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영화가 무서운 이유 중의 하나는 괴롭히는 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해치는 적이 눈앞에 있는데 그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증권가의 오래된 말에는 ‘소문에 사고 사실에 판다’는 게 있다. 인간의 불안 심리를 잘 표현한 말로 들린다.
실제와 상관없이 사실이 아닌, 혹은 사실 이전에 세상에 떠도는 안개와 같은 불안이라는 심리는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기도 한다. 위정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불안 심리는 안정을 해치는 매우 위험한 사태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불안한 심리와 사실을 잘 관리하지 못해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 일은 역사 속에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것이 임진왜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온 정사와 부사의 보고가 달라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정사 황윤길은 전쟁이 난다는 견해였고 부사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벌일 위인이 못 된다고 했다.
김성일이 그런 잘못된 보고를 하게 된 이유로, 당파 간 대립 관계도 작용했지만, 백성들이 불안해 할 것이란 명분도 있었다. 불안을 다스린답시고 사실을 외면한 판단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은 사례다.
그만큼 불안과 공포는 안정을 해치는 위험한 것이고 국가의 흥망성쇠까지 가르는 것이니 정서를 잘 관리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사실을 은폐하면서까지 공포를 억누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중국의 흔한 사례처럼 언론을 통제하면서까지 진실을 감추고 위험은 끝났다고 강변하는 경우다. 정치적으로 혼란을 없앴으니 일시적으로는 잘하는 통치로 포장할 수 있겠으나 막대한 희생은 언젠가 치러야 한다.
실체가 없는 불안은 얼마 안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근거 있는 대부분의 불안은, 지진을 앞두고 부산한 동물들의 움직임처럼 그것이 일어나고야 말리라는 것을 감지하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그런 느낌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려 하거나 선의로 포장된 안이함은 참극을 불러온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그러한 정책 실패를 낱낱이 기록한 현장 보고서다.
결국, 많은 재난은 인재라는 결론에 귀결된다. 불안은 사실의 여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소통이 막힐 때 감염된다. 수백 년간의 페스트 공포가 과학으로 극복되었듯이 과학적 진실의 햇빛만이 ‘코로나 불안’의 안개를 물리칠 것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란 놈이 모두를 꼼짝 못 하게 한다. 달싹 이라도 할라치면 그놈이 무서워 모두 얼굴을 마스크로 반쯤 가려야 한다. 아주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나갈 엄두도 못 내니 거의 모두가 자진해서 자가 격리한 셈이다. 갑자기 시간이 남아돈다. 바쁠 때는 잠시만이라도 여유가 있었으면 했는데 요즘은 기약 없는 기다림이 긴 시간으로 이어진다.
갑자기 ‘시간 로또’라도 당첨된 양 여유가 많아졌지만, 예상도 못 했고 준비도 안 되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로또 맞은 사람은 행여 들치기나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보다 기쁨이 크지만, 지금은 코로나 두려움이 너무 커서 시간이 많아진 기쁨을 통 느낄 새가 없다. 우선 이 두려움이라는 놈부터 처치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그놈도 쉽게 떨쳐내지는 못한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다. 한창 뛰어노느라 집안일은 엄마만 해야 했던 시기였다. 엄마 돕기는커녕 심부름 하나 시키기가 어려웠다.
나는 나름대로 꾀를 냈다. “너희 장난감 정리할래? 방 걸레질할래?” “너희 식탁 닦을래? 설거지할래?” 그러면 애들은 내 묻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얼른 그중 쉬운 것을 택했다. 물론 나는 늘 내가 시키고 싶은 일과 더 힘든 일을 보기로 들었다. 꽤 손쉬운 방법이었다. 애들도 그중에 다행히 쉬운 것을 한 것에 대해 만족했다.
그때는 그저 얕은 꾀를 냈던 것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을 심리학에서 ‘프레임 이론(frame theory)’이라고 부른단다. 이 이론은 캘리포니아대 언어학 교수 조지 레이코프가 주장한 것인데 이를테면 상대방 사고의 틀을 먼저 짜놓으면 직관적으로 대처할 때 그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론을 지금 나의 두려움 절감에 거꾸로 써먹기로 했다.
내가 지금 느끼는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면 프레임 이론대로 더 큰 두려움을 느끼거나 남이 겪은 두려움을 듣는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넘쳐나는 게 시간이라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TV와 친구 하다 보니 딱 알맞은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바로 ‘이만갑(이제 만나러 갑니다)’이었다. 탈북자들이 모여 애환을 이야기하는 프로인데 돌아가신 아버지 고향이 함경북도 길주인 나에게는 맞춤 프로다.
코로나 두려움이 엄습해오면 나는 즐겨찾기를 돌려 이만갑을 본다. 7번 탈북했다 다시 북한에 잡혀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남한에 온 아주머니, 탈북 시 브로커를 잘 못 만나 남편과 생이별하고 중국에서 인신매매 당하다 아들을 남긴 채 어찌어찌 남한으로 오게 된 젊은 처자, 배를 곯으며 북한 교화소(교도소)에 들어갔다가 탈출해서 총탄 사이로 죽을 각오하고 뜀박질한 아저씨.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절절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그 기구한 사연들을 듣다 보면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오늘도 TV 화면에는 환자와 의료진 자원봉사자의 모습이 보인다. 비록 두려움을 잊는다고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환자들의 고통과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의 고귀한 희생을 바라보며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코로나 터널을 지금도 견디고 있다. 어느 음악가가 권한 역경 속에서 힘이 되는 음악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4악장을 들으며. 저 멀리 따뜻한 봄이 달려오고 있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라 상영하는 극장이 적어서 미뤄두었던 숙제를 설 연휴 중에 대한극장을 찾아가 해결했다. '두 교황'. 영화가 소개되던 초기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다. 교황이 임기 중에 은퇴한 초유의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라 필시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 짐작했다. 무엇보다도 주연 배우가 연기의 신이라는 ‘안소니 홉킨스’ 아닌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지루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약간의 긴장감이 두 시간을 지배한다. 그것은 어쩌면 극단적으로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이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13억 신자들을 둔 종교 지도자로서의 품격을 새삼스럽게 경험할 수 있었다.
