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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따뜻한 콘서트>덕분에 부자지간 돈독해져
- 동년기자로 활동한 지도 어느덧 만 1년이 돼가고 있다. 일상의 삶 속에서 나태(懶怠)에 빠져 글쓰기를 망각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내가 정말 글다운 글을 썼을까?” 하고 뒤돌아보며 반성을 하게 된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지난 1년 동안 한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기자생활 1년 동안 덤으로 얻은 행운도 많았다. 대학로에서 두 번씩이나 연극을 관람했고 올 초에는 압구정동에서 이라는 뮤지컬도 관람했다. 젊어서는 살기 바빠 문화생활을 못했고 나이 들어서는 관심이 떨어져 고작해야 1년에 영화 한 편 보기도 쉽지 않았는데, 지난 1년 동안 동년기자로 활동하면서 문화생활까지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사한 마음이다. 지난 2월 22일에도 큰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여의도 KBS홀 본관에서 공연된 이투데이 신춘음악회 에 초대된 것이다. 필자는 며칠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그런데 당일 아침부터 날씨가 잔뜩 흐리더니 오후가 되자 오락가락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필자가 사는 인천공항 근처에는 진눈깨비와 비가 섞여 내리면서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퇴근시간에 맞춰 막내아들에게 회사로 나오라고 했다. 공연장까지 가는 방법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몇 번이나 확인해보았지만 쉽게 가는 노선이 잘 찾아지지 않았다. 결론은 회사 통근버스로 김포공항까지 이동한 다음 공항전철역에서 9호선 급행열차로 갈아타고 가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려 저녁 먹을 시간이 없었다. 가다 보니 허기는 또 얼마나 몰려오든지…. 서둘러 현장에 도착해 일단 표를 받아놓고 시간을 보니 공연시작 20분 전이었다. 빠듯하긴 했지만 저녁을 굶고 관람할 수는 없어 근처 김밥 집으로 달려갔다. 모처럼 아들과 둘이 마주 앉아 김밥과 라면을 시켜 먹으면서 오랜만에 서로의 관심사를 물으며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식사가 끝나고 부리나케 공연장으로 돌아오니 공연은 이미 시작되었고 겨우 안내를 받아 착석하고 관람을 했다. 오프닝 무대로 타악그룹 RUN의 ‘두드림’은 힘차고 역동적으로 리듬을 타고 있어 오랜만에 필자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었다. 겨울 끝자락에서 만난 ‘마음이 따뜻해지는 콘서트’는 오는 봄을 맞이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필자의 마음을 녹여줬다. 아들은 가수 린의 인기 드라마 OST곡을 제일 좋아했다. 자신의 세대와 공감이 되고 감성이 맞아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깜찍한 걸그룹 ‘모모랜드’의 공연은 싱그러워 젊은 층의 관람자들은 물론이고 시니어들도 한마음으로 공감하고 어우러진 멋진 공연이었다. 중견가수 김장훈의 넘치는 끼와 재치는 마력이 있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면서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문화는 대중과 함께 호흡을 해야 그 힘이 발휘된다는 생각을 새삼 해보았다. 마지막으로 메인무대를 장식한 가수는 등장하기 전부터 한껏 기대를 갖게 한 대형 록 가수 전인권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울림통, ‘전인권 밴드’의 현란한 연주, 관중을 사로잡는 매력과 포스가 한껏 발휘된 무대였다. 공연의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 시간에 갈 길이 먼 필자와 아들은 아쉬움을 남긴 채 자리를 떠야 했다. 아들은 공연장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는 내내 공연의 잔상(殘像)에서 벗어나지지 않는지 따뜻하고 멋진 공연이었다고 끊임없이 조잘댔다. 황급히 돌아오면서 9호선 국회의사당역을 찾느라 이리저리 헤맨 필자와 아들은 영락없는 촌뜨기 신세였다. 겨우 지하철을 타고 두어 정거장쯤 갔을 때 무심코 안내방송으로 다음 정차할 역이 노량진이라는 멘트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타고 만 것이다. 일찍 집에 도착하려고 공연 엔딩도 보지 않은 채 조금 일찍 빠져나왔는데 반대로 가는 지하철을 타다니! 필자와 아들은 마주보면서 멋쩍은 웃음을 나누고 노량진역에서 내려 부리나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갈아탔다. 우여곡절 끝에 공항전철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택시 잡기가 힘들었다. 승강장을 보니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30여 미터나 늘어서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걸어가다가 택시가 보이면 타자. 그게 더 빠르겠다.”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걷기 시작했는데 그날 밤, 집에 도착할 때까지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한 시간여를 눈길을 걸었다. 칼로 에이는 듯한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미고 귀를 손으로 감싸면서 걸었지만 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걸어가는 길이 싫지 않았다. 오랜만에 부자가 함께 걷는, 눈 내린 밤길은 따뜻한 콘서트만큼이나 훈훈했다.
