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요리 PART1] 요리는 치유다

기사입력 2015-09-18 16:26 기사수정 2015-09-18 16:26

남자들의 요리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좀 과장해 온 방송이 ‘먹방(먹는 방송)’이고 ‘쿡방(요리 방송)’이다. 정규 편성표를 가득 점령한 본방송에, 채널을 가리지 않고 거의 무한 재생되는 재방송까지 더하면 브라운관에서 요리하고 먹는 장면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덕분에 이른바 스타 셰프들이 연일 미디어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다. 어떤 이는 만능 요리 비법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주방 안으로 끌어들이고, 또 어떤 이는 허세 가득한 동작과 신출귀몰한 요리 기술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미디어의 중심에 선 이들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심영순, 홍신애 등 여성 요리인 또는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의 활약이 돋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허셰프’라는 별칭으로 사랑받는 최현석을 비롯해 샘 킴, 이찬오, 레이먼 킴 등 최근의 요리 유행을 이끄는 주동력은 역시 남성들이다.

하필 지금에 이르러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인간의 대표적 본능인 ‘식탐’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분석이 아닐까 싶다. 식탐을 자극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최근 들어 갑작스레 만들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성적으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라는 추측 역시 마찬가지. 요리 잘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유독 요리 유행이 도드라진 데는 분명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중심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아가는 도중에 필연적으로 생겨난 현상’이라는 분석은 귀 기울일 만하다. 남성의 도움 없이도 생활할 수 있게 된 여성들이 강한 남성보다는 모성적 남성을 원하면서 요리 잘하는 남성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더불어 남성들이 요리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는 주장이다.

가족 해체 등의 사회 불안이 이른바 ‘집밥 열풍’의 주요인이라는 설도 설득력을 갖는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남성들이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을 때와 같은 편안함을 갈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복고주의’라는 견해도 있다. 원시사회 때부터 임신 및 육아가 여성의 몫이었던 반면, 식량 획득과 요리는 남성의 몫이었으므로 최근의 유행은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성적 분업 이론(남성과 여성의 생리학적 특징의 차이에 따라 일이 나뉜다는 학설)에 근거한 주장이다. 개인적으로는, 돌아가려는 시기와 현재 사이의 간격이 터무니없이 멀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런 맥락과 비슷한 주장들이 최근 유행과 더불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요리에 진실로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더러는 지겨울 만도 하다. 튀기는 소리, 지지는 소리, 끓는 소리에 맛있다는 호들갑까지 더해진 천편일률적 요리 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쾌감만 선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이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저술가이자 환경운동가’라고 설명하는 마이클 폴란은 저서 <요리를 욕망하다>에서 현대인들이 직접 요리하지 않고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통해 요리에 심취하는 현상을 ‘요리의 역설(Cooking Paradox)’이라 지칭했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요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잘난 듯 떠들어대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요리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폴란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가정에서 식사 준비에 필요한 시간은 하루에 고작 27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또 다른 저서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는 “우리는 음식의 홍수에 빠져 있지만 정작 ‘진짜 음식’은 드물다. 슈퍼마켓 선반에서 ‘진짜 음식’이 사라지고 ‘그럴싸한 음식’을 가장한 가공식품이 빼곡히 들어찼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 요리 유행의 핵심은 손쉬운 요리, 값싼 요리, 다가가기 쉬운 요리다. 폴란은 그런 요리들을 떠받쳐줄 기둥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라고 다를 리 없다. 음식평론가 황교익 씨는 우리나라 특유의 ‘치맥’ 유행을 ‘값싼 육류를 제공하려는 정부와 산업계의 노림수가 대중에 통한 결과’라고 비판하고, 요리사 겸 저널리스트인 박찬일은 모 언론에 기고한 칼럼 ‘달걀의 운명’에서 달걀이 대량 생산되는 현실을 두고 ‘이 불안한 풍요가 실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불안해한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운 닭고기와 달걀의 현실이 이럴진대 다른 식재료는 오죽할까.

