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도시화와 주거 환경의 변화로 더 이상 가정에서 장례를 치르기 어려워지자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장례식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병원에서 사망하면 가정으로 이송해 장례를 치렀는데 이제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요즘은 가정에서 사망해도 병원(전문) 장례식장으로 고인을 이송해 장례를 치른다.
이런 변화를 눈여겨본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장례업이 사업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발 빠르게 선불식 상조사업을 시작한다. 상조업자들은 일본의 ‘호조회’를 모델로 다단계 방식으로 회원을 모집했다. 상조회사는 한때 450여 개가 난립할 정도로 성업했지만, 지금은 부도나 폐업으로 대부분 문을 닫아 60개 정도 남았다. 업체 오너들의 방만한 경영과 과도한 영업비용 등이 그 원인이지만, 정부의 강력한 규제도 부실업체를 정리하는 데 한몫했다.
상조회사는 크게 선불제와 후불제 업체로 나뉜다. 선불제는 장례용품과 인력 서비스 제공을 약속하고 매월 일정액을 선납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360만 원짜리 상품이라면 120회를 납입해야 1회의 장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선불제 상품의 가격은 360만 원에서 720만 원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장례식장의 빈소, 안치실, 입관실 등 시설 사용료와 식음료 비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봉안당이나 묘지 같은 장묘 영역 또한 별도의 영역이다.
반면 후불제는 미리 선납하지 않고 장례를 치른 후 정산하는 방식이다. 1회 장례 시 280만 원에서 350만 원 정도로 선불제에 비해 저렴하다. 광고비나 영업수당, 관리비 등이 들지 않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할 수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대세는 선불제였으나 최근 후불제 업체들이 약진하고 있다. 선불제 업체들이 대거 정리되면서 전업한 경우도 있고, 후불제의 시장성을 보고 큰 자본을 투자한 업체도 있다. 후불제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80만~120만 원에 서비스한다는 업체들도 나온다. 선불제와 후불제에서 용역을 받아 의전을 수행하는 업체도 있다. 본청에서 수수료를 제하다 보니 인건비를 줄여 겨우 마진을 남긴다.
선불제와 후불제의 서비스 차이는 어떨까. 장례에서 상조회사 영역은 장례지도사와 접객관리사(도우미) 등 인력과 생화 제단, 수의, 버스와 리무진 등 장례용품 영역이 있다. 서비스 질은 장례 서비스 자체가 표준화되고 경험 많은 장례지도사들이 여러 업체에서 일하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 장례지도사는 장례 접수, 상담, 행사 진행을 3일장이 끝날 때까지 책임지고 총괄한다. 접객관리사 가격은 1인 10시간에 9만 원으로 정해져 있다. 초과수당이나 심야 교통비가 추가되기도 한다.
그럼 상조 영역의 적정 가격은 얼마일까? 앞서 말한 대로 상조 상품은 80만~720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수시끈, 탈지면, 알코올 등 수시용품과 광보, 명정, 습신 등 입관용품은 30만 원 내외다.
먼저 입관용품 중 가장 비싼 것은 수의다. 비단, 대마, 저마, 인견, 면 등 재질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조합에서 치른 장례 중에 6000만 원에 구입했다는 수의를 본 적 있다. 상주가 모 대학 교수였는데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단언컨대 그는 사기를 당한 것이다. 천하의 안동포도 300만 원 내외인데 가당치도 않다. 가장 좋은 수의는 불에 잘 타거나 잘 썩는 수의다. 평소 입던 옷도 좋다고 본다.
다음으로 관이다. 오동나무나 솔송집성목이 주로 쓰인다. 매장이나 화장에 따라 달라진다. 업계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어떤 재력가의 장례를 치르는데 원가 30만 원짜리 관을 3000만 원에 팔아먹었다는 얘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온갖 요설을 동원해 사기를 치면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장례지도사는 1인으로 정해져 있는데 3일간 인건비는 50만~70만 원 정도다. 입관 시 보조 인력(10만~15만 원)이 붙는다. 접객관리사는 몇 명을 쓰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조문객 수가 많을 경우 4명 이상 붙기도 한다. 생화 제단은 크기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 30만 원에서 150만 원까지 다양하다. 또 버스나 리무진은 거리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 버스나 리무진 중 하나만 쓸 수도 있다. 왕복 300km 기준으로 40만~70만 원 정도이고 초과 시 킬로미터당 2000원 정도 붙는다.
상조회사가 어디든 장례용품과 인력은 대동소이하다. 서비스 질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 아무 상조회사나 정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문제는 겉으로 내세우는 가격이 아니라 실제 가격이다. 80만 원에 상조 서비스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렴한 가격을 미끼로 고객을 유인한 후 이런저런 명목으로 추가하고 ‘업셀링’을 하는 것이다. 상조 서비스는 대체로 300만~350만 원 정도면 적당하다.
가장 좋은 상조회사는 정직한 장례회사다. 사전에 계약한 대로 진행하는 곳이 믿을 만하다. 정해진 가격 외 업셀링이나 추가를 하지 않는 곳이 좋다. 요즘엔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사례비를 요구할 경우도 있는데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사례비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복잡한 장례 절차나 전문용어로 현혹하거나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며 효도 심리를 자극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갑자기 닥쳐서 허둥대기보다 사전에 여러 상조 상품을 꼼꼼히 비교하고, 상담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무조건 싼 곳을 찾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상조 시장은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다. 현명한 소비자만이 바가지를 피할 수 있다.
김경환 채비장례(www.chaebi.life) 장례지도사
2011년 조합원 가입 후 줄곧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콘텐츠와 미디어에 종사했던 경험을 살려 조합의 홍보를 지원하고 있다. 기획하는 것을 좋아하고 성취했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저서로는 ‘죽음이 삶에게 안부를 묻다’ 등이 있다.
