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견지명(先見之明)’은 ‘다가올 일을 미리 짐작하는 밝은 지혜’를 뜻한다. ‘후견지명’도 다가올 일을 미리 짐작하지만, “내 그럴 줄 알았지”라며 내버려 두다 예방을 못 한 경우를 말한다. 주로 남의 일에 관해 얘기할 때 그렇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사후과잉혁신편향’이라고 한다.
지인 중에 돈을 빌려주면 높은 이자를 주는 곳이 있다며 필자도 투자하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좋은 뜻으로 순수하게 필자에게 도움이 되라고 알려준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거래는 경험상 분명히 함정이 있으니 당연히 거절했고 지인에게도 당장 투자한 돈을 회수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집안사람을 통한 거래이니 믿을 만 하다며 차일피일 회수를 미루다가 결국 돈을 몽땅 떼였다. 필자가 워낙 강하게 회수를 권하니 회수의 뜻을 비치긴 했던 모양이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주변 지인들 돈까지 더 들어가서 크게 사기를 당했다. 원금 일부 회수를 요청하자 사기꾼은 오히려 자기 사정을 알려주며 더 안심을 시켰다. 지금은 사정이 어려워 원금을 못 주지만, 돈을 더 투자하면 고비를 넘기니 그때 한꺼번에 더 얹어 주겠다며 소위 ‘물타기 작전’에까지 말려든 것이다.
지인은 큰돈을 잃고 나니 크게 상심하여 한동안 눈물로 지샜다. 가슴이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하고 얼굴도 팍삭 늙었다. 회수를 위해 조그마한 가능성만 있어도 긴급 출동을 하고 여러 수단을 써 봤지만, 소용없었다. 애초부터 사기를 칠 사람은 꿈쩍도 안 했다. 이미 돈은 다 빼 돌리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사람이다. 감방에 들어가 있더라도 유능한 변호사를 사서 형기를 조기에 마치고 나올 심산으로 제 살길 다 준비한 사람에게는 못 당한다.
돈을 잃은 지인에게 필자가 한 말이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였다. 그랬더니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었다면, 좀 더 강력하게 돈을 회수시켰어야지, 왜 놔두었느냐?”며 대드는 것이었다. 돈을 잃은 지인은 필자에게 위로를 받으려고 했는데 위로는커녕 화만 더 돋게 하였다고 했다. 필자의 후견지명이 오만하게 보이고 지인 당사자의 자존심까지 폄하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럴 필요 없었다. 필자가 투자한 것도 아니면서 지인에게 화를 내며 돈을 빨리 회수하라고 한 것도 주제넘은 짓이었다. 더 잘 못 한 것은 일이 터진 후에 “내 그럴 줄 알았지”였다. 사기꾼 일에 필자가 말려들어 지인과의 관계만 망친 꼴이 되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사람들은 알면서도 말려든다. 그러니 사기꾼은 언제나 나타나는 것이다. 살면서 ‘과욕을 부리지 말라’고 한다. 욕심이 비극을 낳는다고 했다. 과욕이라면 일반적인 욕심을 넘어서는 것이라 그 피해는 더 클 수밖에 없다. 필자 세대는 IMF 금융위기 때 실직하거나 망한 사람들이 많다. 실직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실직을 만회하기 위해서 뛰어든 것으로 보통 일반적인 것으로는 성에 안 차니 과욕을 부린 사람이 많다. 실직에 이은 실패이니 두 번 망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가정의 파탄, 개인의 파멸이었다. 그 때문에 제 명대로 다 못 산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