
실제로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가 진행한 실험이다.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두 학생이 있다. 누가 공부를 잘 하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 상태. 뇌영상을 찍어 누가 똑똑한 학생인지 실험을 했다. 한 학생의 뇌에서는 포도당이 소모되면서 빨갛게 달아올랐고, 다른 학생은 별 다른 반응이 없다. 지능이 높은 학생은 누구일까?
정답은 별다른 반응이 없는 학생이다. 이 학생은 뇌의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뚜렷한 반응이 나타난 학생은 못하는 것을 억지로 생각해 내려 하니 자극이 됐던 것. 이 실험은 ‘정직한 뇌’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고 있다. 사실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뇌를 깨끗하게 비운 상태로 유지하고 있지만, 거짓이나 알리바이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과부하가 걸린다는 것.
한 분야에 몰두해서 성공하고 싶다면,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행동이나 거짓보다는 정직이라는 덕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직하게 살아서 정말 필요할 때 진짜 머리를 쓰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
※뇌 전문용어 정리
변연계(limbic system): 대뇌 속에서 동기와 정서를 주로 담당한다고 여겨지는 여러 구조물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변연 피질과 해마, 편도체, 중격 등이 포함된다.
뇌의 가소성(Neuronal Plasticity): 기억, 학습 등 뇌기능의 유연한 적응능력을 ‘뇌의 가소성’으로 표현한다. 뇌에 장기적인 변화가 일어나, 자극이 제거된 후에도 그 변화가 지속되는 것으로 본다.
미엘린(myelin): 인지질 성분의 막으로 ‘미엘린수초’라고도 한다. 뇌 신경세포를 둘러싸는 백색 지방질 물질로 뉴런을 통해 전달되는 전기신호가 누출되거나 흩어지지 않게 보호한다.
뇌 사용량이 많으면 천재가 된다는 말이 사실일까? 결론부터 내리자면 인간은 뇌 전 영역을 골고루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사용량과 천재의 상관관계는 없다는 것이 21세기 학계의 정설이다. 그렇다면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글 박근빈 기자 ray@etoday.co.kr 참고 뇌과학여행자(김종성 저), 공부의 기쁨이란 무엇인가(김병환 저), 천재들의 뇌(로베르 클라르크 저)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해왔다. 아인슈타인쯤 되는 사람이 뇌의 10% 정도를 사용했고, 보통 사람은 10% 미만의 뇌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천재는 뇌를 쓰는 영역이 뭔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것은 속설에 불과하다고 한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뇌를 구성하는 신경 세포는 늘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나 그렇다고 쉬고 있는 것도 아니다.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일정 부위가 특별히 활성화되는데 그 신경 세포의 비율이 5% 정도다. 다음 순간에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부위가 활성화되며 이는 순간마다 바뀌므로 뇌는 전체적으로 늘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유튜브에 에이셉사이언스(ASAPScience)를 연재 중인 미첼 모피트(Mitchell Moffit) 역시 “대부분의 영화와 SF소설은 인간이 뇌 기능의 단 10% 정도만 사용한다고 우리를 믿게 만들죠. 완전히 거짓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뇌 10% 사용설은 근거가 부족했던 과거의 이야기 정도로만 파악하면 될 듯싶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뇌를 잘 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시 아인슈타인으로 돌아가 보자.
어린 시절 아인슈타인은 발육이 더디고 말도 늦었다. 그의 부모는 지진아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아인슈타인증후군’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지능이 일찍 발달한 아이들의 말하는 능력이 늦게 발달하는 것.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한 신경과학자들은 그가 말하는 것이 늦었던 것은 뇌의 비정상적인 발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해부 결과 밝혀냈다. 분석적 사고 기능이 집중된 아인슈타인의 뇌 부위가 정상적인 영역을 크게 벗어나 있었는데, 이 같은 침범을 받은 영역 가운데 하나가 일반적으로 언어기능을 통제하는 부위였다. 하지만 주목할 부분은 아인슈타인의 뇌 속에서 평범한 사람의 머리 안에는 없는 특별한 조직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더러 천재나 보통 사람 모두 문제를 해결할 때 동일한 과정을 밟는다는 것이다.
결핍과 질환으로 파생된 천재들
탁월한 창작활동 덕택에 후세에도 여전히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이들에게는 유독 정신 질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일련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천재와 정신병 환자의 뇌는 비슷하다고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천재는 수많은 정보를 자유롭게 엮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지만, 정신병 환자는 그 정보를 소화하지 못하고 혼돈 속에 산다는 점이다. 서울아산병원 김종성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결핍과 질환으로 탄생된 천재의 이야기.
