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산책

기사입력 2017-08-23 10:42 기사수정 2017-08-23 10:42

▲산책길에서 볼 수 있는 개울물(박혜경 동년기자)
▲산책길에서 볼 수 있는 개울물(박혜경 동년기자)
저녁식사를 하지 않으려다 늦은 시각에 라면을 먹었다. 필자는 라면을 무척 좋아하지만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는 상식을 갖고 있어 짭짤하고 입맛 당기는 유혹을 뿌리치고 거의 먹지 않는다. 그래도 다용도실 식품보관함에는 언제나 몇 개쯤은 준비되어 있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필자가 이날은 칼국수도 수제비도 아닌 매콤하고 짭짤한 라면이 생각나 한 개를 끓였다. 잘 끓여낸 라면은 면발이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 후루룩 빨아 당기는 맛이 그만이다.

맛있게 먹기는 했지만 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고 너무 맵고 짜서 입안이 개운치 않았다. 밤 9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운동을 하고 오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아파트 뒤편으로 왕복 4km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어 환한 대낮에는 거의 매일 걷고 있지만 밤이라 조금 망설여졌다. 그래도 산책로에 가로등이 있고 간혹 창밖을 내다보면 늦은 밤에도 운동 나온 사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운동화 끈을 매었다.

산책로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운동을 하러 나와 있었다. 나이 지긋한 분부터 귀여운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신혼부부 같은 커플도 보인다. 캄캄한 밤에 나오면 무서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으니 안심이 되었다. 필자는 팔을 휘두르며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버스정류장 기준으로 세 정거장쯤 되는 곳에 필자가 잘 가는 재래시장이 있는데 그곳을 지나다 보니 산책로 위쪽 음식점이 불야성처럼 불을 밝히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음식점 앞에 펼친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웃으며 한잔하는 모습이 무척 신기하고 생동감 있는 풍경으로 다가왔다. 밤이 되어도 사람들은 이렇게 왁자지껄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구나 하며 필자도 누군가와 그 무리에 섞여 떠들썩하게 얘기도 하며 웃어보고 싶었다. 이전에는 밤에 집 밖을 나선다는 걸 생각해보지 않았다. 모임이 있어도 낮 시간에만 실컷 놀다가 저녁할 시간이 되면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주부는 저녁 이후로는 집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한때 디자인학과를 원했던 아들이 입시에서 떨어져 1년을 재수했다. 홍대를 목표로 입시학원과 실기학원을 다녔는데 실기수업을 마치는 시간이 늘 자정을 훌쩍 넘겼다. 대중교통도 끊어지는 시간이었고 학원버스는 집까지 연계되지 않았다.

필자는 매일 밤 운전해서 정릉에서 광화문을 지나 사직터널과 연대 앞을 통과해 홍대까지 아들을 데리러 다녔다. 그때 필자는 휘황한 밤거리를 봤다. 너무나 많은 차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어 매우 놀랐다. 늦은 밤에도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필자만 몰랐던 밤의 문화였다.

밤의 산책로는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장마 후 개울 물살이 빨라졌다. 낮에 보았던 청둥오리 가족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서 자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개울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필자 옆으로 많은 사람이 스쳐지나가고 있다. 왕복 4km를 빠른 걸음으로 걷고 오니 땀도 나고 기분이 좋다. 앞으로는 낮뿐 아니라 야간산책도 가끔씩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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