요리 방송이 주로 밤 시간대에 편성된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먹지 않아도 될 시간에 식욕을 지나치게 돋움으로써 건강상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굳이 렙틴(Leptin)이니 글렐린(Glehlin)이니 하는 신경호르몬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요리 방송의 부추김에 떠밀려 맥주 캔과 더불어 기름진 안주거리를 찾은 경험이 누구든 한두 번쯤은 있을 터. “이른바 ‘쿡방’ ‘먹방’의 영향으로 뇌에 내성이 생기고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돼 비만 등 건강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사들의 진언은 괜한 걱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바람을 선선하게 느낀다. 갖가지 역효과에 눈 감으려는 무책임함 때문이 아니다. 어떤 잇속이 걸려 있기 때문도 아니다. 무엇보다 나쁜 영향 못지않게 결정적으로 좋은 영향이 분명 그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요리는 무슨 존재인가

요리 늦바람이 골프나 주식투자보다 재미있고 가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남이 해주는 요리만 먹던 ‘상남자’들이 아내의 전유물로만 여기던 칼을 집어든 이유는 뭘까.

은퇴한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것과 달리 중년 부부의 경우 아내는 점차 밖으로 활발하게 움직인다. 남자들의 요리는 가정 평화는 물론, 고령화시대에 대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 학습으로 회자되고 있다.

남자들의 요리는 생의 진실을 담아낸 영화처럼 따뜻하며 때로는 코끝 찡하게 먹먹하다.

결국 우리의 인생이 맵고 짜고 달고 시큼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는 섬처럼 고립된 개인들을 잇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를 위해 상을 차리고 함께 나눠 먹는 것은 상대방의 입맛과 식습관, 식탁 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영화 <완득이>의 주인공 도완득은 언제나 혼자 밥을 먹고 등·하교하며 자신의 삶에 누구도 초대하지 않는 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서 끈질기게 거절하던 반 친구의 “라면이나 먹고 가자”는 말에 “그러자”고 답한다. 그는 이제 누군가와 함께 밥상에 앉는 것을, 자신의 삶에 타인이 들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화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공과 각자 상처를 지닌 채 식당을 찾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따뜻한 영화다. 카모메 식당은 우리나라의 분식집쯤 되는 작은 동네 식당. 세 여인은 이곳에서 시나몬 롤과 오니기리를 먹으며 각자의 상처를 치유한다.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것은 상대와 유대관계를 맺겠다는 적극적 신호다.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에서 자주 들어왔던 “한술 뜨라”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언어 습관은 바로 그 정신에서 출발했다.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의 걸출한 코미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타인을 거부하던 시절의 주인공 멜빌 유달(잭 니컬슨)은 홀로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기만 한다. 그러다가 이웃집에 사는 게이 화가 사이먼(그레그 키니어)을 받아들이면서부터는 중국식 수프를 나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주인공이 게이 화가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음을 보여주는 장치로서 음식을 선택한 것은, 실로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다. 음식에는 그런 힘이 분명히 있다.

지금의 요리 열풍에도 그처럼 명쾌한 힘이 내재돼 있다. 그 동안 우리 가장들은 나쁜 의미에서 독야청청했다. 전통적 가부장제의 영향으로 근엄함과 배타심을 구분하지 못하고 스스로 차단막을 내걸었던 이가 많았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로 인해 자기 고립의 함정 속으로 스스로 빠져들고 말았다.

‘삼식이’라는 말을 아시는가? 은퇴 후 삼시세끼를 부인이 해주는 식사로 해결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뉘앙스부터 천박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으니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생산 가능 인구(15세에서 64세 사이)와 생산 불가능 인구 사이의 비율이 2060년에 이르러 50대50이 된다는 고령화 사회에서 누구도 그 유행어의 비극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쉽게 말해, 한때 배달의 기수였던 남성들이 현대에 이르러 계륵 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요리 유행은 계륵과 가족 사이에 음험하게 드리워진 차단막을 걷어내도록 하고 있다. 음식을 타인과 나누는 요리의 정신이 계륵들로 하여금 스스로 벽을 허물게 만들고 있다.

최근 요리 열풍의 핵심에 나이 지긋한 남성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차줌마’로 일컬어지는 차승원, ‘백 주부’라는 애칭으로 사랑받는 백종원, 중화요리의 대가라는 이연복 등은 모두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 남성들이다. 그들은 방송의 중심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요리는 어렵지 않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외치면서 그 동안 요리에서 소외돼 있던 계층, 다시 말해 중년 남성들을 주방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 점이 오히려 쉽게 요리에 접근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닐까.

백 주부는 자신의 요리를 세발자전거에 비유했다. 어린 아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자전거를 한 번도 안 타본 사람도 겁내지 않고 타 볼 수 있는 세발자전거처럼 누구나 시작해 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는 용기를 주어 다음에는 두 발 자전거 타기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주방 안으로, 관심 속으로

최근 은퇴 전후 남자들에게 요리교실이 인기다.