영화는 교황과 한 예수회 소속 추기경이 교황의 여름주택 정원을 거닐면서 시작된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호르헤 베르골리오 추기경(조나단 프라이스)은 교황청의 보수적 도그마에 회의를 느껴 당시 교황이던 베네딕토 16세(안소니 홉킨스)를 직접 찾아와 은퇴하려는 뜻을 전하고 사직서 서류에 교황의 서명을 받으려 한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교황은 한사코 서명을 거부한다.
당시 교황청 고위직 신부들의 성추행 추문으로 교황은 코너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추기경의 사임은 자칫 교황에 대한 불신임으로 비칠 우려가 있었다. 그와 함께 교황은 이미 마음속으로 교황청의 쇄신을 위해 자신의 은퇴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 배경이 서명을 거부한 이유였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교황은 보수적이며 내성적인 자신과 달리 교황 선출 당시 2위를 했던 적극적이며 진보적 성향의 호르헤 추기경에게 끌린다.
그들의 대화는 어느새 교리 논쟁을 넘어서 일상생활과 취미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스웨덴 팝그룹 아바(ABBA)가 등장하고 비틀스가 언급된다. 교황은 피아노를 치는 음악가 지망생이었다. 둘은 어린 시절 성직을 택하던 고뇌의 순간에 관해 얘기를 나눈다. 호르헤 추기경은 약혼자를 버리고 예수회 신부로 입교하고, 살벌하던 군부 통치하에서 친하던 신부들을 배반했다는 가책에 시달린다.
유머를 모르는 독일 출신의 교황은 어느새 탱고를 좋아하는 추기경을 이해하게 된다. 맛없는 독일 음식을 혼자 먹던 그가 추기경과 함께 길거리 피자를 즐기기도 한다. 추기경도 교황의 인간적 고뇌를 알게 되고 그의 은퇴 계획을 받아들인다. 1년 뒤 교황 은퇴가 공식화되고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에서 호르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압도적 표차로 선출된다. 교회의 역사가 바뀐 것이다.
이 영화는 종교 영화라는 외피를 쓰고 있으나 내면은 휴먼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 마지막에 두 교황이 와인과 독일 맥주를 마시며 2014년 월드컵을 시청하는 장면은 귀엽기까지 하다.
한편 영화에서 나오는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말은 오늘날 우리 상황을 일깨우는 죽비와도 같다. “장벽이 아닌 다리를 지어라.”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모두의 잘못이다.”.
이 영화는 흑백논리, 진영논리가 판을 치는 현실 속에서 서로 다른 견해 차이를 어떻게 접근해 풀어가는지 실증적인 방식으로 일깨운다. 아울러 신념이 달라도 시대의 소명을 알아 흔쾌히 자리를 양보하는 아름다운 뒷모습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모든 감동은 오로지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라는 명배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이 ‘골든 글로브’에 노미네이트(후보로 지명)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20년 3월 8일까지 이색적인 타이틀인 '강박 제곱' 전을 연다. 굳이 제목을 강박 제곱으로 한 것은 강박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내적인 강제에 의한 것이고 그것은 일상에서 반복으로 나타난다는 의미다. 이것은 비단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사회적 구조 문제 속에서도 살피려는 것이다. 현대인의 강박 중 하나는 늘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더욱 심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 욕망 등으로 이어진다.
1. 뉴 미네랄 콜렉티브 팀(에밀리아 스카눌리터와 타냐 부스)의 '공허한 지구(Hollow Earth)'
에밀리아 스카눌리터는 1987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세계적인 작가이고 무명 때 인천 레지던시에서 2년간 살았다. 삼겹살도 좋아한다. 타냐 부스는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두 작가가 만난 곳은 비옥한 토양과 녹지로 뒤덮인 노르웨이의 트롬쇠이다. 두 작가는 지질학과 환경에 관심이 많아 현대 강대국들의 채굴 산업, 국제 정치,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 등에 대한 느낌을 영상으로 관람객에게 선사한다.
2. 우정수
작가의 강박은 불안과 공포에서 출발한다. 고대나 중세의 공포가 ‘죽음’에서 왔다면 현대의 공포는 ‘가난’ 정확히 말하면 ‘미래의 가난’에서 온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가난에 대한 불안, 부에 대한 강박이 있다. 작가는 최근에 ‘뉴트로’도 현대인이 가진 강박의 일종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표현했다. 작품은 ‘서사’ ‘젊은 화가들’ ‘물 위의 남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 등이 있다.
3. 오메르 파스트
작가는 다큐멘터리, 극,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어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주인공은 주로 전쟁이나 테러에 같은 충격적인 사건 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덧붙여지고 윤색되어가는 기억과 과거의 환영이 뒤엉킨 복합적인 이야기가 반복, 변형, 순환된다.
'5,000피트가 최적이다'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미국 프레데터(predator-마국 군 최첨단 무인정찰기 겸 공격기) 드론 조종사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와 재연의 형식을 번갈아 가면서 드론 조종사의 경험과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나는 범죄 이야기를 엮어간다. 기억은 결코 완전히 복원되지 않고 매번 재구성되며 반복되는 과정에서 그 차이는 틈을 만든다는 점을 제시한 작품이다.
4. 차재민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지배와 폭력이 도시개발, 노동, 국가 권력과 정책 등으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특히 소외된 사람이나 물건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을 예술로 풀어낸 것이다.
