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지인이 이 행사에 동호인 멋 겨루기에 출전한다며 오라고 했었다. 국악을 중심으로한 행사인데 3일간 축제 형식으로 열린다. 문제는 너무 먼 것이다. 차가 있으면 몰라도 대중교통으로 가자면 고생 깨나 해야 할 여정이었다. 그러나 마침 운길산 역에서 하룻 밤 잘 일이 있어 내친 김에 가볼 생각을 했다. 설악면에서 농장을 하는 다른 지인이 설악면으로 와서 같이 가자며 나섰다.
운길산 역 근처에서 다른 지인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남들은 서울로 가는데 혼자 용문 역으로 갔다. 그리고 홍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홍천에서 행사장에서 보내주는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갔다.
마리소리 축제는 3시부터 악기박물관에서 시작했다. 악기 박물관도 우리나라 최초의 악기박물관이라며 우리 전통 악기 중심이었다. 덕소에도 악기 박물관이 있는데 주로 서양 악기라는 점이 다르다. 1억 원이 넘는다는 편종, 편경, 그리고 퉁소, 거문고, 가야금등 다양한 우리 악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미 10년 전에 개관했다.
행사는 2일간 이어지는데 첫날은 악기 박물관에서 서도소리부터 시작하여 밤늦게까지 야외공연장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민요와 단소, 사물놀이를 배우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둘째 날에는 동호인들의 경연대회가 펼쳐진다. 지인도 여기 참여하기 위해 팀원들과 함께 온 것이다.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가볼만 한 축제이다.
설악면에서 온다던 지인이 마음이 변했는지 못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귀가 길에 대책이 없었다. 당일 서울 가는 차가 있으면 얻어 타야 하는데 만차로 와서 여석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행사 참여하는 지인들 팀과 섞여 하룻밤을 자든지 해야 한다.
머릿속이 복잡하여 야외 행사장 옆 간이 막걸리 파는 천막에 혼자 앉았다. 마침 야외무대에서 사물놀이가 한창이라 멀리서 소리만 들어도 흥겨웠다. 그런데 갑자기 웬 남자가 막걸리 병을 한 병 들고 필자 앞에 앉았다. 40대 중반 쯤인데 인상으로 보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필자가 서울 갈 고민을 얘기하자 자기 집이 근처이니 원한다면 같이 자도 된다는 것이었다. 농막이라고 했다. 모기에 뜯길 각오를 하며 그러자고 했다.
밤늦게 그 남자를 따라 나섰다. 산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농막이 아니라 버젓한 별장이었다. 마당은 널찍하게 잔디가 깔려 있고 주변은 산으로 둘러 싸여 안온한 곳이었다. 돗자리를 펴고 팬티만 입은 채 제대로 마셔보자며 술상을 차려 왔다. 유쾌하게 담소를 나누며 마셨다. 주변은 정말 우리밖에 없었다.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라는 곳이었다. 앞에 청량 저수지가 있었다.
신원도 모르는 남자를 따라 혼자 온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잃을 것 없는 남자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지갑의 돈은 달라면 다 주면 그만이다. 설마하니 무인도에서 새우잡이 하라고 보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날 밤 잘 자고 다음 날 아침 상 역시 잘 차려 먹고 서울까지 태워다 주었다.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다. 덕분에 여름휴가를 잘 보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