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하지 않으련다

기사입력 2017-09-27 10:35 기사수정 2017-09-27 10:35

꼬마였던 두 아들이 어느새 훌쩍 커버려 아내가 될 여자 친구를 소개했다.

둘 다 아직 나이가 어린 편이어서 직장생활을 좀 더 하고 결혼을 하면 했다.

결혼하라고 애원해도 안 가는 아이들도 많다고 해서 좋은 마음으로 결혼 준비를 했다.

큰아들과 작은아들 모두 혼수는 생략했다.

큰아들은 둘이 반지 하나씩 만들어서 끼고 서울의 저렴한 전셋집을 둘이 발품 팔아 신림동

마을버스 종점 쪽에 마련했다. 부모인 우리는 2000만원만 보태준 게 다였다.

가파르게 높은 동네였다. 처음 집을 가서 보는데 목이 메었다.

아들이 눈치를 챘는지 오히려 신림역 종점이라 버스를 앉아서 갈 수 있다며

좋다고 말하면서 위로한다.

그런데 혼인신고도 안 하고 있어 무슨 일인가 했더니 대출을 저렴한 이자로 받으려고 그랬다한다. 한 번 집을 옮길 때마다 자신들이 모은 돈에다가 신혼 대출을 저렴하게 얻어 집을 옮겼다.

우리 걱정은 마세요. 엄마아빠 건강하시고 별일 없으면 돼요. 생활력 있는 며느리를 만나 씀씀이가 좀 헤픈 우리 큰아들이 생활인이 된 것도 감사하다.

큰아들 장가보낸 후 바로 다음 해에 아직 나이도 어린 작은아들이 결혼하겠다고 서둘러댄다.

남의 집 자녀들은 결혼 안 해서 걱정인데 우리 집 자식들은 결혼을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작은아들은 이미 결혼할 여자 친구와 함께 호주에서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결혼해서 바로 떠나면 집 장만 할 것도 없이 그곳에서 직장도 잡고 일도 하면서 전셋집 장만할 비용 마련해올 테니 엄마 아빠는 결혼식에 참여만 하라는 것이다.

이래도 되는 일인가 했다. 그러나 결혼식장 예약 비용부터 결혼 당일 헤어와 양가 부모님 메이크업 비용까지 작은아들이 살뜰하게 계산했다. 몸이 아픈 아빠는 결혼식 날도 의자 가져와서 몇 번을 일어났다 앉았다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말 나온 김에 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허락했다.

현재 작은아들은 호주에 가서 일도 하고 힐링도 하며 착실하게 월급 모으고 있다. 한국에 와서 자리 잡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작은아들 내외와 주말도 반납하고 일하는 큰며느리와 큰아들 모두 생활력이 있어 걱정은 안 한다. 감사한 일이다. 남편도 몸이 안 좋은데 아이들마저 힘들게 했다면 정말 짐이 무거웠을 것이다.

지금은 남편의 몸이 회복되기만 바랄뿐이다. 필자는 열심히 사는 아이들에게 짐이 안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힘은 못 될망정 짐 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결혼할 때 다 마련한 집에 몸만 들어갔다. 집은 물론 가구와 가전까지 다 해주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꼭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겠다. 처음의 그 달달함이 오히려 치열하게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데에 지장을 주기도 했던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강하게 키울 필요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문제해결력, 자생력을 키운 아이들이 고맙다. 이제 미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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