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생긴 일

기사입력 2016-08-17 10:28 기사수정 2016-08-17 10:28

▲필자가 애용하는 버스 캐릭터 이미지. (박혜경 동년기자 )
▲필자가 애용하는 버스 캐릭터 이미지. (박혜경 동년기자 )
[요즘은 외출할 일이 있으면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한다.

젊어 한때는 바로 몇 정거장 아래에 있는 시장이나 은행 일을 볼 때도 차를 운전하고 나갔었다.

차가 내 발이라고 생각했고 마침 정비소에 갔거나 남편이 타고 나가 집에 차가 없으면 외출을 하지 않았으며 있던 약속도 “차가 없어서 못 나가니 다음 날 만나자.”라며 취소한 적도 있다.

오래 전에 대학동창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장소는 청계산 밑 유명한 고기 집 이었는데 10명이 모이면서 모두 차를 갖고 나왔다.

음식점 주차장이 넓어서 망정이지 욕먹을 만한 일이었다는 생각이다. 필자와 친구들은 나란히 주차된 우리 차들을 보고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자중하자며 한마디씩 했다.

그땐 농담처럼 나온 말이었지만 곧 실감하는 일이 생겼다.

별로 기름 값 걱정은 안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휘발유 값이 매우 비싸져서 기름을 아껴야하게 되었고 꼭 필요하지 않으면 자동차 운행을 자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한 차를 가지고 나간 날은 주차장이 있는 곳이 아니면 차 세울 곳을 찾아 헤매느라 진땀을 흘리고 약속시간에 늦기 일쑤였다.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좋은 점이 아주 많았다.

처음엔 지하철 환승하기가 어려워서 힘들었지만 여러 번 타다보니 요령도 생기고 인터넷에서 미리 검색하면 나의 목적지까지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 편리했다.

지하철 승강장 번호까지 나와 있어 그 자리에서 타면 정말 손쉽게 환승하는 곳으로 갈 수 있고 이렇게 익혀놓으니 지하철 타는 재미와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고민할 일은 절대 없게 되었다.

꼭 지켜야 할 급한 약속이 있을 때가 아니면 지하철보다는 버스타기가 더 재미있다. 앉을 자리만 확보되면 창밖으로 거리풍경이나 지나가는 사람들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제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나가는데 붐비는 시간이 아니어서 필자는 자리를 차지하고 창밖을 보면서 가고 있었다. 몇 정거장 후의 어느 정류장에서 20세 전후의 청년이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하는 행동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학생, 돈 내야지?”하고 말했는데 이 아이는 운전석 뒷자리에 서서 못 들은 척하고 있었다.

기사님이 조금 큰 목소리로 “차비 내야지!”하고 소리를 치셨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시선을 이쪽저쪽으로 돌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차는 이미 운행 중인데 아저씨가 화가 나셨는지 차비 안 낼 거면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라고 엄포를 놓았다. 내가 유심히 보니 그 아이는 잘생긴 외모였지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약간 지적장애인 같아 보였다. 야단을 치는데도 꼼짝 않고 서 있는 모습이 좀 애처로웠다.

아저씨가 계속 소리를 크게 내셨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아저씨 제가 낼게요,” 하고 돈을 꺼내어 버스비 넣는 통에 넣었다. 아저씨도 그 아이도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저 아저씨가 나를 주제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조금 민망했다. 순한 표정의 아이에게 어디에 가는지 집은 잘 찾아갈 수 있는지 묻고 차비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버스 안의 다른 사람들 시선도 그렇고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멀찍이 서 있는 아이에게 더 이상 말을 붙여 볼 순 없었다. 나도 모른 척 창밖만 내다보며 목적지까지 갔다. 차비도 없이 차에 올라탄 그 아이는 집으로 잘 돌아갔을까? 자꾸만 마음이 쓰이고 조금 더 관심을 가져 주지 않은 게 마음에 남았다. 그렇다고 불쑥 돈을 쥐여 줄 수도 없고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다음에 다시 이런 경우가 생긴다면 버스비뿐 아니고 찬찬히 아이가 집까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신경 써 주리라 다짐했다. 버스를 애용하면서 버스 안에서 생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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