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인구의 평균 수명은 82.7세다. 더불어 오는 2025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 이에 은퇴 후 노후대비의 중요성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는데, 실버 재테크 방법 중 하나로 '퇴직연금'이 꼽힌다.
퇴직연금제도는 근로자의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급여(퇴직금)를 회사가 아닌 금융회사(퇴직연금사업자)에 맡기고 기업 또는 근로자의 지시에 따라 운용하여 근로자 퇴직 시 일시금 또는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이다. 지난 2005년 근로자들의 노후 소득보장과 생활 완정을 위해 도입됐다.
일시금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퇴직금제도를 퇴직연금제도로 전환해 노후 소득재원 확충을 통한 노후생활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초저금리 시대이기 때문에 퇴직연금을 단순히 계좌에 쌓아두기만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퇴직연금은 무엇이고 어떻게 투자하면 좋을지 좀 더 알아봤다.
퇴직연금, 다양한 노후설계 가능하게 해
퇴직연금이 최초 마련된 배경은 퇴직금을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해서다. 회사의 재정 상태가 어려워지면, 회사 측에서는 퇴직금을 주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고, 퇴직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생기게 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퇴직연금이라는 제도가 마련됐다.
퇴직연금은 퇴직급여가 꼬박꼬박 금융회사에 적립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근로자는 사용자의 적립금으로 체불 걱정 없이 퇴직급여를 수령하고, 사용자는 부담금 납입금에 대해 법인세(사업소득세)를 절감할 수 있다.
두 번째 장점은 적립금 운용수익으로 사용자 부담은 줄이고, 퇴직급여는 늘릴 수 있다는 점이다. 사용자는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의 운용수익으로 퇴직급여 지급 부담을 낮추고, 근로자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의 운용수익으로 퇴직급여를 증액시킬 수 있다.
세 번째 장점은 퇴직연금의 가장 큰 장점이다.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회사를 옮기더라도 개인형 퇴직연금제도(IRP)를 통해 퇴직급여를 계속 적립하고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하여 다양한 노후설계가 가능하다.
퇴직연금은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수령 가능하다. 금융 전문가들은 연금으로 수령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말한다.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받으면 연금으로 받을 때보다 세금이 30% 많아진다. 연금으로 수령하는 경우 퇴직소득세를 30% 경감해주며, 발생한 세금은 연금을 수령하는 동안 분할 납부할 수 있다.
여기에 세금을 줄이는 연금 수령 팁이 있다. 퇴직연금은 수령 연령이 높을수록 유리하다. 연금소득세 적용 세율이 69세 이하 5.5%, 70~79세 4.4%, 80세 이상 3.3%로 적용된다. 또한 연금소득이 1200만원을 초과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연 1200만원을 초과하면 다음 연도에 다른 소득과 합산해 전액 종합소득세 대상이 된다. 종합소득세 세율은 과세표준에 따라 최대 42%에 달한다.
현재 1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퇴직연금 가입이 의무화돼 있다. 대부분의 근로자는 퇴직연금계좌로 퇴직 급여를 받게 돼 있다. 그렇다면 나의 퇴직연금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을까. 금융감독원의 '통합연금포털' 사이트는 연금 관련 정보를 모아놓은 곳이다. 공동인증서 등으로 본인 인증을 하면 나의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적립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다양한 유형의 퇴직연금
퇴직연금의 유형으로는 DB(확정급여형), DC(확정기여형), IRP(개인형 퇴직연금제도)가 있다. 유형별로 차이가 있으니 자신한테 유리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먼저 DB형은 '확정급여형'이라는 말처럼 퇴직금이 고정되어 있다. 회사가 퇴직금을 적립하고 운용도 회사가 직접 운용한다. 운용 손익은 모두 회사에 귀속된다. 퇴직금은 '퇴직 전 3개월 평균 임금 X 근속연수'로 계산한다.
DC형은 회사가 퇴직금을 적립하고 근로자가 운용한다. 운용 손익은 근로자에게 귀속된다. 이에 퇴직금이 증가할 수도 있고, 반대로 감소할 수도 있다. 전문가는 임금상승율이 높다면 DB형이, 임금상승율이 낮고 재테크에 자신이 있다면 DC형이 유리하다고 진단했다.
IRP은 소득이 있다면 누구나 자율로 가입할 수 있는 퇴직연금 유형이다. DB·DC형의 퇴직금도 IRP계좌로 받게 된다. 또한 투자형으로 관심이 높은 DC형과 IRP은 투자 수익 이외에도 연말정산 세액공제의 혜택이 있다.
연금 사각지대 해소될까?
2018년 기준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91.4%였지만, 30인 미만 사업장은 24.0%에 그쳤다. 중소기업 근로자는 대기업 근로자에 비해 노후대비가 취약할 수 있다. 퇴직금 수급권 보호 측면 뿐 아니라 적은 적립금 규모에서 발생하는 퇴직연금 운용의 난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오는 4월 14일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가 도입된다. 30인 이하 사업장을 대상으로 사용자와 근로자가 납입한 퇴직급여 부담금을 모아 공동의 기금을 조성해 운용하는 제도다. 기금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운용하는데, 설립 초기에는 외부전문가위탁 운용방식(OCIO) 등이 활용될 방침이다.
