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 땜에 친구와 의 상한다] 삼총사가 당구 내기로 갈라선 사연

기사입력 2016-07-04 16:13 기사수정 2016-07-27 10:34

▲당구 내기 때문에 친구와 갈라선 경험이 있다. (강신영 동년기자)
▲당구 내기 때문에 친구와 갈라선 경험이 있다. (강신영 동년기자)

대학원 시절 3총사가 있었다. A는 국무총리의 장남이었고 B는 국내 굴지 제약회사 사장의 장남이었다. 필자는 조그만 사업을 하는 보통 아버지를 둔 처지여서 격차가 컸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지지직 전기가 통하여 거의 매일 당구 치러 다녔다.

셋이 당구 치러 가면 진 사람이 게임비와 술값을 내는 내기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셋은 진 사람이 게임비와 술값을 내고, 더불어 여자도 붙여주는 내기를 했다. 서로 실력이 비슷해 당최 승부를 가릴 수 없어 통 큰 내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평소는 조금이나마 승률이 앞섰던 필자가 이날은 어이없게도 지고 말았다. 큰 승부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약속대로 서울 신촌의 술집에 갔다. 한참 즐겁게 술을 마시는데 옆자리를 보니 마침 세 명의 젊은 여자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대학 시절 과 대표하면서 ‘미팅 주선의 달인’ 소리를 들어온 터라 자신감이 충만해 여자들에게 합석을 권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기의 세 번째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들은 합석했다.

여자들은 술김에 봐도 수준급이었다. 그렇게 수준급 여자들과 마시다 보니 술도 많이 마시고 많이 취했다.

그런데 술자리를 파하고 술값 내고 밖에 나와 보니 웬 불량배 셋이 여자들을 희롱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숫자가 열세여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3대 3이니 여자들을 구해주자”고 했다. 그래서 필자가 불량배 쪽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A는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자취를 감췄고 B는 “모른 척하자”며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필자가 친구들을 따라가서 팔을 잡았으나 강하게 뿌리치며 도망가기 바빴다. 평소 얌전한 A에게는 기대를 안 했지만 B에게는 나름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합기도 고단자였기 때문이었다. 필자도 유도, 태권도, 복싱으로 다져진 몸이어서 둘이 힘을 합치면 불량배들을 혼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B는 “여자들이 희롱당하는 것이 아니고 평소 불량배들과 어울리는 사이”라며 사양했다.

할 수 없이 필자는 혼자 불량배 3명을 상대로 싸움을 했다. 그런데 술에 취한 때문인지 몸놀림이 완전 슬로 비디오였다. 그런 와중에도 세 명을 상대로 때리고 맞으며 싸웠는데 두 명은 시야에 다 들어와서 치고받고 할 수 있지만 한 명은 뒤편에 있어서 안 보이니 속수무책이었다. 도망간 B가 원망스러웠다.

그나마 선전하던 중 불량배들이 어디서 몇 명이 더 왔다. 도저히 더는 못 버틸 것 같아 줄행랑을 쳤다. 그렇게 ‘도주 모드’로 바뀌어 달리기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어느덧 신촌로터리 육교에 다다랐다. 그리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는데 이게 잘못된 선택이었다. 필자는 복잡한 인파를 헤치고 도망치는 입장이고 쫓아오는 불량배들은 치워진 공간을 이용해서 따라오니 결국 육교 위에서 붙잡혔다. 상대가 몇 명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지고 있던 우산대를 휘둘렀으나 우산대가 그토록 힘없이 부러질 줄은 몰랐다.

필자는 육교 위에서 불량배들에게 흠씬 맞고 쓰러져 짓밟혔다. 다행히 육교 위에 널브러진 대학원 교재를 보고 지나가던 학생들이 “우리 학교 학생이 불량배들에게 주어터진다”라며 달려들어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몸을 추슬러 보니 옷도 찢어지고 손목시계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도 없었다.

이 일로 두 가지 후유증이 생겼다. 하나는 아내에게 칭찬받으려고 무용담처럼 얘기했다가 오히려 ‘야단 세례’만 들은 것이다. “남자로서 그 정도 의리는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는데 아내는 “싸움은 무조건 나쁘다. 이제 싸움은 하지 말라”며 이번에는 잃어버리면 속이 아플 정도의 고급 시계를 필자에게 선물했다.

A와 B는 그 일로 더는 어울리지 않고 우정도 싸늘하게 식었다. 오랜 시간 다져온 우정이 그 일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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