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라고 제 글의 주제를 잡았습니다만 실은 이야말로 말도 되지 않는 말입니다. 무릇 우리의 삶에서 돈이란 그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돈은 생존을 위해 갖춰야 하는 거의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하루도, 한시도 살지 못한다고 해도 과장일 수 없는 그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돈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는 것은 생존을 그만두겠다는 것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그만 살 작정이 아니라면 이런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제발 돈이 많아 돈에서 자유로워졌으면!”
까닭인즉 다른 것이 아닙니다. 돈이란 대체로 거저 내게 주어지질 않습니다. 돈은 열심히 마련을 해야 합니다. 살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데 이를 노동의 대가라고 흔히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일이 쉽지 않습니다. 몸 고생은 당연하고 마음고생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겪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데도 돈은 뜻한 대로 모아지지 않습니다. 삶은 그래서 힘듭니다. 생존의 조건들이 온통 돈으로 마련되는 것인데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삶이 편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장 이상적인 삶이란 돈이 차고 넘쳐 더 이상 돈에 시달리지 않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에서 놓여나 살면 좋겠다는 꿈을 꾸게 되는 거죠. 마침내 사람들은 “제발 돈이 많아 돈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절망적인 절규를 하게 됩니다.
“제발 이 많은 돈에서 풀려났으면!”
그런데 돈에서 자유롭기를 바라는 것은 이러한 경우만이 아닙니다. 능력이 있어서건, 재수가 좋아서건, 거저 받은 몫이 많아서건, 돈이 많아 돈에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때로 돈에서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돈이란 근원적으로 매개기능을 하는 것이어서 사람살이를 얽어놓습니다. 그 얽힘이 때로 삶을 무척 힘들게 하곤 합니다. 돈 때문에 관계가 기울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고, 엉킨 채 이어지기도 해서 돈이 없어 하는 고생보다 더한 어려움에 몸도 마음도 시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도 마침내 “제발 이 많은 돈에서 풀려났으면!” 하는 고통스러운 절규를 하게 됩니다.
“이제 돈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그런데 또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돈이 많지는 않지만 모자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는 데는 별 걱정이 없는데도 여전히 돈 걱정을 관성처럼 하며 살아갑니다. 이제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데 그게 잘되지 않는 거죠. 그때 사람들은 “이제 돈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안달을 하면서 돈에만 매여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돈을 모으며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스스로 생각해도 그런 자신이 한심하고 딱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돈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앞의 두 경우는 빈곤이나 부요함의 차이는 있지만 실은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경우는 더 욕심내지 않는다면 생존을 위한 돈에 마음을 쓰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경우입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커다란 이변을 겪지 않았다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라 해도 좋습니다. 우리네 삶이 대체로 그러하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돈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는 것은 참으로 진지한 희구, 절박한 물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절망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절규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 긴박하고 더 나아가 마지막인 희구, 곧 남은 삶을 잘 살고 싶은 간절함이 절절한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에서 놓여나려면 써야 한다
그런데 돈이란 쓰기 위해서 모으는 것입니다. 모은다 해도 결국 쓰기 위한 것이니까 돈은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만약 돈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면 그것은 내가 돈을 쓰지 않고 움켜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 미리 얼마쯤의 돈을 간직할 수도 있고, 사정을 잘 헤아려 모자라지도 넘치게도 쓰지 않으려 돈을 한껏 아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돈을 움켜쥐고 쓰지 않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돈을 쌓아놓고 있으면 든든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또 갖은 고생 다해서 번 돈이어서 쓰기에는 너무 귀하고 아까워 그렇기도 하겠지만, 돈은 쓰는 것이기보다 모아놓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쌓아 놓은 돈만큼 자신은 당당하고 성공했고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뜻밖에 많습니다. 성실하게 살아온 분들이 더 그러합니다.
그러나 돈은 쓰기 위한 것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부(富)란 지님에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10억을 가졌는데 이웃돕기를 위해 1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2억의 재산을 가졌는데 10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 가진 것으로 보면 앞의 사람이 뒤의 사람보다 다섯 배 더 부자이지만 쓰는 것으로 보면 뒷사람이 앞의 사람보다 열 배나 더 부자입니다. 돈의 가치는 쓰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돈에서 놓여나려면 다른 길이 없습니다. 써야 합니다.
문제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예를 들었듯이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돈을 쓰는 것이 가장 쉽게, 그러면서도 가장 의미 있게 돈을 쓰는 것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돈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공공의 복지를 위한 시설이나 기관을 위해 돈을 쓰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자기 이름을 드러내도 상관없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본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을 이것저것 드는 것은 별로 보탬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자기가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자기가 쓰고 싶은 데에 쓰면 되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사람 따라 제각기 다를 테니까요. 어찌하든 돈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가지고 있는 돈을 써야 된다는 사실만을 깊이 유념하고 이를 실천한다면 방법이나 쓰는 목적이야 저절로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돈을 어떻게 쓰는가는 사람됨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유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장자(莊子)> 잡편(雜篇) 열어구(列禦寇)에 보면 공자님께서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들어 말씀하고 계신데, 그중에 ‘재물을 맡겨 그 사람의 어짊을 살펴보라(委之以財而觀其仁)’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주 쉽게 풀어 말한다면 ‘어떤 사람에게 돈을 맡겨 그가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살펴보면 그 사람의 사람됨이 어떤지를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어짊[仁]이란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덕목임을 생각할 때 어진 사람이란 가장 성숙한 사람을 일컫는 것이리라 읽혀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 미루어보면 돈에서 자유롭고 싶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푹 익은 인간, 곧 성숙한 인간이 되는 일입니다. 내 사람됨의 정도에 따라, 그 수준에 따라 나는 돈을 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어디에 어떻게 얼마를 써야 하나 하는 일에 마음이 쓰인다면 우뚝 멈춰 서서 먼저 내가 얼마나 하나의 인간으로 푹 익었는지를 스스로 살펴보는 일을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어디에 어떻게 얼마를’ 하는 문제는 저절로 풀릴 것 같습니다.
돈에서 자유롭기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쓰면 되니까요. 뿐만 아니라 그러한 희구를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성숙한 사람은 이 천복(天福)으로 가장 현명하게 살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