영상 작품 '사운드 가든'
가로수가 된 훈련목이 뿌리째 뽑혀 옮겨지는 모습은 자신의 상처를 말하면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상담의 과정과 닮았다. 둘 다 상처가 있고 새로운 삶에 적응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회복을 꿈꾸고 있다. 이 반복되는 영상 이미지는 상처에서 벗어나 회복을 희망하는 인간의 강박과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상처를 안고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
5 정연두
'DMZ 극장 시리즈'
작가가 DMZ에 관심을 가진 것을 어느 날 외국에 사는 친구가 남북문제로 나라가 어지러우면 자기 집으로 피난 오라는 전화를 받고 나서부터다. 이 작품은 파주의 ‘도라 극장(도라산 전망대)’이다. 도라산이라는 이름은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한 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 왕 씨와 결혼한다. 나라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 경순왕을 위해 낙랑공주는 산 중턱에 암자를 짓고 그 산에 도읍을 의미하는 ‘도’자와 신라의 ‘라’자를 합쳐 ‘도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장소는 분단의 현실과 통일이라는 이 시대의 강박을 담고 있다.
6. 김용관
'신파(New Wave) 60분 애니메이션'
과학을 근거로 한 미래의 상상이 SF(사이언스 픽션 science fiction)이고 예술을 근거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 아트 픽션(art fiction)이다. 시간과 공간의 이동이 자유로워진 미래에서 현재의 인간과 미래의 인간이 종횡무진 누비며 경험하는 가운데 작가의 미래 예술에 대한 집요한 상상이 나타나 있다. 또한, 미래 어느 시점에는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시공간의 이미지들이 데이터화돼 ’새로운 예술’이 불가능해진다. 신파는 매 순간 새로운 예술을 찾는 현대 예술과 현대 예술가들의 강박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작품이다
7 .이재이
'한때 미래였던'
미국 텍사스의 로이스시티와 코르시카나 고속도로변에 버려진 퓨투로 주택 (futuro house 타원형 비행접시 모양의 이동 주택)은 1960년대 후반 완벽한 형태의 미래지향적 주택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에 기대했던 미래이지만, 그냥 지나가 버린 미래이다. 미국과 소련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우주개발에 대한 기대로 지어진 퓨투로 주택이다. 미래에 대한 강박이 만든 폐허의 현장에 찰나를 상징하는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8. 김인배
'건드리지 않은 면 untouched side'
작가는 잘린 연근으로 통 연근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압출법 단열재’인 10cm의 ‘아이소 핑크’를 사용한 것이다. 반복을 나타내고 하나하나 쌓는 단면은 그 앞에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반복에는 굴곡의 차이가 있듯이 모든 반복에는 차이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쌓다 보면 그 안은 건드릴 수 없는 면이 되는 것이다
9. 에밀리아 스카눌리터
'T1/2'
이 작품은 올해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핀추크아트센터에서 주관하는 ‘퓨처 제너레이션 아트 프라이즈(Future Generation Art Prize) 2019 대상’을 수상했다. 시립미술관에서는 상 타기 전에 섭외하였기 때문에 이것은 상 받은 후 첫 전시다.
이것은 반감기 즉 방사성 물질의 양이 방사성 붕괴 때문에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뜻하는 기호이다. 이 작품은 5년간에 걸친 작업과 리서치 전문가와의 협업으로 인어의 시선을 통해 지구에 거듭 상처를 내는 인간과 그들의 세계를 초인류적인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고 있다
10. 리메인더 라운지 (remainder lounge)
전시 참여 작가들이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이미지, 영감을 받은 책, 각종 리서치 자료들, 제작하는 동안 파생된 글, 사진, 드로잉 등 작품과 직, 간접으로 관계가 있으면서 작품으로 실현되지 못한 나머지들을 펼쳐 놓았다 김용관 작가의 여러 버전 글, 정연두 작가의 앨범, 이재이 작가의 퓨투로 하우스 도면, 이재이 작가의 영어책 등이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는 어떤 것이 있나 한 번 뒤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아! 나는 ‘나의 강박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면서 강박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과연 진실일까? 어쩌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일본 영화의 고전인 '라쇼몽'에서 똑같은 사건을 등장인물 4인이 모두 다르게 기억하는 설정을 통해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았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기억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아니 진실이라는 것이 진정 있기는 한 것일까?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이런 진실과 허구와 기억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는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최고의 프랑스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감독은 의외로 일본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1세기 일본의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정상급 감독이다. 좀도둑으로 이루어진 유사 가족 이야기인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어쩌면 이 영화도 감독이 천착하는 가족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다. 영화는 전설적인 대배우인 파비안느(까뜨리느 드뇌브)가 회고록을 출판하고 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침 딸 뤼미르(줄리에트 리노슈)가 가족과 함께 출판기념을 위해 엄마를 방문한다. 그러나 회고록을 밤새 읽은 뤼미르는 회고록에 진실이 단 한 줄도 없다며 엄마에게 쏘아붙인다. 평생을 함께한 매니저 뤼크도 자신에 대한 언급 없는 회고록에 실망하여 집을 떠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서로 엇갈린 기억들이 교차하며 진실과 허구 사이를 넘나든다. 매니저가 떠나자 얼결에 뤼미르가 엄마의 매니저 노릇을 하며 엄마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내 어머니의 추억’이라는 SF 영화 촬영을 옆에서 보게 된다. 이 ‘내 어머니의 추억’은 특별한 병으로 최소 7년은 우주선에 있어야만 하는 어머니와 딸을 그린다. 그런데 우주선에 있는 동안에는 시간이 멈춰 늙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감독은 이 극 중 극을 통해 그들 내면에 웅크린 왜곡을 암시한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파비안느와 딸 뤼미르는 서로의 기억이 달라서 생긴 오해를 풀어간다. 그렇다고 여느 신파극처럼 감정의 선을 자극하지 않는다. 파비안느는 여전히 나쁜 엄마, 나쁜 친구가 될지라도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 낫다는 캐릭터를 고수한다. 모든 세상살이를 연극으로 생각하는 그녀에게 딸은 뤼크에게 사과하는 대사를 써준다. 그러니까 파비안느는 진정성마저 연기로 생각한다.
