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필휘지(一筆揮之) 한 획(劃)의 힘

기사입력 2018-01-20 11:47 기사수정 2018-01-20 11:47

▲누가 썼을까? 삐칠 별(丿) 자(변용도 동년기자)
▲누가 썼을까? 삐칠 별(丿) 자(변용도 동년기자)
이른 아침이다. 간밤에 내린 눈이 소복소복 쌓여 세상이 하얗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에도, 들녘을 구비 도는 길에도 빈틈없이 내렸다. 평평한 대지 위에는 하얀 종이를 깔아놓은 듯하다. 아침마다 산책하는 들판 길옆 꽁꽁 얼음이 얼어붙은 농수로(農水路) 위에도 하얗게 내려 마치 화선지 두루마리를 펼쳐놓은 듯하다. 수로의 중간쯤 얼음 사이로 뚫린 숨구멍이 마치 글자의 한 획을 그은 듯하다. 화선지 위에 붓으로 힘차게 내려쓴 글씨를 빼닮았다. 눈이 부실 듯 하얀 종이 위에 단숨에 쓴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처음 한 획, 삐칠 ‘별(丿)’이 확연하다. 명상하는 고승처럼 고요히 앉아 붓끝에 집중하는 대 서예가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신비로운 형상을 발견한 필자는 카메라 렌즈로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무슨 이야기를 이 사진 속에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상상의 나래를 편다. 무지개 저편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동심이 된다. 누가 썼을까? 찬바람이 쌩쌩 일었을 새벽녘에 어느 누가 붓을 잡고 획을 그었을까? 새해를 맞아 고귀한 휘호 하나를 남기려 하였을까? 왜, 한 획만 긋고 멈추었을까? 쓰려던 글자는 무엇일까? 또 다른 가르침을 스스로 깨닫게 하려 함인가? 어둠을 타고 펑펑 내리던 눈이 그친 자정이 지나고 어둠이 더 짙어지는 동틀 무렵의 새벽이었을 테다. 수만 리 하늘 저만치서 바람을 타고 선인이 선녀와 함께 내려와 눈(雪)으로 만든 화선지를 앞에 놓고 휘호를 쓰다 떠난 흔적이 아닐까? 치마폭 고이 접고 선비 곁에 앉은 선녀가 반들반들 고색창연한 벼루 한쪽에 정화수 조심스레 따르고 섬섬옥수로 까만 먹을 잡아 작은 동그라미 서서히 그리듯 짙은 먹물을 만들었다. 선인은 조심스레 붓에 먹물을 묻혀 휘호 한 줄을 쓰기 시작했음이 분명하다. 삐칠 별(丿) 변이 들어가는 어떤 첫음절로 시작하려 했을까?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들은 새벽닭 울음 울 기척 보이자 황급히 천상으로 떠났나 보다. 쓰려던 일필휘지 한 줄의 한 획, “별(丿)”만 남기고서. 오늘 밤에 다시 내려와 쓰려던 글을 마저 쓰고 갈까? 내일 아침은 어떤 모습이 필자를 기다릴까? 삶을 설렘으로 만드는 일상이 있어서 즐겁다.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희망의 씨앗인지 모른다.

“오늘은 무엇을 찍으세요?” 필자가 촬영에 몰입해 있는 곁을 지나던 길손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제야 카메라에서 시선을 돌리고 펼쳤던 상상의 나래를 접는다. 가끔 만나는 산책길의 이웃이다. 소소한 피사체에 몰입해 있는 모습이 늘 궁금하였나 보다.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며 카메라로 쓴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해가 될 듯 말 듯 한 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가던 길을 재촉한다. 짙게 내려앉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필자는 조금 전에 찍은 영상을 다시 띄워보며 빙그레 웃는다. 사진 한 장에 한 편의 이야기를 쓴 만족감의 표현일 테다. 무언가 이루었다는 쾌감에 오늘 아침도 행복하다. 저 하늘을 향하여 소리쳐 본다. “세상은 아름답다! 보기 나름이다. 내 인생의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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