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서울역 노숙인들의 ‘형님’ 경찰관

기사입력 2014-02-26 11:34 기사수정 2014-02-26 11:34

서울역파출소 장준기 경위, 안부 묻고 깊은 대화

노숙인들의 ‘큰형님’으로 불리며 15년째 서울역 노숙인을 관리해온 경찰관이 있다.

주인공은 서울 남대문경찰서 서울역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장준기(56사진) 경위. 그는 매일 아침 인근 쪽방촌과 서울역 광장, 지하철역을 순찰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자칫 흉기가 될 수 있는 술병 등을 치우거나 집회 현장에서 노숙인들을 통제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현재 대포폰대포차에 노숙인 명의가 도용된 일은 없는지, 최근 문제가 된 ‘염전 노예’ 피해 사례가 더 없는지 세심히 살피고 있다.

장 경위는 “이름이 알려지면서 공항이나 지역 경찰서 등 다양한 곳에서 노숙인 관련 자문 요청을 받고 있지만, 무엇보다 노숙인들이 날 인정해 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 경위가 서울역파출소 근무를 시작한 건 남대문서 전입 1년 뒤인 2000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서울역 인근 노숙인이 급증한 시기였다. 당시 경찰은 노숙인들이 소란을 피우거나 행인을 폭행할 때만 개입했다. 그러다 보니 문제는 끊임없이 반복됐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노숙인들에게 직접 다가가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그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매일 거리로 나가 안부를 묻고 인간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애썼다. 그에게 친근감을 느낀 노숙인들은 어느새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노숙인들과 가까워지면서 여러가지 에피소드도 생겨났다. 파출소 앞까지 택시를 타고 온 한 노숙인은 택시 운전사에게 “여기 형이 있다”며 장 경위를 소개하는 바람에 택시비를 대신 내기도 했다. 폭행 등으로 수배가 내려진 노숙인들이 “기왕 걸릴 거면 우리 형님에게 가는 게 낫다”며 제 발로 장 경위를 찾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전입 15년차인 장 경위는 올해 순환근무 대상이다. 하지만 서울지방경찰청은 최근 인사위원회를 열어 장 경위가 서울역파출소에서 노숙인들을 위해 일하도록 결정했다. 그가 서울역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허찬 남대문경찰서장은 “거칠고 힘든 노숙인 관리를 장 경위만큼 해낼 적임자를 찾기 어려웠다”며 “본인은 고되겠지만 업무의 중요성을 고려해 서울경찰청에 순환근무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장 경위는 “잔류 결정이 났을 때 내 가치를 인정받은 것 같아 행복했다”며 “노숙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노숙인은 삶의 방식이 다를 뿐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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