극 중 극인 ‘내 어머니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늙은 딸로 분장한 파비안느가 젊은 엄마에게 ‘엄마 딸로 살아서 기뻐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녀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뤼미르와 화해하는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을 연기 순간에 담아내지 못했음을 자책하는 대목에선 화해의 진실성에 대해 무엇이 진심인지 관객들도 어리둥절해진다. 파비안느에겐 연기도 진실의 일부였다.
감독에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닌 듯싶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오히려 진심을 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지어낸다. 뤼미르가 뤼크에게 사과하는 대사를 엄마에게 써주듯이 딸과 화해를 권하는 현 남편 자크가 적절한 대사를 일러주며, 뤼미르는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손녀에게 대사를 가르친다. 그들은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허구적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다.
허구와 진실이 뒤섞여 존재하는 것이 영화뿐일까? 우리가 사는 현실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도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살지 않는가. 이런 뒤엉킴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리얼리티가 아닐까. 파비안느 가족처럼 허구로 짓는 진심의 집 덕분에 우리가 삶을 이해할 수 있다면 허구로 가득한 영화야말로 삶의 리얼리티를 담아내는 최적의 장치가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나서 몸살 기운을 느끼기는 생전 처음이다. 그동안 감동적인 내용으로 마음이 흔들린 경우는 많았으나 이토록 몸이 혹사당한 것은 처음 겪는 색다른 체험이었다. '겨울왕국'을 빼면 볼만한 영화가 없다는 세평 속에 만화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남편의 선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도 내켜 하지는 않았으나 배우만 믿고 이 영화를 점지했다.
사실 큰 기대 없이 영화관을 찾았다. 자동차와 스피드는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닌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군대와 축구만큼이나 자동차 소재도 별 관심이 없는 종목이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꼼짝없이 자동차 안에 갇혀버렸다. 그것도 맹렬한 스피드로 달리는 자동차 경주인 프랑스 파리의 르망 레이스 코스 위다. 영화관의 모든 스피커가 호랑이가 포효하듯 울부짖는다. 멀미를 느끼며 의자 난간을 움켜쥐었다.
맷 데이먼이 얼굴을 비치지 않았으면 영화관을 나올 뻔했다. 톰 행크스의 뒤를 잇는 지적인 이미지의 맷 데이먼은 나도 믿고 보는 배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캐럴 셸비는 미국인 최초로 르망 레이스에서 우승한 미국인들의 영웅이었다. 첫 장면의 강렬한 레이스가 바로 그의 우승 당시를 재현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강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이후 심장에 이상을 느껴 카레이서에서 은퇴한 이후 작은 자동차 튜닝 및 판매점을 운영하며 조용히 살았다. 그러나 그의 앞에 두 번째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도전은 레이서가 아닌 총감독이라는 직책이다. 매출 하락으로 곤경에 처한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 포드의 요청이다. 당시 르망 레이스를 주도하던 작은 회사 페라리에 모욕을 당한 직후다.
이제 두 번째 영웅이 등장할 차례다. 당시 국내 카레이서 중 최고로 평가받던 캔 마일스와 그를 연기한 또 하나의 믿고 보는 배우 크리스천 베일이다. 그가 또 누구인가. 메소드 연기의 장인인 그가 몸무게 11kg을 빼고 완벽한 캔 마일스로 돌아왔다. 남들과 잘 화합하지 못하는 독특한 개성으로 실력만큼 인정받지 못한 그는 작은 카 정비소를 운영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이제 이 둘이 힘을 합쳐 포드의 레이싱 콘셉트 카인 GT40의 성능을 개선하고 캔 마일스가 선임 카레이서로 르망 레이스에서 우승하는 감동을 연출한다. 물론 그 과정에 다양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를 좋아하지 않는 고위 임원의 방해 공작, 자신의 성질을 못 이겨 갈등을 겪는 아슬아슬함, 사랑으로 믿어주는 가족들, 레이스에서 압인 실력으로 1위를 내달리는 짜릿함 등 다양한 볼거리로 드라마의 균형을 잡는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볼거리는 캐롤 셸비가 회장의 귀를 잡고 있는 부사장을 떼어내기 위해 레이싱 카에 회장을 태우고 연습장을 질주하는 장면이다. 최고의 자동차 회사를 키운 유능한 경영자이긴 하나 경주용 차를 타본 적이 없는 포드 2세 회장이 어마어마한 속도에 질려 절규하며 어린애같이 우는 모습이 재미를 줄 뿐 아니라 경험의 귀한 가치를 일깨우는 상징을 담고 있다.
어찌 보면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는 평범한 영웅 스토리로 볼 수도 있지만, 두 명배우가 빚어내는 진정성이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무엇보다 실감 나는 레이싱 장면들이 영화를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게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GT40의 동물적인 울부짖음이 온몸을 휩싸고 돈다. 흔치 않은 경험이다.
단풍과 함께 막바지로 흘러가고 있는 가을의 정취를 담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의 ‘모던 로즈’ 전이다. 이 전시가 특별한 것은 미술관 자체의 역사를 미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우리 역사와 겹치는 기구한 과정이 분야별로 놀랍게 재현되어 있다. 전시는 지난달 15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다.
