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엄마의 미국 이민 이야기] (10) 중고차 이야기

기사입력 2016-07-13 14:25 기사수정 2016-07-13 14:25

▲필자의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 (양복희 동년기자)
▲필자의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 (양복희 동년기자)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서 차는 발이나 다름없다. 차가 없으면 누구나 꼼짝도 할 수가 없다. 이민 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운전 면허증을 따는 일이었다. 그리고 차를 구입해야 하는데 그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낯선 땅에 천지가 어리둥절하고, 가난한 이민살림에 비싼 새 차를 산다는 것은 엄청난 사치였다.

필자는 두 번에 걸쳐서야 겨우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미국면허증을 따는 일은 만만치가 않았다. 필기 시험은 그렇다 해도, 실기시험의 시내주행은 지금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운전 라이센스를 어렵사리 얻어내고 드디어 필자 소유의 중고차 한대를 구입했다. 남편이 타던 싸구려 중고차는 온 가족이 타기에 작고 좁기도 했지만 틈만 있으면 골치를 썩였다.

남편과 함께 하루 종일 쏘다니며 미국인 자동차 매매상뿐만 아니라 멕시칸, 한국인 자동차 판매상을 돌아다녔다. 결국은 한국인에게 하얀 색 밴 한대를 구입했다. 낯선 땅에서 소유한 첫 재산이었다. 남편은 신이 나서 몇 번씩이나 차를 닦아 대더니 기념으로 바람을 쐬자며 온 가족을 출동시켰다. 아이들은 세탁소 근처에 있는 ‘인 앤 아웃’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 햄버거는 한국사람들 그리고 대체로 미국인들에게도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필자도 이따금씩 먹고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이유는 모든 재료가 냉동 식품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당시 ‘인 앤 아웃’은 백인이 아니면 종업원으로 채용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은 하늘을 치솟아 몇 십분 씩 줄 서는 것은 보통의 일이었다.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남편은 싼타모니카 언덕을 지나 대단한 미국의 거부들이 살고 있는 어마어마한 동네로 구불구불 구경을 시켜줬다. 그 유명한 해변도로 1번 후리웨이를 타고 멀리까지 약 두어 시간은 돌아 다닌 것 같았다. 어느 작은 해변 골목길로 들어설 때쯤에 차가 덜컹 덜컹하더니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하얗게 당황해 안절부절 야단이 났다.

덩달아 아이들도 불안해 했다. 차에서 내려서 왔다 갔다 하더니 문제가 생겼다며, 시동이 걸리지 않아 더 이상 갈수가 없다고 했다. 필자도 갑자기 어찌 해야 하는지 몰라 멍청히 서있었다. 어디가 어딘지 알지도 못하는 동네에서 졸지에 발없는 미아가 된 것이다. 필자는 어딘가 연락을 해야 했지만 그때는 핸드폰도 없었다.

얼마 후에 세리프(경찰차)가 왔다. 자초지종을 묻더니 라이센스(운전면허증)와 보험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차는 우선 길가의 한편으로 안전하게 옮겨놓아야 한다며 도와주기를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힘으로 이리 밀고 저리 밀고 하더니 자리를 잡았다. 어느새 캄캄한 밤이 되어 쌀쌀한 바람이 옷 속으로 스며 들었다. 바닷가 옆이라 더 바람이 불어왔다.

옷을 벗어 아이들을 감싸 안고 대책을 연구했다. 차를 그 자리에 일단 그대로 놔두고 내일 다시 와서 처리하기로 했다. 남편은 이리저리 둘러 보더니 다행히도 세탁소가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다며 그냥 걸어가자고 했다. 가족들은 터덜터덜, 대략 한 시간 넘게 밤길을 걸어온 것 같았다.

멀리 필자의 세탁소가 보이기 시작할 때는 그야말로 환희였다. 밤11시, 차가 없으니 집으로 갈수가 없다. 그렇다고 교회사람들을 불러 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도착 후, 밤늦게 다시 캄캄한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기분이 묘했다. 일단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했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한국라면이 있었다. 세탁소 안에서 냄새를 풍기며 라면을 보글보글 끓여 먹었다. 구수한 라면 맛이 기가 막혔고, 가족들은 기분이 좀 풀린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세탁소 안에서 하룻밤을 지내야만 했다. 필자는 궁리 끝에 우선 걸레를 만들어, 가족이 잠잘 공간만큼의 바닥을 깨끗하게 닦아냈다. 맨 밑에는 푹신한 담요를 몇 장 깔았고 그 위에 깨끗하게 빨아놓은 손님들 이불 몇 개를 두둑하게 깔아놓았다. 손님에게 미안하기는 했지만 또 깨끗이 다시 빨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손님들이 찾아가지 않았던 옷들과 수건을 꺼내어 돌돌 말아 베게도 만들었다. 아주 부잣집 몇 천불 짜리 고급 거위 털 이불도 꺼내어 덮기로 했다. 네 식구가 두 다리 쭉 뻗고 자기에는 아주 훌륭한 잠자리가 만들어 졌다.

아이들은 마치 캠핑을 온 것 같다며, 아늑하게 꾸며진 잠자리 위에 벌러 덩 눕더니 두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가며 좋다고 했다. 남편도 웬만한 텐트보다 좋다며 따뜻한 커피한잔을 타 먹자고 했다. 나름대로 낭만이 흘렀다. 온 가족은 중고차와 씨름한 덕분으로 피로가 몰려와 어느새 골아 떨어졌다. 결국 가난이 가져다 준 중고차 경험은 전혀 색다른 캠핑세계를 맛보게 해주었다. 비록 힘겨운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그것은 또 생각하기 나름이었고 받아들이는 자의 긍정적 위안이었다.

차디찬 세탁소 콘크리트 바닥에서의 하룻밤은 이민자가족에게 커다란 추억거리를 안겨주었다. 언제 또 필자 가족이 그러한 잠자리를 맛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에 오히려 감사했다. 아이들도 생전처음으로 맞이한 낯선 경험에 불만 없이 잘 잤다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모닝커피를 먹기 위해 맥도날드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깔깔대는 웃음이 가득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처럼 지난날의 고된 이민생활은 결국 필자 삶의 커다란 재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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