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의 지옥

기사입력 2017-08-17 20:03 기사수정 2017-08-17 20:03

문자가 왔다.

“ 내가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저녁 먹어. 다음에 좋은 데 데리고 갈게.”

뭐지? 그냥 무시했다. ‘잘못 왔다고 얘기를 해 줘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했으나 무시하기로 했다. 그리곤 한 사건이 떠올랐다.

벌써 오래전 일이다. 남편과 안 좋게 집을 나선 날이었다. 그 날 처리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도 그의 화난 얼굴이 눈앞에 불쑥 나타나며 생각이 자꾸만 겉돌았다. 다시는 풀고 싶지 않을 정도로 화는 났지만 부부가 싸움이 오래가면 좋지 않다는 친정엄마의 말이 귓가를 때렸다. 혼란스러웠다.

회사에서 일하다가도 생각은 문득문득 자꾸 돌아가서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상황도 모르면서 우선 화부터 냈으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의 오해에 대한 진실을 얘기하면 멋쩍어 하리라 싶었다.

메시지를 작성했다. 조금은 떨리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문장을 만들어 날렸다.

화해의 의미로 문장을 날렸는데 답이 없었다. 좀 섭섭했지만 메시지를 날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인가를 시원하게 해결한 듯한 기분이 되어 나머지 시간에 몰두하고 일을 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분위기를 보니 얘기를 듣고 싶은 표정이 아니라 좀 황당했다. 그렇게 어정쩡한 저녁을 말없이 먹은 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출근해서 회의 중인데 모르는 번호로 자꾸 전화가 울렸다.

계속 울리길래 할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는 듯한 목소리의 여자였다.

“누구세요? 어디에요?”

“전화하신 분은 누구신지요?”

“윤 아무개 부인되는 사람인데요.”

“누군 신지 모르겠는데요.”

흥분한 여자는 따발총으로 나에게 가격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가 받을 줄 알았다. 언제부터 사귀었느냐, 무슨 관계냐, 잘 걸렸다.’

영문을 모르는 필자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자신의 남편에게 요상한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걸 자기가 용하게 딱 잡았다는 것이다.

언제 그런 문자를 받았냐고 물으니 어제라는 것이었다. 답답한 필자는 길게 통화하기 어려우니 잠시 전화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어제 보낸 문자의 번호는 마지막 한 자가 틀려 있었다. 급하게 누르느라 오타가 난 것을 모르고 보낸 것이다.

“마음이 불편해요. 오늘 저녁에 왜 화났는지 다 얘기해 줄게요.”

이런 문자를 받은 그 여자의 남편은 당황하고 부인은 추궁하고 이틀 동안 지옥같은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당황해서 ‘미안하다. 잘 못 갔다’고 설명해도 여자는 믿으려하지 않았다. 남편의 전과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막무가내였다. 내용을 들은 필자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오해 마시라 실수였다.’고 하니 비로소 잠잠해졌다. 그런 상황이 되자 남편은 신나서 해결했고 그걸로 우린 한 편이라며 화해가 이루어졌다. 그들의 이틀간의 지옥으로 쉽게 얻은 평화가 민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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