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소나무 사이 농촌계몽운동의 기억이 살아있는 곳 '심훈기념관'

기사입력 2017-03-06 08:52 기사수정 2017-03-06 08:52

[문학관 답사기] 심훈기념관

눈 녹지 않은 시골길을 굽이굽이 지났다. 길게 늘어진 소나무의 그림자는 쓸쓸하고 차가웠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끼 낀 옛 유적을 찾아가는 기분. 굽이치는 소나무 숲길을 지나 만난 심훈기념관(충남 당진시 상록수길 97)에는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 그리고 작가 심훈이 옛이야기를 나누 듯 서 있다.


▲심훈 동상(권지현 기자 9090ji@)
▲심훈 동상(권지현 기자 9090ji@)

<그날이 오면>, <상록수>로 대표되는 심훈(1901~1936)은 한국 근대사에 한 획을 그은 문학가로만 말하기에는 다재다능했고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았다. 문학인으로 각인돼 있지만 영화인이었고,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일한 언론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에 저항과 계몽의식을 잃지 않고 살아온 지표 같은 인물이었다. 1919년 3·1운동 가담으로 3월 5일 투옥됐다가 8개월 만인 11월 6일 석방된 심훈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기고등학교)로 돌아가는 대신 중국으로 망명했다. 말이 좋아 망명이지 밀항을 선택해 지인의 집을 떠돌아다니며 생활했다. 1923년 다시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 난징과 상하이, 항저우 등에 머물며 견문을 넓히며 수학했다.


▲심훈기념관  전경. 2842㎡의 부지 위에 703㎡ 규모로 건립됐다.(권지현 기자 9090ji@)
▲심훈기념관 전경. 2842㎡의 부지 위에 703㎡ 규모로 건립됐다.(권지현 기자 9090ji@)

영화인, 소설가, 시인으로서의 삶

귀국 후 연극과 영화,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흥미를 가졌던 분야는 영화였다. 1924년 첫 부인 이해영과 이혼하고 동아일보에 입사한 뒤에도 영화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25년 조일제가 번안한 소설 <장한몽(長恨夢)>이 영화화됐을 때는 이수일 역을 맡은 배우로도 도전했으며 192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다음 해에 일본에서 제대로 된 영화 수업을 받고 돌아온 심훈은 영화 <먼동이 틀 때> 원작 집필·각색·감독에 제작까지 도맡았다. 단성사에서 개봉해 큰 성공을 거뒀지만 심훈이 마지막으로 제작한 영화가 됐다. 1928년에는 조선일보에 입사해 2년 후 무용수였던 안정옥과 재혼했다. 1931년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으로 이직하지만 사상 문제에 부딪혀 퇴사하고 말았다.

▲전시관 내부. 심훈 집안 후손과 지인으로부터 기증·위탁받은 유물을 선별해 전시했다.(권지현 기자 9090ji@)
▲전시관 내부. 심훈 집안 후손과 지인으로부터 기증·위탁받은 유물을 선별해 전시했다.(권지현 기자 9090ji@)


소설에 마지막 힘을 쏟다

영화 <먼동이 틀 때>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성공적 데뷔를 한 후에는 신문 연재소설에도 관심을 갖고 매진했지만 검열 장벽에 막혀 1930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과 <불사조>가 연재 도중 중단됐다. 같은 해 저항시 <그날이 오면> 또한 검열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심훈이 세상을 뜬 후 1949년 유고집으로 출간됐다. 1933년 장편소설 <영원의 미소>(조선중앙일보), 1934년 장편소설 <직녀성>(조선중앙일보)이 연재됐고 1935년 심훈의 대표작인 장편소설이자 유작인 <상록수>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 연재됐다. 1936년에는 단편소설 <황공의 최후>(신동아)를 발표했다.

▲<상록수>를 집필했던 책상.  (권지현 기자 9090ji@)
▲<상록수>를 집필했던 책상. (권지현 기자 9090ji@)


뜻밖의 관심, 시에 담다

심훈은 저항시인이자 농촌계몽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지만 작품세계는 꼭 그렇지 않다. 그가 쓴 작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사랑에 아파하는 마음, 동성애, 스포츠를 다룬 작품도 눈에 띈다. ‘오오, 조선의 자매여’는 1931년 4월 영등포역 기차선로에 뛰어든 홍옥임과 김용주의 이야기를 접하고 쓴 시다. 결핍과 금지, 검열의 시대에 동성애 그리고 자살을 선택했던 여성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그의 유작시인 ‘오오, 조선의 남아여’는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호외 뒷면에 쓴 시로 손기정 묘비에도 새겨져 있다. 우승을 접한 감격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1929년에 쓰인 ‘야구’ 또한 흥미롭다. 야구 시즌을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라 그런가 야구장의 함성이, 홈런의 짜릿함이 시에서 느껴진다. 무엇보다 1929년에도 지금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야구를 보고 느끼고 시로 표현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 시를 계기로 심훈의 종손 심천보씨는 심훈 80주기였던 작년 9월 16일 한화 이글스 홈경기 시구에 나선 바 있다.


▲<상록수> 원본.(권지현 기자 9090ji@)
▲<상록수> 원본.(권지현 기자 9090ji@)

심훈기념관과 <상록수> 집필 장소인 필경사

심훈기념관 이야기를 하면서 유작 소설인 <상록수>를 빼놓을 수 없다. 심훈기념관 옆에는 <상록수>가 집필된 곳으로 알려진 필경사와 심훈의 묘가 나란히 있다. 기념관 일대는 <상록수>의 실제 배경이 된 곳이다. 소설 속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했던 남자 주인공 박동혁의 실제 모델은 심훈의 장조카 심재영이다. 당시 심재영은 청년들과 함께 당진 부곡리에서 공동경작회를 조직,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심훈기념관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농우회’ 회원의 실제 주인공들 단체 사진과 개인 사진들이 하나하나 전시돼 있다. 심훈은 1932년 서울에서 가족의 터전인 당진으로 내려와 <상록수>를 집필하고 난 뒤 1936년 장티푸스로 생을 마감했다.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한 필경사(충청남도 지정기념물 107호)가 사진 왼쪽이고, 오른쪽은 <상록수>의 주인공인 채영신과 박동혁을 형상화한 것이다. (권지현 기자 9090ji@)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한 필경사(충청남도 지정기념물 107호)가 사진 왼쪽이고, 오른쪽은 <상록수>의 주인공인 채영신과 박동혁을 형상화한 것이다. (권지현 기자 9090ji@)


>>관람 정보

개관시간 10:00~17:00 입장료 무료 문의전화 041-360-6883 휴관일 매주 월요일 주소 충남 당진시 상록수길 97 ✽자가용 이용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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