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네상스(Greynaissance)

기사입력 2018-09-05 10:43 기사수정 2018-09-05 10:43

최근 시내 한복판에 있는 교회에 갈 일이 있었다. 그 교회에 다니는 지인이 저녁 식사도 대접하고 상영 중인 영화도 무료로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무료 때문만은 아니고 여러 사람이 같이 가자니 가 본 것이다. 금싸라기 땅에 자리 잡은 넓은 주차장에 놀라고 거기 주차장에 수많은 고급 차에 놀랐다. 둘러보니 이 교회는 교육관, 선교관 등 아예 도시처럼 그 동네를 넓게 차지하고 있었다. 교회에 들어가 보니 마침 식사를 하러 온 교인들로 꽉 차 있었다. 모두 필자 또래의 시니어들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영화관에 가니 300명 선착순으로 입장하는데 역시 시니어들이었다. 시간상으로 직장인들도 퇴근하고 올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시니어들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인근 음식점들은 이 시니어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회자되는 ‘그레이네상스(Greynaissance)’라는 말이 생각났다. 노인을 의미하는 ‘그레이(Grey)’와 전성기, 부흥을 뜻하는 ‘르네상스(Renaissance)’의 합성어이다.

서울 시내 또는 서울 근교의 유명 음식점은 여자들 세상이라더니 남녀의 구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나이의 구분으로 볼 때 시니어들 세상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이들이 몰려다니는 세상이다. 뒷방에 처박혀 있지 않고 이렇게 활발하게 삶을 즐기고 있으니 동시에 당연히 지갑을 열면서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른 것이다. 업계에서는 요즘 시니어들이 나이는 많지만, 주요 소비층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퇴직은 했지만, 그동안 열심히 모은 덕분에 재산이 꽤 되고 자녀들에게는 굳이 재산을 물려줄 생각도 안 한다는 사람이 많다. 자신들을 위해서 소비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은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은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해 20~30세대 소비가 미국 전체 소비의 13%에 그친 것에 비하면 43%가 베이비붐 세대 지갑에서 나왔다고 한다. 현재 일본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는 28%에 달한다고 한다. 나이는 많지만, 몸은 아직 건강하니 이들 시니어가 뜻밖에도 성인산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층이 찾는 매춘 산업보다는 점잖은 장르이긴 하다. 명품 모델로 노인들이 등장하는 것도 요즘 트렌드라고 한다. 좋은 시니어 모델은 시니어들에도 좋은 인상을 주지만, 젊은 층에도 신뢰감을 주면서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화장품 역시 그전에는 젊은 층 위주였지만, 지금은 노인 냄새 제거 등 시니어 대상의 마케팅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는 소식이다.

확실히 요즘은 시니어들의 세상이다. 전성기를 맞은 것 같다. 요즘 시니어들은 돈 있고 시간 많고 아직은 건강하다. 전철을 타 봐도 경로석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일반석에서 자리를 찾아봐야 할 지경이다. 물론 필자가 시니어라서 시니어들이 선호하는 곳에 가는 탓도 있지만, 어딜 가나 시니어들이 북적인다. 필자 개인으로 봐도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기인 것 같다. 생업에 대한 걱정 없고, 식구들에 대한 부담도 없다. 젊을 때는 시간 없고 돈도 없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많고, 돈은 많지는 않지만, 쓸 만큼은 있다. 인생에서 가장 풍요롭고 자유로운 시기이다. 건강만 잘 유지한다면 그야말로 인생의 최고 전성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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