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결혼식장

기사입력 2017-09-22 18:02 기사수정 2017-09-22 18:02

좋은 날 잡아서 결혼 날짜 정하던 일은 까마득한 옛이야기다. 결혼식장을 준비하지 못하면 좋은 배필감이 있어도 결혼식은 말짱 헛일이 된다. 이것저것생각하지 않고, 결혼 예정일 불과 한두 달 전에야 선심 쓰듯 부모에게 알리는 것이 지금의 세태다.

10여 년 전 아들이 결혼할 때다.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 며느리를 딸같이 생각하고 잘 살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덕담을 나누면서 상견례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당사자들의 일정을 생각해 두 달 후에 결혼식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옛날과 전혀 달라진 결혼식장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결혼 날짜를 정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필자는 가정의례준칙이 서슬 퍼렇게 시행되던 유신독재 시절에 결혼하였다. 당시는 예식시간이 30분 이내로 제한되어 있어 식장이 북새통이었다. 인쇄한 청첩장도 못 돌렸고 손 편지 형식만 허용되었다. 며칠을 가족과 손 편지 청첩장을 쓰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곤 했다. 답례품이나 식사 대접도 물론 할 수 없었고 직장인의 결혼 휴가는 사흘만 주어졌다. 결혼 날짜 한두 달 남기고 예식장을 예약하던 시절이었다.

결혼식은 일요일에 집중되었고 평일은 한가했다. 일주일에 휴일 하루 쉬기도 어려운 때였다. 결혼할 사람은 많으나 결혼식장이 부족하여, 결혼식 진행을 반시간으로 제한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적은 수의 결혼식장들이 호황의 꿀맛을 보던 시대였다. 상담하러 가는 곳마다 “예약이 끝났다.”, “혹시 취소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나중에 와보라”는 시큰둥한 대답만 돌아왔다. 그래도 예식장을 날마다 찾아다녔다. 보름 전에야 겨우 한 곳 찾아서 결혼식을 했던 아찔한 기억이 있다.

상견례를 마치고 예식장 구하기에 나셨다. 아내는 전화를 걸고 인터넷을 두드렸다. 어느 곳에도 빈 예식장이 없었다. 지인에게 알아봐도 뾰족한 수가 나질 않았다. 예전보다 예식장이 엄청 늘어 예식 날짜와 시간대가 다양해졌을 뿐 예약의 어려움은 옛날과 다르지 않았다. 결혼식장 준비는 적어도 반 년 전에 해야 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들의 결혼식을 맞아 놀랍게도 똑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다. ‘결혼식장 틈새’찾기 작전을 시작하였다.

필자는 젊은 시절부터 아무리 성수기라 해도 예약 같은 건 하지 않고 여행을 자주 다녔다. 갈림길에서 동쪽이든 서쪽이든 차가 덜 막히고 마음에 드는 쪽으로 가면 되었다. 목적지가 없으니 급할 것도 없었다. 발길 멈추는 곳이 쉼터요, 숙소였다. 성수기라 해도 틈새는 있었다. 숙소를 찾으면 빈방이 있었고, 음식점에도 빈자리가 있었다. 아침 일찍 서두르면 하루를 이틀처럼 이용할 수도 있었다.

지하철 2호선을 따라서 예식장을 하나씩 찾아 나섰다. 전화로 묻는 것과 달리 대면상담에서는 현장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첫날은 날짜와 시간대를 묻고 빈자리가 없어 그냥 돌아왔다. 그다음부터는 아내가 자매들을 동원하고 예비 사돈도 합류했다. 아내에게 명함 몇 장을 쥐어주며 “상담 내용을 기록해 예식장에 주고, 사진을 찍어오라”고 했다. 상대방에게 상담 내용을 확실하게 전달하면 서로가 신뢰할 수 있다. 상담자가 전화 혹은 자기 노트에 받아 적어서는 기억도 희미해지기도 하고 차별화도 되지 않는다.

좋건 싫건 현실에는 오류와 착오가 생긴다. 사정에 따라 변경해야 하는 ‘틈새’가 생기게 마련이다. 쌀쌀한 초겨울에 아내와 일행은 매일 발품을 팔았다. 얼마 후 전화 상담 때는 예약이 꽉 차 있다던 곳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우리가 고를 수 있는 ‘틈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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