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10곳 중 6곳이 퇴직 직원에 대한 재취업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재취업 지원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상 기업의 생산성 향상 효과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투데이와 시니어 전문 미디어인 브라보마이라프(www.bravo-mylie.co.kr)가 국내 대기업 50곳을 대상(44개 기업 응답, 응답률 88%)으로 실시한 ‘자기계발 교육 지원 현황, 재취업 프로그램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절반 이상의 기업들이 임직원의 퇴직 이후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일부 기업들은 근로자가 재취업하거나 창업할 수 있도록 돕는 종합컨설팅 서비스인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를 운용하는 등 체계적인 지원을 시행 중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기업 중 81.0%는 ‘퇴직자의 재취업은 기업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퇴직자의 재취업 프로그램이 ‘정부의 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것일 뿐이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와 ‘기업활동에 장애가 될 것’이란 항목의 답변은 각각 14.3%와 4.7%에 그쳤다.
응답 기업 중 56.8%인 25곳은 재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기업의 재취업 프로그램 운영기간은 4~8년 사이가 48%로 가장 많았다. 이어 1~3년(36.0%), 9~13년(8.0%), 15년 이상(8.0%) 등 순이었다.
재취업 프로그램 운영 시 어려운 점으로는 ‘고령자 고용 기업 부족’(52.3%)이 가장 많았다. 이어 ‘퇴직자의 나이가 많아 부담된다’와 ‘관련 프로그램의 부재’를 꼽은 기업의 비율이 15.9%로 같았다. 다음으로는 ‘회사의 재정상황’(11.4%), ‘담당인력의 전문성 결여’(4.5%) 등 순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재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 기업들은 그 이유로 ‘사내의 요구가 없어서’(57.9%)를 가장 많이 들었다. 아울러 ‘비용 등 재무상태’가 42.1%로 뒤를 이었다.
응답 기업 중 73.2%는 퇴직자의 재취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체계적 교육실시’(40.0%), ‘재취업 부작용 감소’(34.3%), ‘조직 분위기 쇄신’(11.4%) 등을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의 장점으로 꼽았다.
한편, 이번 조사 대상 업체는 제조·금융·증권·건설 등 4개 분야에서 자산 규모, 매출, 도급 순위 등 부문별 산업 특성을 고려한 기준으로 선정했다.
10대 그룹, 재취업 프로그램 가동률 100%
삼성, 현대차, LG, SK 등 국내 10대 그룹(제조 부문)은 모두 임직원 재취업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재취업 프로그램 가동 기간은 절반 이상이 3년 이내로 집계됐다. 아울러 이들 기업 대다수가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이용 중인 것으로 분석됐다.
퇴직자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긍정과 회의론이 각각 절반씩 차지했다. 제조 부문 응답 기업 5곳은 기업 생산능력 향상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고, 나머지 기업은 고용률 향상이란 정책적 성과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조사에서 기업들은 재취업 지원 대상자의 역량 진단 기준 설정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대상자가 고령일수록 재취업 지원에 부담이 커진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절반 이상이 재취업 교육 및 알선을 위해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속적인 교육 및 성과 공유로 퇴직자들의 재취업 지원 시 우려되는 각종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만큼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를 도입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금융사들 “재취업 프로그램 긍정적…비용은 부담”
5대 금융지주를 포함한 주요 금융·보험사는 퇴직자들의 재취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다만 실적 악화에 따른 비용 부담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사에 참여한 15개 업체 가운데 현재 퇴직자에 대한 재취업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 금융사들은 총 9개로 집계됐다. 재취업을 가동한 조사자들의 평균 프로그램 가동 시기는 4~8년이었다. 지원을 통해 재취업에 성공한 인원수는 100명 미만이 가장 많았다.
이번 조사에서 금융사들이 선호하는 재취업 프로그램은 ‘이력서 및 역량 경력 기술서 작성법’이 다수를 차지했다. 더불어 재취업 지원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서 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응답 기업의 73%는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미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를 운용 중인 2개 기업을 포함하면 거의 모든 금융사가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의 장점으로는 체계적인 재취업 지원을 가장 많이 꼽았다.
증권사들 재취업 지원에 소극적 “직원들이 원하지 않아”
증권사들의 재취업 지원은 걸음마 단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대형 증권사 10곳 가운데 4곳만 퇴직자에 대한 재취업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재취업 교육을 통해 취업에 성공한 퇴직자도 대부분 100명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취업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는 4곳 중 기간이 15년 이상인 증권사는 1곳이었고, 3곳은 모두 8년 미만이었다. 대형 증권사들이 2000년대 들어 퇴직자 재취업 지원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취업 프로그램 종류에 대한 질문엔 ‘자사만의 특화된 프로그램’, ‘이력서 및 역량경력기술서 작성법’, ‘외부업체 위탁’ 순으로 응답했다.
재취업 프로그램 운영 시 어려운 점으로는 3곳이 고령자를 고용하는 기업이 부족한 것을 꼽았다. 아울러 금융·보험사들과 마찬가지로 재취업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비용 부담이 재취업 지원의 가장 큰 장애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재취업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않고 있는 증권사 6곳 가운데 4곳은 ‘직원들이 재취업 프로그램을 요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나머지 2곳은 ‘비용 등 현재 재무 상태에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외에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 운용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는 70% 이상의 증권사가 ‘그렇다’고 답했다.
“10대 건설사 재취업 지원 단 2곳뿐”
건설은 이번 조사에서 재취업 지원에 가장 소극적인 업종으로 나타났다. 도급 순위 상위 10대 건설사 중 대다수가 퇴직자에 대한 재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았다. 다만 대부분의 건설사가 재취업 프로그램을 통한 기업의 생산능력 향상에 공감하고 있어 정부 주도의 공론화가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재취업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 기업은 단 2곳뿐이었다. 이들 기업의 재취업 프로그램 가동 기간도 3년 미만이며, 재취업에 성공한 인원도 100명 미만에 그쳤다.
대부분의 건설사가 재취업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않는 이유로는 증권사들과 마찬가지로 은퇴 임직원들의 별다른 요구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대부분의 건설사는 은퇴자들의 재취업이 기업 생산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정부의 지원 확대와 프로그램 지원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에 대해서는 10곳 중 5곳이 도입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유로는 재취업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하며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기자다"
연령이 55세~70세인 시니어 기자단들은 액티브 시니어들의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의 현장’ 소식과 함께 인생2막-자기계발 성공 스토리, 애환과 고통, 기쁨 등을 취재하게 됩니다.
선정된 기자단은 시니어 모니터링 업무와 현장 취재 기사를 작성하게 되고 작성된 기사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사이트와 지면에 게재됩니다.
50대 이상 신장년층들은 우리 사회의 주춧돌이자 근간이며 버팀목입니다. 하지만 직장-자녀문제-부모-집안 대소사-건강-대인관계 등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열정은 누구보다 뜨겁습니다. 단지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기에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신장년층은 명분과 격식, 보수적인 사회적 가치에만 연연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온갖 혼을 불어넣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즐기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투데이 PNC가 운영하는 시니어 전문 사이트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당당한 시니어들의 고품격 Life 정보 웹진으로 ‘2막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e-시니어’, ‘Dynamic Senior의 신나는 놀이터’, ‘시니어들의 애환과 고통을 나누는 사랑방’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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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면소재 중학교 교사가 되길 바라던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고 선택한 도시생활이었지만 50이 넘으면서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은 아직도 어려웠다. 직장 생활과 농사를 병행하며 시골 살이를 시작했다. 이제 표고재배 등 새로운 희망을 품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 겪으면서 귀향 결심
‘인간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나는 농촌의 중농가정에서 나서 성장하는 동안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동화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요즘이야 논농사, 밭농사 모두 기계화되고 일손이 많이 가는 농사는 기피하면서 단위 노동력당 경영하는 면적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60~70년대에는 논농사만 하더라도 두엄내기, 논갈이, 써레질 등을 전부 수작업으로 하거나 일부 축력에 의존했다. 간혹 기계를 사용했지만 아주 초보적인 기계에 의존하는 정도였다.
