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생, 베이비붐 세대로서 1978년에 데뷔해 올해로 예순다섯 살. 그러나 이치현의 모습에서 그 세월을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1980년대를 휘어잡던 순간의 ‘이치현과 벗님들’ 리더 이치현이 세월을 뛰어넘어 그대로 내 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여전한 젊음과 변치 않은 감미로운 목소리,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더 성숙하고 테크니컬해진 그의 라이브를
A(77) 씨는 2000년경 계열사 사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이후 협력업체를 세워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회사생활이나 사업은 큰 어려움 없이 잘해왔지만 가정사는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고 아내가 2000년 초 일찍 세상을 떠났다. 큰아들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그곳에서 결혼해 살고 있고, 큰딸은 사업가와 결혼 후 뉴
나른한 퇴근길, 서울 지하철 1호선 전동차 안에서 그를 보고는 자동으로 인사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어린 시절을 함께한 참 오랜 친구였다. 뽀뽀뽀 체조로 아침잠을 깨면 항상 볼 수 있던 뽀병이었고, 주말 밤에는 두루마기나 정장을 입고 앵커석에 앉아 “지구를 떠나거라~” 혹은 “나가 놀아라~” 같은 유행어를 쉴 새 없이 제조하던 웃긴 아저씨였다. 문득 생각하니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 블루스계의 전설 같은 남자.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이런 표현을 싫어할 아티스트. 바로 신촌블루스의 엄인호가 그 주인공이다. 김현식, 한영애, 이광조, 이정선 등 대가의 경지에 도달한 뮤지션들과 함께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를 휘어잡았던 신촌블루스의 영원한 리더인 그는 여전한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서, 어느새 40년에 도달한 음
한복을 입고 표지 촬영을 진행하는 연기자 정혜선을 보면서 새삼 한복이 무척 어울리는 배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청률 60%를 넘긴 전설적인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딸을 구박하는 독한 어머니 모습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 이전이나 이후로나 국민 어머니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드라마에서 어머니 역을 맡아 열연했던 그녀는 곧 팔순을
A(85세) 씨는 경기도 양평에서 2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22세 때 직업군인과 결혼했고, 배우자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모은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자녀는 없고 배우자가 2000년에 사망한 후 홀로 생활해왔다. 노년이 외롭기는 했지만, 배우자가 남긴 부동산과 금융자산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고혈압과 당뇨를 앓
45년 전 육군 소위로 임관했던 동기들이 성삼재에서 뭉쳤다. 대부분은 연고지가 서울이었지만 대구와 구미에서도 각각 한 명씩 합류했다. 총 13명의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곧 성삼재를 들머리로 지리산 종주 등반이 시작됐다. 전날, 서울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구례역에 내린 시간은 새벽 3시 15분경. 구례버스터미널에서 성삼재까지는 버스로 올라갔다. 성삼재에 올
도심을 벗어나 어느덧 국도를 달린다. 햇살 쏟아지는 시골 마을을 지나 녹음이 짙어가는 산길로 들어서자 소음조차 숨죽인다. 숲길에서는 뒤엉킨 마음을 맡겨버린다. 구불거리는 좁다란 산길 위에서 너울거리는 계절을 느낀다. 그리고 비로소 땅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충북 진천이다.
보탑사 삼층 목탑과 꽃 정원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했다
사려니 숲길은 알겠는데, ‘고살리 숲길’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제주 숲길이다. 왕복 2시간, 아주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2.1km 숲길이다.
서귀포 선덕사 맞은편 다리 옆으로 30m만 들어가면 숲길 입구다. 고살리 숲길의 고살리에 리자가 붙은 것으로 보아 마을 이름으로 짐작, 검색했으나 나오지를 않는다. 고
그들 부부 모두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그러던 중 부인이 40대에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어 교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사는 행복에서 내려와야 했다. 마지막으로 담임을 맡았던 학급이 3학년 2반이다.
학교를 그만둔 부인은 좌절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언젠가는 아이들과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