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佛千塔 이야기 ⑥ 양산 통도사(通道寺)

기사입력 2018-10-01 18:13 기사수정 2018-10-02 08:42

우리나라 열세 번째 세계유산, ‘한국의 산사 7곳’ 여섯 번째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자장율사가 당나라 구법(求法) 중에 모셔온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 및 경책을 금강계단을 쌓은 뒤 봉안하였다. 절이 위치한 영축산(靈鷲山)이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說)하신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으로 통도사라고 하였다. 대한불교 조계종 15교구 본사 통도사는 산기슭에 계류를 끼고 펼쳐진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 위치한 규모가 매우 큰 절집으로 통도사를 일컫는 표현은 여러 가지다.

첫째가 5대 적멸보궁(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법당) 중 제1적멸보궁이라는 자부심이다. 5대 적멸보궁은 통도사 외에는 모두 강원도에 있다.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와 태백산 정암사이다. 이 중 태백산 정암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시대에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 및 정골(頂骨)을 직접 봉안했다. 정암사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泗溟大師)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했다. 불교도 간에는 이들 5대 적멸보궁을 모두 찾아보는 순례적 숭배를 뜻깊게 생각하며 가장 신봉하는 기도처로 손꼽힌다. 최근에는 용연사와 건봉사, 도리사를 합쳐 8대 적멸보궁이라고도 한다.

두 번째, 통도사는 불(佛), 법(法), 승(僧)의 삼보(三寶) 중 불보(佛寶) 사찰이다. 법(法)에 해당하는 팔만대장경을 모신 법보(法寶) 사찰 해인사, 승(僧)을 뜻하는 승보(僧寶) 사찰 송광사와 함께 삼보(三寶) 사찰로 부른다. 그중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금실로 수놓은 가사)를 모셨기에 삼보사찰 중 으뜸인 불보종찰(佛寶宗刹)이라 한다. 이는 일주문 좌우에 걸린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는 말로 통도사의 품격과 사세(寺勢)를 가늠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영축총림(靈鷲叢林)'이다. 우리나라(조계종)에는 ‘5대 총림’으로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를 손꼽는다. 승려의 참선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총림(叢林)이라고 한다. 그만큼 규모가 크고 조직과 체계가 정비된 큰 절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동화사, 범어사, 쌍계사를 추가하여 ‘8대 총림’이라 한다. 통도사에는 국보 제290호 대웅전 및 금강계단과 25점의 보물이 있으며, 성보문화재 4만여 점을 소장한 국내 최대 규모의 성보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영축산(靈鷲山) 통도사(通度寺)

통도사의 가람(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곳)배치는 금강계단을 서쪽에 정점으로 두고 동쪽의 일주문을 들어서면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에 ‘하로전’이 있다. 불이문을 지나면 대웅전 못미처 세존비각까지가 ‘중로전’이다. 대웅전과 금강계단이 있는 지역을 ‘상로전’이라 한다. 이렇게 노전(爐殿)이 세 개라는 것은 통도사가 3개의 가람이 합쳐진 복합 사찰이라는 의미이다. 그만큼 크고 역사가 오래된 절을 의미하며 특히 금강계단이 있는 상로전이 통도사 핵심지역이다. 중로전에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대광명전과 용화전, 관음전이 있다. 하로전에는 극락전과 영산전, 약사전 등이 있다.

▲통도사 가람배치. 왼쪽부터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배치되었으며 절 아래로는 맑은 계류(溪流)가 흐르는 지형이다. 경내에는 12개의 큰 법당이 있으며 산내 20여 개의 암자와 80여 동의 전각이 있는 절집으로 7개 산사 중 가장 크고 넓다.(김신묵 동년기자)
▲통도사 가람배치. 왼쪽부터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배치되었으며 절 아래로는 맑은 계류(溪流)가 흐르는 지형이다. 경내에는 12개의 큰 법당이 있으며 산내 20여 개의 암자와 80여 동의 전각이 있는 절집으로 7개 산사 중 가장 크고 넓다.(김신묵 동년기자)

