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쪽에 늘 담아두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아래윗집에 살아 눈만 뜨면 만났다. 잘 싸우기도 했지만 금세 풀어져 또 어울려 놀곤 했다.
초등학교는 10여 리를 걸어서 가야 했다. 비 오는 날이면 개울물이 불어나 금방이라도 우리 몸을 집어삼킬 듯했다. 그런 개울을 몇 개나 건너야 학교에 도착했다. 겨울은 우리를 더 혹독하게 단련시켰다. 눈보라치는
◇exhibition
王이 사랑한 보물: 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
일정 11월 26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독일 드레스덴을 18세기 유럽 바로크 예술의 중심지로 이끌었던 폴란드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그가 수집한 예술품 중 130점을 총 3부로 구성해 전시한다. 제1부에선 아우구스투스의 군복과 태양 가면, 사냥 도구 등 그의 권력을 상징하는 유
한 극장이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 힘없는 연극인들은 도시 개발, 상권 확장에 쉽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기억 속으로 사라진 극장만도 헤아릴 수 없는 요즘, 부산의 가마골소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소극장의 옛 추억을 간직한 시니어 세대와 무대를 지키고 싶은 젊은 연극인의 꿈이 담겨 있는 공간 가마골 소극장에 다녀왔다.
오늘도 내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
지난 5월 익산 관광 때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유적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러나 발굴 중이라 땅만 파놓았지 막상 볼 것이 없어 실망했다. 제대로 보려면 익산까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함께 지정된 공주 부여를 돌아봐야 한다고 들었다. 검색으로 공주는 볼 것이 그리 많지 않고 부여에 유적지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부여로 향했다.
폭염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역사적 인물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니 쉽다.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대로 연출하는 것이니 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사실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그럴 리가 없다. 예컨대 ‘성웅’ 이순신을 그리면서 어찌 여성 관계를 이야기한단 말인가! 그러나 에는 그와 여성과의 관계도 소상하다. 그래서 어렵다.
이준
올해부터 버킷리스트에 올라 있던 여행을 위하여 일찍부터 점찍어 두었던 나라가 발트 3국이었다. 발트 3국은 미지의 세계였다. 서 유럽은 재직 시 독일 주재원을 인연으로 직무 상 여러 번 갔었지만, 나머지 유럽은 직무상 다녀 올 일이 없었다. 발트 3국은 지도를 보니 유럽에서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스칸디나비아가 있는 북유럽도 아니고 동유럽이라고 하기에
자연의 조화는 언제 보아도 신비스럽다. 사람의 힘과 손놀림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조각이나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모습을 발견한 순간은 늘 기쁨이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샘솟는다. 때로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충청북도 단양지역의 천동동굴(충청북도 기념물 제19호) 관람 여행에서 최초로 발견한 구석기인(舊石器人)을 닮은 형상(사진) 또한 그렇
“거기, 아무 것도 없어”
공주와 부여, 익산 일원의 백제역사유적지구 팸투어를 간다는 말에 지인이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가방을 메고 출발하는데 김빠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공주 공산성에서 시작해 공주와 부여 일원을 둘러보자, 지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이 됐다. 기원 전 18년, 고구려에서 쫓겨난 비류와 온조가 한강유역 위례성에 세운 백
유채꽃은 제주도에서만 유명한 줄 알았더니 부안의 유채꽃밭도 아주 볼 만했다.
샛노란 유채꽃이 끝없이 펼쳐져 눈부신 풍경을 이루었다.
몇 년 전 제주도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돈을 내야 한다는 팻말이 있어 기분이 안 좋았는데 이곳 부안 유채꽃밭은 포근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 속에서 필자도 꽃이 된 양 마음껏 셔터를 눌러 멋진 유채꽃밭 사진을 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