전시회 이름이 ‘모던 로즈’인 것은 구 벨기에 영사관이었던 이 건물의 정원에 있던 300그루의 장미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장미는 엄밀히 말하면 ‘모던 로즈’다. 굳이 모던 로즈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원래 유럽의 장미는 ‘올드 장미’로 여름에만 피는 꽃인데 동양의 사철 피는 월계화와 접목하여 오늘날의 장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구 벨기에 영사관 마당의 모던 로즈는 영사관 운명만큼 기구하다. 일제강점기에 영사관이 매각되면서 장미는 조선호텔로 팔려 ‘로즈 가든’이 되었다. 마침 이때 이 로즈 가든을 거닐던 사업가 이근무 씨는 이 장미를 바라보며 서양식 백화점 경영을 꿈꿨다고 일기에 적었다. 그 기록이 당시 ‘삼천리’라는 잡지에 실려 지금도 남아 있다.
처음 회현동에 있던 벨기에 영사관은 도시개발로 지금 있는 사당동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현기증 나는 시대의 변화와 속도를 상징적으로 구현한 코너가 김익현 작가의 ‘나노미터의 세계’이다. 영사관의 시대적 변화와 물리적인 변천을 현대의 반도체 기술과 컴퓨터의 기록과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을 통해 아날로그적 변화를 디지털로 변용해 표현한다.
1903년 지은 벨기에 영사관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벨기에 특유의 블루 타일 등 거의 모든 건축자재를 본국에서 배에 실어 가져왔다. 그리스 로마식 기둥과 장식 등은 그 시대를 떠올리며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여기서 신고전주의 의복 오브제 소재로 창안한 작품이 곽이브 작가의 ‘셀프 페인팅’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로마 문양 천으로 만든 클라미스, 키톤을 걸치고 감상함으로써 작품의 일부가 된다는 점이다.
김영글 작가의 ‘파란 나라’는 벨기에 만화 캐릭터인 스머프가 근현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의 시선으로 표현하며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도 한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은 또 있다. 레고를 연상시키는 금혜원 작가의 ‘변칙 조립’이다. 3D 프린터로 만든 퍼즐 조각들의 해체 이동 재건 과정에서 색다른 건축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가상한 것이다. 그 과정을 보며 은연중에 남서울미술관의 변화도 느낄 수 있다.
가상의 세계를 표현한 또 다른 작품은 고재욱 작가의 ‘작품처럼 보이는’이다. 대부분의 인류는 사라지고 AI가 지배하는 세계다. 2551년 그들은 인류의 예술적 유산을 보존하며 남서울미술관에 주목한다. 그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며 AI들은 인류에게 미술관은 왜 필요했는지를 상상한다는 설정이다.
그들도 설치물들을 미술 작품으로 판단하지만, 과연 그것이 미술작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조형물을 설치해 역설적으로 ‘현재의 미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던진다. AI들이 이러한 건축이나 작품을 만든 인류를 존경하며 그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힘쓰는 모습도 감동적이다.
건물 귀퉁이 요소요소에 숨겨진 아름다운 문양과 독특한 건축 양식을 하나의 연극 무대로 구상한 이종건 작가의 ‘어느 무대’도 상상력이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의 압권은 40년 만에 공개된 미술관의 다락방이다. 건축할 때 생긴 귀퉁이 돌이나 이전할 때 어쩔 수 없이 남겨진 장식들이 보관된 한 편 굴뚝에는 임흥순 작가의 ‘노스탤지어’가 상영된다. 이곳은 하루에 한 번 오후 4시에 인터넷으로 예약한 5명만 들어갈 수 있다.
다 보고나니 질곡의 삶을 보내며 잘 견뎌낸 남서울미술관이 어느새 의인화되어 존경하고 싶어진다. 함께 늙어가는 동료처럼 느껴져 가는 가을 바라보며 스산한 나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오전 9시, 가양5종합사회복지관 지하 1층 팬지배움방. 영어를 배우기 위해 모인 시니어 중에서 유독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한 여인, 바로 김정숙 씨다.
노트 대신 이면지를 엮어 만든 연습장에 꼼꼼히 수업 내용을 받아 적는다. 선생님 질문에 큰 소리로 대답도 척척 하며 수업을 즐기는 모습. 대학생 손녀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내는 그이지만, 처음엔 ‘ABC’부터 시작했단다. 60년 넘게 영어를 몰랐어도 사는 데 지장은 없었지만, 영어를 알고 난 뒤 세상이 더 즐거워졌다는 김 씨다.
“5~6년 전에 남편이 아파서 집에 누워 있었어요. 낮에는 간호 도우미가 와서 봐주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으려니 그 시간이 참 무료하더라고요. 평생교육 시대라고 하는데, 나도 뭔가를 배워야겠다 싶었죠. 학창 시절에는 아버지가 위암을 앓으셔서 철없이 공부 욕심을 낼 수가 없었거든요. 그때 못 배워 아쉬웠던 마음도 채울 겸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됐죠.”
처음 도전했을 때, 젊은 강사가 가르치는 수업을 듣고 실망만 하고 돌아왔다. 시니어의 눈높이에 맞춘 강의가 아니었기 때문. 다행히 그 후 현재의 선생님(박미령 강사)을 만났고, 한 걸음 한 걸음 영어를 배워온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수업시간 외에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카카오톡으로 선생님에게 질문하는데, 늘 친절히 대답해주는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영어를 배워나갈 수 있었다.
“나이 들어 공부하려니 간단한 것도 자꾸 잊어버리게 돼요. 그때마다 선생님이 괜찮다며 이해해주시고, 반복해서 가르쳐주셔서 고마웠죠. 요즘에는 길거리를 다녀도 곳곳에 영어가 널려 있잖아요. 가게 이름, 음식 메뉴 등등. 이런 것들을 하나씩 읽을 수 있고 그 뜻을 알게 되니 일상이 더 즐거워졌어요. 완벽히는 몰라도 딸이랑 같이 자막 없는 미국 드라마도 볼 수 있고요. 아직 해외에 나가 실력 발휘를 해보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가서 멋지게 영어를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해요.”