통도사로 들어가는 경부고속도로 IC 명칭이 통도사이다. 특정 종교시설을 나들목 명칭으로 한다고 말도 많았지만 이 근처에서는 통도사를 대치할 지명이 없다. 절 아래 마을은 기념품점과 식당이 모여 있다. 사하촌(寺下村) 수준을 넘어 작은 신도시를 연상케 한다. 어린이집부터 양로시설까지 통도사 시설이 여럿 눈에 띈다. 시가지가 끝나는 지점에 거대한 산문(山門)이 매표소를 겸한다. 걸어가거나 차량에 탄 채로 표를 끊고 십 분여 들어가면 두 번째 산문인 총림문(叢林門) 옆이 주차장이다. 길옆에 흐르는 맑은 시내는 차고 시원해 여름철 피서지로도 인기있다. 영축총림(靈鷲叢林) 대형 현판을 단 총림문(叢林門) 앞에는 제법 큰 규모의 석당간(石幢竿)이 있다. 오른쪽에는 경내 승탑과 탑비를 한 곳에 모아놓은 부도원(浮屠院)이 조성되어 있다. 총림문 지나 오른쪽으로는 성보문화재 40여 만점을 보관, 전시 중이라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성보박물관이 있는데 목재와 석재 사찰 장승이 2기씩 서 있다. 초입부터 볼거리가 많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을 지나면 비로소 일주문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사찰영역이며 하로전이다. 통도사는 일주문도 여느 절집에 비하여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이나 이미 지나온 2개의 문이 워낙 크고 화려해서 오히려 작아 보인다. 보통 2개의 기둥을 한 줄로 세우지만 이곳은 네 개의 기둥을 세운 세 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에 다포형식이 화려하며 좌우 앞뒤로 또 4개의 활주를 받쳐야 할 만큼 크고 무거운 일주문이다.

▲통도사 일주문(一柱門). 앞에는 스님들에게 주는 경구(警句)가 새겨진 돌기둥 2개가 서 있고 일주문에는 현판과 주련이 걸려 있다. 고려 충렬왕 31년(1305)에 처음 세운 후 조선 영조 46년(1770)에 중건하였다고 한다.(김신묵 동년기자)
▲통도사 일주문(一柱門). 앞에는 스님들에게 주는 경구(警句)가 새겨진 돌기둥 2개가 서 있고 일주문에는 현판과 주련이 걸려 있다. 고려 충렬왕 31년(1305)에 처음 세운 후 조선 영조 46년(1770)에 중건하였다고 한다.(김신묵 동년기자)

일주문 앞 2개의 돌기둥에는 구하(九河) 스님이 쓴 '이성동거필수화목(異姓同居必須和睦)', '방포원정상요청규(方抱圓頂常要淸規)' 즉 '각 성들끼리 모여 사니 화목해야 하고, 가사 입고 삭발했으니 규율을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통도사 스님들에게 주는 경구라고 보면 될 듯하다. 일주문 현판 ‘영축산(靈鷲山) 통도사(通道寺)’는 흥선대원군 친필이다. 일주문 가운데 기둥 2곳에 걸린 주련은 남쪽 지방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글씨. 앞서 통도사의 위상을 설명할 때 나온 2가지 표현,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은 통도사의 사격(寺格)을 나타내는 글귀다.

▲일주문을 지나면 수호신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天王門)이 나오는데 역시나 발밑에 깔린 유생이나 관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억불숭유(抑佛崇儒)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다. (김신묵 동년기자)
▲일주문을 지나면 수호신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天王門)이 나오는데 역시나 발밑에 깔린 유생이나 관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억불숭유(抑佛崇儒)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다. (김신묵 동년기자)

천왕문을 들어서면 하로전이다. 왼쪽에 2층 건물 범종루가 있고, 오른쪽에 극락보전이 있다. 그 앞마당에는 왼쪽에 만세루, 오른쪽에 영산전, 극락보전 맞은편에는 약사전이 중앙의 3층 석탑을 중심으로 'ㅁ자' 꼴로 모여 있다. 하로전을 독립된 하나의 사찰로 간주했을 때 만세루를 입구로 하여 중앙에 3층 석탑을 세우고 정면에 영산전, 오른쪽에 극락보전, 왼쪽에 영산전을 갖춘 모양새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하로전의 중심건물은 영산전으로 보이는데 사람들 발길은 극락보전으로 먼저 향한다. 들어오는 입구에 있기도 하거니와 극락보전 외벽에 그려진 벽화가 눈길을 끌기 때문인데 극락전 후벽 중앙에는 반야용선 벽화가 그려져 있어 모든 이들이 감탄해 마지않는다.

