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빈의 문화공감] 기본은 역시 클래식, 시작은 왈츠곡 ‘도나우’

기사입력 2016-03-25 12:53 기사수정 2016-03-25 12:53

▲베토벤
▲베토벤

첫 번째 음악이야기에서 고2 때인 1960년에 팝송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필자의 음악세계가 바뀌었다고 썼지만 일곱 번째 이야기를 쓰고 나서야 그동안 완전히 잊고 있던 음악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필자가 중3이던 1958년 한국은행에 근무하던 막내고모부가 1년간의 미국연수를 끝내고 귀국했다. 그 집에서 처음으로 전축과 TV를 보았다.

우리나라의 첫 TV방송이 1956년에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시험방송 정도의 수준이어서 그랬는지 고모부는 주로 미군방송(AFKN)을 보는 것 같았다. 전축으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를 비롯한 몇 장의 LP판을 들었을 때 너무 맑고 아름다운 소리에 완전히 매료됐다. 특히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은 처음 들었음에도 매우 친숙하게 다가왔고, 마치 천상의 소리 같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후에 빈이나 부다페스트에 갔을 때에는 그 멜로디가 귀에서 맴도는 듯했다. 또 클래식은 아니지만 일본가수 프랭크 나가이의 ‘유락정에서 만나요’나 ‘밤안개 낀 제2국도’ 등도 매력적인 저음이 너무 좋아 그 후에도 종종 듣곤 하였다.

1959년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고성능 오디오시설을 갖춘 새 음악당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음악시간에는 이론보다 주로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 등의 교향곡, 협주곡 등과 같은 기본적인 클래식 음악들을 감상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마 필자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기초가 다져졌을 것이다.

그러던 그해 가을 어느 날 음악선생님께서 LP 한 장을 들고 들어오셔서 마리오 란자라는 테너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정통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않아 그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재능은 뛰어나고 노래도 잘 불렀는데 얼마 전에 갑자기 사망했다면서 그의 노래를 들려주셨다. 오페라 토스카 중에서 ‘별은 빛나건만’, 리골레토 중에서 ‘여자의 마음’, 사랑의 묘약 중에서 ‘남 몰래 흘리는 눈물’ 등과 같은 오페라 아리아들은 나중에는 꽤 친숙해졌지만 처음 듣는 순간에는 엄청난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 후 그가 주연한 두 편의 영화를 단체로 관람하였다. 하나는 <세레나데>라는 영화로, 그는 <투란도트> 중에서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일 트로바토레> 중에서 ‘저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 <라 보엠> 중에서 ‘오 사랑스런 아가씨여’ 등의 오페라 아리아들과 함께 ‘세레나데’, ‘돌아오라 쏘렌토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등과 같은 가곡들도 불렀다. 또 하나는 <첫날밤(For The First Time)>으로서 여기에서는 <리골레토> 중에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딸이여’, <아이다> 중에서 ‘청아한 아이다’, <팔리아치> 중에서 ‘의상을 입어라’ 등의 아리아들과 함께 ‘코메 프리마(Come Prima)’, ‘오 솔레 미오’ 등과 같은 가곡들을 불렀다.

그 외에 <오케스트라의 소녀>라는 영화도 단체로 관람하였다. 이 영화에서는 16세의 상큼한 소녀 디아나 더빈이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를 열창하였다. 그리고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직접 출연하여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 제2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5번 4악장’, 그리고 바그너의 ‘로엔그린 3막 서곡’ 등을 연주하였다.

▲디아나 더빈
▲디아나 더빈

또 지금의 집사람과 대학 때 함께 본 <랩소디>라는 영화는 주연배우인 20대 초반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배경이 된 스위스의 취리히, 생 모리츠도 아름다웠지만 영화 속에서 연주되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협주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제2번’과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Gypsy Air)’의 선율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 외에 제1회 국제 차이코프스키 음악경연대회 피아노부문에서 우승했던 반 클라이번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제1번’, 실비 바르탕이 부른 ‘친애하는 모차르트(Caro Mozart)’라는 샹송으로 인해 익숙해진 ‘모차르트 교향곡 40번’과 <엘비라 마디간>의 주제가였던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1번’ 등이 상당히 유행했다.

지난달까지 여러 가지 음악이야기를 했지만 음악의 기본은 역시 클래식이다. 그래서 대학시절에도 경음악실보다는 르네상스나 아폴로 같은 클래식 홀을 훨씬 더 자주 갔었다. 또 1974년의 어느 요일에는 오전에 공릉동에 있던 서울대 공대, 오후에는 흑석동의 중앙대, 그리고 저녁에는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야간강의를 했는데 이동 중 남는 시간에는 명동에 있던 필하모니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클래식 중에서는 ‘베토벤 피아노소나타’를 많이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열정’(Appassionata)을 좋아해서 루돌프 제르킨, 아르투어 루빈슈타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등 연주자별로 9장 정도의 판을 가지고 들었다. 군복무 중에는 청소하다가 실내스피커에서 이 곡이 흘러나와 필자도 모르게 멍하게 서서 듣는 바람에 기합을 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도 많이 좋아했다.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와 ‘파리의 아메리카인’,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 ‘보로딘의 교향곡 2번’과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In The Steppes Of Central Asia)’가 들어 있는 ‘Russian Impressions’라는 LP판도 자주 들었다. 헌 책방에서 구한 조셉 매클리스(Joseph Machlis)의 보면서 주요한 곡들의 판을 구해 듣기도 했다.

또 음악 연주에도 욕심을 부려 피아노는 체르니까지, 기타는 종로2가에 있던 세계기타학원에서 가요 몇 곡 칠 정도까지, 그리고 선친의 아코디언에도 손을 좀 댔었으나 연주에는 워낙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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