글쓰기에 미친 측두엽 간질환자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와 셰익스피어는 글쓰기에 집착하는 형태를 보이는 측두엽 간질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작품을 통해 본인의 간질과 비슷한 증상을 써내려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 ‘악령’ 속에서 간질을 앓고 있는 인물을 묘사했고, 셰익스피어는 ‘오셀로’, ‘맥베드’ 등의 작품 속에서 간질을 표현하고 있다.
측두엽 간질을 앓는 사람들은 몇 가지 성격적인 특징이 있다.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관심이 높고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를 갖지만 간혹 안절부절못하거나 공격적으로 변하며, 지나치게 글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많이 쓰는 현상을 ‘하이퍼그라피아’라고 하는데 측두엽 간질환자가 왜 글쓰기에 집착하는지는 명확한 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기억력이 저하돼 이를 보충하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본다.
전두엽이 덜 떨어진 낙제생 ‘피카소’
피카소는 아주 어릴 적부터 타고난 그림의 천재였다. 말도 배우기 전에 먼저 그림을 그렸다. 이미 숙달된 어른 솜씨로 말이다. 그가 맨 처음 한 말은 ‘피’였는데 연필을 뜻하는 ‘라피즈(lapiz)’를 그렇게 발음한 것이다. 그런데 피카소는 미술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과목이 낙제 수준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자랑스레 말하고 다닌 그는 미술이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던 학생으로 기록된다. 왜 그랬을까? 전두엽의 기능이 다소 떨어져 공부는 못했지만, 오히려 후두엽의 시각중추가 발달돼 탁월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피카소는 사실화로부터 추상화로 그림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는 시각 중추는 물론 뇌의 광범위한 영역을 사용해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열등감과 청력손실 그러나 들끓는 열정 ‘베토벤’
베토벤의 청력손실 문제도 의학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다. 두개골의 두께가 평균 0.5인치로 기록됐다는 부검 소견에 따라 파젯병의 가능성, 대뇌매독 등의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도 결핵과 장티푸스, 피부병, 간경화, 위장병 등 수많은 질환을 가지고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또 베토벤은 가난했다. 게다가 외모조차 별로였다. 심한 곱슬머리에 얼굴은 천연두를 앓아 곰보였다. 당시 음악가들은 귀족들의 경제적 후원으로 살아가야 했기에 그들의 취향을 포기한 채 궁정음악을 작곡해야만 했다. 그의 들끓는 열정은 자신의 개인적인 목소리를 내기를 원했다. 베토벤은 수많은 병과 열등감을 토대로 천재 음악가로 성장하게 됐다.
후천적 천재, 노력의 산물을 쏟아낸다
프랑스 과학저술가 로베르 클라르크(Robert Clarke)의 ‘천재들의 뇌’에 따르면 차이코프스키는 25세에 첫 작품을 내놨고, 고흐는 27세에 처음 그림을 배웠다. 고갱은 39세에 화가로 입문했으며, 프로이트는 40세가 돼서야 심리학을 접했다.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이들은 굉장히 늦은 나이에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말년에 본인의 대표작을 완성한 인물들도 주목해볼만하다. 하이든은 66세에 ‘천지창조’를 작곡했고, 소포클레스는 75세에 ‘오이디푸스 왕’을 집필했다. 괴테는 81세에 ‘파우스트’를 탈고했으며, 앵그르는 82세가 돼서야 ‘터키탕’을 그렸다.
미국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Anders Ericksen)이 펴낸 ‘케임브리지 편람’을 보면,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천재가 만들어지는 비법은 ‘70%의 땀과 29%의 좋은 환경과 가르침, 그리고 나머지 1%는 영감’이라고 말한다.
과학이나 예술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인물들의 지능지수는 보통 사람보다 약간 높은 115~130 정도라고 한다. 이는 전체 인구의 약 14%에 해당하지만 실제 천재들은 이 수치에 비해 훨씬 적다. 대략 열 명중에 한두 명은 지능지수로 봤을 때 천재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지만 실상은 못 미친다는 것이다.
천재들의 특성은 지능지수와 무관하게 누구나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결론이다. 천재는 반드시 남보다 뛰어난 머리를 갖고 태어나야 하는 게 아니라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될 수 있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없다.
