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 엄마의 미국 이민이야기](23) 미국 은행 이야기

기사입력 2016-09-21 10:58 기사수정 2016-09-22 09:25

▲미국 뱅크오브 아메리카 은행의 건물모습. (양복희 동년기자)
▲미국 뱅크오브 아메리카 은행의 건물모습. (양복희 동년기자)

미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은행거래는 필수였다. 한국과는 비슷한 것들도 더러 있기는 했지만 어딘가 다른 체계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처음으로 미국계은행을 들어갔다. 가게 앞 길 건너에 마침 은행이 있어서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창구 앞에는 모두가 두꺼운 투명 유리로 가려져있어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워낙 총기사건이 빈번하니 그다지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밑부분으로 둥그렇게 손만 들어갈 수 있는 반원의 구멍이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면 작은 구멍이 뽕뽕 뚫린 곳으로 입을 대고 말을 해야만 한다. 발음이 다른 필자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간혹 그들은 인상을 찡그리기도 했다. 물론 은행 입구에는 자동기계가 있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겁이 났다. 모든 것들이 영어로 되어있으니 처음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은행은 통장이 없다. 또한 현금보다는 주로 체크라는 종이 수표가 모든 이들에게 애용이 되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현금을 소지하지 않는다. 신용카드나 체크만 있으면 모든 거래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다만 체크를 사용하는 데는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상용되는 체크의 부도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부도라는 것은 은행 구좌에 돈은 없는데 공 체크를 마구 발행하여 마이너스를 초래하는 것이다. 물론 신용이 쌓여 오래된 고객에게는 어느 정도의 혜택을 주어 일단은 결재를 해주고, 부도 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그러나 공짜가 아니라 그 수수료가 엄청나다.

신용이 없는 사람들은 체크가 들어왔을 때, 구좌에 잔고가 없으면 무조건 상대방에게 돌려보낸다. 그리고는 또 비싼 수수료를 붙인다. 그쪽도 물리고 이쪽도 붙는다. 그 값이 건당으로 치므로 만만치가 않다. 물론 여윳돈이 많아 은행구좌에 달러가 넉넉하게 있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체크 관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통장이 있는 것이 아니니 일일이 자기가 하나하나 관리하며 수첩에 쓰지 않으면, 순식간에 부도가 나서 엄청난 수수료를 감당해야 했다. 미국인들은 반드시 사용하는 그때마다 일일이 적어 내려가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었다.

필자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털어 어렵게 세탁소를 구입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한 달 운영비가 넉넉지가 않았다. 약간의 운영 금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가게를 처음 운영하려니 이것저것 구입할 것이 아주 많았다. 더구나 체크에 날짜를 미리 적어서 그 날짜를 지켜달라고 결재를 해줬지만 어느 때는 소용이 없었다.

수금을 해간 사람들은 때로는 돈이 급했는지 일단 자기 구좌에 입금부터 하고 보는 이도 간간이 있었다. 그 날짜를 꼭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날짜 위에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정확하게 표시를 해놔야만 입금이 안 되는 것이라고,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월말 가까이 오면, 한 달 동안 사용하며 주고받은 체크의 내용이, 은행으로부터 스테이트먼트라는 내역서에 자세히 쓰여져 날라온다. 꼼꼼하지 않은 남편이 필자가 없는 사이에 몇 가지 결재를 해주었다. 필자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실이었다. 내역서를 받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쓸데없는 부도 수수료가 500불이나 된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정확하게 달러의 숫자가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은행은 그날그날 들어온 체크 중에 가장 큰 것부터 결재를 먼저 한다. 그리고 남은 돈에서 작은 것들을 결재하다 보면 부족한 것들은 여러 개가 될 수가 있다.

수수료는 건마다 부과를 하니 말도 안 되는 숫자가 순식간에 되어버린다. 한 건마다 무려 35달러를 부과한다. 예를 들면 5달러짜리 수표가 들어와서 돈이 부족하면 일단은 물어주고 그 피를 무조건 물린다. 당연히 처음에는 잘 모르니, 호되게 겪어보고서야 터득이 되는 말도 안 되는 지독한 법칙이 수두룩했다.

눈뜨고 코 베는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다. 미국에서 용기만 갖고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은 그 대가를 단단히 맛보아야만 했다. 적어도 수개월은 실수를 거듭하고, 수천 불을 고스란히 날리고 나서야 단단히 똑똑해질 수가 있었다. 당연히 부부싸움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졌다.

몸은 노동으로 고통스러운데 거기에 돈까지 쓸데없는 것으로 날리니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위로의 말을 했다. 미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을 날려야 하고, 사기도 몇 번을 당해야만 그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그것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삭막하기 짝이 없고 정나미가 떨어졌다. 어쩌다 미국까지 와서 고생바가지를 하는지 도대체가 몰랐다. 가게 앞, 산타모니카 바다 모래사장에 앉아서 태평양 바다 지평선을 넘어 한국을 바라보며 펑펑 울었다. 삶에 서러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넘어가는 석양 아래로 바다 갈매기들만이 꺼억 꺼억 함께 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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