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낭만을 품은 도시, 강원도 춘천. 이곳에 남다른 교육열을 불태우는 멘토 4인방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인생나눔교실을 통해 국군장병들을 위한 인생 멘토링에 참여하게 된 이백우(66)·이정석(67)· 차관섭(67)·허남신(43)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가르치는 수업’이 아닌, ‘함께 나누는 교감’을 통해 청춘들을 품고 있는 그들을 만나봤다.
인생나눔교실을 통해 ‘멘토’라는 이름으로 그들이 함께하게 된 데에는 이백우씨의 역할이 컸다. 영어교사 은퇴 후, 인생나눔교실 1기에 지원해 3년째 멘토링 활동 중인 그는 고등학교 동기인 차관섭씨와 제자였던 허남신씨를 짝꿍으로 맺어주었다.
차관섭 “강원도청 산림정책관 등을 맡으며 반평생 공직생활을 했어요. 수직적인 직장 문화를 벗어나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적응하는 것이 초반엔 걱정스럽더라고요. 그때마다 이 친구(이백우)가 ‘당신은 할 수 있을 거야!’라며 희망을 준 덕분에 활동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또 한 사람, 차씨의 곁엔 환상의 짝꿍 허남신씨가 있다. 그녀 역시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이백우씨의 추천으로 인생나눔교실에 참여하게 됐다. 그렇게 그들은 사제지간에서 멘토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백우·이정석 멘토, 교직의 보람을 잇다
춘천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던 이정석씨는 은퇴 후 봉사활동에 눈을 뜨며 인생나눔교실에 참여하게 됐다. 동갑인 데다가 음악을 좋아하고, 같은 영어 교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멘토링 파트너 이백우씨와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한 지도 3년째,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호흡이 척척 맞는다. 이들의 수업 목표는 바로 ‘대화를 통한 공감’이다. 무언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강의 형태에서 벗어나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세대 간 공감을 이뤄나가고 있다.
이정석 “두려움은 없었어요. 40년을 교육자로 지냈으니까. 하루는 종이접기를 하려고 색종이를 가져갔는데, 멘티들이 초등학교 때 추억이 생각난다며 종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이들이 간직한 동심, 그런 감성적인 것들을 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백우 “신세대와 쉰세대 간의 공감·소통·배려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최근 ‘욜로(YOLO)’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리 기성세대와는 생각이 참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죠. 욜로는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며 살자는 건데, 어른들은 저축도 하고 앞날 생각하며 살길 바라니까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차관섭·허남신 멘토, 멘토링 속 멘토링
차관섭·허남신 멘토 콤비 역시 ‘노 티칭(no teaching)’을 원칙으로 대화와 이해를 통한 수업을 진행한다. 사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아버지와 딸뻘이다. 함께하는 데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묻자 이구동성으로 ‘전혀 없다’는 답변이 나왔다.
차관섭 “같이 군부대에 갈 때면 카풀(carpool)을 하는데, 1시간 반 정도 걸리거든요. 내가 살아온 이야기도 하고, 허 선생 사는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오늘은 어떤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할지 등등을 의논하게 되죠. 어떻게 보면 딸 같지만, 때로는 친구 같고 그래요.”
허남신 “나이 차가 많이 나는데, 상하적인 느낌이 들었다면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차 선생님은 저를 굉장히 존중해주시고, 같은 멘토로서 대해주셔요. 또 둘이 있을 때는 제게 멘토 역할을 해주시거든요. 저는 A가 맞다 생각했는데, 차 선생님은 ‘그게 아니야’라는 말 대신 ‘B도 있고 C도 있는데, 나는 D도 해봤어’라는 식으로 말씀하시죠. 그런 유연성, 배려 속에서 선생님 인생을 나누고 제 인생도 나누는 것 같아요. 인생나눔교실의 또 다른 성과인 셈이죠.”
멘티에게 배운 ‘요즘 아이들’
네 명의 멘토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보람된 순간은 바로 자신으로 인해 멘티들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했을 때다. 모두를 만족하는 수업이 되기는 어렵지만, 단 한 명이라도 그 시간을 통해 작은 깨달음을 얻어갈 수 있길 바라는 그들이다.
차관섭 “얼마 전, 한 장병이 쉬는 시간에 쪽지를 하나 주고 갔어요. 나처럼 공직생활을 꿈꾸고 있는데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싶다고요. 그야말로 내 인생을 나누고 도움을 줄 기회잖아요. 언제라도 시간이 되면 따로 만나서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고, 그 아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물론 그들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인생만을 나누는 것은 아니다. 멘티와의 생각나눔을 통해 배우는 것 또한 적지 않다.
이정석 “작년에 최전방에 있는 장병들에게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라 했는데, 제대하고 돈 벌어서 아버지 차 사드리겠다, 부모님 해외여행 보내드리겠다 등을 적더라고요. 대개 우리 세대는 요즘 애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고 여기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오히려 이들은 이렇게까지 생각하는데 나는 내 부모에게 어땠는가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실수하는 멘토가 되고 싶다
국군장병을 위한 수업이지만, 사실 그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는 게 나름 고충이라고 한다. 사는 지역, 나이, 학벌, 가치관, 장래희망 등 각양각색의 성향을 지닌 이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늘 어느 것 하나에 치우치거나 차별이 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백우 “예전에 아이들에게 ‘아버지’로 삼행시를 지으라 했는데, 한 아이가 아버지에 대한 원망 섞인 시를 지었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요즘은 편부모나 조손 가정이 많아졌잖아요.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로는 주제를 정하거나 대화를 나눌 때도 마음 다치는 아이가 없도록 배려하고 있죠.”
특별히 더 신경 쓰는 것은 언어다. 아무래도 나이 차가 나기 때문에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대화에 불편함이 생길 수 있어 이 점을 늘 염두에 둔다고.
이정석 “어느 날 ‘계모’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아이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멘티들이 알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또 유행어나 줄임말 같은 신세대 언어도 이해하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이정석씨가 그토록 언어에 신경 쓰는 까닭은 ‘쉽게 대화할 수 있는 멘토’로 기억되고 싶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각자가 바라는 멘토의 모습에 대해 물어봤다.
이백우 “재미있는 멘토, 얼핏 생각나는 멘토, 그렇게 기억되면 좋겠어요.”
허남신 “여유 있는 멘토, 실수하는 멘토 그런 인간미 넘치는 멘토가 되고 싶습니다.”
차관섭 “나는 그들의 멘토보다는 형으로 남았으면 해요. 인생의 형이 되어주고 싶어요. 그냥 형처럼, 정말 형처럼 내 모든 것을 그들에게 주려고 해요. 그들이 그렇게 나를 형으로 생각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죠.”
인생나눔교실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인생나눔교실은 선배세대(멘토)와 후배세대(멘티)가 나눔·소통·배려 등 인문 가치와 삶의 지혜를 공유한다. 2015년부터 인문적 소양을 갖춘 은퇴자 및 인문·문화 분야 전문가를 대상으로 수도권·강원권·충청권·영남권·호남권 등 5개 권역으로 나뉘어 멘토를 선발한다. 올해는 3월 지원자를 받아, 4월부터 12월까지 총 250명의 멘토가 3000여 회의 멘토링을 진행한다(자세한 사항은 인생나눔교실 블로그 참조 blog.naver.com/arko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