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종로통

기사입력 2016-08-11 18:34 기사수정 2016-08-11 18:34

▲예전 화신백화점 자리의 고층건물. (박혜경 동년기자)
▲예전 화신백화점 자리의 고층건물. (박혜경 동년기자)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장소는 예전에 둘이 누비고 다녔던 종로로 정했다. 클라우드 하우스라는 레스토랑으로 빌딩 꼭대기 층 유리로 된 구름다리에 서면 발아래로 거리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바깥 모습도 차가 달리는 모습도 모두 밟고 있는 유리 아래로 보이니 아찔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종로2가 사거리는 많은 추억이 담긴 동네이다. 보신각 건너편의 이제는 종로의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는 이 빌딩은 예전 화신백화점 자리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화신백화점은 아주 유명한 곳이었다. 화려한 백화점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움직이는 계단이라며 별 볼 일 없이도 중 고교 시절 친구들과 어지간히 들락거렸다. 우리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움직이는 계단인 에스컬레이터를 보려고 온 관광객도 많았다고 한다.

 

종로에는 화신백화점과 건너편 신신백화점이 있었다. 화신은 높은 고층백화점이었고 신신은 단층의 상점이 이어진 아케이드 형식의 백화점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친구들과 ‘신난다, 신난다, 신신백화점, 화난다, 화난다, 화신백화점’이라고 운율을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놀기도 했다. 지금은 모 은행이 된 신신백화점은 참으로 아기자기했다.예쁘게 단장한 가게가 줄을 이어서 동대문에 있는 여학교에 다녔던 필자는 방과 후 이곳에 들러 가운데 분수도 감상하고 예쁜 가게를 들여다보며 구경하는 게 일과일 정도였다. 또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엄마가 좋아하는 일식 초밥 스시를 사러 신신백화점에 다니기도 했다. 돈암동이 집이었는데 엄마의 취향을 맞추려고 아버지는 언제나 필자에게 종로 신신백화점에 있는 스시 집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신신백화점 뒤편의 한일관이라는 한식집은 우리 가족의 단골 음식점이었고 엄마의 계 모임을 따라서 자주 가 본 곳이다. 엄마의 계 모임에서 갈비탕이나 냉면 불고기를 먹었던 맛있는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던 한일관이 몇 년 전 재개발 때문에 문을 닫고 압구정동으로 궁전 같은 건물을 짓고 이사했다. 맛을 잊지 못해 찾아간 우리는 옛날 그 맛이 아니라며 발길을 끊었다. 엄마는 예전 종로의 한일관이 그립다고 하셨다. 추억이기 때문에 예전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일 게다.

 

화신백화점에는 삼류 극장도 있었다. 학생 불가인 영화를 보려고 선도부 선생님의 눈을 피해 몰래 드나들었었는데 걸리면 정학인 그 시간이 어찌나 스릴 있고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놀기만 한 종로통은 아니었다.종로엔 유명한 학원도 많아서 여고 시절 EMI 등 여러 학원에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

 

YMCA 건물은 당시로써는 고층건물에 속했다. 그곳에서 실내수영을 즐겼고 대학생일 땐 쿠키 만드는 강습도 받았던 멋진 곳이다. YMCA 건너편에는 복 떡방이라는 떡집과 고려당이라는 큰 빵집이 있었는데 약속장소로 꼽을 정도로 맛있고 인기 있는 장소였다. 프랜차이즈 유명 제과점이 성행하면서 떡집이 없어지고 고려당이 문을 닫았으니 명맥을 유지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후에 다시 복떡방 가게가 문을 연 걸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종로통에는 음악감상실도 많았다. 요즘 뜨고 있는 쎄씨봉 이나 디세네, 고 아나운서 이종환 씨가 운영했던 쉘부르는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곳이다. 종로는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 모든 게 예전처럼 변함없으면 좋으련만 발전을 위한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필자만의 추억을 위해 옛 그대로 있어 주기를 바라는 건 무리일 것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부터 무지개처럼 피어났던 젊은 날의 추억이 곳곳에 스며 있는 아련하고도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종로통이다. 신나는 일도 많았던 종로에서 반가운 친구와 만나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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