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기자 칼럼] 19살 청년의 죽음

기사입력 2016-06-03 17:20 기사수정 2016-06-22 10:59

▲청년의 죄없는 죽음이 안타까워 애도의 뜻으로 촛불을 밝혔다. (양복희 동년기자)
▲청년의 죄없는 죽음이 안타까워 애도의 뜻으로 촛불을 밝혔다. (양복희 동년기자)
6월을 여는 아침, 또 한 청년의 어이없는 죽음소식이 전해졌다. 그 청년의 허름한 가방 속에 남겨진 끼니를 때우기 위한 컵라면 한 통이 온 세상 사람 가슴을 울린다. 그 어린 나이에 삶이 고달파서, 아니 너무 열심히 살아서 일찍 데려간 걸까? 남겨진 가족은 어쩌란 말인가. 또 추모가 일상이 되어 버린 현실이 슬프기 만하다.

언젠가 읽었던 책의 내용이 생각났다. 어느 목사님이 가난한 홈 리스(노숙자)들에게 그날도 컵라면을 주었더니 “목사님! 또 라면이에요? 그~래, 우리 삶은 라면이다.”라고 해서 목사님은 주먹으로 홈리스 머리를 쥐어 박았단다.

“왜요? 삶은, 이거 물에 푹 삶은 라면이잖아요.” 목사님은 어이가 없어 한참을 바라보다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었다고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필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그 라면이 오늘 또 마음을 울린다.

세상의 독한 위험성들은 비정한 것일까? 그것들은 하필이면 가장 빈약한 사람들에게만 먼저 찾아 오는 것 같다. 가장 부려 먹기 좋은 존재, “십대 밑바닥 노동”이라는 기막힌 말 앞에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가난한 생계를 위해 작은 돈이라도 벌어보려고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며 험난한 곳에서 일 해야만 하는 근로 빈곤의 시대가 그 시대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지금은 노동의 시대라는 단어가 청소년을 덮치고 기업들은 불법 편법적으로 상식을 넘어 과도한 압박으로 힘없고 생활고로 허기진 어린 자들을 쓸모의 대상으로만 삼아 인격적 모독과 함께 춥고 소외된 현장으로 내 몰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정규직이 아닌 비 정규직으로 더럽고 힘든 일은 도맡아야만 하는 사회적 불 안정속에 현실은 비정규 사회가 된지 오래인 듯 하다. 터져버린 사고 때마다 즉흥적 재발 방지 조치가 이루어 지기는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그 관리 소홀에 반복되는 판박이 사건들은 과연 누구의 잘못이며 어디의 책임이라는 걸까?

안전 불감증의 동일한 사고 반복 속에 오늘도 물레방아는 여전히 돌고 있다. 그 책임자들은 큰 문제라고 입술로만 되 뇌일뿐 뒤늦게 현장을 찾아 분주한 권력의 모자로 머리를 포장하고 또 허세를 부린다.

이나라에 태어나 19나이에 먹고 살겠다고 생계를 책임지며 동생 용돈까지 챙긴 고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더구나 생일을 앞두고 앞만 보고 일하며 살아온 젊은이에게 어떤 삶의 미숙함이 있었단 말 인가.

책임을 돌리는 힘있는 자들이 뒤늦게 애써서 보내는 형식적 애도의 표시가 과연 어떤 의미로 남아질 것인지 담담하기만 할 뿐이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성인으로, 부모로써 쓰린 마음에 성찰과 안타까움만이 울부짖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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