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찬가

기사입력 2017-09-19 18:01 기사수정 2017-09-19 18:01

혜화동에 있는 소극장으로 연극을 보러 갈 일이 생겼다. 혜화동은 필자가 좋아하는 동네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살았던 돈암동과 가까운 곳이고 중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인 해숙이네 집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해숙이 부모님은 의정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계셨다. 그래서 남동생들 보살피면서 학교 다니라고 혜화동에 아담한 한옥을 장만하셨다.

부모님 안 계신 해숙이네 혜화동 집은 우리 중학교 장난꾸러기 친구들에게 아지트가 되었다.

시험기간이면 공부를 핑계로 해숙이네 집에 모여 각자 사 들고 온 도넛이나 크로켓 사이다를 마시며 밤새고 놀았다.

뭐가 그렇게도 재미있었는지 수다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순수했던 그때가 참으로 그립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서울 문리대 생이었던 남자친구를 만나러 대학로에 있는 학림다방에 자주 갔다.

지금은 관악산 밑에 서울대가 다 모여 있지만, 그 당시에는 대학로에 서울 문리대와 건너편에 의대만 있었다. 관악산 아래에 다 모였지만 의대는 아직도 병원의 중심으로 혜화동 그 자리에 남아있다.

지금은 없어진 전차가 지나다니던 혜화동 로터리의 둥그런 동산에 있던 장미 터널도 멋있었다고 기억하지만, 특히 생각나는 건 동성고등학교 앞쪽부터 서울대 앞으로 흐르던 작은 개울이다.

한동안은 복개되어 개천이 있었던 흔적이 없었는데 몇 년 전부터 우리 개천 살리기 운동으로 완전 복구는 아니어도 개천이 있던 자리에 물이 흐르는 얕은 개울을 만들어놓았다.

그 개천을 그때 우리들은 세느강이라 불렀고 그 위를 연결하는 다리를 미라보다리라고 했다.

그래서 ‘미라보 다리 아래로 세느강은 흐른다.’ 라는 시구를 읊고 다녔다.

오늘 그 자리를 지나다 보니 늦은 밤이어선지 조명도 없고 작은 조약돌 위로 흐르던 개울물도 보이지 않았다. 마른 개천 위에 떨어져 쌓인 나뭇잎이 어쩐지 을씨년스런 풍경으로 필자 마음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지난번 보았을 때는 얕기는 해도 물이 졸졸 흘러서 예전에 개천이 있던 자리라는 걸 알려주는 듯해 보기가 좋았는데 가을이 오는 길목이라서인지 신경을 안 쓰나 보다.

다음에 보게 될 때는 전처럼 예쁜 개천으로 잘 관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화동에는 곳곳에 소극장이 숨어있다.

지난번 연극을 보았던 달빛극장도 대학로 대로변으로 연결된 작은 골목 속에 있어서 찾는데 애를 먹었지만 찾고 나니 보물찾기라도 한 듯 기분이 좋았었다.

혜화동은 큰길 양쪽으로 술래처럼 곳곳에 숨어있는 소극장이 많이 있다. 또한, 지금은 종로 구민센터가 된 예전 귀족학교라 불리던 보성중 고등학교 있던 쪽 골목에도 많은 소극장이 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혜화동 소재의 소극장에서 꽤 많은 연극 작품을 보았는데 대부분 정말 무대가 작았다.

그렇지만 무대가 작았을 뿐 연기하는 배우들의 열정은 이곳 혜화동을 소극장 가로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도 동숭아트홀 건너편에 있다는 상상 화이트라는 소극장을 찾아야만 했다.

동숭아트홀은 영화도 자주 보러 다녔고 친구들과 커피도 즐겼던 곳이므로 잘 알고 있는 곳이다.

갈비와 냉면을 맛있게 먹었던 낙산 가든 골목으로 들어서 동숭아트홀 쪽으로 잠시 걸으니 필자가 찾는 소극장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필자가 젊었을 때의 대학로와는 많이 바뀐 모습이지만 서울문리대가 있던 자리에 있는 마로니에 공원이나 혜화동 골목골목 풍경은 아직도 필자를 그 때로 안내하여 추억에 빠져 그 옛날을 그리워하게 해 준다.

예전에도 좋아했고 지금도 즐겨 찾는 혜화동의 대학로를 걸으며 여름의 끝자락에서 감상에 젖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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