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미국에 이민 간 사람은 70년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도시 건물은 쭉쭉 올라가고 전철은 사통발달 하더라도 생활방식은 아직도 한국은 70년대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에 만난 미국 친구를 보면 전형적으로 그런 사람이었다. 한국에 살았었는데 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가 40여 년 간 살고 있다가 이번에 잠시 서울에 온 것이다.
일단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 고기도 제대로 못 먹는 줄 안다. 70년대 만 해도 그랬다. 고기는 명절이나 제사 때나 한두 점 먹을 수 있었다. 몇 년 전 일주일간 미국에 갔을 때 친구 집에 가 있었는데 매 식사마다 고기를 과식할 정도로 많이 대접해서 고맙기는 하지만, 고기에 질렸었다.
돈에 대한 개념도 다르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100불은 큰돈이다. 우리 돈으로 10만원 조금 넘는 돈이다. 미국 친구는 미국에서 부동산 사업이 성공해서 큰돈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식대 10만원은 큰돈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어지간한 음식점에서 몇 명이 모여 같이 식사하고 술을 곁들이면 그 정도 식대는 나온다. 우리가 미국에 여행가서 100불짜리 지폐를 내면 음식점에서도 의아해 한다. 그 정도 금액이면 신용카드를 쓰고 현금 100불짜리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는 것이 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70년대에는 분식집에서 끓여서 파는 라면이 40원이었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에 몇 년 나가 있다가 친구들과 경포대에 같이 놀러 갔는데 친구들이 필자에게 가게에 가서 라면을 사오라고 했었다. 가게에 가니 끓이지 않은 라면 그 자체가 400원을 불러 피서지 바가지 관행이라며 오해하고 그냥 돌아 왔었다. 제 값인데 그간 물가가 그만큼 올랐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한국에 살던 친구들이 그러면 라면 값이 얼마 정도일 것 같으냐고 물어 말도 못하고 바보 취급을 받았다. 라면 봉지 겉면에 권장소비자가가 400원으로 되어 있었다.
이번에 미국친구가 일식집에서 같이 식사하는데 생수 담는 페트병에 노란 액체를 담아 와서 내놓는 것이었다. ‘데킬라 골드’라고 200불이 넘는 비싼 술이니 같이 마시자고 했다. 영업집이라 차마 병째로 못 가져 오고 페트병에 담아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시라는데 필자는 막걸리만 마시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해 못하겠다고 했다. 성의를 무시한다고 화도 내는 것 같았다. 200불 넘는 좋은 술 놔두고 왜 1,200원짜리 싼 술을 고집하느냐는 것이었다. 양주는 좋은 술이고 국산 술, 그것도 막걸리는 돈 없는 사람이나 마시는 싼 술이라는 주장이었다. 막걸리는 마시고 나면 머리도 아프고 냄새도 안 좋고 속도 안 좋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양주는 고급술이니 뒤끝이 깨끗하고 믿을 만 하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 막걸리는 그렇지 않고 먹을 만 하다고 했으나 미국친구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반 쯤 마시다 만 막걸리 병을 놓고 나오니 아깝다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