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형의 한문 산책] 뛰어난 신하는 물러날 때를 안다

기사입력 2017-01-20 13:07 기사수정 2017-01-20 13:07

현 정권의 요직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카메라 앞에 서는 모습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역사상 정말로 뛰어났던 신하들은 충심을 바쳐 모시던 주군이 천하를 호령하는 자리에 오르면, 오히려 표표히 초야로 떠나 횡액을 피한 사례들이 전해진다.

중국의 춘추시대, 월(越)나라는 오(吳)나라와 국가의 존망을 건 사투를 수십 년간 벌였다. 월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을 성공시키고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키며 중원의 패자(覇者)로 올라서게 된다.

당시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두 명의 신하가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범려(范蠡)와 대부(大夫) 종(種)이었다. 그런데 본격적 권세를 누려야 할 시점에 범려는 외려 월왕 구천(句踐)에게 작별을 고한다. 구천이 펄쩍 뛰면서, “나와 함께 있으면 나라를 반으로 나눠 줄 것이로되 만일 끝내 떠나고자 한다면 베어버리겠다”는 극언까지 하지만 범려는 “군주는 자신의 명령을 행하지만, 신하는 자기의 희망을 행할 뿐입니다[君行令 臣行意]”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러면서 대부 종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의 편지를 남긴다.

“하늘에 새가 다하면 좋은 활도 창고에 넣어 두게 되고,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겨 죽는 법, 게다가 폐하의 상은 목이 길고 입은 새 부리처럼 생겼으니, 이런 인물은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소. 그대는 어째서 떠나지 않는 것이오?[蜚鳥盡,良弓藏;狡兔死,走狗烹。越王為人長頸鳥喙,可與共患難,不可與共樂。子何不去]”

바로 ‘토사구팽(兔死狗烹)’, ‘장경조훼(長頸鳥喙)’란 고사성어를 낳은 명구절인데, 여기 나오는 또 하나의 유명한 말이 바로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다’란 어록이다.

그런데 약 300년 후, 중국은 유방의 한(漢)나라와 항우의 초(楚)나라 간 천하 쟁패를 다시 겪게 되는데 한나라는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는 과업을 성취하게 된다. 이때 한고조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시킨 대표적 공신이 소하(蕭何), 장량(張良), 한신(韓信)의 한초삼걸(漢初三傑)이다.

이들 중 가장 뛰어난 책사로 불렸던 인물이 바로 장량으로, 그는 유방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제(齊)나라 3만호 식읍을 상으로 내리자 이를 사양하고 유방을 처음 만났던 조그만 유(留)땅만을 청한다. 그리고 병을 핑계로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중앙 정치무대를 떠나버린 후 천수를 누린다. 반면에 천하의 명장 한신은 계속 한고조 유방의 곁에 머물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당시 한신이 남긴 말이다.

“옛사람이 말하길,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겨 죽고, 나는 새가 사라지면 좋은 활도 창고에 넣어두게 되며, 적국이 망하면 유능한 신하도 필요없다’라고 하였거늘, 이제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나도 실로 마땅히 죽게 되었구나.[果若人言,狡兔死,良狗烹;高鳥盡,良弓藏;敵國破,謀臣亡。天下已定,我固當烹]”

최근 권력의 부침을 보면서 새삼 되새기고 싶은 어록이 바로 ‘가여공환난, 불가여공락[可與共患難,不可與共樂]’이다.



>>하태형(河泰亨)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서울대 경영대 졸업, 뉴욕주립대 경제학박사.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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