- 2017-02-2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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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간] 극장 앞, 배우들의 카페 ‘꽃을 바치는 시간’
- 대학로 소극장에 가보면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로비가 없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무대이고 공연이 끝나면 서둘러 현실 속으로 달려 나와야 한다. 공연이 끝나고 대화를 나눌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 실정. 그런데 최근 공연의 여운을 조금이나마 오래 남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창경궁 돌담길 옆 카페 ‘꽃을 바치는 시간’이다. 극장 ‘30스튜디오’ 개관과 함께 등장한 이곳은 배우와 관객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배우가 내리는 커피 어떠세요? 작년 10월 28일, 연희단거리패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공연장이자 각종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30스튜디오(이하 30)’를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에 열었다. ‘30’의 짝꿍(?), 카페 ‘꽃을 바치는 시간(이하 꽃바시)’도 같이 관객을 맞이했다. ‘30’ 앞 작고 아담한 공간을 온실처럼 꾸며놓고 간단하게 커피와 차를 내다 파는 곳이 ‘꽃바시’다. 안에는 연극 관련 서적과 대본이 꽂혀 있는 책장이 있고, 무엇인가에 몰두해 앉아 있는 배우들이 늘 눈에 띈다. 커피를 내리고 차를 만드는 이들 또한 배우다. ‘30’을 준비하면서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인 연출가 이윤택은 극장에 카페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공연은 공연자와 관객의 만남인데 이들이 만나 얘기할 공간이 없다고 느낀 것. 조금이나마 더 만나고 얘기하고 공연의 깊이를 안고 나갈 장소로 극장 앞 카페만큼 좋은 게 어디 있을까. 더 나아가 조금은 서툴더라도 연희단거리패의 배우와 스태프가 직접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온전히 공연자와 관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현재 10명 정도의 단원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으며, 보건증도 받아 순환 운영을 하고 있다. ‘대학로콩집’ 원두를 공수해와 안정적인 맛을 자랑한다. 공연 전 카페를 이용하다 보면 유독 진한 분장을 한 배우가 커피를 내리고 또 차를 내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연장에서만 보던 배우를 카페 직원과 손님으로 만나는 느낌도 남다르다. 블랙리스트 작가의 해탈적 발상 ‘꽃을 바치는 시간’은 이윤택이 쓴 희곡으로 이른바 블랙리스트 역풍을 맞은 작품이다. 아르코 문학창작기금(문학창작기금사업 희곡 부문)에서 1위로 선정됐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우수작품 제작지원에서 탈락했다. 순수예술작품을 공연하는 극장에 주던 지원사업도 통보 없이 흐지부지 사라졌고, 해외공연 항공료 지원도 끊기는 등 쓰디쓴 칼바람을 체감했고 체감 중이다. 문화계의 연륜 있는 공연단체로서 다른 공연 팀과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는데 이마저도 할 수 없는 실정에 놓이게 돼 상실감은 더욱 컸다고. 결국 자구책 마련을 위해 단원들 숙소와 극장을 처분해 살림을 하나로 합친 것이 ‘30스튜디오’였던 셈. 그리고 카페 이름이 ‘꽃을 바치는 시간’이 된 계기다. 연희단의 중역 배우인 오동식씨는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다가 어차피 ‘30스튜디오’라는 곳이 생기게 된 원인이 희곡 ‘꽃을 바치는 시간’이었기에 카페 이름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공연을 준비하는 시간을 관객에게 꽃을 바치는 시간으로 표현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반짝이는 불빛 따라 골목 안으로… 카페는 상시 열려 있다. 지금은 상주하는 단원과 배우들이 오가지만 누구든지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두 팀 정도의 손님이 카페를 찾는다고. 시내하고 가깝지만 고궁 옆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아직은 한적하다. 공연 전후 분위기도 물론 사뭇 다르다. 공연을 기다리면서는 차 한잔,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는 만나고 싶었던 배우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장소다.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도 지인들과 이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고 말이다. 로비가 없는 소극장이 많아지면서 공연에 관한 얘기 한 번 안 나눠보고 술집으로 밥집으로 무조건 흘러들어가도 되지 않으니 배우들 또한 반가운 곳이다. 어른들의 놀이터로 꽃바시 어떨까? 계절이 따뜻해지면 꽃바시가 좀 더 바빠질 것 같다. 읽을 책을 좀 더 가져다 놓고 북카페로 활용할 계획이다. 인문학 강좌나 시, 희곡과 관련한 워크숍도 생각하고 있다. 단지 공연만 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와 문학이 만나는 중년, 시니어층의 놀이터로도 모색하고 있다. 이곳에 와서 공부도 하고 좋은 얘기도 나누면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꽃바시’가 바로 창경궁과 붙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여름이 되면 2층과 옥상 공간의 끝내주는 전망을 무기로 공개할 생각이다. 특별하게 시끄럽지 않다면 배우들의 팬 미팅이나 ‘작은 연극’ 등을 선보이는 문화공간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벌써 한여름 밤의 꿈을 연상케 하는 옥상의 정취가 기대된다. 카페 이용정보 주소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27길 27-6 전화 02-766-9832 영업 11:00~22:00 월요일 휴무
- 2017-01-2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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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걷고 싶은 도성길
- 지난 주말 서울 하늘은 푸른 바다 빛이었다. SBA 희망설계재능기부연구소 (박주순 소장) 산악회원 (전창대 산악대장) 12명은 아침 10시 동대문역에 모였다. 흥인지문에서 낙산공원을 오르고 와룡공원을 지나서 말바위 안내소까지 걸었다. 잘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꼭 걷고 싶은 성곽길이다. 올겨울 제일 추운 날씨에 모두가 에스키모처럼 중무장이다. 낙산은 북악ㆍ인왕ㆍ남산과 함께 내사산을 이룬다. 서울의 내사산을 잇는 서울 성곽길은 서울의 4대문(숙정문ㆍ흥인지문ㆍ숭례문ㆍ돈의문터)과 4소문(창의문ㆍ혜화문ㆍ광희문ㆍ소의문터) 및 성곽길 18.2Km를 따라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체험하는 탐방로다. 낙산은 해발 125m의 낮은 산으로 산모양이 낙타의 등과 같다고 하여 낙타산 또는 낙산 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서울 종로구와 성북구에 걸쳐 자리한 산으로 서울 도성의 동산(東山)에 해당 된다. 낙산은 풍수지리상 서쪽 우백호인 인왕산에 대치되는 동쪽 좌청룡에 해당된다. 낙산 정상에 낙산공원이 조성되어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대학로, 벽화로 유명한 이화마을 등과 연계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는 곳으로 성곽 안팎으로 서울 시가지를 조망하기에도 좋다. 성곽길이 예쁘게 조성 되어있어 누구나 탐방하기에 편하다. 낙산공원에서 혜화문을 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한양도성은 북악산(342m), 낙산(126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잇는 총길이 약18.2Km, 높이는 약12m의 성곽으로 평지는 토성, 산지는 산성으로 축조되었다. 한양도성은 태조4년(1395)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 축조 계획에 따라1396년 농한기인 1,2월의 49일동안 전국에서 11만8천명을 동원 성곽의 대부분을 완공하였다. 가을 농한기인 8,9월의 49일 동안에 다시 79,400명을 동원하여 봄철에 못다 쌓은 동대문 구역을 완공하는 동시에 4대문-동쪽 흥인지문, 서쪽 돈의문, 남쪽 숭례문, 북쪽 숙청문(숙정문으로 개칭)-과 4소문-동북 홍화문(혜화문으로 개칭), 동남 광희문, 서북 창의문, 서남 소덕문(소의문으로 개칭)을 준공 하였다. 성곽길을 따라 오르면 와룡공원이 나왔다. 날씨는 몹시 추웠지만 바다처럼 푸르른 하늘을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양지바른 쉼터에 풍성한 뷔페식당이 차려졌다. 정상주잔을 높이 들고 “위하여!”를 소리 높여 외쳤다. 나이를 잊고 재능기부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건강을 다지는 회원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말바위 안내소에 삼청공원으로 하산하였다. 칼국수와 막걸리 한 사발에 추위도 사르르 녹고 말았다. 잘 다니지 않지만 꼭 한번쯤 걷고 싶었던 도성길을 완주한 기쁨은 무엇으로 바꿀 수 없었다.