▲극락전(極樂殿).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치솟은 처마를 받치는 활주가 단정한 느낌이다. 보이는 방향에 후면 벽화가 있고 앞쪽에는 삼층석탑(보물 제1471호)이 서 있으며 그 맞은편은 약사전이다.(김신묵 동년기자)
▲극락전(極樂殿).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치솟은 처마를 받치는 활주가 단정한 느낌이다. 보이는 방향에 후면 벽화가 있고 앞쪽에는 삼층석탑(보물 제1471호)이 서 있으며 그 맞은편은 약사전이다.(김신묵 동년기자)

▲극락전 외벽 후면의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 벽화(중앙). 용두(龍頭)와 용미(龍尾)가 보이고 앞뒤로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과 지장보살이 서서 인도하며, 배에는 합장한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좌, 우 측면에는 인왕상 벽화가 있다(왼쪽, 오른쪽).(김신묵 동년기자)
▲극락전 외벽 후면의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 벽화(중앙). 용두(龍頭)와 용미(龍尾)가 보이고 앞뒤로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과 지장보살이 서서 인도하며, 배에는 합장한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좌, 우 측면에는 인왕상 벽화가 있다(왼쪽, 오른쪽).(김신묵 동년기자)

하로전의 중심건물은 영산전으로 극락전마저 이곳에서는 부속 불전이다. 만세루와 마주 보며 서 있는 영산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외 벽화는 매우 주목되는 작품으로 외벽의 그림은 풍화(風化)를 받아 많이 훼손되었으나 내벽의 그림은 그런대로 잘 남아있다.

▲영산전(靈山殿), 하로전의 중심 건물로 보물 제1826이다. 남향으로 세워져 앞마당에는 삼층석탑을 놓고 왼쪽에는 약사전, 오른쪽에는 극락보전을 둔 구도이다.(김신묵 동년기자)
▲영산전(靈山殿), 하로전의 중심 건물로 보물 제1826이다. 남향으로 세워져 앞마당에는 삼층석탑을 놓고 왼쪽에는 약사전, 오른쪽에는 극락보전을 둔 구도이다.(김신묵 동년기자)

▲영산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셨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 그러니까 동쪽에서 서향(西向)으로 앉아 계시며(오른쪽), 맞은편 서쪽 벽에는 커다란 구층 다보탑 벽화(보물 제1711호)가 그려져 있고(왼쪽), 정면 내벽에는 석가모니 일생을 그린 여덟 장면 팔상도(보물 제1041호)가 있는데 이 그림은 모사본으로 진본은 별도 보관 중이다(중앙). (김신묵 동년기자)
▲영산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셨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 그러니까 동쪽에서 서향(西向)으로 앉아 계시며(오른쪽), 맞은편 서쪽 벽에는 커다란 구층 다보탑 벽화(보물 제1711호)가 그려져 있고(왼쪽), 정면 내벽에는 석가모니 일생을 그린 여덟 장면 팔상도(보물 제1041호)가 있는데 이 그림은 모사본으로 진본은 별도 보관 중이다(중앙). (김신묵 동년기자)

하로전에는 앞에서도 언급한 만세루와 약사전이 있다. 뜻밖에도 눈길을 끄는 건 천왕문 왼쪽에 숨은 듯 자리 잡은 작은 가람각(伽藍閣)이다. 가람을 수호하는 가람신을 모신 사방 1칸짜리 법당이다. 아홉 마리 중 남아있는 한 마리 용신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목수 한 사람이 도끼 하나로 쇠붙이를 전혀 쓰지 않고 지었다는 불이문(不二門)을 지나면 중로전이다. 불이문(不二門) 편액은 송나라 미불의 글씨이다. 그 아래 원종제일대가람(源宗第一大伽藍) 편액은 명 태조 주원장 친필로 전해지는데 원래는 일주문에 걸었다고 한다.