별은 어둠 속에서 더 또렷하다. 광공해가 없는 맑은 대기여야 선명하다. 그러기에 도심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기는 쉽지 않다. 첨단의 문명이 별 보기를 더 어렵게 만든 셈이다. 별 볼 일 없는 세상이란 말, 따지고 보면 초고도 현대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팍팍해진 세상에서 별 볼 일을 찾아 떠나보는 일, 해볼 만하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경계의 함백산. 서울에서 밤 10시에 출발하면 새벽 2시 무렵에 도착한다. 산 정상 가까이 자동차로 접근할 수 있어서 야간 산행의 난이도는 어렵지 않게 적응된다. 하지만 일부 걸어서 올라가는 산길은 경사가 가파르다. 숨차게 1572m 정상에 오르니 한낮의 날씨는 간데없이 뚝 떨어진 기온에 한기가 온몸을 휩싼다.
별이 빛나는 밤에
발아래로 굽어보는 세상, 멀리 낭떠러지 같은 산 아래로 가끔씩 밤길을 달리는 자동차 궤적이 빛을 낸다. 산꼭대기 봉수대 아래의 고사목 앞에서 바라보는 산의 웅장함. 숲 내음과 눈앞에 펼쳐진 산세에 놀라고, 흐르는 은하수를 보며 전율할 수밖에 없는 밤 풍경이다. 함백산은 하늘과 가까이 맞닿은 곳에서 별을 관찰할 수 있다. 이윽고 별이 지고 나면 산등성이 사이로 멋지게 밝아오는 여명을 맞을 수 있는 산이다.
완벽한 어둠 속에 서서 바라보는 밤하늘. 하늘이 이렇게나 넓었던가. 이 우주 안에서 작아진 자신의 모습을 단박에 확인한다. 쏟아질 듯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검푸른 하늘에서 별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고도가 높은 산 정상에서 육안으로 올려다보는 별, 비로소 우주와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이젠 신화 속의 별자리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별 궤적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붙잡고 조급해하거나 연연하지도 않는다. 머리 위로 별을 가득 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주 어린 시절 여름이었나. 저녁을 먹은 뒤 마당에 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아득한 기억이 있다. 그때 어린 눈에 들어오던 또렷한 별들이 선명히 기억난다. 어릴 적 집 앞마당에서 올려다보았던 별을 어른이 되어 이렇게 멀리 달려 나와 밤하늘의 보석을 대하듯 감탄하면서 마주한다. 밤바람이 차서 미리 준비한 두꺼운 겨울 패딩에 털장갑을 끼고도 몸이 떨리는 산중의 밤이다. 추위 속에서도 스스로 들떠서 행복하다.
어느 순간 서서히 어둠이 걷히는 게 느껴진다. 여명의 신비로움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건 당연하다. 운해 위로 불그스레 조금씩 떠오르는 일출이 물들이는 세상, 저 아래로 굽어보는 능선 사이사이 스며드는 운해, 온 산하에 여명이 번지는 뭉클한 순간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가히 선계의 풍광이다.
바람을 맞으며 밤을 보낸 눈앞의 고사목은 얼마나 무수한 일출을 마주했을까. 빳빳하게 선 채로 생명의 힘을 그대로 전한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더니 저 나무는 지금 어느 세월쯤에 있는 걸까.
천상의 화원 만항재
폐부 가득 새벽 찬 공기를 담고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뿌듯하다. 하룻밤의 꿈이었던가. 추위 속에 떨면서 밤을 새우며 바라본 은하수와 별, 세찬 밤바람도, 운해와 여명도, 함백산의 능선도, 아름다운 일출도, 대자연의 선물이다. 선물을 가슴 가득 안고 내려온 함백산의 새벽길. 밤새워 별을 보고 차 안에서 꾸벅꾸벅 쪽잠을 잘지언정 내내 잊지 못할 밤마실이다.
함백산의 만항재는 조선 초기 고향을 떠나 산속 깊은 곳에 터전을 잡은 옛 고려인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원했다는 ‘망향’에서 유래한 어원을 지닌 고갯길이다.
이 지역은 강원도 정선, 고한, 영월, 산동읍과 태백시를 잇는 지점이다. 우리나라의 포장도로가 놓인 길 중에서 자동차로 달릴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1330m). 그래서 드라이브의 재미와 함께 깊은 자연 속의 풍성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만항재는 천상의 화원으로 알려져 있듯이 울창한 산림이 자연스럽게 우거져 있다. 매해 우리나라 최대의 야생화 축제가 열릴 정도로 야생화 천국이다. 산상의 꽃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기운을 듬뿍 얻는다. 희귀한 야생화와 풀꽃들이 지천이다. 특히 호랑나비, 산제비나비 등 예쁘고 다양한 나비가 많아 어디서나 나비의 날갯짓을 본다. 때 묻지 않은 빽빽한 숲 그늘에 파묻히는 기쁨을 마음껏 누린다. 원 없는 ‘숲멍’의 시간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편히 한나절 쉬어가도 좋을 청정 자연이다.
숨 쉬는 다리, 영월군 주천리 섶다리
산으로 둘러싸인 맑은 물이 흐르는 마을에 추수가 끝나는 늦가을이면 매년 다리가 놓이곤 한다. 여름에 물이 불어나 떠내려갈 때까지 사용되는 다리. 영월군 주천리 판운면에 가면 건너보고 싶은 섶다리가 있다. 강을 사이에 둔 밤뒤마을과 건너편 미다리마을의 왕래를 이어주는 정겨운 전통 다리다.
통나무로 기둥을 박고 그 위에 참나무와 소나무 가지를 얹어 진흙으로 만들었다. 섶다리 위로 발걸음을 옮기면 약간의 흔들거림과 탄력적인 푹신함이 전해진다. 요즘 곳곳에 유행처럼 만들어지고 있는 출렁다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옛 맛의 신비한 감흥이다. 잔잔한 주천강을 건너 섶다리를 향해 앉아 느긋한 한낮, 잠깐이나마 아날로그 감성에 빠져보는 시간이다. 마을 옆으로는 한낮의 햇살이 쏟아지는 밭고랑 사이마다 농작물들이 여물어간다.
예전의 산천을 그대로 간직한 시골 마을에서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유유자적한 기분,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몸의 감각을 되찾고 편안하게 마음 정리할 만한 곳이 바로 여기구나 싶다. 은은하고 따사로운 볕에 빛나는 시골 풍경이 아스라하다. 돌아오는 길에 섶다리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이상한 바위들의 모임, 요선암도 그냥 지나치면 섭섭한 곳이다.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 요선암 앞에 서면 마치 공룡 시대에 온 듯 신비롭다.