- 2017-01-1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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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요
- 명동에 나갔다가 버스를 잘 못 타서 집까지 다른 코스로 돌게 되었다. 대학로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버스가 동대문 방향으로 직진하고 있었다. 버스 환승제가 있으니 적당한 정류장에서 갈아타면 되고 또 필자는 시간도 여유로워 뭐 그리 큰일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동대문을 지나 창신동 필자가 다닌 여고 앞을 지나고 있다. 꿈 많던 여중 고 시절 6년을 보낸 동네라 가슴이 뭉클해서 유심히 창문 밖을 내다보게 되었다. 지금은 필자가 다녔던 우리 중 고등학교는 벌써 언젠가 강남으로 이사했고 그 유서 깊고 멋진, 빨간 벽돌과 담쟁이의 조화가 아름다웠던 추억이 가득한 학교건물은 없어지고 멋없이 삭막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모습이 보여서 마음이 쓸쓸하다. 지난해까지 겨울이 되면 남편은 찜질방에 같이 가자고 성화였다. 필자는 더운 게 싫어서 사우나나 찜질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뜨거운 방에 들어가지 않고 시원한 방도 있으니 달콤한 식혜도 마시고 맥반석 달걀도 사 먹자는 꼬드김에 빠져 몇 번 따라갔다. 자주 다녀보니 시설이 좋더라고 하며 집에서 멀리 떨어진 숭인동까지 데리고 간 적이 있다. 가보니 그곳은 바로 필자가 중 고등학교 때 신나게 놀러 다니던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 자리였다. 그렇게 유명했던 실내스케이트장이 어느 날 사라지고 그 자리에 커다란 찜질방이 생겼다. 우리 학교 바로 건너편에 있어서 체육 시간이면 그곳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보냈고 방과 후에도 친구들이랑 몰려가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스케이트를 탔던 즐거운 추억의 장소가 지금은 규모가 대단히 큰 찜질방이 된 것이다. 그 당시에 서울에는 사시사철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곳이 여기 한 곳뿐이어서 많은 학생에게 인기가 좋았으며 심심치 않게 남학생들과의 친분도 가질 수 있던 우리들의 사교장이기도 했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대전천에서 이미 스케이트를 배웠으므로 이곳은 좋은 놀이터였다. 실내 스케이트장은 둥근 링크가 있고 우리들은 왼편으로 커브를 돌면서 스케이팅을 즐겼다. 스케이트장 안에는 항상 신나는 당시 유행하던 음악이 흘렀다. 롱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은 링크를 돌면서 스케이트를 탔고 링크 가운데에는 피겨스케이트를 신은 여자애들이 회전하거나 무용처럼 춤추듯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도 예쁘다고 생각했었지만, 오늘날 김연아 선수와 같은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트의 여왕이 우리나라에서 나올 줄은 누가 알았을까?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두 시간을 타고나면 얼음 바닥이 패기도 하고 약간 녹기도 해서 휴식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잠시 빙질을 고르기 위해 휴식시간을 갖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아쉬운 듯, 한 바퀴라도 더 돌고는 모두들 링크 밖으로 나왔다. 우리 친구들은 링크를 둘러싸고 있는 관중석에 모여 앉아 매점에서 사 온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30분 휴식시간을 즐겼다. 그러는 동안 스케이트장 얼음판 위에서는 직원들이 가래와 같은 도구로 얼음판을 밀고 다니며 패인 부분을 손보고 녹은 빙판을 보수해 주었다. 필자는 항상 친구 서너 명과 같이 다녔는데 서너 명 같이 온 남학생들과의 즉석 만남도 있었고 휴식시간이 끝나 다시 스케이트를 탈 때는 줄줄이 이어서 타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필자를 따라와서 사귀고 싶다고 수줍게 말하는 남학생도 있었던 가슴 떨리고 순수했던 즐거운 학창시절이었다. 서울에서 하나밖에 없던 학교 건너편 추억의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은 찜질방이 되었다. 그래도 달콤한 식혜와 맥반석 달걀을 먹으며 그때를 추억해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었는데 요즘처럼 업종이 자주 바뀌는 시대에 아직 그곳이 찜질방으로 남아있는지 버스 안에서 목을 빼고 돌아보았지만 알 수가 없다. 시간 내어 언제 한번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인생은 항상 그리움의 연속인 것 같다.
- 2017-01-1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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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과천시민극장 연극 <우리읍내>
-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감격에 젖은 백전노장은 손을 번쩍 들어 객석과 무대를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정확히 27년 만의 커튼콜. 과천시민극장의 연극는 백발이 돼 돌아온 노배우의 재기와 시민들의 소망을 이루어준 ‘꿈의 무대’였다. 두려움을 떨치고 조명 앞에 당당하게 선 그들만의 이야기는 밤새도록 끊일 줄 몰랐다. 과천시민극장의 다섯 번째 연극 작년 12월 1일 과천시민회관 소극장. 공연을 이틀 앞둔 극장 안은 긴장감과 설렘이 감돌았다. 소품을 나르고 무대를 걷는 시민배우들의 모습에서 전문배우 못지않은 집중력마저 느껴졌다. 과천시민극장은 작년까지 5기수의 시민배우를 배출했다. 작년 9월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5기 시민배우 12명을 선발했고 출연자가 많은 의 특성상 시민배우 1기에서 4기까지 총출동해 공연을 완성했다. 시민극장이라 해서 수준 이하일 것이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 극단 ‘모시는 사람들(모들)’의 전문배우들이 시민배우를 도와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백제예대 방송연예과 서민희 교수의 연출, 극단 모들 이재훤 배우의 연기 지도로 전문성을 한층 올렸다. 오랜 호흡을 맞춰온 과천시민극장의 음향과 조명, 무대 스태프 또한 꼼꼼하게 무대를 챙겼다. 과천시민극장의 드림팀은 직장인·주부·선생님·학생, 20대에서 60대 남녀노소 나이를 불문하고 배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무대가 그리웠던 그가 돌아왔다, 연극배우 전한원 본지 지난해 11월호 ‘브라보가 만난 사람’에서 찾아뵀던 김정숙 연출가는 인터뷰 당시 시니어 연극을 이야기하다 과천시민극장에 참여하는 60대 배우를 언급한 바 있다. 젊은 시절 연극을 그만뒀던 김정숙 연출가의 극단 선배가 시민배우로 돌아왔다고 했다. “인생이라는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이제 진짜 배우가 될 것 같다”고도 말했다. 그가 바로 무대감독 역의 전한원(65)이다. 전한원은 1989년 연극 공연을 마지막으로 연극계를 떠났다. 이후 평범한 가장과 직장인으로 살아온 그는 은퇴 후 그렇게나 그리워했던 무대로 돌아왔다. 시민극장을 통해서다. “연극을 그만둔 뒤 대학로를 지나갈 때면 고개를 돌리고 다녔습니다. 아예 그곳에서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어요. 집에서는 드라마도 안 봤습니다.” 이 작품에서 무대감독은 이 연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배역. 30년 가까이 무대를 떠났던 그에게 맡겨졌다. “부담스러웠어요. 대본을 딱 읽어보고 이것은 내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배역이 주어지고 나니까 두렵고 떨렸습니다. 배역 소화를 잘 할 수 있을까? 원래 제가 자신감 덩어리인데 말입니다(웃음). 연습 과정에서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고 또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부터 ‘옛날에 내가 배우였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조금 편해졌습니다.” 