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면 얼굴에 주름이 늘듯 경험과 함께 고정관념도 굳어진다. 나이가 들면 고집스러워지는 이유다. 왜 그럴까? 사람의 두뇌에 ‘스키마(Schema)’라는 인지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심해지는 현시대에 고정관념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고의 전환이나 창의력이 절실한 시대여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세상을 제대로 읽을 수 있고 따라 갈 수 있어야 한다. 언론 매체에 올린 글에 대한 댓글을 보아도 그런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글 전체 내용과 전혀 다른 측면에서 맞지 않는 말을 적는 독자들. 글 전체를 제대로 읽지 않고 몇 줄만 읽고 글 내용을 지레짐작해 쓰는 이도 있다.
가령 노란 은행잎을 볼 때 연령대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한다. 10대는 책갈피에 넣을까? 20대는 연인과의 데이트를, 30대는 '환경미화원 힘들겠군', 40대는 은행 빚이 생각나고 50대는 은행잎에서 추출한 혈액 순환제가 생각날지도 모른다. 이발사가 손님의 머리에만 신경을 쓰지 구두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과 같다. 자기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쌓여온 제반 정보의 늪에 빠져 새로운 정보를 보아도 예전의 정보에 묻히게 된다.
여러 사람을 모아 놓고 이런 실험을 해보았다. 먼저 A4 종이 한 장과 인형 하나를 준비했다. 종이를 반으로 접게 한 후 오른쪽 반 페이지에 인형을 최대한 정확하게 연필로 그리게 했다. 다음에는 인형을 거꾸로 놓고, 종이도 거꾸로 돌려놓고서 왼쪽 페이지에 다시 정확하게 그리게 했다. 두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용지를 펼쳐 놓고 두 그림을 비교해 보았다. 두 그림은 모두 인형을 바로 세운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거꾸로 놓고 그린 쪽이 더 정확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스키마’라는 두뇌의 인지능력 때문이다. 인형을 바로 놓고 그리는 경우 인형을 보이는 대로 정확하게 그릴 것 같지만, 사실은 생각을 동원하며 그림을 그려간다. 머릿속에는 이미 인형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이미지가 현재 관찰하고 있는 대상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즉 인형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린다. 이처럼 사전에 축적된 지식과 정보, 즉 고정관념이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 ‘스키마’ 영향이라고 한다.
스키마 현상은 우리의 의사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기억과 판단 행위가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인지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시대 변화에 잘 적응하고 미래의 젊은 층과 잘 소통하기 위해서 고정관념의 탈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