농촌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는 동안에도 퇴비장, 토끼사육장 같은 시설에서 토마토 같은 밭농사나 토끼사육 등 농사 체험을 배우고 익혔다. 이후 가까운 지역의 지명도 있는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공무원이 되기를 원하는 부모님들의 소망에 따라 농업관련 대학에서 공부했다. 이때 체계적이고 학문화된 각 부문의 농업이론을 배우고 실습을 하는 등 과정을 이수했다.
대학을 졸업하자 부모님은 중등교사 자격증을 이용해 면 소재 중학교 교사가 되길 바라셨지만 농촌생활의 갖가지 어려움, 각종 편의시설의 부족, 2세 교육을 위한 교육환경의 열악함 등을 이유로 대도시의 대기업에 입사했다. 부모님이 보유한 농지는 두 분이 충분하게 경작 가능하리라는 생각이었다.
80년대 말 변환기에 나와 중소기업에 몸담게 됐다. 그러면서 값싼 노동력을 찾아 회사가 중국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10여년 간의 중국생활을 했다. 한 때 거침없는 성장으로 코스닥에 상장했던 회사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영업이익이 공장손실을 메꾸지 못하는 등 경영 악화로 이어졌다. 공장을 통폐합하고 조직을 축소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이젠 떠날 때가 됐다고 판단돼 사직했지만 퇴직금도 못 받고, 회사주식에 투자했던 여유자금마저 상장 폐지되는 바람에 허공에 날리고 실업자가 됐다.
실업급여를 받는 6개월 동안 ‘취업이야 되겠지’하는 기대 속에서 인크루트를 비롯한 취업포털을 통해 수많은 회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취업에 실패했다. 50을 넘긴 나이가 핸디캡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작은 아이가 대학졸업을 3년이나 남겨두고 있어 하루라도 소득이 없어서는 안 되는 중차대한 시기였다. 가정주부라는 틀을 벗어난 적이 없던 안식구가 참다못해 월 100만 원 정도 급여를 주는 직장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팔순이 넘은 어머님 농사를 도우며 작은 농가 소득이라도 올리고자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계산해 본 예상농업소득만으로는 아이 대학 교육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됐다. 그래서 농사를 지으며 부업으로 직장에 다니는 동네 친구를 따라 월 130만원 정도의 보수를 받으며 출근을 시작했다. 출근해서 8시간 내내 예초기를 메고 도로 가장자리에 늘어지고 제멋대로 우거진 잡초와 작은 나무를 베는 일을 했다. 겨울에 눈이 오면 제설작업을 하면서 고된 2년여의 시간이 지나갔다.
고용노동부 취업포털인 워크넷(worknet)에 올린 내 이력서를 보고 주유소 소장을 제의해 온 주유소가 있어 일을 시작했지만 전 소장은 퇴사하지 않고 모든 일을 알아야 한다며 계산원, 주유원 등으로 월 130만원의 보수를 주고 일만 시켰다.
회사에 불만이 많은 가운데 계속적인 취업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한 지역 중소기업으로부터 입사제의를 받고 연 3300만원의 보수로 출하관리 업무로 출근하면서 농사일을 병행해 나갔다. 농사를 지으며 모르는 부분은 경험 많은 어머님이나 친구한테 자문을 구하며 또 남들이 하는 상황을 보거나 과거에 봐왔던 기억을 살려 해나가고 있다.
논에는 벼농사를, 밭에는 고추농사는 단모작, 감자농사는 후작으로 무를, 마늘 심은 후작으로 메주콩을 심고 논둑이나 유휴지에는 검은 콩, 들깨, 호박, 가지, 상추, 고구마, 쪽파, 시금치, 오이, 참외, 토마토 등 채소나 잡곡을 심어 자급하고 있다. 요즘엔 고라니가 많아져서 콩, 옥수수 등은 수확을 못 할 정도로 피해가 많고 논에도 수확기에는 적지 않은 피해를 준다. 하지만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다 지인의 표고농장을 보고 온 뒤 기대를 가지고 실험적으로 시작한 농사가 표고재배다. 매년 11월부터 1월 사이에 엔진 톱을 구해 산에 있는 참나무나 밤나무를 베어 1m 전후의 길이로 토막을 내고, 표고종균을 넣을 수 있는 가는 나무는 나무보일러에 들어갈 정도의 길이로 잘라두었다가 화목으로 쓴다.
1월말에 군 산림조합에 표고종균을 신청하고 3월말 종균이 도착하면 모아 놓은 참나무에 5cm 폭에, 길이 10cm 전후의 간격으로 천공기로 구멍을 뚫고 성형종균을 넣고 물 주기 좋게 쌓아두고 15일 간격으로 물을 주고 차양 막을 설치해 주는 등의 관리를 한다.
◇바쁜 일 없는 시기 수입 짭짤한 표고농사
관리를 잘 하면 종균을 넣은 당년 가을에 표고를 수확할 수 있다고 교재에 나와있지만 내 경우에는 다음해 가을에 표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수확된 생표고는 거래처가 없어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먹을 수 없는 부분을 다듬어서 햇볕에 말려 저장했다가 구매자가 나타나면 시중가인 1kg에 5만 원에 팔고 있다.
표고재배는 중장비 도움 없이 하려면 통나무를 자르고 나르고 세우고 하는 일련의 일들이 중노동이지만 표고수확이나 물주기 등이 비교적 수월한 일이다. 어느 곳에서나 중국산 표고가 넘쳐나기 때문에 가격이 낮아 일이 힘든 것에 비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온성 표고를 선택하면 3~4, 10~11월에 수확되기 때문에 일이 없을 때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부족한 지식을 메우고자 산림조합에서 출간한 ‘표고재배기술’이라는 책자로 공부하고 의심나는 부분은 찾아 읽으며 다른 고수익 버섯품종도 찾아보았다. 표고 전업농이 되기 위해서는 3만본 정도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정도의 원목을 살 수 있는 거래처를 확보하고 급수 설비 등 시설에 대한 투자를 위해서는 토지 비용 제외하고 연 5000만원 정도 자금이 필요하다.
현재 실험적으로 재배하는 표고는 한 해에 200본씩 확보하여 5년 정도 지나면 1000본정도 되고 그 중 800본 정도가 수확된다. 연차적으로 농사에 필요한 40m×8m 규모의 못자리용 비닐하우스를 보조금 제외한 420만 원에 설치하고 백미 및 현미가공이 가능한 가정용정미기를 140만 원에, 비닐 피복 및 소규모 로터리 및 두둑 만들기가 가능한 아세아 관리기를 120만 원에 구입하는 등 최소 규모의 투자도 진행 중이다.
◇직장과 농사를 병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나이 들어 남의 밑에 가서 거슬리는 말 참아가며 직장 다니지 말고 농사에 올인 하면서 편히 살라고. 그러나 나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직장생활과 농사를 병행할 생각이다. 또 관심 있는 금송, 장뇌삼, 블루베리, 복숭아 등을 시험적으로 심고 가꾸면서 가능성도 따져보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바로 낙원이라는데 직장을 정년퇴직하면 젖 짜는 산양도 두세 마리 키워서 산양유를 짜서 마시고 남으면 치즈 등 제품 개발도 해보고 싶다. 또는 벌통을 두세 통 사서 남향 따뜻한 곳에 놓고 주위의 아카시아나 밤꽃 등의 꿀도 따고 작물의 수분도 좋게 하는 일들도 좋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여러 곳에 흩어진 조상님들의 산소도 정리하고 내가 흙으로 돌아갈 준비도 착실하게 해 놔서 후세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조상을 숭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작은 바램이다.