▲중로전의 핵심 건물, 보물 제1827호 대광명전(왼쪽), 용화전(중앙), 관음전(오른쪽). 하로전이 ‘ㅁ자’ 구조라면 중로전은 3개의 건물이 중첩된 석 삼(三) 자 구조이다.(김신묵 동년기자)
▲중로전의 핵심 건물, 보물 제1827호 대광명전(왼쪽), 용화전(중앙), 관음전(오른쪽). 하로전이 ‘ㅁ자’ 구조라면 중로전은 3개의 건물이 중첩된 석 삼(三) 자 구조이다.(김신묵 동년기자)

몇 개의 계단을 올라 하로전보다 약간 높은 지형의 일주문을 지나 중로전으로 들어서면 먼저 관음전이 나타난다. 그 오른쪽 뒤편으로 용화전, 대광명전이 있으니 이 세 불전이 중로전의 중심건물이다. 관음전은 정면, 측면 공히 3칸의 정사각형 건물로 주심포식 팔작지붕이다. 자비로운 관음보살을 모셔 항상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느라 분주한 곳이다. 관음전 앞에는 3m가 넘는 큼직한 석등이 하나 서 있다. 네모난 화창에 팔각 받침과 지붕돌을 얹은 고려시대 형식으로 경남 유형문화재 제70호이다. 관음전 뒤 용화전 안에는 하얗게 호분칠을 한 석조미륵불 좌상을 모셨다. 내부 벽체에는 절집에서는 유일하게 서유기 벽화가 그려져 있다. 특히 용화전 앞에는 봉발탑(奉鉢塔)이 서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석물이나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다.

▲용화전(龍華殿) 앞 봉발탑(奉鉢塔)(보물 제471호). 관음전 앞 석등과 비슷한 받침대 위에 뚜껑 있는 큰 밥그릇(발우)을 얹은 모습이다.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로 보이는데 탑(塔)이라 함은 맞지 않아 보인다.(김신묵 동년기자)
▲용화전(龍華殿) 앞 봉발탑(奉鉢塔)(보물 제471호). 관음전 앞 석등과 비슷한 받침대 위에 뚜껑 있는 큰 밥그릇(발우)을 얹은 모습이다.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로 보이는데 탑(塔)이라 함은 맞지 않아 보인다.(김신묵 동년기자)

용화전 뒤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중로전의 중심건물 대광명전(大光明殿)(보물 제1827호)이 있다. 통도사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대웅전과 함께 통도사에서 중요한 목조건물 꼽힌다. 내부의 삼신불 탱화는 보물 제1042호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불을 질러 통도사가 모두 타 버렸을 때도 대광명전만이 불타지 않았다. 내부 들보에 화재를 예방하는 묵서가 쓰여 있어 그랬다는 말이 전해온다.

吾家有一客(오가유일객) 定是海中人(정시해중인)

우리 집에 한 분의 손님이 계시니, 바로 바닷속에 사는 사람이다

口呑天藏水(구타천장수) 能殺火精神(능살화정신)

입에는 하늘에 넘치는 물을 머금어, 불의 정신을 소멸할 수 있네

이후 통도사에서는 위 문구를 적은 종이로 밀봉한 소금단지 60여 개를 크고 작은 당우(堂宇)마다 처마에 올려놓아 화재를 예방했다. 매년 양기가 가장 세다는 단오에는 새 소금을 담은 소금단지로 교체하는 용왕재를 올린다. 그 밖에도 불전마다 댓돌 계단 아래 아귀발우(餓鬼鉢盂)가 있다. 아귀밥통이라고도 하며 부처님께 올린 청정수나 공양을 마친 후 물을 버리는 용도로 퇴수대(退水臺) 혹은 청수통(淸水筒)이라고도 한다.

‘아귀는 늘 배고파서 아우성인데 목구멍은 바늘만 해서 물만 마실 뿐 음식을 먹지 못하니 소중한 물을 버리지 않고 아귀에게 준다’는 의미다. 음식 찌꺼기 하나도 버리지 않겠다는 절약과 검소함을 익히려는 한국불교의 귀한 풍습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절집 건물 처마에 올려놓은 소금항아리(왼쪽), 화재 예방의 벽사 의미이다. 불전의 계단 아래 있는 아귀발우(오른쪽)와 함께 흥미로운 것들이다.(김신묵 동년기자)
▲크고 작은 절집 건물 처마에 올려놓은 소금항아리(왼쪽), 화재 예방의 벽사 의미이다. 불전의 계단 아래 있는 아귀발우(오른쪽)와 함께 흥미로운 것들이다.(김신묵 동년기자)

중로전 마당 왼쪽의 원통방과 감로당은 법회 시 대중을 수용하는 대방(大房)으로 공양간이 함께 있는 편의시설로 쓰고 있다. 원통방 처마 밑에는 원통소(圓通所) 편액이 있다. 이 역시 흥선대원군의 친필로 석파(石坡) 호가 쓰여 있다.

