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게 누구야”
“너 여기 숨어있었구나”
바람도 살랑대는 어느 맑은 가을날 오후
내가 봉사하는 경로당에 입당하러 오신 어르신과 총무님께서 마냥 어린애 되셨다
그 후 두 분의 대화는 함께하시는 어르신들이 다 외울 정도로 그게 그 얘기였지만 정작 두 분은 한 이야길 또 하며 그때마다 호탕하게 웃고 즐기신다.
늘 남의 말에 갈고리 걸어 다툼을 일으키시는 대머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
종교와 정치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노선이 달라 언제든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아무리 친한 친구나 가족 간에도 하나의 통일된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간혹 관계를 힘들게 한다.
필자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대학교 4년을 늘 형제처럼 붙어 다녔던 친구가 있다.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도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하며 친분을 유지했다. 우리의 우정이 영
널리 알려졌다시피 도시는 대체로 각박하다. 매력도 편익도 많지만 경쟁과 계산이 불가피한, 일종의 정글이다. 그렇기에 흔히들 남모를 고독을 안고 도시를 살아가기 십상이다. 내가 아는 서울의 어떤 화가는 작업실에 쥐를 기른다. 외로워서 쥐를 기른다. 그는 아마 쥐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너도 외롭니? 나만큼 외롭니?”
쥐를 바라보며, 슬픈 노래를
올 것이 왔다 싶었다. 화장실에서 평소와 다른 시커먼 그것을 보았을 때 말이다. 심상치 않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인과응보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가 떠올린 것은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는 그의 병이 위암이라고 했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만난 오성표(吳聖杓·68)씨의 이야기다. 그리
33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동창생들은 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첫 모임 때에는 30명가량이 나왔는데, 다시 각자 아는 동창생들에게 연락을 해서 모일 때마다 인원이 늘었다. 나중에는 전체 동창생 500명 중 200명가량이 모였다.
그런데 덜컥 내가 동창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재학 시절 전교 회장을 한 이력이 있어 봉사의 책임감도
야채를 썰다 놓친 부엌칼이 발등 근처에 떨어져 크게 놀라거나, 매일같이 오르던 계단이 어느 날부터 유독 높아 보이거나, 맛있는 깍두기가 제대로 씹히지 않는 날이 있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개의치 않고 넘길 수 있는 일들이다. 체력이 좀 떨어졌거나, 며칠 쉬지 못해 그러겠거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장
놀 줄 모르는 시니어들은 특별히 즐기는 취미가 없다. 기껏해야 골프 아니면 등산이다. 이것도 그나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딱히 즐길 놀이가 없다. 이러니 놀 줄도 모른다고 신세대에게 무시당하는 것이다.
친구가 들려준 얘기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니 거실에서 아이들과 아내의 노랫소
외도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아내와 남편이 아닌 상대와 성관계를 갖는 일로 바르지 아니한 길이나 노릇이라고 설명돼 있다. 배우자의 허락이 없는 이성과의 성관계가 있을 때 외도라고 본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지인의 아내는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있는데 어느 날 “당신을 사랑하지만 여자 없이는 못 살겠다”고 말했단다. 그 후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외도를 한다. 아
노년의 성(性)은 입에 올리기 망측한 것이 아니라 100세 시대에 다 함께 고민할 과제가 됐다. 부부간의 사별이나 이혼과 같이 홀로된 경우가 아니더라도 한쪽은 성적 욕구가 있는데 한쪽은 성적 욕구가 아예 없는 노년의 성 문제가 있다.
A씨는 나와 같이 일하는데 올해 70세다. 돈도 있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다. A씨의 말을 빌리면 성적 욕구가 아직도 왕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