* 귀농 전 거주 지역: 중국 대련에서 10년 거주
* 귀농 전 직업: 생산관리
* 귀농 결심동기: 노후준비
* 귀농 선택작목: 벼, 무, 배추, 감자, 표고버섯
* 귀농귀촌 교육이수 실적: 없음
* 귀농연도: 2008년
* 귀농 시 나이: 52세
* 귀농지 선택사유: 고향마을
* 귀농시 영농기반: 논 4000평, 밭 1000평
* 귀농 초기자금: 없음
* 재 영농규모 : 귀농시와 동일
* 연간 수익: 논 농사 800만원, 밭 농사 450만원(감자 100만원, 무·배추 100만원, 고추 100만원, 표고버섯 150만원)합 1250만원
중.장년의 희망은 오직 기술뿐 !.
자신과의 싸우며 기술 배우기를 3년……
수백 통의 이력서로 취업 활동 후 드디어 취업에 성공!
저는 56년생으로 2010년 10월 은행 경영의 악화의 원인으로 고액 연봉자들의 대대적인 명예퇴직을 유도하여 전직원의 25%인 3800명이 퇴직할 때. 저 또한 나이가 정년에 가깝고 경영악화의 주범으로. 그리고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하여 자리를 양보하고 퇴직을 하였습니다..
2010년 11월부터 그동안 여행하고 싶었던 몇 몇 곳을 선정하여 나 홀로 도시락을 배낭에 넣고 전국으로 여행 다녔으나. 마음은 항상 퇴직 후 무엇 하며 노후를 보낼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가볍지만은 아니하였습니다.
◆무엇으로 제2인생 준비할 것인가? “노력하는 자에겐 하늘이 돕는다”
퇴직을 결심하고 돈을 절약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 집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로 이동하기 위해, 그동안 타지 않았던 자전거를 수리하기 위하여, 동네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가서 고치면서 기다리는 중에 주인 사장님의 친구분들이 옆에 있어, 물었죠, ‘이 자전거 가게 사장님은 노후 걱정은 안하셔도 되겠다’고, 그랬더니 가게 주인 사장님의 친구분들이 하시는 말씀이’이 자전거 가게를 이 자리에서 40년을 했는데 큰돈은 벌지 못해도 자식을 공부시키고 결혼도 시켰으며, 작은 건물도 구입했노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또한 같은 60대 나이에 은퇴도 없고 자식들에게도 손 내 밀지도 않고 친구들 모임에 회비를 낼 수 있고 가끔 막걸리도 사주는 친구들 중 가장 유일하며,가장 행복한 친구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아! 그렇구나.
‘기술만이 남은 여생 30년을 보낼 수 있겠구나’를 생각하였으며, 나도 자전거 수리를 배워, 노후를 보낼까를 생각하면서 삼천리 자전거 홍보부에 근무하는 후배를 만나 자전거 수리점에 대하여 많은 의견과 자문을 받아 보는 등 여러가지로 고민하며 수일을 보냈습니다.,
2010년11월 은퇴 후, 12월 중순에 은행으로부터 2년 계약직(지점감사업무)으로 근무할 수 있다고 통보 받아 1월 초에 근무지로 출근하던 중. 지하철역에 붙여있는 홍보 벽보에 서울시에서 기술교육을 무상으로 가르쳐 준다는 포스터를 보았으며. 아! 그렇구나 내가 여생은 큰 힘 들이지 않고, 적은 수입이라도 뭔가 할 수 있는 일거리로 보람을 느끼며 앞에서 언급한 자전거 가게 사장님과 같이 뭔가 기술을 배워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며, 늙어서 할 수 있는 기술이 뭔지를 고민하였습니다.
◆어떤 기술을 배울 것인가?
그동안 강남의 대형 점포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알고 지냈던 사장들과 식사하는 중에 ‘조경과 보일러, 목공, 자동차 수리, 조리 기술 중 어느 기술을 배우는 것이 미래가 가장 유망 하겠나’를 물었더니, 조경 쪽으로 교육 받으라고 하였으며, 조경은 무료교육 대상자 모집에서 연령제한이 없었으나, 보일러, 자동차 수리 등은 만 55세는 이후 노령자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하여, 연령이 제한되기 전에 보일러, 자동차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였으며, 보일러 기술은 월급이 적지만 힘이 들지 않는 직종이라 생각하여, 2011년 2월에 서울종합직업학교(현 동부기술교육원) 보일러과에 지원하였습니다.
등록 후 합격자 발표만을 손 꼽고 기다렸으나, 합격자 발표일에 제 이름 석자가 없었기에, 아! 그럼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또 고심하게 되었습니다..
발표일 3일 후 기술학교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등록학생 중 몇 명이 주간으로 등록을 변경하게 되어 야간학생 결원이 있어 예비 합격자 중에 제가 포함되어 합격 했으니 3월 3일부터 학교에 나와서 기술을 배우라고 하여, 3월부터 기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기술 취득과정
(1) 보일러 기능사 취득 과정
2011년 3월부터 고덕동 소재 서울종합직업학교에 오후 6시부터 9시 30분까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6개월 공부하였으며, 실습할 때는 30년간 책상에 앉아서 근무한 은행원이 보일러 용어 하나하나가 생소하여 용어를 익히는데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특히, 가스나 전기 용접시에는 옷을 태우기도 하였으며, 손이나 발을 다치기도 하는 등 잦은 실수를 연발하여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로부터 웃음꺼리가 되기도 하여 창피하기도 하였으며, 개인적으로 자존심이 많이 상했으나 참고 견디었습니다.
필기시험은 과거 5년간 시험 출제 문제를 컴퓨터에 입력하여 어느 문제가 자주 출제되는지를 분석하고 외웠습니다. 입학 2개월 후 용어도 잘 모르던 제가 현장에 근무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하여 입학하여 공부한 학생들도 낙방하는 보일러 기능사 필기시험에 합격하였으며, 5월부터 보일러 기능사 2차 실기시험을 준비하였으며, 6월에 최종 합격하여 보일러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2) 공조냉동 기능사 취득과정
공조냉동시험 준비는 기술학교에서 보일러시험 끝난 후 기초적인 내용을 가지고 졸업할 때까지 약 2개월간 배우고 실습하였으며, 학생들이 쉴 때도 수업이 끝난 후에도 틈틈이 홀로 가스 용접 실기에 매달렸으나 무난히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한 것과는 달리 2차 시험인 실기 시험에 낙방하여 10월에 재 응시하여 12월에 어렵게 합격하여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3) 에너지산업기사 취득과정
공조냉동을 가르쳐 주시는 교수님께서 보일러, 공조냉동 자격증을 취득 후에는 요즘에 인기 있고 정부차원에서 각종 지원되는 에너지관리 기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셨으나, 정해진 수업기간이 끝나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기술학교 보일러 과정을 끝마친 후 또 다른 기술을 준비 중에 기술학교 홈페이지를 열어 보았더니, 에너지 관련 수업이 9월부터 진행된다고 하여 9월에 지원하여 9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에너지관리기사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에너지 기사시험은 실무 경력이 없어 에너지관리 산업기사 시험만 응시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시험은 1년에 1회밖에 없으며, 2011년의 경우는 124명이 응시하여 한 명도 합격하지 못하는 아주 어려운 시험이라고 유념하여 공부하라고 하였다. 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공부할 때는 33명이었으나, 각종 공식이나 수치 계산 등으로 점차 공부가 난해 함을 느끼고 또한 수업하는 교실이 추워서 공부하기가 너무 힘드니까, 다들 중간에 포기하였으며, 마지막 남은 3명의 학우들도 포기하자고 하였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금년 아니면 내년에 공부한다고들 하지만 저의 경우는 나이가 60대를 바라보니 지금 이 기술 공부를 포기하면 갈 곳이(취직할 곳)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하며 끝까지 기술 공부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2011년에는 한 명도 합격하지 못하는 어려운 시험이지만, 2012년에는 내가 한번 도전하여 합격 했다는 소문을 듣게 하겠다고 하면서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에너지관리시험 준비하기를 7개월,.. 드디어 1차 시험을 무사히 합격하고, 2차 실기시험을 주관식을 치르게 되었으며, 합격자 발표 전날 밤 꿈에, 합격자 명단을 보니까 4명이 있는데 나의 이름이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합격자 발표하는 날 인터넷 검색을 하니, 전국에 단 4명만이 합격하였으며, 그 명단에 제 이름이 있어 크게 감동했으며 노력하는 자는 하늘이 돕는 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근무하던 지점의 은행 직원들이 더 좋아했으며 같이 공부한 동료학생들과 교수님으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습니다. 1차 시험에 60점으로 겨우 통과했는데, 2차 시험은 과연 몇 점이나 되는지? 인터넷으로 검색 했더니, 문답 50점 만점에 22점, 동영상 문제 50점 만점에 38점으로 더도 덜도 아닌 합격점수 커트라인인 60점으로 합격하여 감동의 드라마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4) 전기기능사 취득과정
보일러, 공조냉동, 열에너지관리산업기사 자격증 있으면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은행보다는 조건이 더 좋은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취업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 가입하여 컨설턴트와 상담도 하고, 베이비부머 취업박람회에 참가하는 구직활동에 전념하였지만 성사되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회 전반적으로 많이 활용되며 취업대상업체가 더 광범위한 전기기술을 배워 기술력을 더욱 향상시켜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전기기능사과정 교재와 동영상 C/D를 구입하여 혼자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전기기술을 가르쳐 주는 기술학교 야간과정에 등록하여 9월부터 수업을 듣게 되었으며, 수업 듣는 그해 12월에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보다 먼저 1차 필기 시험과 2차 실기시험을 통과되어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5)전기산업기사 자격증 취득 도전기
2012년 12월에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여 이젠 취업이 쉽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여러 곳에 취업활동을 하여 00시설관리공사, 00회사, 00구청 등 무려 수십 곳에 서류전형에 합격하여 면접을 보았으나 결과는 역시 나이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젊은이에게 밀려 나기를 수십 번….
