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이 넓어졌다

기사입력 2016-09-19 08:53 기사수정 2016-09-20 09:14

동창 모임이 있는 날이다. 여러 명의 친구 중에 강북에 사는 사람은 단 세 명이다.

학교 다닐 때만해도 모두 강북에 살았는데 결혼 후라거나 아니면 그 이전에도 강남으로 옮긴 친구가 대다수였다.

예전엔 모임장소는 명동이 대부분이었다. 모이기 좋고 모두의 청춘이 담겨있는 곳이라 만장일치했다.

언제부터인지 강남 사는 친구가 늘어나서 모임장소를 강남으로 옮기게 되었다.

쓸데없는 자가용 운행을 자제하려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강북인 우리 집에서 강남에 가려면 지하철로 한 번 환승해야 한다. 오늘도 늦지 않게 시간을 넉넉히 두고 출발했다.

이상하게 출퇴근 시간이 아닌데도 사당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탈 때는 항상 승객이 많아서 굉장히 혼잡하다. 점심때인 이시간이 왜 이리 복잡한지 모르겠다.

대체로 혼잡한 시간을 피하면 지하철은 재미있는 공간이다.

한 때 지하철 안 잡상인의 물건 파는 것도 재미있는 볼거리였다. 그런데 요즘엔 그런 광경을 볼 수가 없어 좀 심심하기도 하다.

아마 지하철 물건 파는 게 금지되어 단속하기 때문에 없어진 것 같다.

승객이 많아 복잡한 시간을 피한다면 잡상인의 구수한 물건 설명 듣기도 재미있고 어떨 땐 정말 필요한 물건을 팔기도 해서 기분 좋게 사기도 했다.

커다란 짐 가방을 끌고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올라오면 어떤 물건을 팔 것인지 귀를 세웠다.

좋은 점은 물건 값이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 어떨 땐 꼭 필요한 물건을 판다는 것이다.

품질이 어떨지 의심하면서도 한 다발에 2천원이라는 반양말도 샀고 식탁 위 뜨거운 냄비를 올릴 때 필요한 대나무로 만든 받침대는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 중이다.

요즘 그런 잡상인을 볼 수 없어 서운한데 만원지하철이 아닐 때 이야기다.

오늘은 승객이 꽉 차 부대끼고 있었다.

사람들끼리 꽉 끼어서 꼼짝 못하는 상황인데 내 앞쪽에 서있는 아가씨의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이 신경 쓰였다. 내 눈앞에 가방이 활짝 벌어져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슬쩍 가방 속 내용물을 꺼내도 주인은 모를 것 같다. 어깨에 멘 가방을 신경도 안 쓰고 서 있는 아가씨가 자꾸만 걱정이 되었다.

나는 어디를 가든 핸드백이나 가방을 잘 간수해서 아직은 한 번도 소매치기를 당했거나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

주변 친구나 조카들에게서 핸드백이 찢어지고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기 때문에 항상 조심을 한다. 그런데 어떡하지? 이 아가씨 가방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니 만약 소매치기라도 있다면 손쉽게 당할 것 같은데. 가방 조심하라고 말을 해 주어야 할까 아니면 모른 척 해버릴까 갈등이 생겼다.

주위에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너무 오지랖 넓은 아줌마라고 눈총이라도 받는 게 아닐까 고민이 되었지만 벌써 나는 그 아가씨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며 가방이 많이 벌어져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을 하고 말았다. 예전 같으면 남의 일에 관심을 안 가졌을 텐데 이제 나이가 이만큼 되니까 참견을 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 주제넘은 걸까? 그래도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 할 일을 한 것 같다. 내 딸 같은 그 아가씨가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으니,... 그래도 오늘은 좋은 참견이었으니까 잘했다고 나 자신을 격려해주고 싶다.

오지랖이 넓어졌지만 남을 위한 배려라는 점에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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