▲원통소(圓通所) 편액. 앞서 일주문 편액과 함께 대웅전, 금강계단 등 유난히 흥선대원군 글씨가 많다. 그가 불심이 깊고 통도사와 인연이 닿았던 것인지, 아니면 숭유억불 정책 하에서 대원군에게 보험(?)을 들어 놓았던 것인지 알 수 없다.(김신묵 동년기자)
▲원통소(圓通所) 편액. 앞서 일주문 편액과 함께 대웅전, 금강계단 등 유난히 흥선대원군 글씨가 많다. 그가 불심이 깊고 통도사와 인연이 닿았던 것인지, 아니면 숭유억불 정책 하에서 대원군에게 보험(?)을 들어 놓았던 것인지 알 수 없다.(김신묵 동년기자)

그밖에 원통전 옆 서쪽에는 개산조당(開山祖堂)과 해장보각(海藏寶閣)이 있다. 사대부집에나 있을 솟을대문 형식의 삼문(三門)에 개산조당(開山祖堂) 현판을 달았다. 그 뒤편의 전각이 통도사 창건주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해장보각이다. 개산조당 삼문 앞에는 고려시대쯤으로 보이는 고식(古式)의 석등이 하나 서 있다. 그 오른편에는 야간에 불 밝히는 정료대(庭燎臺)처럼 보이는 석물이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37가지 방법을 새겨 놓은 삼십칠 조도품탑(三十七 助道品塔)이라고 한다.

▲삼문 형식의 개산조당(開山祖堂)과 자장율사 영정을 모신 해장보각(海藏寶閣).(김신묵 동년기자)
▲삼문 형식의 개산조당(開山祖堂)과 자장율사 영정을 모신 해장보각(海藏寶閣).(김신묵 동년기자)

개산조당 삼문 옆 금강계단 축대 아래 붙여지은 작은 비각은 세존비각(世尊碑閣)이다.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사리를 모셔온 일과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불사리를 보호하기 위해 크고 작은 2개의 함 안에 보관하였다. 그 후 한 개는 통도사 금강계단에 봉안하였고, 또 다른 하나는 태백산(太白山) 갈반사(現 정암사)에 봉안되었음을 새긴 비석이다.

▲세존비각(世尊碑閣)(왼쪽)과 비석(오른쪽) 모습. 앞면에는 진신사리의 일화를, 뒷면에는 석가모니의 행적과 각지의 시주 내용을 적어 숙종 32년(1706)에 세웠다. (김신묵 동년기자)
▲세존비각(世尊碑閣)(왼쪽)과 비석(오른쪽) 모습. 앞면에는 진신사리의 일화를, 뒷면에는 석가모니의 행적과 각지의 시주 내용을 적어 숙종 32년(1706)에 세웠다. (김신묵 동년기자)

이렇게 하로전, 중로전의 중요한 전각만 둘러보았어도 웬만한 절집 두 곳 넘게 본 셈이나 정작 통도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 상로전이 남았다. 상로전에는 별도의 문이 없어 정(丁) 자 형태의 특이한 대웅전이 바로 나타나는데 오른쪽 뒤에 있는 금강계단과 함께 국보 제290호이다.

상로전의 주 건물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5칸 규모인데 동, 서, 남, 북 네 곳 모두에다 현판을 걸어놓았다. 들어가는 방향인 동쪽에는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 등 각기 다른 현판을 걸었다. 적멸보궁(구하 스님 글씨) 외에는 모두 흥선대원군 글씨이다.