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능사 자격증만으로는 나이에 대한 한계를 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점점 나이에 따른 압박관념에서 모든 일이 점점 위축되었으며, 노후에 대한 자신감과 활기를 잃어가며 가족들 간의 유대도 소홀해 지며, 패배의식이 팽배해져 가며, 우울증으로 지내기를 수개월 지난 후 어느 날
한편의 신문에 실린 다음의 이야기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참판집 종으로 일하며 ‘도둑공부’… 신분벽 넘어 형조판서 우뚝
공부하고 싶은 노비의 열망이 높은 신분의 장벽마저 뛰어넘었다. 참판 집안의 종에서 형조판서로 우뚝 선 반석평(潘碩枰·?∼1540)의 이야기다.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조상이다.19세기의 족보 ‘만가보’에 따르면 석평은 충북 음성에서 아버지 반서린(양반으로 추정)의 서자로 태어났다.
석평은 1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노비 신분으로 서울의 이 참판 집에서 종노릇을 했다. 본래 똑똑했던 그는 얼마나 공부가 하고 싶었던지 자기 또래였던 주인집 아들 이오성이 방에서 글을 배우고 있을 때 밖에서 ‘도둑공부’를 했다. 땅바닥에 글씨를 쓰면서도 배우는 대로 외우는 영리한 아이였다.
석평의 도둑공부를 알게 된 이 참판은 그를 기특하게 여겼다. 석평은 이 참판에게 집을 나가 공부를 더 해서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종은 공민권이 없어서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다. 석평의 재주와 성품을 남달리 여긴 이 참판은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석평의 노비문서를 불태워 없애고 아들이 없는 친척 양반집에 양자로 보낸 것이다.
석평은 1507년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했다. 이후 예문관검열(예문관에서 사초를 기록하던 정9품 벼슬)이 되었다. 경차관으로 함경도에 파견되어 여진의 동정을 보고했으나 천얼(賤孼)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1516년 문신 안당의 추천으로 경흥부사가 되었고 이후 함경남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병조참의,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충청도 관찰사 등을 지내고 1531년에는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예조참판,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관찰사, 형조참판, 한성부 판윤 등을 거쳐 형조판서(정2품·지금의 법무부 장관에 해당)를 지냈다.
그는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석평이 형조판서일 때 길에서 옛 주인집 아들 이오성이 거지가 다 되어 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석평은 초거(종2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타던 수레)에서 내려 그의 앞으로 달려가 절했다. 석평은 왕에게 자신의 원래 신분을 밝히고 자신의 벼슬을 깎아 이오성에게 주기를 청했다. 조정에서는 이를 오히려 기특하게 여겨 용서하고, 이오성에게 사옹원 별제 벼슬을 내리고 석평의 관직도 그대로 유지했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석평과 조정을 모두 높이 평가하며 “이와 같이 한다면 세상 풍속이 어찌 분발하지 않겠으며 재주 있고 덕 있는 자가 어찌 감동되지 않겠는가”라고 썼다. 물론 석평의 출세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이 참판이 스스로 노비문서를 불태워 양인이 되게 해 주었고 석평이 노력해 정식으로 문과에 급제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의 처지를 보살펴 준 이 참판의 아들이 거지꼴이 된 것을 마음 아프게 여기고 양심고백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 중종실록에는 석평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특히 그가 종 출신이지만 문벌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으로 등용된 바람직한 사례로 든 것이 인상적이다.
위 기사에 힘을 얻어 다시 전기산업기사에 도전하면서 취업 활동을 해 보겠다는 마음에서 2013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시락을 지참하여 인근 도서관에 9시에 도착하여 밤 10시까지 공부하였으며, 친목회,동창 모임 등 참석하지 않고 기술 공부에 홀인 하였습니다.2014년 3월 제1회 전기산업기사에 시험을 응시했으나 역시 유사직종에 근무한 경험이나 유사한 학과에 공부하지 않는 터라, 또다시 5~8점 차이로 낙방하는 쓴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격증으로 재 취업!
전기기능사는 어느 정도의 노력으로 합격하였으나, 역시 기사 시험은 실무나 관련 학과와 인연이 있어야 이해가 쉬워 기사 시험 응시에 쉽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도서관 다니며 공부하다보니 경제적 어려움과 마음마저 우울해지게 되어 기사 시험 종료와 동시에 취업하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홈페이지와 노동부의 워크넷에 등재된 채용공고를 검색하던 중에 2014년 2월 27일 국민은행 본점 시설과 근무 직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을 보고 28일 이력서를 제출하여 가진 자격증으로 응시하여 서류 전형과 면접을 거친 후 2014년 3월5일부터 근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결론적으로 말하면 눈높이를 낮추면 미래가 보이며
국가나 사회나 자식들에게 손을 내 밀수 있는 것보다 은퇴후에도떳떳한기술하나라도배우고익히면,개인이 행복하고 가정이 건전하며 나라가 튼튼해진다고 확신합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만 유념 하시면 됩니다.
첫째, 지난 것 다 잊으시고, 오직 기술만이 살길이라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과거에 지점장을 했느니? 정부, 재계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했느니? 월급을 얼마나 받았느니? 이런 생각을 버리고 가장 낮은 자세라야 기술을 배울 수 있으며, 같이 배우는 옆 학우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요즘 시대는 과거 어느 학교 출신인가, 어느 직업을 가졌나 보다는 오직 자격증만이 살길입니다. 자격증 없이는 사회적으로 대우도 못 받으며 월급도 많이 받지 못합니다. 물론 경력도 중요하지만 당장 회사에 취직을 한다든가,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자격증을 소지해야만 우선 지원서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금이 넉넉하여 쉽게 회사나 가게를 차리실 수는 있겠지만, 기술이나 경험이 없이 시작하는 것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둘째, 처음 시작하는 아름다운 마음 변하지 마시고 끝까지,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기술을 배울 때는 하루 빠지시면 그 다음 수업과 연결이 안 됩니다. 특히, 기술을 배우시는 분들은 더 더욱 그렀습니다. 용어 등이 생소하기 때문이며, 교수님께서 설명하시는 용어들을 그때그때 듣고 놓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저와 같이 보일러과에 등록하신 분들 중에 열심히 참석하신 분들은 보일러 기능사 자격증을 다 취득하셨으며, 또한 공조. 냉동자격증 까지 바라보고 공부하여 원하는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반면에 상반기 공부했던 학생들 중에 출석이 부진 했던 분들은 교수님께서 출제 예상 문제를 가르쳐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결석이 빈번하여, 불합격 원인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물론, 기술을 배우시려고 하신다면 중간에 여러 가지 극복하셔야 할 일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야간으로 기술 받는 기간 중에도 여러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자는 제안이, 유혹이 많았습니다.