는 사람이 죽고 사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기에 삶의 깊이를 아는 배우가 필요했다. 무대감독은 전한원이 적역이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노련했고 연기는 더욱 깊어졌다. 은퇴 뒤 넉넉한 웃음과 기품 또한 넘쳤다. 이제 연극이든 영화이든 무조건 도전할 겁니다 에서 의사 깁스 역의 권용각(57)씨는 충훈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잘생긴 이목구비에 나긋하고 지긋한 목소리에 정확한 발음까지. 배우가 아닌 교사가 본업이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권용각씨도 한때 연극과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국어국문학이 전공이지만 대학교 때 연극을 했습니다. 졸업하면서 국립극단에 들어가 연출을 하다가 나왔어요. 과천여고에서는 연극부를 만들어 학생들이랑 연극도 했고요. 대본을 외워 아이들과 하는 독서모임에서 모노드라마 연기도 했습니다. 시민극단은 우연히 오디션 공고를 보고 들어오게 됐습니다.” 작년 2월 권용각씨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심근경색이었다. “제가 수술을 한 다음 심근경색으로 죽은 사람을 세 명이나 봤습니다. 아플 때 생각한 것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한번 해보자’였습니다. 그래서 시민배우에 도전했어요. 지금 너무 행복해요. 무대 위에서 걸어 다니는 게 너무 좋아요. 저는 바로 시작할 겁니다. 안 되면 영화 엑스트라나 하고 다니지요 뭐.”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서 대기할 때 앉아 있었던 의자와 자신의 그림자를 카메라에 담던 권용각씨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덤덤하게 무대를 거닐던 모습. 이제 아이들의 선생님에서 만인의 배우로 거듭날 것이다. 과천시민극단에서 만난 시민배우들은 직업만큼이나 각자의 이야기 또한 다양했다. 배우의 꿈을 이루고 싶은 전업주부, 전직 연극배우였다가 아이를 다 키우고 다시 돌아온 여배우, 은퇴 후 배우가 되겠다는 직장인, 요가 선생, 방과 후 선생님,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 속에 농사를 짓다가 오디션에 참가한 배우 등 과천시민극장의 는 사연과 사연이 만나 아름다운 공연을 만들어냈다. 행복한 시민배우들의 공연, 올해 또 이어지기를 바란다. ☞연극 연극 는 미국 북동부 뉴햄프셔 주의 그로버즈 코너즈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1901년에서 1913년 사이에 일어난 평범한 일상을 의사인 깁스와 지방신문 편집장 웹의 집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연극이다. 극중 주인공인 조지 깁스와 에밀리 웹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죽음을 통해 담담하지만 소중한 하루하루를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 2017-01-1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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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여동생 문근영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 장충단 공원길은 필자에겐 참으로 익숙한 거리이다. 필자가 결혼하고 장충동 주택가의 시댁에서 5년간 사는 동안 많은 시간을 이 공원에서 보냈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공원 깊숙한 벤치를 찾기도 했고 아이가 두세 살 무렵엔 포대기로 둘러업고 산책 나오기도 했다. 공원 한 바퀴 도는 동안 아기는 새근새근 잠들고 공원 안의 평화가 참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보았던 어린이 야구장이 아직도 건재해서 많은 경기가 이루어지고 있다니 기분 좋은 일이다. 국립극장에 가려면 전철 동국대역에서 나와 장충단 공원길 코너를 돌아 국립극장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가면 된다. 공연 시각 전까지 관객들을 무료로 극장 안마당까지 태워다 주어 매우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고마운 교통수단이다. 국립극장은 매우 큰 공연장인 해오름과 중간의 달오름 그리고 소극장인 별오름이 있다. 별오름에서 본 연극공연은 대학로의 여느 소극장과 비슷한 규모의 아담한 공간이었다. 필자가 가끔 보는 공연은 주로 달오름 극장이다. 국립극장에 가기 위해 장충단 공원길을 걸으니 새삼 결혼 초의 옛 생각으로 무언가 그리운 느낌의 감회가 새롭다. 이날은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는 여배우 문근영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이 있는 날이다. 많은 연예인 중에서도 유독 마음 가는 여배우가 있다면 문근영 양이다. 아역부터 시작했으니 나이 어린 배우라 해도 경력이 만만치 않은 중견이다. 더구나 어린 나이임에도 기부를 많이 하고 있다는 착한 배우라서 좋은 이미지로 떠오른다. 문근영의 눈을 보면 선량하다는 게 무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커다랗고 동그란 눈동자는 사람을 끄는 매력으로 호수처럼 맑아 보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이날 공연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러니 어떤 내용이 펼쳐질까보다는 배우들이 어떤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여줄지의 기대가 더 컸다. 거기엔 예쁜 문근영이 줄리엣을 맡아 연기한다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팸플릿을 보니 요즘 TV에서 볼 수 있는 감칠맛 나는 조연인 유명 배우들과 아이돌처럼 예쁜 남자 연기자들이 출연하고 있다. 물론 실물로 본 문근영은 정말 예뻤다. 내용은 잘 아는 연극이지만 무대 활용이나 공간을 이용하는 방법이 독특했다. 배우들이 갑자기 뒤편에서 나타나 좌석 옆 계단으로 종횡무진 등장하는가 하면 객석의 관객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등 관객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무대를 이어나갔다. 너무나 많이 알려진 내용이므로 다 이해한 줄 알았는데 실은 마지막에 가짜 독약을 마신 줄리엣을 보고 로미오가 어떻게 죽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극에 몰두하여 보았다. 다들 잘 아는 이야기로 베로나지방의 유명 가문 캐플렛가와 몬테규가는 원수 집안이다. 캐플렛가의 파티 날 장난스럽게 숨어 들은 로미오는 줄리엣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두 원수 집안의 아들과 딸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렇게 사랑에 빠진다. 그들이 보여준 순수한 사랑과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는 불꽃 같은 열정은 낭만을 찾아보기 힘든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될 것 같다. 줄리엣의 사촌과 대결 중 그를 살해하게 된 로미오가 만투스로 추방당하고 이미 저희끼리 결혼맹세를 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된다. 명문가문의 자제와 결혼을 명한 아버지의 명령에 신부님을 찾은 줄리엣은 가짜 독약을 마시고 42시간만 잠들어 있기로 하고 약을 마신다. 그 소식을 로미오에게 알려야 하는데 만투스 지방에 역병이 돌아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되고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로미오는 줄리엣이 안치되어있는 회당에 찾아와 미리 준비해 온 진짜 독약을 마시고 숨을 거둔다. 이에 42시간 만에 깨어난 줄리엣은 죽은 로미오를 보고 너무나 슬퍼 칼로 심장을 찔러 자살하고 로미오 옆에 눕는다. 아름다운 젊은이들의 죽음이 있고 난 뒤에야 잘못을 깨달은 두 가문은 화해한다. 잘 아는 내용이지만 생동감 있게 펼쳐진 연출에 필자 자신이 극에 참여한 듯 즐거운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어떤 이야기인지 잘 안다고 해도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력에 따라 참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게 연극이라는 생각으로 재미있는 시간을 즐겼다.