지금보다 더 실력이 늘면 외국인 친구에게 편지도 써보고, 자신처럼 영어를 몰랐던 사람들에게 도움도 주고 싶다고 한다. 김 씨에게 언제쯤 영어를 마스터할 수 있겠느냐 묻자 손사래를 치며 소박한 바람을 드러냈다.
“나에게 마스터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죠.(웃음) 어디까지나 ‘앎’의 과정 아닐까요? 내 체력이 뒷받침되는 한 무한대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그 끝은 없지만, 하나라도 했으니 여기까지 왔잖아요. 저도 육십 넘어 시작했어요. 너무 늦었다고 도전을 망설이지 마세요. I can do it, You can do it!”
Q&A로 보는 '시니어 외국어 배우기'
도움말 박미령 등촌ㆍ가양종합사회복지관 시니어 영어회화 강사(본지 동년기자 3기)
Q. 시니어 영어 수업에 찾아오는 분들의 목표와 목적은 무엇인가요?
A. 대개 해외여행 가서 의사소통하기 위해 배우려 합니다. 학창 시절 배우지 못한 한을 풀려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아예 처음 배우는 분들만 있는 건 아녜요. 언어는 습관인데, 한때 영어를 열심히 배웠어도 그동안 일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다시 처음부터 공부하면서 영어 세포를 되살리시곤 하죠.
Q. 수업은 주로 어떻게 진행되나요?
문법보다는 회화 위주이기 때문에, 먼저 입에서 익숙해지게끔 반복해서 말하도록 하고 있어요. ‘thank you’처럼 간단하고 쉬운 것부터 시작해서, ‘thank you very much’ 이렇게 부사나 형용사 등을 하나씩 더해가죠. 나이 드신 분들은 한국식 영어 발음이 배어 있는 경우가 많아 잘못된 발음도 교정해드리고요. 영어 간판이나 뉴스나 TV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일상 영어도 알려드리면 참 좋아하십니다.
Q. 일반 학생들과 시니어들을 가르칠 때 차이점이 있다면요?
젊은 사람들은 살짝 자극을 주면 더 하려고 하지만, 시니어들은 오히려 그런 자극에 마음을 다칠 수 있어요. 열심히 배우려고 왔다가 의기소침해지기 일쑤죠. 그래서 최대한 편안하게 배울 수 있도록 해드리는 편이에요. 가끔 지각하거나 숙제를 못했다고 미안스러워서 수업시간에 안 오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결석하셔도 괜찮다. 지각하면서도 오시는 건 더 훌륭한 거다”라고 말씀드리고, 숙제도 부담되니 최대한 적게 드리려고 해요.
Q. 늦깎이 학생들은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나요?
젊은이들처럼 ‘공부가 하기 싫어서’ 포기하는 분들은 거의 없어요. 다만, 연세가 있는 분들은 갑자기 편찮으시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수업을 중단하시죠. 또, 자꾸 강의실 문만 나서면 까먹는다고 걱정하시는데 “제가 반복해서 가르쳐 드릴 거다. 그러면 크리스마스 때는 꼭 하실 수 있다”라고 응원해드리곤 해요. 젊은 사람도 영어는 계속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려요. 하루 하나씩이라도 꾸준히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시는 게 좋습니다.
Q. 시니어에게 추천하는 공부 방법은 무엇인가요?
10분씩만 공부하시라 권하고 싶어요. 공부하다가 재미있어서 더 하고 싶어도 절대로 더 하시지 말고, 10분 하시고 나면 책을 덮으세요. 대신 매일 하셔야 해요. 일주일에 1시간 몰아서 하는 것보다, 매일 10분씩 하는 게 영어 실력을 늘리는 데 효과적입니다. 드라마들 많이 보시잖아요. 잠깐 광고하는 틈에 10분 공부하셔요. 좀 더 하고 싶으시면 EBS 영어 방송을 보는 것도 추천해요. 유아부터 초등, 중등, 성인 등 단계별 프로그램이 잘 돼 있어요. 스마트폰에 익숙한 분이라면 팟캐스트 무료 영어 강의도 보시면 좋아요. 그중에서는 ‘일빵빵 입에 달고 사는 기초영어’를 권합니다. 영어 초급 단계의 분들에게 도움 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당구 같기도 하고, 골프 같기도 하다. 망치같이 생긴 도구로 볼을 쳐 편자 모양(U)의 작은 문으로 통과시키면 득점하는 이 스포츠의 명칭은 게이트볼(Gateball). 박미령(65), 전용욱(61) 동년기자가 게이트볼의 매력을 파헤치기 위해 나섰다.
게이트볼, 나도 할 수 있을까?
“경기 시작 5초 전!” 오목교 아래에 위치한 영등포구게이트볼협회 게이트볼장에서 곧 경기가 시작됨을 알리는 힘찬 소리가 들렸다. “5! 4! 3! 2! 1! 경기 시작!”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리자 10명의 선수가 일제히 손목에 찬 시계(득점기)를 누른다. ‘삐빅’ 소리와 동시에 첫 번째 주자로 보이는 선수가 나와 공 앞에 서더니 스틱을 이용해 공을 저 멀리 쳐냈다. ‘통!’ 하는 맑은소리가 경기장에 울린다. “우리 보고만 있지 말고 한번 배워봐요!” 전용욱 동년기자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체험에 앞서 박미령, 전용욱 두 동년기자는 게이트볼이 뭔지 알고 있었을까? “게이트볼 보신 적 있으세요?”라는 물음에 두 사람의 공통된 답변이 돌아왔다. “집 앞 공터나 한강공원에 가면 볼 수 있었어요. 주로 시니어들이 하더라고요.” 그렇다. 본 적은 많지만,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이 스포츠! 바로 게이트볼이다. 영등포구게이트볼협회 김제영 회장은 “게이트볼은 시니어만 하는 운동으로 알려진 것 같아 아쉽다”면서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게이트볼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80년. 현재 100만 명 정도의 회원들이 즐기는 생활체육이 됐다.