물론, 2~3년은 현재보다는 더 많은 월급 받고, 대우도 받으며 살겠지만,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하여 정중히 거절하였으며, 또한, 연말 연시 때나 주말에 동창, 동료직원, 각종 사회모임으로부터 회식, 등산, 골프, 낚시 등 많은 종류의 유혹들도 있었지만, 제2인생을 준비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회사 퇴근 후나 주말에는 곧바로 기술학교로, 도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말입니다.
셋째,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과 협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를 잘하면 또 다른 하나를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즉, 필기 시험에 자신이 있는 분은 실기 시험에 약한 분들이 있고요. 실기시험에 강한 분들은 필기 시험에 약한 분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은 서로 협력하여 같이 합격하실 수 있도록 상호 서로 도와주라는 뜻 입니다. 그래야, 힘들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는 기억력이 약하여 외워도 외워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게 되고. 특히 실기시험은 완전 빵점 인생 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을 위해 필기시험에 대비하여 교수님께서 설명하신 내용을 요약하여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제공 하였더니, 필기시험에 도움 받은 동료 학생들이 실기 때는 제가 모르는 각종 공구들, 밸브들, 전기용접 및 가스용접 등등… 많은 도움을 주어 쉽게 실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지난날들을 회상해 볼 때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에게 은행 지점장이 겨우 보일러 기능사 공부 하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와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만, 기술만이 남은 30년 인생을 하나님을 위하여!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자원봉사하며! 내가 배운 기술로 겨울을 따뜻하게, 여름을 시원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기술을 펼치며 보람 있게 살며, 멋지게 보내리라 확신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입니다.
끝으로 이 모든 것들을 먼저 기도로 준비했으며, 다음에는 앞뒤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위 내용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에서 올해 초 실시한 중장년 재취업 성공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중장년층이라면 구인·구직 정보지나 신문을 펼쳐놓고 펜으로 동그라미(O), 엑스(X)를 표시해가며 일자리를 찾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컴퓨터를 이용한 인터넷 일자리 검색뿐만 아니라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일자리를 검색하고 바로 지원이 가능하다. 시니어 스마트폰 사용인구가 점차 늘어가고 은퇴 후 제2의 직장을 찾는 베이비붐 세대들을 위한 일자리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 잇따라 선을 보이고 있다. 중장년층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 앱에 대해 알아봤다.
◇ 알바천국-중장년알바 앱
대한민국 대표 아르바이트 포털 사이트 알바천국은 업계 최초로 모바일 앱 ‘스마트 맞춤알바’를 출시한 데 이어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앱 ‘알바천국 중장년알바’를 내놓았다. 기존 '맞춤알바' 앱과 마찬가지로 현 위치 중심(전방 100m~3km 이내)으로 일자리가 검색 및 스크랩 기능이 가능하고, 근무지 위치 및 인근 지하철역 등 위치정보까지 볼 수 있다. 전화걸기 버튼 또는 전화번호를 누르면 해당 업체와 바로 연결되고, 지원현황 메뉴를 통해 최근 3개월 동안 전화·온라인·이메일 등으로 지원한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 파인드잡-중장년 일자리
취업포털 파인드잡은 베이비붐 세대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이들의 취업 활성화를 위해 맞춤형 모바일 앱 '중장년 시간제 일자리 앱'을 출시했다. 파인드잡은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관하는 중장년 채용박람회를 통해 중장년의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선 바 있다. 때문에 파인드잡 앱에서는 ‘전경련 추천’ 메뉴가 따로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알바천국과 마찬가지로 채용정보 스크랩 및 지원하기 버튼을 이용해 원터치로 지원 가능하고, 지원현황 메뉴를 통해 최근 지원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 장년 일자리 희망넷-4060 JOB
4060 JOB은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하고 노사발전재단에서 운영하는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의 공식 포털 ‘장년 일자리 희망넷’의 모바일 버전으로 중장년 구직자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채용정보 스크랩 기능은 물론 공유하기 버튼을 누르면 트위터·페이스북·카카오톡·이메일 등으로 공유할 수 있다. 맞춤 채용정보를 등록하면 관련 채용정보와 채용 마감일 알림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고, 이력서를 등록하면 어느 기업에서 내 이력서를 열람했는지까지 확인 가능하다. 각종 취업뉴스 조회와 지역별 일자리 희망센터 안내, 희망넷 알선 일자리를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니어잡(어르신 일자리)
시니어잡은 근로 의욕과 능력을 갖춘 어르신을 위해 정보 검색이 어려운 웹 대신 널리 보급된 스마트폰을 통해 더 나은 일자리 정보를 제공한다. 직관적이고 깔끔한 UI로 구성해 한 화면에 필요한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며, 다른 시니어 일자리 앱보다 글자 크기가 크다. 기존 정보지나 신문에서 볼 수 있는 일자리 제공 형태로 사용자에게 정보 전달이 쉽고, 원하는 위치 중심으로 선택하여 일자리 검색이 가능하다.
서울시는 본격적인 채용시장이 열리는 봄을 앞둔 시점에서 연령별 취업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는 취업자 및 예비취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이달 주목할 만한 취업교육 프로그램으로는 △재진입 장년 취업준비교육 △이전직 중장년 취업준비교육 △경력단절여성 취업준비교육 등이다. 이들 교육 모두 남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실시하기 때문에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인 구직자들은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이들 교육은 오는 11일부터 하루 간격으로 열리며 모두 무료다.
◇2월 재진입 장년 취업준비교육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는 장년층을 대상으로 ‘재진입 장년 취업준비교육’을 실시한다. 이 교육은 오는 13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진행된다. 교육비는 무료다. 모집기간은 이달 11일까지다. 수강자격으로는 성별 제한이 없으며 51~65세까지 참여할 수 있다.
직업정보 및 구직기술이 부족한 구직자를 대상으로 구직전략 및 취업역량 강화를 통해 취업 성공률을 높이는 데 교육 목적이 있다. 교육 내용은 고령화 사회와 노동시장 이해,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작성실습, 이미지 메이킹 및 면접실습으로 구성된다. 교육 장소는 서울시청 을지로별관 5층 교육장이다.
◇2월 이전직 중장년 취업준비교육
센터는 또 이직을 고려 중인 중장년층을 위한 프로그램인 ‘이전직 중장년 취업준비교육’ 과정도 마련했다.
교육은 오는 11일 진행되며 교육시간은 ‘재진입 장년 취업준비교육’ 시간대(오전 9시 30분~오후 12시 30분)와 같다. 이 또한 무료로 실시된다. 모집기간은 10일까지며 교육 장소는 을지로별관 5층 교육장이다.
이 프로그램은 36~50세 사이의 남성만 수강이 가능하다. 이전직 준비 남성 구직자를 대상으로 구직능력 향상 강의로 재취업률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 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센터 측은 설명했다.
◇2월 경력단절여성 취업준비교육
출산과 육아 등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됐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도 선보인다. 센터는 오는 12일 ‘경력단절여성 취업준비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교육시간과 교육비, 장소는 앞선 프로그램들과 동일하다.
이 교육의 목적은 구직전략을 습득해 경력이 끊겼던 여성들의 취업 성공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교육 내용은 여성 고용동향 이해 및 구직전략 수립, 사례중심 이력서 자기소개서 작성법, 사례별 면접요령 및 모의면접 등으로 이뤄진다. 교육 대상은 30~50세의 여성이다.