- 2017-01-1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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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감]<더 언더독> 내가 만약 동물 보호센터에 있는 유기견이라면…
- 뮤지컬 하면 관객들은 기본적으로 신나는 음악에 짜릿한 사랑이야기, 그리고 완벽한 해피엔딩을 생각한다. 창작 뮤지컬 은 뮤지컬 상식을 깨고 실질적으로 관객의 의식 속으로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길에 버려지고, 이용당하고 또 주인이 잃어버린 유기견의 처절한 생활, 뮤지컬 속 노래와 대사를 통해 그들의 피할 수 없는 슬픈 삶의 끝을 조명해본다. 잔뜩 녹이 슬은 철창 안으로 꾸며진 무대. 이곳은 유기견 보호소다. 버려진 개의 종류도 다양하다. 여행가방 속에 버려졌던 푸들, 투견장 진돗개 ‘진’, 폐기 처분된 군견 셰퍼드 ‘중사’, 그리고 강아지공장 모견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던 말티즈 ‘마티’까지. 다양한 학대와 이유로 들어온 유기견의 일상과 아픔이 공연 속에 펼쳐진다. 어두운 밤. 한 마리의 새 유기견이 들어오면 보호소에 있던 유기견 중 한 마리는 입양 보내진다. 유기견들은 보호소에 후원된 다양한 사료를 먹고 더욱더 예쁘게 돼 새 주인 만날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그 문이 도대체 어디로 통하는지는 오직 셰퍼드‘중사’만 알고 있다. 뮤지컬 은 SBS 프로그램 속 코너 ‘더 언더독: 개를 버리는 사람들’을 모티브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반향이 컸던 인기 프로그램이 소재였기에 계획 단계에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유기견의 안락사라는 충격적인 소재로 흥행 양극화가 분명한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것은 말 그대로 모험. 절대 즐겁게 웃고 손뼉 칠 뮤지컬이 아니다. 극 초반 멋진 군무와 주연 배우의 솔로곡 열창으로 박수가 터지지만 극에 몰입하면서 손보다는 눈이 무대에 집중하게 된다. 모견으로 강아지공장에서 숱한 학대를 받아온 강아지가 노래를 부르는데 박수 치기가 미안할 정도. 뮤지컬이라는 매개로 극을 만들었지만 떠들썩하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게 사실에 근접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새끼 잃은 만신창이 엄마 말티즈 ‘마티’ 말티즈의 실제 끔직한 모습은 TV 프로그램과 각종 포털사이트에 보도된 사진을 통해서 접했을 것이다. 동그란 슬픈 눈의 말티즈 배는 수십 번의 강제 임신·출산으로 해지고 뜯겨 있었다. 에서 하얀색 털 가운을 입고 힘없이 등장한 말티즈 ‘마티’가 바로 강아지공장에서 구조된 모견이다. 무대 뒤 영상은 강제적인 임신과 출산으로 최악의 삶을 사는 모견 ‘마티’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티는 살아갈 힘을 잃은 생명처럼 죽기를 바라고 아파하고 힘들어 신음한다. 실제로 불법 유통되는 강아지공장의 새끼는 어미와 35~40일도 같이 못 있고 경매장으로 팔려 나간다고. 공연 속 모견 ‘마티’는 강아지로 보이는 인형을 안고 다니며 애착을 보이고 분리불안증에 시달린다. 맹인견 늙은 골든리트리버는 눈이 멀어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극 후반에 안락사되는 골든리트리버는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도 주인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주인을 위해 평생을 바친 맹인견은 다시 하늘로 가 주인과 만날 날을 꿈꾼다. 사설 보호소가 아니면 차갑고 딱딱한 그곳에 누워야 한다 유기견이 보호센터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은 10일에서 많게는 20일 전후다. 이들이 그곳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입양 혹은 안락사다. 극 초반, 신이 나서 한 유기견이 사람을 따라 보호소 밖으로 달려나간다. 다다르게 되는 곳은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는 차가운 스테인리스 탁자 위. 너무 기쁘게 유기견 보호소를 뛰어나왔지만 주인이 아닌 주삿 바늘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5분 뒤 신나게 달리던 몸은 생명을 잃는다. 몸이 늘어진 채 커다래진 동공 속으로 자신이 살았던 세상의 마지막 장면을 담아낼 뿐이다. 뮤지컬 은 유기견과 학대 받는 동물들의 이야기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처럼 박수갈채를 연발하고 신나서 소리 지르는 공연을 생각하고 공연장에 들어간다면 적잖이 당황할 수 있다. 대형 뮤지컬에 현실 상황을 적극 반영했다는 것만으로도 은 신선한 도전이다. 무엇보다 은 착한 공연으로 불리며 공연 외 유기견을 위한 다양한 봉사와 사회 계몽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공연장 로비에는 반려견을 맡겨놓고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반려견 돌봄 서비스를 운영한다. 또한, 유료 티켓 1매당 사료 100g이 자동으로 기부되는 ‘유기견 후원 프로젝트’ 등 다채로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웃고 즐기는 뮤지컬을 넘어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볼 수 있는 공연의 등장이 반가울 따름이다. 물론 시니어에게도 뮤지컬 을 권할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유기견이 되는 순간 벌어질 끔찍한 일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2월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한다.
