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춤을 잡고 놓아주지 않으리라

기사입력 2017-05-12 15:26 기사수정 2017-05-12 15:26

토지박물관 강의, 신석기의 토기에 대해 강의를 하러 왔던 지산 선생이 떠오른다. 그를 보자마자 필자는 그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아주 좋은 기운이 내게로 밀려왔다. 수염을 기른 그는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선생님 옆에 있으니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이 너무 행복한 마음이 드네요” 했더니 “네 그럴 수 있어요” 한다. 특별하지도 않은 대답인데도 필자를 들뜨게 했다.

오늘은 빗살무늬토기를 만드는 날. 지산 선생이 준비해온 사질 점토로 직경 1cm 정도로 기다랗게 흙을 빚어 마르지 않게 비닐로 덮어둔다. 신석기시대는 물레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테쌓기로 시작해서 코일링 기법으로 기벽을 쌓아 올린다. 마치 그와 신석기시대로 돌아간 듯 얼굴은 상기되고 마냥 즐겁다. 만약 신석기시대에 그와 살았다면 어떠했을까.

신석기 사람들은 해변이나 강가를 이동하면서 생활했기 때문에 토기 바닥이 모래를 파서 세우기 편리한 U자나 V자형이 대부분이다. 문양은 조개껍질과 생선뼈를 이용해서 빗살무늬와 돌리무늬를 주로 새겼다.

필자는 V자형으로 토기를 만들고 빗살무늬를 그려 넣고는 그늘에서 말렸다. 지산 선생 집으로 토기를 구우러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마침내 그날이 왔다. 도시락을 준비해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강변을 달려 퇴촌에 있는 도예지로 갔다. 선사시대의 신석기시대로 먼 여행을 떠나는 듯했다.

신석기 사람들이 빚던 방법대로 토기를 빚고 벼를 나무절구에 찧어 키질을 했다. 쭉정이는 날아가고 알곡만 남았다. 구운 토기에 밥을 지어본다. 신석기 사람들의 생활상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만 해도 신명이 났다.

지산 선생 집에 도착했을 때 움푹 들어간 구덩이에 나뭇가지와 풀, 나뭇잎을 얹고 그 위에 도자기를 놓고 장작을 올리고 있었다. 노천소성(露天燒成, 한데구이)법이다. 지금도 아프리카나 태국의 북부 등 문명화되지 않은 곳에서는 노천소성법으로 토기를 굽는다 한다.

토기가 깨지지 않도록 왕겨를 덮고 겹겹이 장작을 두른다. 그 위에 다시 왕겨를 충분히 덮는다. 노란 연기가 일더니 이내 푸른 연기가 솟아나며 불꽃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 신석기 사람들도 저 불꽃을 보았으리라. 지산 선생은 더운 날씨인데도 원적외선으로 몸을 소독하겠다며 불 옆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 점심을 먹은 뒤에도 불 곁을 떠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의 모습이 경이롭다.

지산 선생의 땀방울은 그칠 줄 몰랐다. 땀을 흘리며 불을 때는 몰두가 아름답다. 네댓 시간이 지나자 불 속에서 토기를 꺼낸다. 잿더미 속에서 갈고리에 걸려 토기가 올라올 때마다 모두들 보물이라도 건져 올리는 듯 환성을 질렀다.

V자형 토기를 반듯하게 벽돌로 받쳐 화덕을 만들고 절구로 찧은 쌀을 넣고 불을 지핀다. 밥이 끓는 모습을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긴다, 신석기시대 때 하던 방식을 재현한 것이다. 밥을 먹어보고 숭늉까지 먹으며 맛있다고 법석이다. 평생 다시 못 먹어볼 거라며.

내게는 인연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한 참으로 아쉽고 그리운 사람이다. 그 좋은 느낌에도 만남이 끊겨버렸다. 그 순간 폭포처럼 흐르던 그와 나의 모든 교감은 그냥 그대로 흘러가버린 것인가. 옛날 집처럼 꾸민 그의 집에서 차를 마시던 풍경들이 진하게 되살아난다. 그를 다시 만난다면, 허리춤을 잡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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