뜻하지 않던 퇴직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30년간 은행에서 근무한 민찬기(58) 씨는 IMF 외환위기 이후 경영실적이 나빠진 은행의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2003년 일자리를 잃었다. 살면서 위기를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심각한 생활고가 시작됐다.
중·고교에 다니던 두 자녀의 학원 수강을 중단시켜야만 했고 후두암을 앓고 있던 아버지에게 치료비조차 드릴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후 대책은 무슨…. 사치이지.’ 게다가 나이 많은 실직자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하루라도 빨리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민 씨는 취업 전선에 다시 뛰어들었다.
◆취미 살려 창업 도전
민 씨는 그동안의 경력을 토대로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여러 번 퇴짜를 맞았다. 일자리 신문,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면 연락이 오는 곳은 주로 정수기나 전자제품 같은 제품 판매나 다단계 판매, 보험 영업 혹은 도산 위기 직전의 중소기업이었다.
아스팔트 포장업체에 들어가 몇 년간 영업도 해 봤지만 회사가 다른 기업에 팔리면서 다시 실직자가 됐다. “일자리를 구해보려 했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고 은행원 경력으로는 경쟁력이 없었어요. 여러 곳에서 재취업 연락이 와도 결국 전자제품 판매 영업 및 보험 영업뿐이었어요.”
그는 취업시장에서 고배를 마시며 이렇게 지쳐 가느니, 재취업에 대한 미련을 접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승부를 걸어보자고 마음먹었다. 지난 30년간 은행에서 근무하며 키워 온 취미는 운동이었다. 은행 업무가 주로 앉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담배와 술을 끊는 등 건강한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피트니스 원리, 역학, 물리 등을 생활 속에서 관찰하고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헬스 관련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운동 경력 20년. 그는 트레이너 못지않은 베테랑 운동 전문가가 됐다.
민 씨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생각했다. ‘앞으로 고령화 시대를 살아나가려면 지금 당장의 수입에 연연하지 않고 20~30년 후를 내다봐야 하지 않을까.’ 그는 고령화 시대에 경제활동을 하려면 건강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자신만의 특화된 장점을 살려 창업한다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마침 은행에 다니면서 따뒀던 운동처방사 자격증이 생각났어요. 수중에 돈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만의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1인 창조기업’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죠.”
창업 아이템은 그동안 틈틈이 연구해 온 ‘운동 각’을 활용한 운동처방. 한국무역협회가 운영하는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소상공인진흥원의 시니어 창업 지원기관인 ‘시니어 비즈플라자’를 알게 된 것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이곳에서 창업 관련 교육과 멘토링 서비스, 시설, 경영 및 회계자문 등의 지원을 받아 전문 컨설턴트가 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나갔다.
◆차별화된 ‘운동처방’으로 승부
일반적으로 운동처방이라고 하면 부상 후의 재활치료를 떠올리지만 민 씨의 생각은 달랐다. 병이 발생하기 전의 예방 차원에서 실시돼야 하는 것이 운동처방이며 그의 사업도 여기서 출발했다.
몸의 움직임 즉, 행동의 구조가 올바르지 못하면 신체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움직임 스타일에 따른 알맞은 기울기의 운동, 이를 ‘운동 각’이라고 정의했다. 운동 각에 의한 영향을 잘 활용함으로써 몸 안의 여러 장기를 운동시킬 수 있고 불편하거나 약한 부위에 개선 효과를 충분히 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멘털 피트니스’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정신까지 포함해 예방적 차원에서 개개인의 신체 스타일을 감안한 운동법을 고안했죠. 그리고 이를 토대로 힐링 숙면, 성공적 재취업과 창업을 위한 운동처방과 건강관리, 시니어를 위한 운동처방과 건강관리, 해피웰 운동처방, 생태적 분석을 통한 운동처방, 운동일지 관리 등 강의 및 컨설팅 콘텐츠를 차근차근 만들어 나갔습니다.”
운동처방 관리 자료인 생태적 분석 설문지와 운동일지의 저작권 등록, 몸의 균형 각도를 측정하는 운동 각 측정기기의 디자인 등록, 남성용 운동기구인 전립선 마사지용 볼기구 발명과 특허 출원 등은 모두 그의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민 씨는 시니어 비즈플라자 창업과정 수료 후 준비기간을 거쳐 2010년 12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민찬기 운동처방연구소’를 열었다.
그는 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가장 적합한 운동 종류, 방법, 횟수 등을 설명해 준다. 일상생활의 나쁜 습관으로 병이 생기는 것을 방지해 주는 ‘건강 도우미’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현재 학교, 사회복지관, 공공기관, 기업 등을 중심으로 건강관리 강연을 하고 있으며 퇴직자들에겐 창업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강연을 통한 재능기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민찬기운동처방연구소의 월평균 매출은 200만원이 좀 넘는다. 고수익은 아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베풀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이 크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이 그저 즐겁고 행복하다는 그의 다음 계획은 뭘까.
“토털 원스톱 방식의 체형관리 운동센터를 오픈해 국민 건강에 일조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특히 운동센터의 프랜차이즈화를 구축해 베이비부머 세대가 저비용 기술형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요.”
"놀면 뭐하나요. 돈은 얼마 안 돼도 소일거리가 있는 게 어디입니까.”육아를 이유로 회사를 떠난 지 어느덧 20년이 넘은 최모(60·여)씨는 지난달부터 한 대형마트에서 계산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웹서핑하던 중 우연히 ‘실버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본 게 계기가 됐다.
10대∼20대의 성역으로만 여겨지던 아르바이트 시장에 50∼60대가 등장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테이블을 닦는 장년 아르바이트생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65세 이상만 고용하는 ‘지하철 택배’도 유행을 타고 있다.
18일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집계한 2013년 아르바이트 동향 자료를 보면 60세 이상 구직자가 등록한 이력서는 최근 3년 사이 8배로 늘어났다.
2010년 288건에 불과하던 60대 등록 이력서는 2011년 598건, 2012년 1천606건, 2013년 2천469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같은 기간 40대와 50대 구직자가 등록한 이력서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40대는 2010년 9천444건, 2011년 2만76건, 2012년 3만5천373건, 2013년 3만7천582건으로 많아졌고, 50대는 2010년 2천944건, 2011년 5천970건, 2012년 1만3천100건, 2013년 1만4천68건으로 증가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알바천국에 이력서를 등록한 50세 이상 구직자가 희망하는 업종 1위는 고객상담이었다. 특별한 기술은 필요 없지만, 사람을 대하는 연륜을 십분 활용할 수있기 때문이다.
이어 대형마트, 운전직, 사무보조, 포장·조립, 전화주문·접수, 물류·창고관리, 보안·경호·경비, 음식점, 백화점 아르바이트 등이 50세 이상 구직자가 선호하는 직종이었다.
알바천국은 이러한 추세에 맞춰 40세 이상 아르바이트생을 선호하는 일자리만 모아놓은 ‘중장년 채용관’을 운영하고 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1기 시니어 기자로 선정된 정운관님(56년생)은 경북 상주 출신으로 덕수상고를 나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한국산업은행 행원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이후 한주통상과 자동차 부품회사인 세종공업 스로바키아 사장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증권 등 자산관리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고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하십니다.
젊은 시절 은행원을 거쳐 건설회사, 종합무역상사 등 다양한 직장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최근에는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주로 노후설계 쪽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가락시장 역에서 하루 4시간씩 ‘노후진단 및 일자리 무료상담’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이같은 은퇴설계 무료 활동이 벌써 3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 활동을 하면서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과 인생의 애환을 나누고 그 분들의 살아온 과거와 살아갈 미래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교환하신다고 합니다.