이 말에 의문이 생긴다면 마지막으로 음악신동으로 불리는 모차르트를 생각해보자. 모차르트가 과연 태어날 때부터 영재였을까?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보다 지독히 매달렸던 노력파였다. 35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600여 편이라는 걸작을 썼다. 천재라서 단숨에 성공적으로 작곡을 했을 거라는 소문과는 달리 그 역시 초작에는 고친 흔적이 많이 있다. 수많은 연습과 노력의 시간을 쏟아 부어 천재로 재탄생한 인물이었던 것. “일은 나의 주된 즐거움이다”라는 그의 고백에는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언가를 인지하고 판단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뇌가 원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뇌는 인간의 모든 행동과 사고 감정을 관장하는 기관일 뿐만 아니라 신체 각 부위의 장기를 조절 통제하고 있는 중앙 컨트롤 타워이다. 따라서 뇌가 활발히 움직이면 생각과 감정이 밝고 긍정적이 될 뿐만 아니라 신체 각 부위도 활력을 갖고 활발히 움직인다. 반면, 뇌가 주위의 여러 원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활력이 떨어지게 되면 뇌가 빠르게 늙어가 정신과 감정기능이 떨어져 정신병이나 우울병 등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중앙 조절 통제 기능의 약화를 초래하게 되어 우리 신체가 늙어가게 된다.
글 서유헌(徐維憲) 한국뇌연구원 원장/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즉 뇌력이 체력이다. 따라서 뇌를 활력 있게 건강하게 유지하고 잘 사용해야 오랫동안 젊음의 활력을 가지고 장수할 수 있으며, 잘못 쓰거나 잘 사용하지 않으면 치매를 비롯한 여러 가지 신경정신질환과 신체적 질병에 걸리게 된다.뇌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한다. 중년의 생활습관병에서 비롯된 비만을 다스릴 때도 ‘위’가 아닌 ‘뇌’를 다스려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이런 맥락과 같다.
뇌가 활력이 올라가고 건강하면 신체도 활력을 띠고, 삶의 질도 함께 올라가서 장수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뇌가 활력을 잃은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삶을 앗아가 버릴 수 있다. 우리가 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절대적 이유이다. 뇌에 있는 불로초를 잘 사용하면 누구든 100세까지 살 수 있으나 불로초를 잘 사용하지 못하면 단명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신체나이와 뇌의 나이는 비례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배우려고 해도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예전 같지 않고 반응 속도가 느려 민첩하지 못하다는 것은 변명이다.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과 열정을 잃어버릴 때 뇌는 늙어간다. 신체적 활력이나 힘은 뇌활력에 비해 더 빠르게 약해진다. 젊었을 때는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어 올렸으나 80대가 되면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기가 더 힘들다. 그러나 노력하면 80대가 되어도 젊었을 때 못지 않은 기억력을 유지할 수 있다.
뇌의 신경세포는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데 자극이 가해지지 않으면 자신이 필요 없다고 인식해 그 순간부터 정보 전달을 위한 시냅스 회로를 없애고 죽어버린다. 반대로 자극이 가해지면 시냅스 회로를 새로 만들어 정보 전달을 위해 뇌를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러므로 설사, 치매에 의해 뇌신경세포가 상당 부분 죽는다 해도 남아 있는 신경세포의 회로가 발달하면 망가진 뇌 기능의 일부를 대신하여 기억 기능, 인지 기능 등의 소실이 잘 나타나지 않아 상당기간 치매 발병이 지연될 수 있다.
뇌도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신경세포가 죽고 그 결과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 그러나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잘만 관리하면 젊음을 유지할 수 있고 기능 저하를 최대한 늦출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인 미켈란젤로는 89세로 사망할 때까지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76세에 사망하기 전까지 병석에 누워서도 생애 최고의 이론을 세우는 연구를 했다. 세기의 지휘자로 불리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역시 81세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열정적으로 연주 활동을 했다. 우리 주변에서 젊은 사람 못지않은 인지 기능을 보이는 노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나이에 구속받지 않고 활력을 유지하는 사람과 치매에 걸려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사람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뇌가 건강한 사람은 특별히 유전적으로 뛰어난 조건을 갖추었거나 좋은 약, 좋은 음식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끊임없이 뇌를 적절히 자극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낙관적 생활관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다.