게이트볼 기초 배우기
게이트볼 용구는 스틱, 볼, 득점을 체크하는 득점기가 있다. 망치처럼 생긴 T자 형태의 막대를 ‘스틱’이라 부르고 이 스틱을 이용해 볼을 치면 된다. 경기시간(30분) 안에 볼을 게이트에 통과시켜 가장 많이 득점한 팀이 승리한다.
볼 무게는 230g 정도로 가볍지만 스틱은 보다 묵직한 느낌이다. 스틱은 헤드, 샤프트, 그립 3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헤드와 샤프트가 분리된다. 또 키에 맞춰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가격은 약 10만 원에서 30만 원 선.
스틱을 잡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초보자에게 가장 많이 추천하는 것은 오른손잡이일 경우 오른손을 아래에, 왼손은 위에 두고 공을 보내고자 하는 방향을 바라보고 서서 타격하는 방법이다. 이때 무릎은 너무 굽히지 않는 게 좋다.
모든 설명이 끝나자 두 동년기자가 자세를 잡아봤다. 말로 설명할 땐 분명 쉬워 보였는데…. “아휴, 생각보다 자세 잡는 것부터 쉽지가 않네요. 저 좀 이상해 보이지 않나요?” 박미령 동년기자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색한 듯 웃어 보였다. 이어 스틱을 이용해 타격에 도전했다. 볼은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엉뚱한 곳으로 굴러가더니 이내 힘없이 멈춰 섰다. “어머, 저게 왜 저리로 가지!”
게이트볼의 매력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약 1시간 정도 주어졌다. 1분도 쉬지 않고 타격 연습을 하는 걸 보니 벌써 게이트볼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두 동년기자가 꼽은 게이트볼의 매력은 무엇일까? 전용욱 동년기자는 볼을 칠 때 나는 소리를 꼽았다. “볼을 칠 때 나는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계속 치고 싶더라고요. 잘못 쳤을 땐 ‘괜찮아요~’ 위로하는 소리로 들리고 잘 쳤을 땐 ‘좋아요!’ 하는 응원으로 들립니다.(웃음)” 박미령 동년기자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자연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서 좋다”고 말했다. “나이가 드니깐 야외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 별로 없더라고요. 근데 게이트볼은 한강공원과 같은 휴식공간에서 할 수 있어 좋아요. 또 몸에도 큰 무리가 되지 않아 부담이 없고요.” 지금까지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었다면 이젠 도전해보자.
동년기자 체험 후기
박미령 동년기자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건 쉬워 보였는데 왜 제가 할 땐 어려운 거죠? 마음 같지가 않네요.(웃음) 나이는 자꾸 먹고 운동은 점점 더 안 하게 되고… 새로운 운동 뭐 없을까 하다가 이번 게이트볼 체험에 신청하게 됐어요. 운동신경은 발달하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특히 게이트볼은 지나갈 때 슬쩍 보기만 했던 거라 더 궁금했어요.
처음 해본 소감은 음… 조금 어렵다?(웃음) 잘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근데 몸치인 저에겐 연습기간이 좀 많이 필요할 것 같네요.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면 친구나 배우자와 함께 오면 더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 거예요. 벚꽃 흩날리는 날에 야외에 나와 운동도 하고 수다도 떨고, 공이 잘 안 맞아도 기분만큼은 최고네요!
전용욱 동년기자
‘게이트볼은 노인만 하는 스포츠’라는 선입견을 깨준 하루였어요. 사실 ‘저게 얼마나 운동이 되겠어?’ 했는데 충분한 운동이 되네요.(웃음) 공을 치려면 팔을 써야 하고, 또 공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려면 다리도 써야 하죠. 여기서 끝이 아니더라고요. 동시에 볼을 어디로 어떻게 보낼지 생각도 해야 하니까 두뇌 운동이랑 전신 운동을 같이 하게 되는 스포츠더군요. 스틱 무게가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아서 좋았어요. 누구나 경기운영 감각만 익히면 재미있게 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게이트볼의 가장 큰 매력은 공을 칠 때 나는 ‘통!’ 하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둔탁하지 않고 상당히 맑은 소리? 그 소리에 중독돼서 자꾸만 공을 치고 싶더라고요.(웃음) 거기에 또 공을 잘 맞혀서 게이트를 한 번에 통과하면 스트레스도 쫙 풀리는 게… 너무 좋았어요. 룰이 생각보다 까다롭더라고요. 그냥 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더 즐겁게 게이트볼을 즐기고 싶다면 룰을 제대로 알고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아요.
세상 모든 길에 사람이 지나다닌다. 이들 중에는 길과의 추억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다. 추억이란 살아온 시간, 함께했던 사람, 그날의 날씨와 감정이 잘 섞이고 버무려져 예쁘게 포장된 것이다. 박미령 동년기자와 함께 오래전 기억과 감정을 더듬으며 종로 길을 걸었다. 흑백사진 속 전차가 살아나고 서울시민회관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행복한 발견. 감동이 잔잔히 밀려왔다.
경복궁에서 스케이트 타던 시절이 있었어요!
서울시 종로구 당주동에서 태어난 박미령 동년기자는 대학 시절을 넘어 결혼 전까지 종로에서 산 토박이다. 세종문화회관 전신인 서울시민회관 계단이 놀이터였고, 중학생이 돼서는 경복궁과 인왕산 활터가 주 무대였다.