평소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기 좋아하고 늘 책과 가까이 하면서 세상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고 하시네요. 특히 한국 노인인력개발원과 고용사회고용진흥원과 인연을 맺고 전문 상담원으로 활동하면서 직업 상담 및 일자리 상담이 왜 필요하고 그분들을 위해 제가 하는 일이 왜 보람된 일인지를 늘 깨닫고 있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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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자를 돌보아 준지도 7년이 되었다. 정작 친자식을 기를 때에는 매일 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아내만 애들하고 가까이 지냈지 나는 자식들이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은 기억에 남은 것이 많지 않다. 그러나 외손녀와 외손자는 태어나서부터 거의 매일 돌보아주고 매일 매일 재롱을 보아가면서 살아온 탓에 모든 변화가 눈에 선하다. 그래서 하루만 그 모습을 보지 않아도 섭섭한 마음이 들 정도다.
아들이 뒤늦게 결혼해 이제 6개월여 된 친손자를 보게 된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다만 친손자는 아들, 며느리가 맞벌이하는 관계로 안사돈이 돌봐오고 있고, 결과적으로 외손자만큼 자주 보기는 쉽지 않다. 우리 집에 있었다면 이제 조금 있으면 방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내가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 책상 설합을 열고 안에 들어 있는 이것저것을 다 꺼내 들고 입으로 가져갈 때 쯤 일 것이다.
외손녀가 8살이 되면서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니까 아내는 더욱 바빠지게 되었다. 1학년 때 학교에서 일찍 파하면 집에 왔다가 학원 몇 군데 왔다갔다 하는 것이 요즈음 세태이고 보면 저놈을 어떻게 돌보아 줘야 할지 하는 아내의 걱정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아내는 그 귀찮음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열심히 손녀딸 뒷바라지 할 생각만 가득했다. 그래서 아내는 5일간은 아예 딸네 집에 머물고 주말에만 돌아오겠다고 한다. 그럼 나는 5일간 혼자 살아야 하는 팔자이다. 몇 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지만 아내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어코 조마조마하던 문제가 터졌다. 월요일 아침 출근 전에 아들과 며느리가 손녀딸을 데리고 집에 왔다. 갑자기 안사돈이 아파서 우리가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결혼하고서 단 하루도 우리 집에서 잠을 잔적이 없던 아들 내외가 5일간을 같이 지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아이 양육 문제로 이런 저런 대화가 오고 가게 되었다.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계속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외손자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어서 그 생각만 하던 아내에게는 양 쪽을 다 해결해야 한다는 판단에 앞서 7년이나 정 들면서 키워 온 외손녀 생각만 가득했다. 내가 친손자를 돌보게 되면 외손녀는 어떠한 대책도 없는데 하는 걱정하노라고 며느리 표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에게 핀잔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신 걱정은 이해하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무지 섭섭해 할 것이다. 따라서 며느리 앞에서 너무 외손자 얘기를 많이 하지 말라.’ 적어도 두어번은 얘기 한 것 같다. 그리고 아들 내외에게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손자는 양육해 줄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엄마도 있고 아빠도 시간이 제법 있으니 분담하고 시간을 쪼개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잘 해결 된 줄 알았다.
금요일 날 퇴근하여 먼저 집에 온 아들 녀석의 얼굴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나 ?’ 하고 무심히 생각하고 있는데 민감한 아내가 아들에게 추궁하기 시작했다. 망설이다가 결국 꺼낸 아들의 말은 ‘ 엄마가 아침에 아내와 무슨 얘기를 했길래...’ 라는 것이었다. 특별한 말이 아니라 외손자 문제를 누나와 상의를 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외손자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진심이었지만 그것이 며느리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지를, 이미 남편에게 몇차례 주의를 듣고서도 또 깜빡하고 만 아내의 실수였다.
"어머니는 딸만 챙기고, 외손녀만 이뻐하고. 친손녀는 왜 미워하느냐"는 그야말로 황당한 오해가 발생하였고 그 일로 아들이 며느리와 다툰 것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 연락도 없고 손녀딸을 데리고 오지도 않았다. 안사돈이 아프다고 했는데 다 나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대안이라도 찾은 것인지 궁금했지만 3일을 기다린 다음에 결국 전화를 걸었다. 며느리 친구가 마침 인근에 살고 있어서 당분간 맡아 주기로 했으니 염려 말아라라 아들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 안심을 했다.
딸에게 달려간 아내도 딸과 잘 협의를 했다. 엄마의 말을 들은 딸은 즉석에서 "엄마 그동안 돌보아 준 것도 고마운데. 우리 애들은 어떻게 하든 방법을 찾아낼 테니 우선 동생 애를 봐 주세요" 라고 하여 아내를 안심시켜 주었다.
설 전날에 큰집에 가서 명절 음식을 준비하던 아내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며느리가 울면서 전화가 왔는데 상당히 심각한 상태라는 것이고 지금은 아들과 며느리 모두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내일 설날에는 친척들을 만나 ‘새로 태어난 손녀딸 자랑도 해야 되는데 자칫하면 아들 내외가 참석 못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니 걱정이고 단순한 부부싸움을 한 것인지 좀 더 큰 문제인지 파악이 되지 않으니 난감했다.
아내는 먼저 번 문제도 있고 해서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문자를 아들과 며느리에게 각각 날렸다. ‘사랑하는 며느리, 우선 나하고라도 대화하자. 내가 최선 다해 해결할게. 우린 가족이쟎니.’ 다행히 내 진심이 통했는지 아들 내외가 저녁에 집에 찾아 왔고 대화를 통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는 함께 웃으면서 이튿날 큰집 차례에 무사히 참석하게 되었다.
동창들을 만나거나 다른 모임에 가서도 손자 돌보는 것은 많은 이들의 고민이다. 어떤 이들은 "친정 엄마가 돌보아 줄 수 밖에 없지 않느냐" 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 친정 엄마가 무슨 죄 졌냐" 고도 하며 어떤 이들은 "우리 세대가 무슨 업이 있냐? 지 새끼들은 지가 키워야지" 하는 등 다양한 얘기들을 한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확고한 원칙이 있다. 내가 내 손자를 사랑하고 내 아들 딸을 사랑하니까, 우리는 한 가족이니까, 우리가 손자들을 돌보아 줄 수 있는 건강을 아직은 가지고 있으니까, 염려 말아라 아들 딸. 엄마 아빠가 책임질게...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로서 자식을 어떻게 해서든지 대학까지 보내야 했던 세대로서 이제는 손자들 모두의 양육까지 책인져야 하느 세대는 과연 슬프기만 한 것일까?
그래도 딱 한가지 어른이 된 자식들에게 듣고 싶은 노래가 하나 있다.
“ 엄마,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시니어 기자 정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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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립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시니어 기자단’ 모집
-다시 뛰는 인생2막 ‘나도 기자다’
프리미엄경제신문 이투데이의 자회사인 이투데이 PNC(Passion & Creative)가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 시니어 기자단’을 모집합니다.
시니어 기자단은 액티브 시니어들의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의 현장’ 소식과 함께 인생2막-자기계발 성공 스토리, 애환과 고통, 기쁨 등을 취재하게 됩니다.
선정된 기자단은 소정의 교육을 거쳐 2014년 2월부터 시니어 모니터링 업무와 현장 취재기사를 작성하게 되고, 작성된 기사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사이트에 게재됩니다.
50대 이상 신장년층들은 우리 사회의 주춧돌이자 근간이며 버팀목입니다. 하지만 직장-자녀문제-부모-집안 대소사-건강-대인관계 등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열정은 누구보다 뜨겁습니다. 단지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기에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신장년층은 명분과 격식, 보수적인 사회적 가치에만 연연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온갖 혼을 불어넣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즐기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투데이 PNC가 운영하는 시니어 전문 미디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당당한 시니어들의 고품격 Life 정보 웹진으로 ‘2막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e-시니어’ ‘‘Dynamic Senior’의 신나는 놀이터’‘시니어들의 애환과 고통을 나누는 사랑방’을 지향합니다.