실제로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초문화원의 ‘아버지요리교실’은 정원 25명으로 3개월씩 진행하는데, 은퇴 전후의 50, 60대가 주축이다. 서울대 노화고령화사회연구소와 이화여대 글로벌식품영양연구소, 순창군이 함께 시행하는 ‘골드쿡’ 프로젝트는 은퇴 전후의 중·장년층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요리실습이다. 서울특별시 양천구청이나 강남구청 등이 꾸준히 운영해온 중년 남성 대상의 ‘아버지 요리교실’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남양주 시청의 ‘아버지 요리교실’, 광주광역시 농업기술센터의 ‘아버지 요리교실’ 등 최근의 요리 유행에 힘입어 개설된 아버지 대상의 요리교실 역시 하나둘이 아니다.

고양시 ‘젠틀맨 생활 요리 교실’은 55세 이상의 은퇴 남성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남성을 위한 요리 교실로, 실생활에서 꼭 필요한 간단한 생활 요리법을 전수해준다. 수업 소개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남성만의 요리 교실로, 새로운 인간관계와 자아를 재정립하고 그동안 소원했던 가족들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익한 강좌’라고.

여기에 경기 부천시, 광명시, 고양시, 충북 음성군, 강원 영월군, 경북 칠곡군 등 군 단위에서 시행되는 남자 요리교실과 ‘시니어 요리교실’ ‘행복남요리교실’ ‘츠지원’ 같은 사설 요리 강좌까지 합치면 중년 남성 대상의 요리 강좌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해외 유명 셰프를 초빙하는 경우도 있고 값비싼 식자재와 조리도구를 사용한다. 8~10명 정도의 수강생만 받아 소수 정예로 운영되는 만큼 전문직이나 높은 사회적 위치와 함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수강생들이 찾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강좌에 참가하는 남성들의 마음은 한결 같다. 가족을 비롯한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요리를 대접하겠다는 것, 그래서 그들과 좀 더 가까워지려는 것이다.

요리 잘하는 최철주 전 중앙일보 논설 고문은 “나이 먹은 남자들의 요리는 치유일 수밖에 없다”며 “가족을 위해, 혹은 지친 누군가를 위해 배려와 진심을 담아 요리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말했다. 요리는 다름 아닌, 자신의 진심을 상대에게 전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강력한 한 방법이다.

마이클 폴란은 요리 방송이 요리에 대해 떠들기 좋아하게 만들 뿐 요리 자체로 끌어들이지 못한다고 역설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요리 유행은 그와 양상이 사뭇 다르다. “요리는 어렵지 않다”는 어떤 요리인의 주장에 고무돼 실제로 많은 남성들이 요리에 도전하고 있으며, 적어도 도전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요리는 사람들의 유대관계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부작용을 여럿 양산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요리가 가족 또는 타인과의 벽을 허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최근의 요리 유행을 반갑게 맞이하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밥’은 중요한 소통 수단이다. 어느 종교 지도자는 밥을 나눈다는 것은 음식과 시간을 함께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꿈과 비전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중년 남자들이 ‘먹방’과 ‘집밥’을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은 ‘맛’이 아닌 ‘정’이고 ‘온기’가 아닐까. 분명, 요리라는 행위에는 그처럼 명쾌한 힘이 있다.

{ 남자가 가도 괜찮은 요리 수업 }

양천구 ‘아버지 요리 교실’

3·6·9·12월, 1년에 4회 양천구 지역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요리 강좌. 한 달 과정으로 매주 토요일 4회 수업한다. 장어구이, 들깨수제비 등 비교적 난도 있는 요리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초문화원 ‘아버지 요리 교실’

10~12월 3개월 12주 과정으로 진행하며, 강의 신청은 10월 31일까지 받는다. 매주 목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수업한다. 단호박 밤수프부터 제육볶음, 황태찜, 연어 스테이크 등 반찬과 일품요리를 두루 배울 수 있다.

롱런아카데미 ‘아빠 요리 교실’

분기별로 2개월 8주 과정. 매주 월요반과 수요반 2회 운영한다. 두 강좌 모두 요리의 기본인 계량법과 밥 짓기로 시작해 떡갈비 같은 접대용 음식은 물론이고 생선 손질법과 찌개 끓이는 법 등 생활에 꼭 필요한 지식을 알려준다.

고양시 흰돌종합사회복지관 ‘젠틀맨 생활 요리 교실’

은퇴한 남성이 노후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개설한 요리 강좌로 기본적 요리 용어부터 꼼꼼하게 알려준다. 매주 목요일 12회 수업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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