▲상로전의 핵심 건물인 대웅전과 금강계단(국보 제290호) 구조. 하로전에서 중로전을 거쳐 올라가면 동쪽으로 접근하게 되며 대웅전 남쪽과 서쪽으로 270도를 돌아 북쪽 금강계단을 참배하게 되는 구조이나 금강계단은 정해진 일시에만 직접 참배할 수 있다.(김신묵 동년기자)
▲상로전의 핵심 건물인 대웅전과 금강계단(국보 제290호) 구조. 하로전에서 중로전을 거쳐 올라가면 동쪽으로 접근하게 되며 대웅전 남쪽과 서쪽으로 270도를 돌아 북쪽 금강계단을 참배하게 되는 구조이나 금강계단은 정해진 일시에만 직접 참배할 수 있다.(김신묵 동년기자)

▲중로전에서 올라가면 만나는 대웅전 현판이 달린 동쪽 모습(오른쪽), 금강계단이 걸린 남쪽과 대방광전이 걸린 서쪽 모습(왼쪽). 내부에는 부처님이 없고 북쪽의 금강계단 진신사리탑을 볼 수 있도록 폭넓은 유리창을 냈다.(김신묵 동년기자)
▲중로전에서 올라가면 만나는 대웅전 현판이 달린 동쪽 모습(오른쪽), 금강계단이 걸린 남쪽과 대방광전이 걸린 서쪽 모습(왼쪽). 내부에는 부처님이 없고 북쪽의 금강계단 진신사리탑을 볼 수 있도록 폭넓은 유리창을 냈다.(김신묵 동년기자)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5년(인조 23)에 중건했다. 건물 기단은 통일신라시대 석조기단과 같은 구조다. 남측 정면과 양측면 지붕이 합각인 특이한 모습에 일부는 철제 기와도 보여 보통 건물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붕 정상에는 찰간대(刹竿臺·큰 절 앞에 세우는 깃대)라고 통칭해 부르는 청동제 보주(寶珠)에 철주(鐵柱)가 솟아있다. 이는 규모가 있는 절 또는 부처님의 연궁(蓮宮)을 나타낸다. 처마 끝 지붕에는 도자기 연봉 장식이 있어 불사리 금강계단과 적멸보궁 장엄에 온갖 정성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의 내부 우물천정은 목단, 국화문 등을 조각한 위에 단청(丹靑)했다. 동쪽 대웅전 현판 아래 두 장의 꽃살문 역시 조각이 우아하다. 연화문, 옥단문, 국화문 등을 새겨 문살을 장식했다.

통도사 절터는 원래 큰 연못이었다고 한다. 그곳에 살던 아홉 마리 용을 교화시켜 승천하게 한 뒤 연못을 메운 후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아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했다. 아홉 마리 중 한 마리는 남아서 절을 지키겠다하여 연못 한 귀퉁이에 살게했다. 천왕문 옆 가람각은 용을 위한 전각으로 전해진다.

계단(戒壇)은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이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것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하다. 통도사 창건의 근본정신이 깃든 곳이라 할 수 있다.

▲금강계단, 대웅전과 함께 국보 제290호이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친견을 열망하고 참배하였다. 또한 사리를 약탈하려는 위험이 닥쳐와 이리저리 옮겨가며 목숨을 걸고 지켜내었다. 그동안 수차례 중수되어 창건 당시의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다. (김신묵 동년기자)
▲금강계단, 대웅전과 함께 국보 제290호이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친견을 열망하고 참배하였다. 또한 사리를 약탈하려는 위험이 닥쳐와 이리저리 옮겨가며 목숨을 걸고 지켜내었다. 그동안 수차례 중수되어 창건 당시의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다. (김신묵 동년기자)

한동안 금강계단에 직접 참배를 금지하였으나 최근에는 지정된 날자와 시간에 안으로 들어가 가까이에서 참배할 수 있다. 음력 초하루부터 초삼일, 음력 보름날 그리고 지장재일인 음력 18일과 관음재일인 음력 24일의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이다.

대웅전의 서쪽으로는 산령각과 삼성각, 응진전이 있다. 비좁은 공간에 작고 예쁜 연못이 하나 있는데 남아서 절집을 지키겠다던 한 마리 용이 살던 구룡지(九龍池)이다. 연못자리에 절이 지어졌다는 창건설화를 증명하듯이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연못으로 멋스러운 공간이다. 상로전의 나머지 공간에는 응진전과 명부전, 일로향각이 있고 보광전과 선원 구역이 있는데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거나 관리 목적의 건물 등이다.

▲구룡지(九龍池), 용이 항복했다는 작은 다리 항룡교(降龍橋)가 걸려 있고 연꽃등 수생식물이 피어나 아름답다. (김신묵 동년기자)
▲구룡지(九龍池), 용이 항복했다는 작은 다리 항룡교(降龍橋)가 걸려 있고 연꽃등 수생식물이 피어나 아름답다. (김신묵 동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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