참여를 희망하는 시니어들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많은 성원과 지원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 songbird@bravo-mylife.co.kr (02)799-6712
‘브라보마이라이프’ 시니어기자단 1기로 선발된 강애수님이 보내온 글을 싣습니다.
두 남매를 둔 강애수님은 목원대 기악과 출신으로, 결혼하기 전부터 음악학원을 5년 정도 운영했는데 연년생으로 아이를 출산하는 바람에 학원운영을 접어야만 했던 경력단절 여성중 한 분이십니다. 큰 딸은 카드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 중이고 둘째 아들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첫 취업에 실패의 고배를 마신 터라 보듬으며 다음을 위해 힘찬 파이팅을 보내고 있다고 하십니다.
강애수님은 작은아이 대학입학과 동시에 컴퓨터를 배운 후 우연한 기회에 이마트모니터와 자문위원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를 하며 글을 쓰고 모니터링을 하는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글을 쓴다거나 감성적인 모습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감을 얻었고 활동범위를 넓혀 가고 있습니다.
"넓혀 갈수록 나약하기만 했던 제가 얼마나 성숙했고 생각의 폭도 넓어졌는지 스스로도 놀랐답니다"
현재 고양시 여성-복지참여위원, 양성평등교육진흥원통신원, 서울톡톡기자, 금융감독원 이용자 리포터,안행부 생활공감모니터, 경기도 민원모니터 등 너무나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현재 활동하는 거의 모든 곳에서 저는 왕 언니로 통하고 있다고 하네요. 아들딸과 같은 청소년들과 활동하는 곳이 많다보니 성실함과 책임감은 기본이었다고 합니다.
브라보마이라이프 시니어기자단 모집 사고가 나간후 얼마되지 않아 곧바고 응모 지원서를 보내올 정도로 열정이 뜨거우신 분입니다.
본인 소개서 중 한 문장을 소개해드립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해 왔고 자칭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테일한 기사도 쓰고 싶고 시니어로서 더 큰 도약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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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희로애락을 기억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들이 점차 흐려졌지만 달콤한 커피향이 그리울 때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습니다.
변함없이 뚜렷하게 생각나는 것들 중 한 가지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젊은이 들이 읽는다면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 불가한 이야기지만 아련한 그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70년대에는 남학생은 보병 기초교육 여학생은 의무병 교육을 교련이라는 과목으로 수업을 받았습니다.
저희 학교는 여고이고 시골이다 보니 교련복은 따로 없었고 체육복으로 대신했고 적십자 마크가 새겨진 구급약 가방은 사선으로 길게 메고 다녔습니다. 화생방 훈련 때는 방독면 대신 비닐포대를 뒤집어썼지요.
도시 학교와 쫌~~~수준 차이를 느꼈지만, 공부는 꽤 잘하는 학교였답니다.
간호대 출신의 교련교사에게서 주로 응급처치, 화생방 대치법, 심폐소생술, 들것에 환자 싣고 달리기 등 구급요령을 집중적으로 배웠고 장교출신의 남자 선생님한테는 제식훈련을 받았습니다.
교련검열이라고 큰 행사 때에는 지글지글 타는 태양 아래에서 운동장을 돌고 또 돌고 몇 시간씩 연습을 하며 줄 맞추느라 옆 눈질 하며 너무 긴장하여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했습니다. 받들어 총! 충성! 구호소리 뒤에는 맞추는 소리가 척척 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불합격으로 재 점열을 받아야 했습니다.
제식훈련은 오와 열이 생명이었죠.
하나! 하나! 왼발! 왼발!
둘! 둘! 오른발! 오른발!
똑바로 맞춰 소리와 동시에 공식대로 왼발을 먼저 움직여야 하는데 로봇처럼 같이 오른손과 오른발을 움직이는 아이가 꼭 있어 기합받기를 수없이 반복했지요. 저녁에 부모님께 기합 받아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일러도 전시상황 대비 실전훈련 미리 하는 것인데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 시절엔 교권에 대항 자체가 불가했지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요즘은 예전과 같은 강도의 훈련을 받게 된다면 아마도 부모님이나 학생들 동영상 찍어서 교육청에 신고 들어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그 힘든 훈련을 감내 할 수 있었던 것은 반쪽인 내 나라 내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지요.
그뿐인가요. 사열을 받기 위한 제식훈련 시간에 우로~봐! 충성! 고개 돌리고 소리 지르느라고 목이 터질 것 같았지요.
실지로 성대가 파열된 아이도 있었는데 칭찬을 얼마나 하던지 칭찬의 효과는 만점이었지요.
그 후 구령 소리는 군대 연병장 이상이었습니다. 그렇게 구령 소리 질러대고도 수다는 또 얼마나 떨었는지 그 시절 돌아보면 수다 A++ 받아도 부족 할 것 같아요.
앵무새처럼 똑 같은 예기를 반복(누가 누구를 좋아하는데 사랑의 멜로디가 어쩌구 저쩌구...유치하다는 등) 웃고 또 웃고 소통이 얼마나 잘 되었던지요. 울고 있어도 웃음이 나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소통이 찐하게 무르익어 갈 때쯤 되면 교련선생님은 찬물을 짝 끼언지며 집합하라고 하고 기합 들어갑니다.
하지만~~~
저는 교련시간이 좋았죠.
왜?
죽어도 하기 싫은 수학과 과학수업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나름대로 저와 같은 학생들에게는 인기 과목이었지요.
저는 교련 실기대회 선수로 출전하기 위해 교련시간은 집중모드로 바뀌며 공식을 달달달 외웠지요.
교련도 공식이 다 있거든요. 삼각건 매듭 공식대로 묶지 않으면 절대 풀리지 않습니다.
붕대 감기는 더 어렵습니다. 다친 사람 생각해서 우아하게 감으면 통째로 벗겨져 버리고 말지요.
저는 붕대 감기 연습을 카레를 좋아하는 남동생을 이용했답니다. 농사지은 감자와 양파를 쑥쑥 썰어 기름에 볶다가 카레가루를 넣어 국처럼 끓여주었지요. 용돈으로 카레가루를 사기에 버거워 국처럼 끓여주는데도 동생은 밥을 듬뿍 말아 마당을 돌아다녀 소화시켜가며 먹고는 머리를 내밀었답니다.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눈 감고 감아도 주위에 탄성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봐도 작품이었었죠. 그 작품이 저에게 1등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 주었었고 꿈꾸던 점수 만점을 난생처음 받아보았습니다. 그 때 정말 많은 칭찬을 받았고 보답으로 담임선생님이 반 전체 친구들에게 크림빵까지 제공했답니다, 정말 제가 잘 하긴 했지요. 그 때 그 인기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답니다. 제가 고교 시절에 누렸던 최고의 특권이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요즘도 실생활에 요긴하게 사용하구요.
아~~~벌써 30년이 흘렀네요. 멋진 하모니를 이루던 함성!!! 그 함성을 사랑합니다.
교련수업 새삼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알립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시니어 기자단’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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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기자단은 액티브 시니어들의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의 현장’ 소식과 함께 인생2막-자기계발 성공 스토리, 애환과 고통, 기쁨 등을 취재하게 됩니다.
선정된 기자단은 소정의 교육을 거쳐 2014년 2월부터 시니어 모니터링 업무와 현장 취재기사를 작성하게 되고, 작성된 기사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사이트에 게재됩니다.
50대 이상 신장년층들은 우리 사회의 주춧돌이자 근간이며 버팀목입니다. 하지만 직장-자녀문제-부모-집안 대소사-건강-대인관계 등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열정은 누구보다 뜨겁습니다. 단지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기에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신장년층은 명분과 격식, 보수적인 사회적 가치에만 연연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온갖 혼을 불어넣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즐기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투데이 PNC가 운영하는 시니어 전문 미디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당당한 시니어들의 고품격 Life 정보 웹진으로 ‘2막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e-시니어’ ‘‘Dynamic Senior’의 신나는 놀이터’‘시니어들의 애환과 고통을 나누는 사랑방’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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