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반 셔틀버스를 타고 수영장에 도착한다. 시간을 맞추려 급하게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샤워실로 들어선다. 샤워 후 수영복을 입고 모자, 물안경을 챙겨 쓰고 문 하나를 열면 바로 수영장이다. 샤워실은 여성 전용이지만 수영장은 남성이 많다. 코치도 남성이 많고 수영 후 출근하는 젊은 남자들이 많아서다.
어느 비가 오는 날이었다. 가라앉은 수영장 분위기를 완전 뒤바꿔놓은 사건이 일어났다. 수영장에는 물이 차가워 들어가기를 꺼리는 여자들을 위한 사우나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중년의 우리 반 학생 중 한 명이 유난히 사우나를 즐겼다. 그날 필자는 먼저 물속에 들어가 코치의 구령에 맞춰 체조를 시작했다.
그때 빼꼼히 샤워실 문이 열리더니 그녀가 수영장 쪽을 내다봤다. 수업이 시작됐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필자는 그녀에게 빨리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당당히 문을 열고 나왔다. 그것도 완전 나체인 채로 수영복을 손에 들고 휘저으며 걸어 나왔다. 순간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그녀가 다이빙 자세로 물속에 뛰어들기 직전까지 동작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하얀 피부, 통통한 몸매, 적당한 근육, 건강함이 느껴졌다. 모두가 그녀의 몸을 스캔하는 것 같더니 일제히 키득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놀란 코치가 호루라기를 불자 그녀는 우아하게 인사를 했다. 지각에 대한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 같았다. 당황한 코치는 그녀의 발을 가리켰다. 그녀는 의아한 듯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사태를 깨달았는지 뒤돌아서 냅다 샤워실로 뛰었다. 그 후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날의 사건에 공감하며 필자도 조심 또 조심했다. 탈의실이나 샤워실에서 늘 벗고 다니다 보니 수영복 입는 일에 좀 둔감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양평에 괜찮다는 게르마늄 온천이 있다 해서 친구에게 신세도 갚을 겸 함께 나섰다. 그런데 카운터에서 열쇠를 받고 옷을 벗고 탕에 들어가려는데 열쇠가 없었다. 벗어놓은 옷을 다시 꺼내서 뒤지며 주변을 살피고 수선을 떨었다.
“뭘 찾니?”
“열쇠가 없어졌어. 아무리 찾아도 없네.”
“네 손목에 차고 있잖아”
목욕을 끝내고 나와 시원한 음료를 친구에게 건넸다. 옷을 입고 나가며 계산을 할 참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먼저 계산을 해버려 맛있는 점심이나 사줘야지 하며 맛집을 찾아 나섰다. 점심을 먹고 밥값을 내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가방이 보이질 않았다.
앞이 캄캄했다. 현금은 둘째치고 카드며 주민등록증이며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머리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사우나에 두고 온 것 같았다. 나온 지 두 시간이나 지났지만 달려갔다. 사우나에 들어서니 와글대던 사람들은 다 빠지고 가운데 평상 위에 덩그러니 필자 가방이 놓여 있었다. “덜렁이 왔니?” 하며 혀를 차는 것 같아 피식 웃었다. 가방 안의 물건은 그대로였다. 덜렁이에게 운수 좋은 양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