뇌를 단련하고 사용하는 동안 뇌는 점차 활력을 되찾고, 필요한 에너지는 재충전될 것이다. ‘나이가 든다 = 뇌도 늙는다’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공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뇌활력을 깨우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뇌의 피로는 건망증의 최대 원인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력 감퇴, 무력감, 긴장성 두통, 근육의 긴장, 고혈압, 우울증 등의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 뇌세포를 혹사할 때 일어나는 증상과 아주 비슷하다. 뇌세포는 일정 이상 지속적인 자극을 받으면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는 ‘불응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충분히 쉬거나 수면을 취한 다음에는 다시 반응성이 회복된다. 밤을 새우고 난 다음 날이나 큰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기진맥진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해 본 적이 많이 있을 것이다. 뇌는 무한대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중년기 뇌활력의 가장 큰 적은 뇌세포의 피로다.
기억 연구로 유명한 도널드 헵 박사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열심히 연구하던 47세 때 심각한 기억력 장애를 경험했다. 그는 논문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노트를 펼쳐 보니 이미 그 부분이 자신의 글씨로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 논문을 읽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당장 일을 중단하고 충분히 휴식하면서 영양을 보충했고, 그 결과 기억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노령인 지금도 헵 박사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중년에 생기기 쉬운 건망증을 노화 현상으로 당연시해서는 곤란하다. 건망증 자체가 치매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적인 피로가 오게 되면 치매가 일찍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초로 치매가 최근 증가하는 것도 누적된 스트레스에 의한 피로가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피로에 지쳐 있거나 혹사 당한 뇌가 언제 어떻게 시스템 이상을 일으킬지 알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뇌의 건강이야말로 신체의 건강은 물론 삶의 행복과 직결되어 있다.
습관적 음주와 흡연이 뇌를 깎아먹는다
피곤한 중년의 뇌를 더욱 피곤하게 하는 것은 습관적인 음주이다. 중년은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술로 풀려고 하지만, 습관적인 음주는 뇌를 전체적으로 마비시키고 위축시키며 표면에 있는 골을 넓고 깊게 만든다. 또 뇌세포가 많이 손상되고 위축되어 뇌척수액이 순환하고 있는 뇌실이 넓어지고 무게도 가벼워진다. 특히 전두엽이 위축되고 얇아져 일을 하고자 하는 동기와 자제심이 부족해지고, 끈기와 집중력이 떨어지며 쉽게 화를 내기도 한다. 알코올은 도덕심과 창의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술이야말로 중년들에게 가장 큰 위협인 것이다.
술과 함께 담배도 뇌를 피곤하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다. 미국 예일대 정신과가 실시한 연구에서 흡연자의 뇌는 비흡연자의 뇌보다 왼쪽 대뇌피질이 얇을 뿐 아니라, 흡연량이 많고 흡연기간이 길수록 더 얇아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뇌피질은 언어와 청각 능력, 정보 전달력, 기억력과 관련된 부위로 나이가 들면서 점점 두께가 얇아져 청각과 언어능력, 기억력이 떨어지게 되는데, 담배가 이를 더 부추기는 것이다. 또한 중년의 나이에 담배를 피우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보다 심장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이 최대 4배 정도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술을 마실 때 담배를 같이 피우면 술만 마실 때보다 뇌장애, 특히 청각 기능에 더 큰 장애가 올 수 있다는 것이 최근 보고되고 있다.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뇌의 활력이 많이 떨어진다
아침밥을 먹지 않는 것은 기름이 바닥난 자동차를 끌고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까지 기다리는 것은 꽤 긴 시간이다. 장시간의 공복은 뇌에 부담이 된다. 이런 식습관이 오래간다면 뇌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또 하나 아침 식사가 중요한 이유는 체온이다. 사람은 수면 중 체온이 1℃ 정도 내려간다. 겨울 산속에서 재난을 당해 잠들면 체온이 떨어져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 있다. 체온이 떨어지면 뇌 활동도 둔해진다. 오전 중에 뇌 활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수면 중에 떨어진 체온을 올려줘야 한다. 이러한 신체 활동을 위한 준비가 바로 아침밥이다.
하루 종일 뇌가 원활하게 정보전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40~50종에 이르는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원료 공급이 부족해 신경전달물질이 적게 만들어져 뇌 기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오전 내내 호르몬 중추인 뇌하수체 바로 위에 있는 시상하부 속의 식욕 중추가 흥분을 하게 돼 집중력이 떨어진다. 즉, 아침밥을 먹어야 탄수화물이 혈당량을 높여 정상적으로 뇌활동을 펼칠 수 있다.
아침밥을 먹지 않는 것은 기름이 바닥난 자동차를 끌고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시간의 공복은 뇌에 부담이 된다. 이런 식습관이 오래간다면 뇌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