하루나 이틀쯤 깊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 살면서 가끔은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는 야생 식물들의 풍경에 취하고 산꼭대기의 운무에 마음을 빼앗겨볼 만하다. 하루 이틀로 도시의 때가 벗겨질 리 없지만, 물질과 소유욕에 잠식당한 현실에서 잠깐 떨어져 나올 수 있는 기회다. 속세를 떠난 듯 일상을 잊어보는 시간, 자연의 따뜻한 본성을 만나고 오면 새록새록 가슴을 두드리며 알려준다. 이 땅의 깊숙한 곳으로 찾아가는 일은 이토록 근사하다는 걸.
매력과 환멸이 공존하는 도시에 마냥 정을 느끼며 살기는 어렵다. 오나가나 생기를 머금고 사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밥벌이의 피로를 면제받을 수 없으니 묵묵히 견디며 산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살며 경제활동을 했던 김완중(58, ‘내일을 여는 책’ 대표) 역시 그랬던가 보다. 언젠가는 도시를 뜰 생각을 했던 것. 그러다 쉰 살을 코앞에 두었던 2013년, 마침내 도시를 벗어났다. 인파와 소음이, 꿍꿍이와 풍문이 넘실거리는 서울과 결별하고 시골로 달려갔다. 유난히 싱싱한 산수를 막대하게 보유해 차라리 이방(異邦)인 전북 장수군의 외진 산골로 귀농했다.
김완중이 처음 손을 댄 작물은 오미자였다. 농사 물정을 잘 모르는 귀농인에게 그나마 용이한 작물은 지역 특산물이다. 오미자는 사과·한우와 함께 장수군의 특산물에 꼽힌다. 김완중은 도시에 살며 이른바 ‘도시농부’를 경험한 적이 있다. 텃밭 수준의 농사를 재미 삼아 체험하며 농업과 흙을 살짝 맛보았다. 이건 귀농의 싹눈이 튼 계기였다. 그러나 농사 경험이라고 내세우기엔 소소한 것에 불과했다. 즉 오미자 재배를 통해 농사와 본격적으로 맞닥뜨린 그에게 닥쳐온 애환의 수효가 한둘이 아니었을 거라는 얘기다. 매사 신입사원처럼 서툴러 진땀을 뺐을 게 아닌가. 하지만 요상하게도 거둔 성과가 만만치 않았다.
“농업 자체가 워낙 힘들다. 농가들이 흔히 애를 먹는 게 판로다.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놓고도 유통 문제의 벽에 부닥쳐 기존 농가들조차 농사를 접는 경우가 있더라. 그러나 난 오미자 판매를 잘했다. 도시 쪽에 네트워크가 있어서였지. 내가 생산한 물량이 바닥나 다른 농가의 오미자를 사다 팔기도 했다.”
귀농을 할 적에 그는 그냥 쓱 내려왔다. 마치 등을 미는 바람에 떠밀린 듯이. 그 무슨 그럴싸한 구상을 미리 해두지 않았던 것. 농사를 머릿속에 넣고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리며 숙고하는 식의 방식은 아마도 성향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골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만히 두고 보는 게 흥미를 배가하는 길이라 보았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무가치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좀은 자유롭게, 좀은 태평하게, 좀은 재미있게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런데 군에서 임대해준 밭에 기른 오미자 판매가 뜻밖에도 잘된 게 아닌가. 본격적인 농부의 대열에 올라설 수 있는 자격증을 자신에게 수여해도 무방할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초보 귀농인으로서는 자못 웅장한 성과를 거둔 셈? 그러나 속사정은 영 달랐다. 오미자 농사를 지어 잘 팔았으나 막상 수입은 실로 보잘 게 없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재배 면적이 겨우 800평에 불과했던 거다. 대규모 오미자 농가들도 수익 구조에 끙끙대는 판에 소농으로 무슨 재미를 볼 수 있으랴. 그의 농사는 소박한 미덕에 충만했으나 호구 대책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햐! 이러다 굶어 죽겠더라!(웃음) 농사에 들어가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점도 싫었다. 결국 오미자 농사를 접었다. 다 뽑아내고 손이 덜 가는 두릅과 엄나무를 심었다. 이 역시 농사다운 농사라 할 게 없다. 결국 5년 만에 농사를 포기한 셈이다. 농사로 먹고살려면 최소한 5000평 이상은 지어야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내 실력으로는 가당치 않았다.”
나의 철학을 책에 담아내는 매력
시골 생활에 관한 사전 구상보다 시골에서 과연 어떤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관심을 가졌던 김완중에게 비로소 흥미로운 상황이 발생했다. 무엇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이건 절박한 숙제라는 점에서, 상상력과 모색을 다한 궁리로 길을 찾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일견 흥미로운 과목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는 답을 찾았다. 1인 출판사를 차리기로 한 것. 전에 도시에서 신문사 편집기자와 출판사 직원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어디에도 없는 산중 독립출판사를 열기로 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할 줄 아는 건 출판 일뿐이더라. 인생 후반을 시골에서 보내려고 내려온 만큼 지속 가능한 일을 찾아야 했는데 그게 출판이었다. 쉽지 않겠지만 하나하나 맞춰가며 길게 보고 달려가자는 생각이었다. 그래 집 한쪽에 작은 흙집 사무실을 지어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적막한 산속에 차린 1인 출판사라니. 거북이를 끌고 산책하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생소해 오히려 흥미롭다.
“사업성만 따질 경우 시골에서 출판사를 하는 건 바보짓이나 다름없다. 좋게 말하면 용감한 짓이지만, 상식적으로 보면 무모하고 미친 짓이다. 그러나 가치 있는 삶의 한 방편이 출판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사업성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도시적 습성에서 벗어나 나만의 철학을 담은 좋은 책을 만든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출판업은 사양사업이지 않나?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책을 절대적으로 읽지 않는 풍조가 만연했다. 이를테면 유튜브 왕국에서 누가 활자 매체를 보겠나. 하지만 책의 콘텐츠가 좋을 경우엔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봤다. 시장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내 색깔을 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자립하고자 했다.”
