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 )

▲우리 동네 산책길의 예쁜 벽화(박혜경 동년기자)
▲우리 동네 산책길의 예쁜 벽화(박혜경 동년기자)
TV뉴스를 보던 중 그래피티(graffiti)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어떤 호주인이 우리 지하철에 들어가 전동차에 낙서를 하고는 사라졌다는 소식이다.

그래피티는 건물 벽이나 교각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서 그리는 그림과 낙서를 말한다.

우리 동네 산책길의 다리 밑 한쪽 벽면에도 알록달록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필자는 몰랐는데 손녀와의 산책길에서 아기가 그 벽면의 그림을 보더니 “할머니 원더 볼즈에요!” 라고 해서 그 그림이 어린이용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이라는 걸 알았다.

그림이 있기 전보다 화사해진 다리 밑은 보기에 좋아서 이런 벽화라면 많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들의 미대 시절,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회사 담장에 그림을 그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보여준 사진이 그래피티의 한 종류였을 것이다.

필자 눈에도 수준 높아 보이고 멋져서 그래피티를 예술의 한 장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래피티는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한다.

밋밋한 담장에 예쁜 그림을 그리면 보기에도 좋을 것 같은데 아무 곳에나 그려놓으면 일종의 범죄라는 말이다.

그래피티를 하는 사람들은 번개처럼 스프레이로 그림이나 메시지를 쓰고는 재빨리 도망을 간다고 한다.

담장이나 평범한 벽면이 아닌 공공장소인 지하철이나 기차역 건물 벽에 낙서해 놓으니 범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과거 뉴욕 지하철은 탈 게 못됐다고 한다. 강력 범죄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우범지대로 역무원들이 부스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낼 정도였다는데 1980년대 뉴욕시 교통국장이 지하철을 가득 채운 낙서에 주목하고 계속 청소를 했더니 지하철 범죄가 75%나 줄었다고 한다.

아마 낙서가 그렇게 아름답거나 깨끗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피티는 60년대 뉴욕 빈민가에서 시작해 세계로 퍼져나갔고 갱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는데 그 후로 차츰 사회, 정치적 비판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낙서 예술가도 생겼다. 스물여덟 살에 타계한 뉴욕 바스키야의 작품은 경매에서 164억 원이나 호가했다니 그냥 낙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피티는 원래 그리는 장면을 들키면 안 되는 작업이어서 그 세계에서는 무엇을 그리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어디에 낙서를 하는지도 중요하고 접근하기 힘든 곳일수록 가치를 높게 쳐준다고 하니 재미있다.

낙서꾼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지하철이라는데 한밤중에 몰래 숨어 들어가 객차 전체를 통째 낙서로 채운다는 영화도 나왔단다.

외국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도 그래피티로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습격 받은 지하철이 17군데나 되었고 전담 수사관까지 생겼다고 하니 좀 걱정이다.

언젠가는 지하철역 세 군데에 그래피티 습격이 있었는데 이들은 힙합 모자와 후드 티셔츠 차림의 백인 4인조였다고 한다.

쇠톱과 절단기로 환풍구를 잘라내고 차고지에 들어가 낙서를 하고는 경찰이 손쓰기도 전에 유유히 호주로 돌아갔다는데 아마 우리나라 지하철이 깨끗하다는 소문이 나서 원정낙서까지 왔을 거라는 분석이 나왔다니 좋아해야 할 일인지 어떨지 모르겠다.

어떤 낙서를 하고 갔는지는 보도되지 않았으나 전담 수사관까지 동원되었다면 좋은 내용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그래피티가 우리 눈에 멋지고 예쁘게 보인다면 굳이 막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다.

낙서한 내용이 반사회적이거나 공포를 조장한다면 당연히 막아야 하겠지만 우리 동네 산책길의 벽화처럼 즐겁게 바라볼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던 중 들어오는 객차에 예쁜 그림이 그려있어 보기에 즐거웠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그래피티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나 아름다운 그림으로 승화시킨다면 범죄라 하지 않고 예술의 한 장르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동네 곳곳에 나쁜 그래피티가 아닌, 보면서 즐길 수 있는 벽 그림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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