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했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늦은 밤 집에 도착했다. 습관적으로 오른손으로 열쇠 뭉치를 찾았다.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 당연히 있어야 할 열쇠 뭉치가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 술이 확 깼다. 주머니 내용물을 다 꺼내고 입고 있는 옷에 달린 주머니까지 다 뒤져봤는데도 열쇠 뭉치가 보이지 않았다. 낭패였다. 열쇠 뭉치에는 열쇠와 함께 교통카드, USB가 달려 있고 지인이 선물해준 헝겊 열쇠 케이스도 있다. 무게도 좀 있는 편이라 주머니에서 빠져 나갈 리는 없었다. 누군가 가져갈 만한 것은 최근 충전한 교통카드에 들어 있는 현금 6만 원 정도. 그 외에는 쓸모가 없다.
나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예비 열쇠를 만들어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가방 안쪽 주머니를 뒤져보니 다행히 예비 열쇠가 있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잠을 잘 수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그날 밤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아끼던 물건, 자주 사용하던 물건을 분실하면 겪는 현상이다.
아침에 깨서 어젯밤 일을 회상해봤다. 모임을 마치고 맨 처음 간 곳은 빈대떡집이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벗어놓은 두툼한 겨울옷이 처치 곤란이라 둘둘 말아 이리저리 옮긴 기억이 난다. 그때 주머니에 넣어둔 열쇠 뭉치가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겨울옷들은 디자인을 중시해 주머니 깊이를 얕게 만들어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지퍼로 주머니를 잠글 수도 있지만, 추운 날 손을 넣고 다니기 때문에 지퍼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두 번째 간 집은 커피집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간 곳이 당구장, 네 번째 간 곳이 호프집이었다. 가는 곳마다 두툼한 롱패딩을 대충 접어뒀다. 당구장에서는 손님들이 마구 들이닥치는 바람에 손 씻고 계산하고 돌아오니 이미 옷이 옆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다음 날 역순으로 돌아보자며 열쇠를 찾으러 나섰다. 먼저 빈대떡집에 들렀는데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 건지 주말이라 문을 닫은 건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원망스럽게 밖을 돌아봤는데 그 흔한 전화번호 하나 없었다. 커피집, 당구장도 가봤지만, 보관하는 분실물이 없다고 했다. 네 번째로 간 호프집은 술김에 따라간 곳이라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돈을 지불하고 카드로 결제한 덕분에 영수증이 있었다. 영수증에 찍힌 상호와 주소를 확인하고 그 집을 찾을 수 있었지만 역시 보관하는 분실물이 없다고 했다. 오는 길에 충무로 전철역 분실물센터에도 들러봤다 전철 좌석에 열쇠 뭉치가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분실물센터는 주간에만 열고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시내로 나가 저녁까지 일부러 시간을 보냈다. 아직 못 가본 빈대떡집에 가봐야 했기 때문이다. 왠지 그 집에 보관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집에도 열쇠 뭉치는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귀가하는데 동네에서 지인들을 만나 또 한잔했다. 열쇠는 분실하기 쉬우니 도어 록으로 교체하는 것이 좋다는 사람도 있었고 도어 록은 지문이 찍혀 어지간한 전문가라면 바로 열 수 있으니 아날로그 자물쇠가 낫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뒤 사무실을 오랜만에 나갔다. 그런데 책상 아래에 있는 컴퓨터 본체에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열쇠 뭉치가 덩그러니 꽂혀 있었다. 열쇠 뭉치가 없어진 날 USB를 사용하려고 컴퓨터에 꽂았는데 접속이 안 되어 몇 번 시도하다가 그대로 두고 간 것이다. 내 손을 벗어난 물건은 잃어버리기 쉽다. 우산도 그렇고 모자, 장갑도 그렇다. 주머니에 넣어두거나 가방 안에 넣어둬야 한다. 주머니도 바지 주머니가 상의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보다 안전하다. 교통카드를 상의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분실한 적이 있으므로 앞으로 열쇠 뭉치는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로 했다. 그런데 걸을 때마다 이물감이 느껴지고 꺼낼 때도 불편했다. 할 수 없이 다시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더니 소 잃고도 외양간을 못 고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