기획, 편집, 교정, 인쇄, 유통 등 모든 걸 혼자 처리하는 게 가능한가?
“초심자라면 어려운 대목이겠지. 내겐 일련의 경력이 있어 헤쳐나갈 수 있었다. 도시에 살 때 회계사무실에서 근무했던 아내가 서류 정리 등의 일을 맡아줘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부부가 함께 원하는 곳에 살며,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럽다.”
출판업자들의 머리를 지배하는 생각은 한 가지로 보인다. 어떻게 해서든 팔릴 수 있는 책을 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해방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반증이겠고.
“인간이 사는 곳 어디든, 어떤 일이든 피곤하지 않은 게 있던가. 그게 운명이다. 맞부딪혀 이겨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출판은 하나의 언론이다. 나를 표현하고, 내 철학을 표방하는 매우 매력적인 장르다. 그러니 괴로울 리가 없다. 자주 보람을 느낀다.”
어떤 분야의 책들을 출판했지?
“인문사회 분야 책에 집중했으며, 아이들을 대상으로 삼은 동화책도 다수 출판했다. 혐오와 사회적 편견, 생명의 경외심에 관한 문제를 다룬 첫 동화책 ‘보신탕집 물결이의 비밀’에 지향점이 드러나 있다. 2019년에 낸 ‘가짜뉴스를 시작하겠습니다’ 역시 동화책이다. 아동들에게 가짜뉴스라는 게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게 인간과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 보여주었다.”
어린이들에게 무거운 사회문제를 들려주는 이유가 있겠지?
“그들은 내일의 주인공이며, 미래의 유권자이지 않은가. 그러나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정치, 환경, 인권, 노동, 평화 문제 등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출판을 통해 아이들이 생각을 키울 기회를 제공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참 잘사는 것 같지?”
요즘 출판계 현실을 보면 흉년도 이런 흉년이 없다. 쓰러지고 자빠지는 출판사들이 흔하다. 그나마 승산이 있는 게 동화책 출간이다. 선하고 아름답고 몽환적인 주제를 담은 동화책 시장은 그나마 숨을 쉰다. 그런데 속세와 동떨어진 산골에 출판사를 차린 김완중은 무겁고 딱딱하고 골치 아픈 사회문제를 동화책으로도 출판한다. 이게 장사가 될까? 그는 일종의 언론 행위로 책을 만들어 세상사에 가담한다. 횃대에 올라앉은 새벽 수탉처럼 한번 호기롭게 목청을 돋워 세상의 둔감과 일탈을 일깨우고 싶은 것이다. 이런 의도에 무슨 결함이 있을까마는 책이 팔리긴 할까? 팔린다. 얼핏 물심양면의 불황이 자심할 것 같지만 나름 탄력을 가지고 굴러간다. 출판계에 만연한 부진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부수가 아닌 2만 부쯤 팔린 책이 드물지 않았다고 하니 이미 서광이 들이친 형국이다. 어쩌면 나는 오늘 출판계 변방에 잠재한 천하장사를 만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뭔가 대단한 성과를 거둔 건 아니다. 하지만 자리는 잡혔다. 매년 10권 이상의 책을 꾸준히 출판하면서 작지만 소중한 결과를 거두었고 자신감도 얻었다.”
자극과 경쟁의 농도가 옅은 시골 환경에서 출판의 촉을 유지하기 어려운 면은 없던가?
“모든 걸 혼자 움직이며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고립될 수 있는 여건이긴 하다. 소통할 수 있는 출판업자가 주변에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그러나 장점이 많다. 무엇보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한나절을 멍때리며 지낼 수도 있는데, 이건 도시에선 누릴 수 없는 특혜가 아닐까 싶다. 마음에 여유를 부여하면 생각에도 한결 깊이가 생기는 것 같다. 따라서 서울에선 나올 수 없을 기획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서울을 벗어난 건 여러모로 내게 좋은 선택이었다.”
제한된 환경과 자원으로 원하는 퍼포먼스를 이끌어낸다는 게 어디 쉬운가. 김완중은 기획력으로 승부한다. 부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기획력의 천재’다.
지역주민들과 교류는 잦은가? 주민과 유대관계를 맺지 않을 경우 고독을 벗 삼아야 하는 게 시골 생활인데.
“농촌 사회에도 정치가 있고 조직이 있으며 이슈가 있다. 부당한 상황과 맞서 싸워야 할 일이 있을 때면 난 적극 나서는 편이다. 지역 사회단체와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공동 대응한다. 어디에 살든 작은 외침일망정 외칠 땐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산골에 산다고 그마저 외면한다면 슬프지. 물론 나만의 자유를 침해당할 정도의 처신은 자제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텃세로 궁지에 몰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외교력을 발휘하는 게 좋겠다. 나를 포장할 것 없다. 시골 생활은 시골 사람들이 박사라는 걸 인정하고 함께 묻어가면 된다.”
경제 문제에 걱정은 없나?
“한때 불안했다. 가진 것 없이 내려와 빚만 잔뜩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안감에서 신속하게 벗어났다. 왜냐고? 자비로운 아내가 돈 문제에 관한 한 일언반구 불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웃음) 여전히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지만, 부부 공히 굉장히 높은 만족도를 가지고 소복소복 살아간다. ‘우리, 참 잘사는 것 같지?’ 아내와 자주 하는 얘기가 그렇다.”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그의 거처는 몹시 아름답다. 순수한 산릉과 녹색 언덕들이 장대한 성채를 이루고 집의 원경을 이루고 있어서다. 여기에 부부애까지 후끈하니 겹으로 절경이다.
김완중이 주는 귀농 Tip
•귀농 후보지에서 미리 반년 내지 1년은 살아보고 최종 결정을 하자. 지역의 속사정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수군에서는 ‘1년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중년 이후의 귀농엔 여유자금 확보가 필수다. 최소 3년 정도는 수입이 없어도 생활할 수 있는 기본 자금을 준비하라.
•집 장만이나 수리에 큰돈을 쓰지 마라. 만약 팔아야 할 경우 쉽지 않은 게 농촌 주택이다.
•남들의 귀농 성공 사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자. 전혀 만만치 않은 게 농사다.
•무리한 초기 투자는 금물이다.
