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초보걸랑, 접근 금지!

기사입력 2017-06-22 14:21 기사수정 2017-06-22 14:21

10여 년 전부터 압구정에서 놀았다. 3호선 압구정역 2번 출구로 나가면 오페라 동호회 '무지크 바움'이 있다. 4번 출구로 나가면 탱고 동호회 '땅게리아'가 있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가무를 즐겼다. 초등학교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동생 연희와 함께 비좁은 방에서 노래하며 춤추곤 했다.

'진달래 피었구나. 눈 녹은 산에…'

물론 안무도 필자가 했다. 그런데 50대가 되면서 탱고와 왈츠에 필이 꽂혔다. '그래 탱고와 왈츠를 열심히 익혀서 춤추며 즐겁게 살자.' 탱고를 배우겠다고 작정을 한 뒤 수소문하여 찾아간 곳이 땅게리아였다. 땅게리아는 연대 출신의 여성분이 운영하는 곳이다. 탱고의 본고장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탱고를 배우고 온 이분은 탱고 관련 영화에도 여러 번 출연한 ‘탱고의 고수’다.

" 나 초보걸랑, 접근 금지!"

10년 전 어느 토요일 밤이었다.

남자들이 젊으나 늙으나 필자하고 탱고를 추겠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파트너가 된 남자는 이제 막 중년이 된 듯 보였다. 당시 남자들은 소위 필자 옷빨에 넘어가 필자를 탱고의 달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그때 입은 옷은 프랑스 디자이너 임마누엘 웅가로가 디자인한 원피스였다(물론 동대문표 짝퉁이다). 몸의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나는 착 달라붙는 55사이즈의 검은색 비로드 천으로 만들어진 옷이었다. 옷 길이는 발목까지 내려왔고 가슴과 허리선은 드레이프로 자연스럽게 늘어졌으며, 어깨는 끈나시, 왼쪽 치마폭은 허벅지에서부터 길게 슬릿이 들어간 아주 엣지 있는 디자인의 옷이었다. 여기에 기다란 검은색 비로드 장갑까지 끼었다.

필자의 파트너는 춤을 추는 동안 땀을 뻘뻘 흘렸다. 춤을 못 춰도 너무 못 추는 필자를 만나 생고생을 했던 것이다. 이튿날이었다. 필자 곁에는 남자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저 여자 선천적 몸치야 절대 접근 금지!'

그새 동네방네 소문이 쫙 나버린 결과일 터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년 여름날, 서초동을 걷고 있는데 한 남자가 문득 서 있었다. 오매! 놀래라! 바로 그였다. 멀리서부터 아우라가 느껴져 쳐다봤더니 문제의 그녀가 서 있더란다. 이런 우연이 있나!' 우린 오래전, 그것도 단 한 번 탱고 파트너였을 뿐인 서로를 선명히 기억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인간의 기억이다. 필자는 그때 파트너를 너무 힘들게 한 것이 너무 미안해서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파트너도 자신을 힘들게 한 여자로 기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를 다시 만나면 '그때 미안했어요. 제가 너무 못 춰서요. 많이 힘 드셨죠?' 할 참이었다. 뜻밖에도 그는 "그때 그 모습이 너무 이뻤어요! 그래서 어디론가 데려가고 싶었어요" 했다. 'ㅋㅋ 그랬구나!' 필자를 처음 만났을 때 카이스트 연구원이었던 그는 요즘 가산 디지털단지에서 자그마한 IT 회사를 운영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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