- 2017-01-0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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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세상 앞에서 당당한 마임이스트 유진규
-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천장이 높고 어두운 극장 안은 어린 배우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무겁고 답답했다. 찾아다닌 끝에 밖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섰다.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여니 주황빛 석양이 스며들다 온몸을 감싼다. 문밖에는 까치머리에 안경을 쓴 사내가 태양과 마주하고 앉아 있다. 그는 미래의 마임이스트 유진규(柳鎭奎·64)다. 내면의 대화와 몸짓 언어를 택한 그는 오늘도 소통의 벽에 길을 내며 온몸으로 외치고 있다. 김장난장, 오랜만에 몸 좀 풀까? “어디서 만날까요?” 서울시청 앞 광장 한복판에서 만났다. 인터뷰 약속을 잡은 날, 마임이스트 유진규는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올해로 세 번째인 김장문화제의 축제 프로그램 ‘김장난장’ 예술감독을 맡은 것. 그는 마임이스트이기도 하면서 관록의 축제 장인(匠人)이기도 하다. 축제 불모지였던 춘천에서 국제마임축제를 만들어 25년간 예술감독을 해왔다. 그의 손을 거치면 일상으로부터 탈출이 가능했고, 남녀노소가 한바탕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축제로 거듭났다. 유진규는 이날 새로운 도전, 시민들과 함께하는 김장 퍼포먼스 생각에 한껏 신나 있었다. “김장문화제 주최 측에서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해왔어요. 잠깐 고민을 했죠. 지금까지 공연예술축제를 해왔는데 김장이라니? 그럼 어떻게 접목시켜야 하지? 그때 머리에 그린 그림이 춘천국제마임축제 때 하던 아수라장과 도깨비난장이었어요. 축제다운 난장을 한번 해보겠다고 해서 만든 것이 ‘김장난장’이에요. 저는 축제 난장 전문가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리허설을 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모일지도 헤아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11월 5일 진행된 ‘김장난장’은 젊은 세대에서부터 시니어 세대까지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말 그대로 한판 난장이었다. 몸빼 바지에 고무장갑을 낀 시민들은 스스로 절여지고 다듬어지는 배추 역할로 참여했다. ‘김장난장’이 끝난 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유진규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재밌어했다. 색가루(인체 무해한 전분가루를 사용했다)를 뿌려대서 시민들이 도망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어울려 한껏 즐기는 모습을 봤다. 잘 노는 민족임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축제의 달인(?) 손에서 또 한 번 위트 넘치는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마임 하면 유진규, 유진규 하면 마임 자, 그럼 이제부터는 마임이스트 유진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는 정신없이 자신의 근황을 쏟아냈다. 그런데 도통 이 글을 읽으면서도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길래”라며 궁금해 하는 독자를 위해 친절한 설명 들어간다. 유진규는 마임하는 예술가, 즉 마임이스트다. 그렇다면 ‘마임’이란 무엇인가. 들어도 생소할 수밖에 없는 예술, 직접 물었다. 마임이 무엇입니까? “마임이라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찰리 채플린이나 어릿광대들이 보여주는 판토마임을 생각할 거예요. 쉽게 얘기해서 말은 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몸짓과 재주를 통해서 자기를 보여주고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그런데 판토마임과 마임은 달라요. 희극배우들이 하는 판토마임이 대중적 형태라면, 마임은 다분히 예술적이고 개인적인 세계가 개입됩니다.” 지금까지 ‘마임 하면 유진규, 유진규 하면 마임’으로 인식됐다. 축제의 장인보다는 ‘한국 마임의 아버지’라는 이름표가 그를 따라다닌다. 45년간 이어진 몸짓에서는 독보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다양한 변화와 시도를 통해 담백하고 깊은 숨을 마임에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다. 물끄러미 앉아 있기를 좋아한 소년, 마임에 빠지다 유진규가 마임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운명이었다. 말 없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타고난 것일 수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사실 물끄러미 바라본다는 것은 말 없는 세계이거든요.” 어렸을 적 그의 꿈은 수의사. 동물원이 있던 창경원(지금의 창경궁)에 자주 드나들면서 동물들과 함께하는 삶을 그렸다. 건국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해 잠시나마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시대였다. “제가 70학번이에요. 유신시대 직전이었죠. 대학생이 고등학생보다 더 자유롭지 못했어요. 나는 대학교 들어가면 자유를 맘껏 누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방황하다 만난 것이 연극이었어요. 1년은 휴학하고 1년은 방황했어요. 삶에서 중요한 시점이었죠.” 결국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길을 버리고 연극을 택해 극단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극단 안에서도 유진규는 모순점을 발견했다. “예술은 자유로워야 하는데 극단 역시 철저한 조직사회였어요. 한 사람이라도 어긋나면 안 되는 조직화, 분업화된 곳. 한쪽으로는 재밌었는데 다른 한쪽으로는 억압을 느꼈어요. 그럴 때 마임을 알게 됐습니다. 마임은 내가 생각한 것을 글로 써서 내 몸으로 표현하면 되는 거였어요.” 극단을 나온 그는 독립적인 마임의 길로 들어섰다. 그 길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시끄러운 세상을 피해 1981년 춘천으로 내려간 그는 소를 키우며 살았다. 건강문제로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시간이 흘러 그 또한 빛바랜 과거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길 위의 공연자, 나를 부르는 그곳이 무대 유진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춘천국제마임축제 예술감독이라는 타이틀이다. 스스로도 한 몸과 같다고 말해왔던 춘천국제마임축제 예술감독직에서 그는 2013년 물러났다. 흔히들 말하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다. 갑작스럽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또 다른 도전을 알리는 신호였다. “2년 동안은 혼돈 상태였어요. 마음 정리를 하면서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나가야 하나 나 자신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결국 나는 공연하는 사람, 예술가였습니다.” 찾아주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 무대에 오르리라 마음먹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2014년 진주골목길아트페스티벌에서 길거리 공연이 가능한지에 대한 타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진규는 자신이 무대가 있는 극장에서 공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런데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제 자신에게 물었죠. 넌 배우잖아. 