•도시에서 쌓은 능력과 경륜을 활용해 농외소득을 개발하라.
•원주민의 간섭을 텃세로만 보지 말자. 귀농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 또는 걱정으로 하는 간섭일 수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매도나 부담부증여로 부동산을 정리할지 고려해보세요.” 서울에 거주하는 다주택자에게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이 남긴 조언이다. 최근 치솟는 금리에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을 고려한 발언인데, 부담부증여란 무엇이며 지금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조 책 ‘당신에게 필요한 부동산 절세법’, 유튜브 ‘KB부동산TV’
부담부증여란 배우자나 자녀에게 부동산 등 재산을 사전에 증여하거나 양도할 때 전세보증금이나 주택담보대출 같은 부채를 포함해 물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법률적으로 부담부증여는 조건을 붙인 증여다. 세법에서는 보통 부동산 등을 증여할 때 담보된 채무를 수증자가 승계하는 조건으로 증여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빚을 끼워 부동산을 물려주면, 자녀가 그 채무를 상환하는 방법이다.
세법에서는 부동산 등의 명의를 넘기면서 대가를 받으면 양도로 본다. 그리고 무상으로 명의를 넘기면 증여로 구분한다. 그래서 부담부증여는 증여와 양도가 동시에 발생한다. 수증자 입장에서는 공제되는 채무를 고려해도 재산상 이득이 있기 때문에 증여세가 부과된다. 반면 증여자는 본인의 채무를 이전해 상환 의무가 면제되므로, 대가를 받은 것으로 보고 양도소득세가 부과된다. 따라서 부담부증여로 절세 효과를 보려면 늘어나는 양도소득세보다 줄어드는 증여세가 더 커야 한다.
이처럼 부담부증여를 하면 담보된 채무는 증여세를 계산할 때 공제된다. 하지만 부담부증여는 증여세를 줄이는 편법으로 사용될 수 있어 인정 요건이 엄격하다. 부담부증여의 요건은 △채무는 증여자의 것이어야 하고 △증여하려는 부동산 등에 담보된 채무여야 하며 △증여 계약서에 수증자가 그 채무를 승계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야 하고 △수증자가 본인의 경제력으로 채무를 상환할 수 있어야 한다.
절세하려다 덤터기 쓰지 않으려면
부담부증여를 통해 증여세를 줄이려면 위의 요건을 갖춰야 하며, 증여자의 다주택자 여부, 증여주택과 관련된 양도소득세율 등에 따라 절세 효과도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부담부증여를 통해 제대로 된 절세 효과를 누리고 자녀들의 내 집 마련을 도우려면 각자 처한 상황을 정확히 살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절세를 위해 부담부증여를 고민하는 경우, 줄어드는 증여세만 고려하면 안 된다. 반드시 증가하는 양도소득세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때 소유한 부동산 중 어느 것으로 부담부증여를 할지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증여하는 부동산의 평가액과 인수하는 채무가 동일해도, 취득 시점과 취득 가격이 다르면 양도소득세 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부담부증여를 할 때 증여세는 증여하는 부동산의 취득 가격과 상관없이 증여 당시의 부동산 평가액과 인수하는 채무로 결정한다.
따라서 부담부증여를 하려면 매매차익이 크지 않은 부동산을 선택할 것을 권한다. 취득 당시보다 손실이 예상되거나, 비과세 대상 부동산이 부담부증여를 하기에 적합하다. 양도소득세 없이 증여세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양도차익이 큰 부동산이나 다주택자 중과 주택은 양도세가 증여세 감소폭보다 클 수 있어 부담부증여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하락장에 부담부증여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부담부증여를 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증여의 기준은 실거래가이므로, 절세 측면에서 가격이 하락할 때 정리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절세를 위한 증여를 고려하고 있다면, 내년 5월 9일 이전에 부담부증여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그 이후에는 이월과세제도가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나 양도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월과세란 당초 증여자가 취득한 가격을 취득가액으로 하여 양도세를 계산하는 것을 말한다. 이전에는 수증자가 5년 이내에 증여받은 토지나 건물 등을 양도하면 취득가액을 증여자 취득가로 적용해 계산했는데, 이번 개편으로 10년 내 매도할 경우 이월과세를 적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집값이 주춤한 상황에서 이월과세제도가 개편되면서 올 하반기 부동산을 증여하고자 하는 사람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필요할 때 유동화하는 데 장애물이 생기기 전에 증여하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부담부증여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더 많은 부모가 양도세를 낸다는 점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 자녀가 내 집 마련을 하는 데에는 유리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절세 측면에서 부담부증여가 큰 이익을 주진 않더라도, 증여세 부분만 자녀가 내고 양도세 부분은 부모가 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40세 이상 중장년 구직자 10명 중 7명은 현재 비자발적 퇴직 상태다. 경제 사정 등 현실적인 이유로 재취업을 희망하는 이들의 은퇴 희망 평균 연령은 69.4세다. 2018년 실질 은퇴 연령 평균인 72.3세보다 2.9세 낮다.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지난 31일 발표한 ‘2022년 중장년 구직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장년 구직자의 은퇴 희망 평균연령은 69.4세다. 40세 이상 중장년 구직자 10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2019년 조사 당시 67세보다 2.4세 상승했다.
구직자 10명 중 7명(65.6%)은 70세 이후에도 계속 일하기를 희망했다. 응답자의 46.5%는 70~75세에 은퇴를 희망했고, 19.1%는 75세가 넘어서 은퇴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72.5%는 현재 비자발적 퇴직 상태로 조사됐다.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계약종료(53.1%) △사업부진, 휴·폐업(11.7%) △코로나로 인한 경영악화(7.7%) 등이 이유였다. 구직자의 36.8%는 6개월 이상 장기실업 상태였다.
재취업을 희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용돈·자녀교육비를 포함한 경제적 사정(49.5%)이었다. △일하는 즐거움(22.2%) △건강 유지(11.3%) △습득한 전문 지식과 기술·노하우 전수(7.7%)가 뒤를 이었다.
중장년 구직자가 재취업 시 희망하는 임금은 월 273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0년 5월 본 센터가 조사한 중장년 희망 임금 244만원보다 29만 원 올랐다.
