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코로나 터널' 통과하기

기사입력 2020-03-11 15:36 기사수정 2020-03-11 15:36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선별진료소 장면(사진 이투데이DB)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선별진료소 장면(사진 이투데이DB)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란 놈이 모두를 꼼짝 못 하게 한다. 달싹 이라도 할라치면 그놈이 무서워 모두 얼굴을 마스크로 반쯤 가려야 한다. 아주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나갈 엄두도 못 내니 거의 모두가 자진해서 자가 격리한 셈이다. 갑자기 시간이 남아돈다. 바쁠 때는 잠시만이라도 여유가 있었으면 했는데 요즘은 기약 없는 기다림이 긴 시간으로 이어진다.

갑자기 ‘시간 로또’라도 당첨된 양 여유가 많아졌지만, 예상도 못 했고 준비도 안 되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로또 맞은 사람은 행여 들치기나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보다 기쁨이 크지만, 지금은 코로나 두려움이 너무 커서 시간이 많아진 기쁨을 통 느낄 새가 없다. 우선 이 두려움이라는 놈부터 처치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그놈도 쉽게 떨쳐내지는 못한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다. 한창 뛰어노느라 집안일은 엄마만 해야 했던 시기였다. 엄마 돕기는커녕 심부름 하나 시키기가 어려웠다.

나는 나름대로 꾀를 냈다. “너희 장난감 정리할래? 방 걸레질할래?” “너희 식탁 닦을래? 설거지할래?” 그러면 애들은 내 묻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얼른 그중 쉬운 것을 택했다. 물론 나는 늘 내가 시키고 싶은 일과 더 힘든 일을 보기로 들었다. 꽤 손쉬운 방법이었다. 애들도 그중에 다행히 쉬운 것을 한 것에 대해 만족했다.

그때는 그저 얕은 꾀를 냈던 것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을 심리학에서 ‘프레임 이론(frame theory)’이라고 부른단다. 이 이론은 캘리포니아대 언어학 교수 조지 레이코프가 주장한 것인데 이를테면 상대방 사고의 틀을 먼저 짜놓으면 직관적으로 대처할 때 그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론을 지금 나의 두려움 절감에 거꾸로 써먹기로 했다.

내가 지금 느끼는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면 프레임 이론대로 더 큰 두려움을 느끼거나 남이 겪은 두려움을 듣는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넘쳐나는 게 시간이라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TV와 친구 하다 보니 딱 알맞은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바로 ‘이만갑(이제 만나러 갑니다)’이었다. 탈북자들이 모여 애환을 이야기하는 프로인데 돌아가신 아버지 고향이 함경북도 길주인 나에게는 맞춤 프로다.

코로나 두려움이 엄습해오면 나는 즐겨찾기를 돌려 이만갑을 본다. 7번 탈북했다 다시 북한에 잡혀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남한에 온 아주머니, 탈북 시 브로커를 잘 못 만나 남편과 생이별하고 중국에서 인신매매 당하다 아들을 남긴 채 어찌어찌 남한으로 오게 된 젊은 처자, 배를 곯으며 북한 교화소(교도소)에 들어갔다가 탈출해서 총탄 사이로 죽을 각오하고 뜀박질한 아저씨.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절절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그 기구한 사연들을 듣다 보면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오늘도 TV 화면에는 환자와 의료진 자원봉사자의 모습이 보인다. 비록 두려움을 잊는다고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환자들의 고통과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의 고귀한 희생을 바라보며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코로나 터널을 지금도 견디고 있다. 어느 음악가가 권한 역경 속에서 힘이 되는 음악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4악장을 들으며. 저 멀리 따뜻한 봄이 달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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