거리에서 널 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는 극장에서만 공연하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거리와 극장은 뭐가 다르냐. 극장은 모든 것이 보장된 곳이고 거리는 던져진 공간이죠. 거리에서는 보고 싶으면 보고, 안 보고 싶으면 안 보는 게 가능해요. 보다가 가도 괜찮고, 중간에 봐도 괜찮고 보면서 떠들어도 괜찮고 보면서 먹어도 되죠. 네가 배우라고? 그렇다면 어디서든 공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했다.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한 번도 거리에서 공연을 해본 적이 없는 그였다. 게다가 마임축제를 할 때는 매년 거리공연을 하는 200여 명의 사람을 일일이 보고 선택했다. 공연 장소를 지정해주고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평가하던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평가하던 사람이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된 것. “내가 여기서 물러나면 반쪽자리 공연자밖에 안 되는 거죠. 기왕 깨진 몸 부딪혀보자. 극장에서도 공연할 수 있지만 거리 무대에도 서보자. 그것이 완전한 공연자라고 생각했어요.” 일주일이 지난 뒤 주최 측에 다시 전화를 걸어 공연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거리공연에 모험을 걸었다. 다행히 관객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왜냐하면 아무도 못 가게 해야 하잖아요. 가는 사람이 보이면 마음이 흔들려. 막 불안하고(웃음). 관객들은 재미없으면 무조건 가버려요. 볼 이유가 없잖아요. 그다음에는 대학로에서 했습니다. 첫날은 관객이 많았는데 둘째 날은 다르더라고요. 가는 사람을 부를 수도 없고 말입니다. 어떠한 경우든 관객과 함께 살아남는 배우가 진짜 배우라는 생각을 거리공연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됐어요.” 자연 속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자연 속에서는 기타, 바이올린, 타악기 등 모든 것이 더 생생하게 어울렸고 분위기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공연을 했다. “연주자와 함께 작업을 하다 보면 분위기에 따라 많이 달라져요. 현실로부터 떨어져서 공연하면 사람도 자연의 흐름에 맡기게 됩니다. 비도 올 수 있고 바람도 불 수 있고요. 알게 뭐야 어떤 일이 생길지(웃음).” 디어 마이 손주, 할아버지는 사양할게 유진규는 4년 전 할아버지 대열에 합류했다. 마임축제 일로 힘든 와중에 웃음을 안겨준 고마운 손주다. 그리고 2년 만에 또 외손주를 봤다. 지금은 두 아이의 할아버지가 됐다. 할아버지라니, 처음에는 좀 거부감이 들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 꺾여버리더라고. 할아버지니까 이러면 안 되지.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할아버지로 내면 정리가 되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 거부! 할아버지 아니야! 초반에는 그랬어요.” 물론 손자를 보자마자 웃음이 터지고 좋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게 자칫 진짜 할아버지로 가는 길이 될까봐 슬쩍 경계한다. “주위에도 손주가 생기면 사람들이 정신이 없어요. 술 마시다가도 손주 보러 간다면서 가버려요. 일단 할아버지처럼 마음이 꺾이고 구부러지면 안 되거든요. 특히 내가 하는 일은 어디서나 당당하게 맞서고 깨야 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언제나 외손주하고 맞짱을 떠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구처럼 지내야 해요. 할아버지와 손주 관계로 가버리면 자꾸 아이들의 작전에 말립니다. 안아주기도 하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아요(웃음). 맞짱뜨는 게 늘 중요해. 관계가 정립되고 어느 한쪽에서 고개를 숙이는 순간 소통은 끝나거든요.” 나? 무대에서 안 내려갈 거야! 춘천국제마임축제와 헤어진 것이 두고두고 아쉽겠지만 그는 요즘 들어 부쩍 왕성한 활동을 하는 중이다. 자연 속, 무대 위, 광장. 어디든 그의 발길이 닿고 필요한 곳이면 찾아가 공연을 펼친다. 전성기가 제대로 왔다는 느낌이다. 은퇴시기를 물어보니 절대 자신의 인생에는 접수되지 않을 단어가 바로 ‘은퇴’란다. “일본 부토 무용의 대가 중에 100세가 돼서도 공연을 한 분이 계셔요.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큰 극장 무대에 배우인 아들이 아버지가 앉아 있는 휠체어를 밀고 무대 위를 걸어 나오더래요. 느릿하게. 그리고 무대 중앙에 멈춰선 아들은 휠체어를 객석 앞쪽으로 돌려놓았대요. 늙은 배우는 휠체어에 앉아 손을 들었고요. 그 순간 일본 사람이 좋아하는 빨간 장미 꽃잎을 수도 없이 날렸다는 거야. 나도 그렇게 될 때까지 공연할 겁니다.” 유진규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끝까지 놓지 않고 했던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마임이스트 유진규. 그는 오늘도 내일도 차가운 길, 붉은색 흙길 위 그리고 뜨거운 조명 아래서 깊은 몸짓으로 세상과 소통할 것이다.
- 2016-12-1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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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감]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 올 한 해 연극계에는 유명 배우 하나 없이도 관객들의 시선을 확 잡아끈 작품이 있다. 극단 몽시어터의 (이동선 연출·석지윤 작)이다. 작품성과 관객 선호도 면에서 후한 점수를 받은 이 연극은 지난 11월 재공연으로 관객들을 찾았다. 달빛을 한껏 받고 있는 밤 고양이를 연상하게 하는 포스터는 잔인함과 괴기함을 표현한 듯하다. 뚜껑을 열어보니 할퀴고 물어뜯는다, 웃음까지 줬다 뺏는 블랙코미디다. 현대인의 내면에 감춰진 스트레스와 광기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관객 또한 ‘내 본성은?’이란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안에는 우리 입장을 대변하는 ‘노인’이 등장한다. 젊은 관객들이 집중하는 연극 속 노인은 어떤 방식으로 비춰졌을까? 비밀을 감춘 듯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현대 빌라. 연극이 시작되면 근심 가득한 얼굴의 빌라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는다. 빌라 주변에서 고양이가 계속 죽어가는 상황을 알아보려고 관리인이 주민들을 모은 것. 게다가 옆 동네에서 한 여성이 사이코패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주민들은 빌라에 사는 한 사내를 범인으로 지목해 고양이를 죽인 범인이자 옆 동네 아가씨를 죽인 사이코패스로 몰아가면서 본성을 드러낸다. 그 가운데 홀로 살고 있는 노인. 그 또한 내면에 감추고 있던 욕망을 조금씩 표출하기 시작한다. 그는 빌라 주인의 장인이다. 빌라 1층이 비어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빌라를 관리하는 사위의 여동생이 가끔 노인을 돌봐준다. 사회시설에 다니며 무료급식 봉사를 하는 착한 노인으로 비춰지지만 실상은 농아학교 급식에 약을 타 학생들을 식중독에 걸리게 한다. 그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젊은 주민들의 뒤를 쫓으면서 사건에 빠져든다. 말을 못하는 노인, 그래도 세상 이야기에 끼고 싶다 노인은 자유롭게 말하지 못한다. 과거 폐질환을 앓아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다. 그의 말을 그나마 잘 알아듣는 사람은 자주 얼굴을 보고 살아온 빌라관리인 사위의 여동생이다. 그가 몸짓으로 표현하면 사람들은 유추하는 정도다. 말을 못하지만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그는 구성원으로서 행동하고 싶어 한다. 나이 들어도 남자의 본능은 존재한다 쥐가 출몰하는 빌라 내부. 사람들이 대화를 하다 쥐 소리와 함께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려 아수라장이 된다. 한참 동안 어두웠던 공간에 불이 켜지면 어느샌가 탁자에 올라간 노인이 지팡이로 쥐를 쫓기 위해 천장을 두드리고 있다. 빌라에 사는 젊은 아가씨는 쥐 소리를 무서워한다. 