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에서 가까스로 금메달을 딴 김소희 선수도 상대방이 다리를 반 쯤 접어서 견제하자 들어가서 공격하기가 어려웠다. 상대방보다 아래쪽에 있다 보니 수비하기 급급해서 점수를 지키기 위해 소극적인 경기를 한다고 주의 경고를 여러 차례 받았다. 하마터면 연장에 들어가 금메달을 놓칠 뻔 했다.
사실 필자도 태권도, 유도, 복싱을 배울 때 뼈저리게 느꼈던 사실이다. 똑 같이 동시에 팔 다리를 뻗어도 나보다 팔 다리가 긴 상대방의 팔다리가 먼저 내 몸에 닿는다. 특히 타격을 가하는 운동은 팔다리의 길이가 중요하다.
이번 올림픽 경기에서 펜싱이 그랬다. 팔다리가 짧은 대신 빠른 발놀림으로 상대방을 위협하곤 했다. 그러나 상대방이 발도 빠르다면 당할 재간이 없다.
타격을 가하지 않는 유도도 그렇다. 유도를 할 때에는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해야 하는데 엎어치기 기술을 구사하려면 상대방의 체중이 일단 넘어 와야 그 에너지를 앞쪽으로 쏠리게 하여 업어치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키가 큰 선수라면 필자가 업어치기를 하려고 상대방을 끌어당겨도 긴 다리가 버티고 있어 상체가 넘어 오지 않는다.
당구를 칠 때도 수구의 위치가 멀리 있으면 키가 작은 사람은 팔이 닿지 않아 불안한 자세에서 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키가 큰 사람은 허리만 간단히 구부려도 되니 자세가 불안하지 않다.
키가 크면 내려다보기 때문에 잘 보인다. 농구에서 바스켓이 위로 보이면 일단 공을 위로 보내서 중력으로 떨어지는 것을 노려야 하지만 키가 커서 바스켓을 내려다 볼 수 있다면 그대로 꽂으면 된다. 배구에서 공격을 할 때에도 키가 크면 상대방 진영이 다 보인다. 스파이크를 하면 내리꽂는 위력이 더 대단해서 수비하기 어렵다.
공을 멀리 보내는 구기 경기도 키가 상관없을 것 같지만, 역시 키가 큰 사람이 유리하다. 야구에서 키가 큰 투수가 내리 꽂는 공이 더 위력적이다. 골프에서도 키가 상관없을 것 같지만 키가 큰 사람은 골프채를 휘두르는 아치가 커서 임팩트 또한 크게 작용한다.
이외에도 키가 큰 사람이 유리한 것은 수없이 많다. 우리 선수들이 키 뿐 아니라 체구까지 큰 서양 선수들과 싸울 때 불리한 조건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핸드볼 경기를 보다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의 체구도 많이 좋아졌다. 키도 커지고 체구도 커졌다. 배드민턴이나 유도 경기를 봐도 확연하다. 우리 선수들이 상대방 선수들보다 오히려 키가 더 큰 경우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큰 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답답함을 느낀다. 격투기에서는 오히려 큰 키로 엉거주춤 있다가 주의 경고를 받아 경기에서 지는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랬다. 탁구나 배드민턴도 빠청하게 서 있다가 수비 전환이 늦어 점수를 잃는 일도 많았다. 상대방은 키가 작아 큰 키의 우리 선수들을 부러워하는데 전혀 큰 키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는 것을 볼 때마다 답답했다는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