응답자 10명 중 6명은 ‘재취업 시 주된 경력과 다르게 희망 직종을 변경한다’(57.2%)고 답했다. 그 이유로 ‘연령 제한으로 기존 직종으로 재취업이 어렵다’(55.6%)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박철한 전경련중소기업협력센터 소장은 “중장년 구직자는 당장에라도 일하고 싶어 하나, 희망하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며, “자기 분야를 고집하기보다는 눈높이를 낮추고 재취업 교육을 활용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작품, 혹은 배우가 한국 땅을 밟기 위해서는 성우 배한성(78)의 목소리를 거쳐야 했다. 가제트나 맥가이버, 콜롬보 외에도 영화 ‘아마데우스’(1985)의 모차르트, ‘대부’ 3부작의 주연 배우 알 파치노, 배우 더스틴 호프먼, 로버트 레드포드, 성룡 등. 1966년 동양방송(TBC) 2기 공채 성우로 데뷔한 그는 목소리로 시대를 제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에서 듣던 것과 똑같다고요? 그러면 출연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름 석 자만으로 생김새를 떠올리고, 대표적인 대사까지 읊을 수 있는 성우가 몇 명이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목소리가 곧 명함인 성우 중 배한성은 독보적이다. 가제트, 맥가이버, 형사 콜롬보. 세대에 따라 기억하는 목소리는 다르지만 모두 배한성 성우가 소화해 새롭게 탄생시킨 배역들이다. 성우로 활약한 시간만 어언 56년이지만, 그는 추억 속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여전히 재치 있고 엉뚱했다.
‘타고난 배우’의 철학
그가 애니메이션과 외화 판을 호령하던 시절에는 제작사 측에서 직접 성우들을 만나곤 했다. 성우의 연기와 원작의 결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는데, 이 과정을 통과해야 성공적으로 더빙 작업을 거쳐 방영할 수 있었다. 제작사가 특히 신경 쓰는 작품은 감독이 직접 찾아와 성우의 연기를 듣고 판단하기도 했다. 외국인 감독이 까탈스럽게 구는 경우가 많아 더빙 자체를 포기하는 성우도 더러 있었다. 애니메이션 ‘컴퓨터 형사 가제트’(1987)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그는 나름대로 연구한 코맹맹이 목소리의 가제트를 감독 앞에서 선보였다. 결과는 불합격. ‘가제트 형사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 당신과 가제트 형사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통역사한테 잘 전해달라고 부탁하고서 감독에게 말했어요. ‘프랑스 말은 한국어와 어감이 다르다. 프랑스어의 뭉실뭉실한 어감만을 살리기 위해 부드러운 말씨로 연기한다면 가제트라는 인물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요. 감독이 잠자코 듣더니 연기를 다시 해보라고 하더군요. 준비해온 연기를 다시 하니까 그제야 ‘당신의 연기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라면서 OK 사인을 줬어요. 그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감독이 한마디 하더군요. ‘You are born to be an actor.’(당신은 타고난 배우군요.)”
감독의 지시, 원작에 구현된 인물만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에 따라 연기할 줄도 알아야 함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영화광이었으며 영화배우를 꿈꿨던 그로서는 칭찬이 남다르게 느껴졌을 터. 더불어 애니메이션이 국민적 인기를 얻으면서 세대를 불문하고 만능 로봇팔을 꺼내던 가제트의 목소리를 기억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최애’(가장 애정하는) 인물은 동양방송(TBC)에서 방영한 ‘야망의 계절’(1978)과 ‘태양의 계절’(1979)의 주인공 루디 조다쉬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 떠올리는 작품이나 인물은 아니다.
고개를 갸웃할 수 있으나 그로서는 명분이 충분하다. 데뷔 후 장편 영화 시리즈의 주연을 처음 맡은 작품으로,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기 때문. 게다가 소설가 강유일의 한줄평은 신인 성우의 심금을 울렸다. ‘보통의 외국 영화들은 더빙 성우가 외국 배우의 덕을 보는데, ‘야망의 계절’과 ‘태양의 계절’은 피터 스트라우스(루디 조다쉬 역)가 배한성의 더빙 덕을 봤다.’ 그 뒤로도 몇십 년째 성우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이상 가슴 뛰고 뿌듯한 평가를 받아본 적은 없단다. 수많은 배역 중 루디 조다쉬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음성에 뿌듯함이 묻어났다.
어수룩한 코맹맹이 형사(드라마 ‘형사 콜롬보’)부터 기괴한 웃음소리의 천재 음악가(영화 ‘아마데우스’), 가업을 멀리하려다 결국 비정한 대부가 되어버리는 남자(영화 ‘대부’), 무저항 독립운동으로 인도의 국부로 추앙받는 간디(영화 ‘간디’)까지. 이외에도 특별히 애정하는 배역 하나를 꼽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작품을 소화해냈다. 그는 이 모든 역할을 다 다르게 연기해냈다고 자부한다. 당연한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임하는 성우는 흔치 않다. 그런 그를 보며 친구들은 ‘배한성은 예나 지금이나 배극성이다. 아직도 극성을 떤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란다.
“가제트는 가제트대로, 모차르트는 모차르트대로, 베토벤은 또 베토벤대로 다르게 연기를 해야 해요. 배우는 같아도 다른 영화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면 그에 맞게 새로운 목소리를 내야 하고요. 모니터링을 하고 계속 연구해야 하니 사실 나 스스로는 좀 고단했지요. 하지만 이만큼 다양한 인물을 연기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잖아요. 더빙이 단순한 녹음이 아니라 대중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하면 책임감을 갖고 임할 수밖에 없지요.”
‘배극성’의 더러운 대본과 골동품
흥미와 목표를 향한 ‘극성’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영화를 좋아하는 그는 돈이 없어도 담치기를 해서 초등학생 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57)를 세 번이나 봤을 정도다. 장래 희망을 영화배우에서 성우로 수정한 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성우 시험을 봤다. 고졸자 이상만 응시할 수 있어 육촌 형 졸업장까지 빌렸다고. 지금 생각하면 엉뚱하기 그지없는 행동인데, 당시의 그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채 시험장에 들어섰다. 불합격 통지서를 받는 바람에 크게 실망했지만, 성우를 향한 열정을 해치기엔 역부족이었다.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정도가 더욱 심해졌어요. 당시엔 데모도 많고 거리에 대자보나 성명서가 많이 붙어 있었는데, 지나가다 벽보에서 ‘목소리 성’(聲) 자만 봐도 성우 생각이 나서 미친놈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지요. 아직도 후배들에게 ‘성우 일을 하려면 이 정도로 미쳐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직 저 말고는 글자만 봐도 가슴이 뛸 정도로 미쳐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네요.”
