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안영희 중앙대 교수 "나무는 겨울에 잠을 자는가?"

기사입력 2014-01-02 15:56 기사수정 2014-01-02 15:56

2013, 계사년(癸巳年)의 1월 추위가 매섭다. 연일 영하 10℃를 밑도는 추운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올해는 뱀의 해이다. 뱀은 외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이므로 기온이 낮은 겨울 동안 활동을 중단하고 동면을 해야만 한다. 뱀의 동면은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지역의 가혹한 겨울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하는 동물의 생리적인 주기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저 멀리 깊은 산 어딘가에 뱀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울긋불긋 단풍이 든 잎을 달고 있던 나무들도 겨울잠을 자고 있다. 그러나 나무의 겨울잠은 동면(冬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흔히 휴면이라고 나타낸다. 한자 사전을 찾아보면, 휴면(休眠)의 휴(休)는 ‘쉴 휴’, 면(眠)은 ‘잠잘 면’이라는 뜻이므로 한자 그대로의 뜻은 ‘잠을 자고 쉰다’는 의미일 것이다. 식물을 전공하는 나는 이 용어에 꽤 불만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움직임이 없고 자극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식물의 특성상 겨울철의 나무는 쉬고 있는 듯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겨울철의 나무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적극적인 생리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여름 더운 계절에 열심히 광합성을 했던 나무가 겨울 동안 편히 쉬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다. 4계절이 있는 온대지역의 나무들은 가을철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내려가면 생리적인 리듬이 바뀌게 된다. 동물의 호로몬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체내 물질이 식물의 겨울준비를 유도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잎에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식물체 내부는 추운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 엄청난 준비를 한다. 우선 식물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분을 적극적으로 탈수시켜 식물 세포의 수분함량을 최대한 줄인다. 이것은 영하의 낮은 기온에 세포가 얼어 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생존대책이다. 또한 여름철 동안 활발한 광합성에 의해 생성된 탄수화물을 전분의 형태로 세포 속에 잔뜩 저장해두는 것이다. 이 전분은 세포 내에 존재하는 효소에 의해 다시 잘게 분해되어 겨울철 동안 나무의 에너지원이 되어주는 것이다. 만일 나무가 병에 걸렸거나 자연적인 재해가 닥쳐 생장기에 제대로 광합성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저장양분이 부족하여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말라 죽게 된다. 또한 혹독한 환경 조건의 세포 안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항산화효소의 활성도 생장기에 비해 더욱 높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겨울나무의 처절한 노력을 알게 되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나무의 부지런함에 그저 놀랄 뿐이다.

식물의 휴면은 겨울철 추위에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편이기도 하지만, 봄에 새로운 생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식물의 휴면을 깨워 생장을 유도할 수 있는 외부 자극으로 반드시 추운 겨울이 필요하다. 이것을 온대식물의 저온요구도라 한다. 휴면을 타파하기 위한 저온감응기간은 식물의 종류에 따라 긴 경우도 있고, 짧은 경우도 있다. 대개 이른 봄에 꽃이 피는 진달래, 개나리 등은 저온요구도가 낮은 식물에 해당되고 늦은 봄에 꽃이 피는 벚나무나 사과나무 등은 저온요구도가 높은 식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겨울철의 이상기온으로 인해 며칠 동안 온화한 날씨가 지속되면 개나리가 활짝 피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반대로 겨울철 기온이 너무 따뜻하면 사과나무의 꽃이 제대로 피지 못하고 열매의 품질이 나빠지고 수량도 떨어진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온대성 식물에 있어,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는 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가혹한 조건이기도 하지만 봄에 새싹이 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 것이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도 어렵지만 반드시 거쳐야만 되는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어제 TV 뉴스 속에 논산의 육군훈련소에서 입영장정들의 금년도 첫 입영행사가 열리는 장면이 비춰졌다. 차가운 날씨의 입소식에서 훈련병들이 거수경례하는 늠름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병역의 의무를 위해 그 자리에 모인 젊은이들이 대견스러웠다.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들에게 부여된 20여 개월의 군복무 기간이 힘들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씩씩한 남아로 거듭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되는 과정이라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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