더불어 오는 7월 12일부터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된다. 지난해 12월 9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를 통과했다. 디폴트옵션은 이른바 '퇴직연금 방치 방지 제도'이다.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일정 기간 적립금을 방치해두면 자동으로 미리 지정해놓은 포트폴리오에 따라 적립금을 굴려주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대부분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연금의 원리금보장상품 편입 비중은 2018년 90.3%, 2020년 89.3%, 2021년 9월 86.4% 등이다. 이는 운용 책임을 기업이 지는 DB형의 비중이 높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2021년 9월 말 국내 퇴직연금 총 적립금 규모는 266조원이고 이 중에서 DB형은56.9%(151조2000억원)를 차지했다.
때문에 저금리 환경에서 퇴직연금이 사실상 방치됐다는 지적이 나왔고 디폴트옵션 제도가 도입된 것. 디폴트옵션이 작동하려면 우선 가입자와 사업자가 원리금보장상품이나 TDF(타깃데이트펀드)·혼합형펀드, 스테이블 밸류 펀드, 부동산 인프라 펀드 중에서 하나 이상을 사전에 정하는 계약을 맺어야 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TDF 투자가 좋다고 추천한다. TDF는 은퇴 목표 시점에 맞춰 위험자산(주식)과 안전자산(채권) 비중을 운용사가 알아서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글로벌 자산배분 펀드다. 주식 비중이 일시적으로 80%까지 올라가도 추후에 위험 비중을 조절하는 만큼 퇴직연금 적립금 전액을 담는 것도 가능하다. TDF와 닮은꼴인 TIF(타깃인컴펀드)도 인기가 많다. TIF는 은퇴 후 쓸 돈을 정기적으로 인출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최근 타깃인컴펀드(TIF)에 주목하는 기사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2017년 처음 시장에 등장한 TIF는 보유하고 있는 노후자금을 운용해 매월, 매년 일정한 금액을 연금처럼 받을 수 있는 펀드 상품이다. 원금은 최대한 지키고, 연 3~4%의 지급금을 정기적 소득처럼 받을 수 있어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사람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다.
실제로 TIF를 비롯한 라이프사이클펀드(투자자의 연령대에 맞춰 자산 포트폴리오를 자동으로 재구성해주는 펀드) 시장은 3년 만에 네 배 규모로 급성장했다.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TIF의 인기가 앞으로도 우상향을 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들이 노후자금 투자 시장에 유입될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운용사들은 펀드 가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정기 이자·배당 수익 등 연 4% 수준의 수익률 원금 손실을 최대한 방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도 그럴까.
전문가들은 ‘연 4%’라는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펀드 운용으로 수익이 생겼다면 이자 안에서 정기 지급금을 받게 되겠지만, 반대로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 원금을 깨 지급금액을 주기 때문이다. 최문희 FLP 컨설팅 대표는 “연 4%는 목표 수익률일 뿐, 실제로도 그 정도의 수익이 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연 4%의 인출률은 보장할 수 있지만 수익률은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TIF는 ‘안정적이고 정기적인 소득 지급’을 위한 펀드 상품이므로 연 4%의 지급금이 수익으로 인한 이자가 아닌 원금에서 지급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TIF는 중위험 중수익 혼합형 펀드이므로 원금을 모두 잃을 확률은 상당히 낮다. 다만 어디까지나 정기예금이 아닌 펀드 상품이기 때문에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수익을 얻지 못하면 예상보다 원금이 빨리 소진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최 대표는 “펀드 운용으로 인한 수익률이 4%보다 높다면 애초 예상했던 기간보다 4%의 수익금을 더 오래 받을 수 있지만, 반대로 수익률이 4%가 안 된다면 인출 기간이 당초보다 더 짧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TIF의 최근 성과는 좋은 편이다. 한 TIF 상품의 최근 1년 수익률은 13.9%에 달했다. 그러나 금융 전문가들은 이를 주식시장의 성황이 낳은 결과로 보고 있다. 최동진 전국퇴직금융인협회 지도교수는 “지난해에는 주식 시장이 워낙 좋아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과거의 수익이 미래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미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 축소와 테이퍼링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긴축 정책으로 채권 금리가 높아지면 단기적으로는 TIF의 수익률이 감소하거나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주장도 있다. 10년, 20년 수준의 긴 호흡을 가지고 투자해야 하는 연금 자산의 성격상, 장기적으로는 손실을 보전하고 수익을 낼 수도 있다는 것. 최준호 전북은행 WM사업부 센터장은 “TIF는 운용 규모가 점점 커질 펀드이기 때문에 더 큰 채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며 “테이퍼링이 단기적 손해를 입힐 수는 있겠지만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TIF 상품 중 어떤 것을 고르는 게 좋을까. 해외 자산 투자 노하우를 지닌 기업의 상품이 유리할 수 있다. TIF는 선진국 회사채, 리츠 등 해외 자산을 많이 다루기 때문이다. 최준호 전북은행 WM사업부 센터장은 “해외 투자 경험이 많고 인컴형 자산 관리 경험이 많은 기업의 상품을 눈여겨보라”고 조언했다.
가입을 결정했다면, 노후자금 중 몇 퍼센트를 TIF에 투자할지 고민해야 한다. 전체 자금의 절반이 넘는 ‘통 큰’ 투자는 금물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노후자금의 20~30%가 적절하다고 본다. TIF로 받게 될 지급금에 생활비를 전적으로 의존해서도 안 된다. 최동진 교수는 “TIF로 받는 지급금이 없어도 생활에는 지장이 없어야 한다”며 “지급금을 생활비의 25% 미만으로 설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