“인왕산에 활터가 있어요. 활터 아저씨들이랑 얘기하고 맛있는 것을 주시면 먹기도 했어요. 경복궁은 젊었을 때 너무 많이 왔어요. 경회루 연못이 얼면 그곳에서 스케이트를 탔어요. 그때는 뭣도 모르고 탔죠. 스케이트 날을 가는 아저씨와 스케이트 빌려주는 아저씨가 저기 경회루 계단 아래 앉아 있었어요.”
현재를 사는 젊은이에게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경복궁은 문화재청이 엄격하게 관리하는 문화재다. 취재 당일에도 문화재청에 경회루 사진촬영허가신청서를 냈다. 스케이트를 탔다는 말이 그저 충격이었다.
“창경원에서 보트도 탔는걸요. 밤벚꽃놀이도 하고요.”
이 부분에 있어 옛 추억으로 그냥 넘어가기에 씁쓸함이 앞선다. 일제강점기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불렸다.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 등 놀이시설이 들어섰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 수천 그루를 심어 놓고 밤벚꽃놀이를 즐겼다. 왕이 사는 궁궐의 의미를 상실한 시대를 지나야만 했다. 경복궁 내에 세워졌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6년 철거됐고, 창경원으로 불리던 창경궁은 1983년 원래 명칭으로 환원하였다. 시니어의 추억은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잔인한 역사와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어 꼭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아버지와 아침식사, 금천교시장 기름떡볶이
1960년대, 박미령 동년기자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서울시민회관 옆 길가에는 중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중화요리집이 있었다. 아침잠이 없는 아버지는 아침잠이 많은 어머니를 깨우지 않고 박미령 동년기자를 데리고 그곳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가곤 했다.
“중국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먹고 부인 먹을 것을 싸들고 온답니다.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근데 거기서 먹었던 콩국이 정말 맛있었어요. 콩국에 찹쌀튀김을 잘라 넣은 것인데 시리얼 같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서 중국여행 가면 찾아는 보는데 딱 그 음식 맛이 나는 걸 아직은 못 먹어봤어요.”
함경도 출신인 박미령 동년기자의 아버지는 혈혈단신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북 사람들은 의식주 중에 먹는 것을 가장 최고로 친다고 한다. 그래서 음식 솜씨가 좋은 외할머니와 아버지가 여느 모자 못지않게 친했다. 그리고 기름떡볶이에 대한 추억도 나눠주었다.
“어렸을 때 먹었던 기름떡볶이에 대한 기억이 많아요.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엄마 따라 시장에 갔습니다. 제 기억에 떡볶이는 빨간 떡볶이가 아니고 기름에 바짝 구운 떡볶이예요.”
박미령 동년기자의 말에 곧장 기름떡볶이를 파는 통인시장으로 향했다. 사실 박미령 동년기자가 말한 기름떡볶이는 통인시장에서 파는 것이 아니다. 경복궁역 2번 출구, 금천교시장에서 기름떡볶이를 팔던 故 김정연 할머니(향년 98세)의 떡볶이다. 북에서 홀로 남한으로 내려온 김 할머니는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하고 돌아가셨다.
“김 할머니는 간장으로 간을 한 기름떡볶이만 했어요. 금천교시장 할머니가 원조죠. 할머니는 곤로에다 무쇠솥 하나 올리고는 낚시의자에 앉아 떡볶이를 만드셨어요. 할머니 앞에 손님들이 빙 둘러앉으면 ‘몇 개 줄까?’ 하고 물어보셨어요. 겉을 바삭하게 무쇠솥에 지져서 구워주셨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어렸을 때 그 기름떡볶이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정신여고 회화나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통인시장에서 택시를 타고 박미령 동년기자의 모교인 정신여고가 있던 종로구 연지동 옛터를 찾아갔다. 명성왕후의 주치의이자 선교사였던 애니 엘러스 벙커(Annie Ellers Bunker)가 1887년 중구 정동에 설립한 정신여고는 1895년 종로구 연지동으로 교정을 옮겼다. 1978년 지금의 교정인 잠실로 이전하기 전까지 깊은 역사의 흔적이 쌓인 곳이 연지동 교정 터다. 이곳에서 박미령 동년기자는 여중·여고 시절을 보냈다.
“버스를 타고 지나는 다녀봤지만 내려서 학교 쪽을 가본 적은 없어요. 종로5가 뒤쪽 대학로로 가는 중간에 있어요. 종로통을 잇는 전차를 이용해 통학했는데 종로4가에 내려서 학교로 걸어갔어요.”
지금 생각해도 학교 시설이 너무 좋았다고 회고했다. 수세식 화장실에 라디에이터 난방을 했다. 기숙사에는 침대가 설치돼 있는 등 당시에는 최고 시설을 갖춘 서양식 학교였다. 예쁜 교정이 그립지만 정신여고 옛터에는 본관과 기숙사로 사용됐던 세브란스관만 남아 있다. 현재는 다양한 기업체들이 상주해 과거 교실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옛 모습 그대로 사용하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다.
“우리 저기 뒤쪽으로 가보면 안 될까요? 교정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과거 정신여고 부지를 사들였다는 보험회사 건물과 남아 있는 정신여고 본관 건물 사이에 조성된 녹지공원이 보였다. 그곳에 가보니 정신여교의 교목인 회화나무가 그대로 서 있었다.
“우리 학교 교목이에요. 옆에 건물도 보니 우리 학교 건물이 맞아요.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 구름 다리도 기억나고요. 제가 찾아올 줄 알았겠어요? 나무를 찾아서 너무 좋아요.”
정신여고의 교목인 회화나무는 독립운동을 함께한 고마운 나무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애국부인회의 출발점인 정신여고가 일본 관헌의 수색을 받았을 때 비밀문서와 태극기, 국사책 등을 고목의 구멍에 숨겨 보존할 수 있었다.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날에 만나 시원한 바람으로 마무리한 멋진 데이트였다. 한 사람의 역사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종로의 작은 틈, 작은 돌 하나에도 우리의 역사와 추억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