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떳떳하게 사는 법

기사입력 2017-11-03 13:48 기사수정 2017-11-03 13:48

바야흐로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하던 삶의 방식들은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추고 생소하고 낯선 시간의 문 앞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과거 우리 부모 세대는 대개 60 언저리 혹은 70 이전에 세상을 하직하셨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60대 중반을 바라보는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세상을 버릴 생각 없이 말짱하다. 요즘 같아서는 정말 100세 시대라는 말이 실감 난다.

그렇다면 좋은 세상이 온 건데 우울하고 두려운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건 어쩌면 우리에게 덤으로 주어진 30년 정도의 시간이 주는 공포 때문이 아닐까 한다. 과거 인류가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미지의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왜 걱정되지 않겠는가. 과연 그 긴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아니 그 긴 시간을 견딜 물질적 동력은 준비되기나 한 걸까?

간혹 신문과 방송 같은 미디어에 전문가가 등장해 길어진 수명에 대비하는 갖가지 대응책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살아보지 않은 것은 저나 나나 똑같지 않은가. 100세가 다 되신 철학자 김형석 선생 같은 분 정도는 되어야 경험을 말할 수 있는데 어디 그분 같은 경력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각자 자신이 살아온 방식으로 각자 미래를 개척하는 수밖에는 없을 듯싶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소비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 취향에 맡겨놓는다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핵심은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물질적인 걱정 없이 품위 있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경제 활동이 왕성한 시기에 이런 미래의 실상을 모른 채 부모 봉양하고, 자식 교육시키고, 결혼 비용까지 댄 어리석은 일들이 후회되지만 다 지난 일이고 어디 호소할 데도 없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분들은 TV에 나와 그러니 나이 들어도 일을 해야 한다고 뻔한 말들을 늘어놓지만, 그걸 몰라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비록 건강이 염려 없더라도 이 나이의 고령자를 써 줄 곳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어떤 이는 그래서 평생교육이 필요하니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을 받으라고 역설한다. 아, 앓느니 죽지! 취미로 교육받는 건 모르지만 취업은 언감생심이다.

고교 교사로 있는 가까운 친구 하나는 정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최근 딸이 직장 때문에 손자를 돌봐 달라는 바람에 낮에는 학교로 밤에는 딸네 집으로 출근하며 “늘그막에 이 무슨 고생이냐”며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우리 친구들 사이에 최고로 부러운 존재다. “야, 2년만 버티면 죽을 때까지 생계 걱정이 없는데 무슨 소리야. 네가 제일 팔자 좋다.” 전화 끊고 입맛이 씁쓸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딸애는 세상 물정도 모르고 결혼하고 애 낳으면 회사를 그만둔단다. 자식을 먼저 잘 키운 뒤에 다시 프리랜서로 일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 말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런 생각이 여성들의 노후를 혼란스럽게 만든 원흉이 아닌가. 남편만 바라보다 물먹은 여자가 어디 하나둘인가! “얘, 무슨 소리야 힘들어도 내가 키워 줄 테니 열심히 다녀. 노후를 생각해야지. 나한테 양육비 주면 열심히 키워 줄게.”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나이 들고 가장 억울한 것이 소위 ‘경력단절’이라는 장벽이다. 과거에 아무리 화려한 경력이 있었어도 단절되고 나면 고철에 불과하다. 남성보다 여성의 노후가 불안한 이유이다. 애 키우는 거야 경험 많은 노인들이 더 잘하는 영역이고 노인 돈벌이에도 기여하니 힘은 들어도 윈윈 하는 길이 아닌가. ‘얘야 부디 끝까지 남아 임원 자리까지 해 보고 그만두렴.’ 여성이 떳떳하게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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