그가 좋아하는 사자성어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이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인데, 성우라는 일 자체에 미쳐서 살았던 성우 배한성을 대변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영화 더빙을 앞두면 영화 원본 테이프와 대본을 미리 받아와 눈이 빠지도록 봤다. 인물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잡아내 대본에 적어두기 위함이다. 어찌나 메모를 많이 했던지 방송가에선 배한성의 대본이 더럽기로 유명할 정도였다.
당시 번역 작가가 적은 외화 대본에는 대사만 적혀 있을 뿐, 주인공이 어떤 표정으로 무슨 행동을 하며 대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반면 그의 연기에는 주인공이 애인을 기다리며 동동거리는 발끝, 고민할 때마다 입맛 다시는 습관 같은 작은 요소들이 녹아 있다. 지저분한 대본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국인 배우 속에 한국인이 들어앉은 것 같다’는 호평을 듣는 비결이다.
그의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데에는 취미도 한몫 거든다. 고미술품, 고가구나 올드카를 수집하면서 빚어진 미적 감각이 연기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 분명히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노년에 친구로 두면 좋은 직업인 중 하나로 골동품 수집가를 꼽습니다. 미적 감각이 살아나니 삶이 풍부해져서 지루하지 않고 좋다는 거죠. 저 역시 오래전부터 골동품에 관심을 갖고 수집한 덕에 연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급스러운 배역, 고급 배우의 연기를 제대로 소화하려면 심미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둘 다 중년 남성이라도 동네 아저씨나 한 나라의 수상 혹은 왕족을 연기할 때는 분명 다르게 표현해야 하지 않겠어요?”
즐거운 빚을 갚기 위하여
요즘 그는 일주일에 두어 번 녹음을 한다. 그 외에 들어오는 제안은 최대한 후배들에게 넘기는 편이다. 이제는 나이가 있고, 한창 활동하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스케줄이 적으니 한가하게 사는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외부 강연도 쉬지 않고 나가고, 건강을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틈틈이 책을 읽는다.
기존에 하던 경영 공부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일시 정지된 상태다.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이제 그는 새로운 걸 벌이는 대신 벌여놓은 것을 잘 정리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그중 하나는 ‘우리말 더빙 법제화’다. 한국성우협회의 이연희 이사장이 물꼬를 튼 것인데, 인터뷰한 당일 저녁에도 송도영, 송도순 등 유명 원로 성우와 관련 미팅 일정이 잡혀 있을 만큼 활발히 논의 중이다. 성우들 주머니만 채우겠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요즘은 영화를 수입해도 제작비를 줄이려고 번역 자막만 달아요. 자막 작업이 성우를 고용해서 더빙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드니까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눈으로 보는 대신 귀로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시각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노화로 인해 시력이 나빠졌을 수도 있지요. 시각장애인에 노인 인구까지 합치면 그 수가 천만 명은 된다고 해요. 그래서 영상 콘텐츠를 만들 때는 더빙도 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기 위해 대한노인협회나 시각장애인연합회와 논의하고 있습니다. 성우로서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방법이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언해피’한 시대를 살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선배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는 스스로 성우로서 누릴 수 있는 온갖 혜택을 누린 사람이라고 평한다. 그의 전성기는 라디오 드라마와 TV 외화 시리즈가 일반인이 누릴 수 있는 오락거리의 전부였던 시절과 겹친다. 남다른 노력과 재능이 없었다면 지금의 스타 성우 배한성도 없었겠지만, 오디오 콘텐츠가 수많은 오락거리 중 하나로 전락해버린 오늘날에 비하면 좋은 시절을 누린 것도 맞다. 후배들의 앞날과 성우라는 직업의 미래를 위해, 그는 마음에 진 ‘즐거운 빚’을 갚고 있다.
배한성 성우는 예나 지금이나 지루하게 멍때리는 시간이 아깝고, 틈날 때마다 책을 읽으며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한다. 외부 강연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은 바를 알려주기도 한다. 역시나 메모해뒀던 글귀를 자주 활용하는데, 노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老인도, no인도 아닌 know인이 되겠다’는 문구를 꼭 인용한다. 그러면서 나이가 든다고 해서 머리나 몸을 편하게 두지 말고 계속 공부하며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의 생애 내내 그러했듯, 솔선수범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다짐이자 조언이다.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한 제자가 ‘이제는 나이를 먹었으니 쉬엄쉬엄 사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자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하는데 결승점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천천히 가거나 멈추면 되겠냐’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젊을 때처럼 신기록을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생산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매사 고민하고 공부하며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 아닐까요?”
“갑작스럽게 이석증에 걸린 뒤로 가까운 거리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코앞에 있는 병원도 가기 많이 힘들었는데, 우연찮게 동주민센터에 비치된 병원 안심동행서비스 홍보물을 봤고 직원을 통해 서비스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병원 안심동행서비스가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강남구에 거주하는 40대 K씨)
서울시 ‘1인가구 병원 안심동행서비스’(이하 병원동행서비스)가 출시 1년 만에 월평균 이용자 1000명을 돌파했다. 이용자의 92.2%가 50대 이상 1인가구로, 1인가구가 겪는 의료 고충을 해소하는 데에 톡톡한 역할을 해내면서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병원동행서비스는 ‘서울시 1인가구 안심종합계획’에 속해 추진 중인 사업이다. 혼자 병원에 가기 어려운 1인 가구를 위해 병원에 갈 때부터 귀가할 때까지 전 과정을 보호자처럼 동행하는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로,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한다. 10월 28일 기준 7855명이 이용했다.
서울시가 병원동행서비스의 주요 이용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 8월부터는 1000명을 넘어서는 등 월평균 이용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이 나타났다. 하루 평균 이용자수도 10월 말 현재 67명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올해 초에 비해 5배 가까이 늘어났다.