쥐를 쫓는 일은 젊었을 때부터 해본 노인이다. 늙어버린 그가 현재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일이 어쩌면 쥐를 쫓는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젊은 여자를 보호하고픈 남자로서의 은근한 본능은 아닐까. 나이든 어른이기 때문에 행동이나 생각 자체가 젊은이들처럼 빠르지 않지만 은연중에 음흉한 속내를 드러낸다. ‘나도 남자다, 나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인은 노력한다. 여기가 세상의 끝이다! 이 연극에서 노인 역의 절정은 피칠갑을 하고 “여기가 세상의 끝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비중 있고 의미 있는 대사이자, 노인의 유일한 대사이기도 하다. 노인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다양한 의미의 끝을 선포한다. 노인 역할을 맡은 배우 김수보씨는 “중의적인 표현이 맞다. 사이코패스의 시점에서의 끝, 노인의 끝일 수도 있고, 극 안에서 상황을 끝내고자 하는 마침표의 의미이기도 하다. 연극 대본 지문에 작가가 ‘뻐끔 뻐끔’으로 해놓은 작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소외된 시니어의 현실을 대변하다 말을 못하는 노인, 세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걸음걸이는 캐릭터를 떠나서 우리 사회 속 실제 시니어들의 위치를 반영한다. 이에 대해 김수보씨는 연기를 한 배우로서 해석을 들려줬다. “배우들은 배역을 맡으면 자기 역할이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는 작업을 합니다. 일단 노인은 젊었을 때 열심히 노력하며 착하게 살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삶은 독거, 소외된 노인이 된 거죠. 그다음에는 노인의 사이코패스적 기질은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습니다. 경제가 나빠지면 제일 대접받지 못하는 대상이 노인입니다. 고령화 사회이기는 하지만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없는 부류죠. 노인이 하는 일이라곤 아이들 무료급식 봉사입니다. 착한 척하면서 사는 것이죠. 정작 속내는 고령연금도 줄고 자신이 먹을 것도 없는데 무료급식 봉사라니, 사회에 대한 서운함이 깊어질 수도 있죠.” 노인의 대사는 거의 없지만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는 12명의 인물들 속에서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주인공이다. 노인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힘든 몸을 움직이고, 안 나오는 목소리를 애써 쥐어짜며 “이곳이 세상의 끝이다!”라고 외친다. 이 연극속 노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나라 시니어 세대의 현실을 볼 수 있었다. 고령화 사회, 100세 인생을 대비하자는 말들은 많지만 우리 사회의 노인들에 대한 대책은 연극 속 노인의 걸음걸이만큼 느린 것은 아닐까.
- 2016-12-0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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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관 답사기] 문화가 흐르는 길 옆, 문학 숙녀의 아지트를 탐방하다
- 혜화역 4번 출구를 나와 혜화동 로터리에서 길을 건너 3분가량을 걸었다. 한무숙 문학관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무심히 걷고 뛰던 대학로 길 옆. 이 익숙한 거리를 수없이 지나다니면서도 문학관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니.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서자 문학관 입구가 보였다. 긴 숨을 내쉬고, 무거운 나무 대문을 열고. 그녀와 첫인사를 나눴다. 한무숙(1918~1993)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소설가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해 학교보다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중이염, 폐결핵 등을 앓아 어렸을 때 어른들이 ‘서른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고 한다. 서른까지만이라도 살아달라는 당부였다. 뇌막염으로 왼쪽 청력을 잃었지만 삶에 대한 의지와 탐구는 끊임없었다. 그림 재능이 있어 초등학교 2학년 때 독일 베를린 만국 아동 전시회에서 입상했다. 언어 능력도 뛰어났다. 독학으로 영어와 프랑스어를 익혀 쓰고 읽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화가를 꿈꿨지만 1940년 결혼 이후 그림 그리는 것이 쉽지 않아 펜과 종이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글쓰기로 전업했다. 1941년 잡지 장편소설 현상 공모에서 ‘등불 드는 여인’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대표 소설로는 , 등이 있다. 은 폴란드어, 영어, 프랑스어, 에스토니아어, 체코어, 중국어로 번역됐다. 대표적인 기념사업으로 1995년부터 한무숙문학상을 재정해 1년 중 활약이 돋보인 중견 소설가에게 상을 주고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한무숙 소설 독후감 쓰기 대회’도 2011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작가의 흔적, 문학관에 담다 한무숙 문학관은 작가가 40년 동안 살았던 종로구 명륜 1가의 한옥집에 세워졌다. 대청마루에 꾸민 1전시실과 2전시실인 응접실, 집필실, 한무숙 작가의 사진과 다양한 소품 등을 전시해놓은 3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입구로 들어가 바로 앞에 보이는 널찍한 대청마루가 1전시실이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한무숙 작가의 대표 소설 에서부터 단행본, 평소 썼던 메모지, 여권, 여행을 하면서 가지고 다녔던 주사기 등 한무숙 작가의 대표 소장품들이 전시돼 있다. 2전시실은 응접실이다. 한무숙 작가가 살았을 때보다 집안 내부 규모를 넓혔다. 2006년 공사를 진행했는데 응접실 중앙에 있는 기둥을 기점으로 왼쪽이 원래는 뒷마당이었다고 한다. 펄벅 여사를 비롯해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다녀간 이곳에는 작가의 소품과 유명 문인과 화가들이 직접 선물한 족자 등이 전시돼 있다.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곳 한무숙 문학관의 백미는 집필실이다. 작가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살아생전에는 책이 더 많았는데 수천 권에 이르는 책을 숙명여대에 기증했다고 한다. 전시를 위해 책상의 방향을 관람객 쪽으로 돌려놓은 것 말고는 옛 모습 그대로다. 책상 위에는 작가가 쓰던 만년필과 잉크, 손녀가 그린 그림 등이 놓여 있어 따뜻함을 더해준다. 평소 사용했던 오래된 양산과 우산도 방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3전시실에 들어가면 작가가 시집갈 때 만들었던 수공예품을 비롯해 초기작 영인본을 감상할 수 있다. 드라마로 제작됐던 소설 의 비디오 등도 전시돼 있다. 한무숙 문학관은 사립박물관이지만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박물관보다 작다. 관람료는 받지 않지만 박물관 측은 방문 전에 꼭! 예약을 해달라고 당부한다. 예약을 하면 상주하는 문학사가 관람객들과 전시실을 함께 다니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한무숙 작가의 아들인 김호기 관장은 어머니의 소설을 이해하는 관람객을 소중히 모시고 설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매일 관람객이 꾸준히 찾고 있다. 관람 정보 관람시간 평일 9:30~5:00 (전화 예약 후 관람 가능), 주말 및 공휴일 휴관 (토요일 오전 관람 가능) 입장료 무료 문의 및 예약 02-762-3093 위치 서울시 종로구 명륜1가 33-100(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 혜화초등학교 방향 약 200m) 홈페이지 www.hahnmoosook.com
- 2016-12-05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