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버릴 수 없는 것

기사입력 2017-06-23 15:08 기사수정 2017-06-23 15:08

식탁에 놓인 아내의 정리수납 전문가 자격증을 보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삼십년을 같이 살면서 집안에 쌓인 짐들을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아내의 고집스런 성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사를 간다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로 여기저기 쌓인 짐이 많다. 이집에서 산 지 이십 년이 되었지만 이곳으로 이사 오던 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사 오기 전에는 지금보다 작은 아파트에 살았다. 이삿짐센터에서 아파트 평형을 기준으로 이사 비용을 책정하고서 실제로 이사하는 날 우리 집 물건을 들어내다가 경악을 했다. 이삿짐센터에서 준비한 차량에 짐이 다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들어내도 자꾸 나오는 짐을 보며 더 이상 할 말을 잊었다. 도대체 어느 구석에 그 많은 물건이 박혀 있었던 것일까?

그랬던 아내가 어느 날 정리수납 전문가 과정에 등록했노라고 했다. 속으로는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천지개벽할 일이 일어나긴 했지만 혹시라도 중간에 그만둔다고 할까 노심초사했다. 정리수납 전문가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집안에 쌓여있던 많은 물건들이 버려지고 자리를 이동하고 정리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저녁에 들어오면 아내가 자랑을 했다. “안방 옷장 한번 열어봐...”, “거실 콘솔 한번 봐줄래...” 아내가 자랑하는 곳을 열어보면 눈을 의심할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다. 공간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는데 하루 사이에 마술처럼 여유 있는 공간으로 변해갔다. 이런 변화에 너무 과한 칭찬은 자칫 부작용을 부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과한 칭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필자의 이런 격한 반응에 아내는 신이 나는지 더 열심히 정리에 몰두했다. 정리수납 전문가 자격시험이 가까워질 즈음 집은 말끔히 정리가 끝났다. 비로소 아내는 자격시험을 볼 필요 없이 충분한 자격이 된다고 생각되었다.

▲절대 버릴 수 없는 것(손웅익 동년기자)
▲절대 버릴 수 없는 것(손웅익 동년기자)

손이 많이 들어가는 것들이 다 정리되었다. 요즘 아내는 앨범사진과 작은 서랍에 들어있는 편지나 잡동사니를 정리하고 있다. 엊그제는 책장 구석에 오랫동안 먼지가 쌓인 작은 상자를 정리했던 모양이다. 거기에는 연애시절부터 필자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뭉치가 들어있었다. 연애시절의 달콤한 구애편지로부터 아이들이 어릴 때 쓴 편지, IMF의 암흑터널을 지날 때 아내를 위로하는 편지, 그리고 최근 까지 아내에게 수시로 보낸 편지가 상당히 많다. 그걸 정리하면서 하나하나 다시 읽어본 아내는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편지들은 필자의 뻥과 거짓말을 모아놓은 증거품이라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동안 살면서 남들에게는 그러지 않았지만 아내에게는 뻥을 많이 쳤다. 대표적인 뻥이 곧 인천에 배가 들어온다는 거였다. 증거품이 확실하니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므로 확신에 찬 어조로 한마디 해 주었다.

“인생은 지금 부터다. 기다려라 이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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