연령대별 이용 현황을 살펴보면 80대 이상 이용자가 32.2%로 가장 많았고, 70대(27.8%), 60대(21.9%), 40~50대(14.6%), 30대 이하(3.5%) 순으로 이어졌다. 지역별 현황으로는 동북‧서북권에서 상대적으로 이용자수가 많았다. 누적 이용건수가 400건을 넘는 자치구는 노원, 성북, 은평, 강서, 강북, 동대문 등이다. 자치구 중에서는 강남구가 769건으로 가장 많은 이용건수를 보였다.
서비스 이용실태를 살펴보면, 오전 시간대(9시 이전~12시) 이용률이 67.4%로 높았다. 이용자의 절반(54.8%) 가량이 3시간 이내 동행서비스를 이용했다. 진료, 입퇴원 등의 이유로 단기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약 60%에 달했으며, 투석‧검사‧재활치료 등으로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는 40%였다.
시는 ‘1인가구 병원 안심동행서비스’의 수요증가 배경으로 몸이 아프거나 위급할 때의 대처가 1인가구의 가장 큰 고충인 만큼, 해당 서비스가 1인가구의 의료 고충 해소에 도움을 준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 5월 시가 발표한 ‘2021년 서울시 1인가구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연구’에 따르면 1인가구가 혼자 생활하면서 가장 곤란하거나 힘든 점으로 ‘몸이 아프거나 위급할 때의 대처’(35.9%)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지난 2017년 1인가구 실태조사(24.1%)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서울시는 작년 시범운영 결과와 시민 의견을 반영해, 시범운영 기간동안 연 6회로 제한됐던 서비스 이용 횟수 제한을 올해부터 폐지했다. 또한 중위소득 100% 이하 시민의 경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지난 9월부터는 ‘1인가구 퇴원 후 일상회복 안심동행서비스’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퇴원했지만 돌봐줄 보호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1인가구를 위해 도입한 서비스로, 병원 동행부터 일상회복까지 지원해 공백 없는 돌봄 지원체계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병원동행서비스 이용 경험이 있는 1인가구가 퇴원 후 한시적인 돌봄(집안 정리, 식사 준비, 외출 지원 등)이 필요한 경우 신청할 수 있고, 이용요금은 소득과 관계없이 시간당 5000원이다.
아울러, 시는 서비스 확대, 이용자 증가에 따라 지원 인력 증원과 함께 직무교육, 성과 포상 등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동행매니저, 콜센터 전담상담원 등을 대상으로는 디지털 역량 강화교육과 안전실무 교육 등을 연 2회 이상 실시한다. 매월 자체 평가를 통해 우수 매니저를 선발해 인센티브도 제공할 계획이다.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1인가구는 위급‧응급상황 대처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만큼 병원 안심 동행이 실질적 도움이 되는 서비스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시민들이 서비스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병원동행서비스 시행 1년을 맞아 서비스 이용자들의 체험담을 공유하기 위한 ‘수기 공모전’을 개최한다. 오는 11월 1일부터 11월 21일까지 참여할 수 있으며, 이용자 가족이나 지인이 서비스를 이용하며 느꼈던 점을 자유롭게 제출할 수 있다. 중장년, 고령층을 포함해 서면 작성이 어려울 경우, 전문상담원의 안내에 따라 음성으로 본인의 이용 경험을 전달하는 방식의 유선 접수도 가능하다. 공모전 관련 자세한 사항은 서울시 1인가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책은 누군가에게 부족했던 영감을 주고, 뜻밖의 인연이 닿게끔 돕기도 한다. 삼성전자 재직 시절부터 퇴직 후 지금까지 희귀 광물을 수집해온 이지섭 민자연사연구소 소장도 마찬가지다. 책을 통해 고인 생각을 정리하고, 지구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초석을 다듬었다. 또한 직접 펴낸 책 ‘광물, 그 호기심의 문을 열다’로 독자들과 만나며 수집과 연구에 대한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약 150평 규모의 민자연사연구소에는 다양한 빛과 보기 드문 기하학적 형태의 희귀 광물이 전시돼 있다. 이 남다른 3000여 점의 ‘돌덩이’들은 이지섭 소장이 40년 넘는 시간 동안 직접 모은 소중한 예술품이다. 멕시코, 케냐, 페루, 콩고, 모로코 등 원산지도 다양하다. 2010년 개장 이후 광물자원공사 임직원, 고려대학교 지구과학 전공학부 대학원생, 국립과학관 관계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 LED 빛을 받고 있는 그의 수집품들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남다른 분위기를 내뿜는다.
이 소장은 삼성전자에 36년간 몸담으며 대한민국 기업의 신화를 함께 쓴 인물이다. 흑백 TV를 만들던 때부터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겪었다. “삼성전자에서 새로 개발한 전자레인지의 품질 관리를 위해 미팅을 다녔습니다. 기획과 설계, 개발만 기업이 진행하고 협력업체가 생산하는 방식이긴 했지만,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한 제품이었어요. 좋은 품질 덕에 세계적 기업들의 수요가 높아 수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졌고, 자연스레 저는 해외 출장이 잦았죠. 그러던 중 1981년 우연히 뉴욕 자연사박물관에 들렀는데, 살면서 보지 못했던 희귀 원석과 광물이 가득하더군요.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돌 부자’가 된 삼성맨
금속공학을 전공했기에 원석과 광물을 책으로는 자주 봐왔던 그였다. 하지만 박물관에 전시된 돌들을 직접 보니 완전히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가난하던 어릴 적 냇가에서 반짝이는 돌을 주워 모으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 길로 뉴욕 자연사박물관을 나와 인근 기념품점에서 60달러를 주고 ‘쌍둥이 눈사람’ 모양의 마노(석영과 옥수가 혼합된 보석)를 샀다. 그 후로도 5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짬이 날 때마다 광물 시장이나 광산 인근 지방에서 표본을 구했다. 가벼운 산책길에서도 작은 돌, 바위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월급의 절반 이상을 원석 수집에 사용했어요. 적지 않은 비용 탓에 아내와 마찰도 있었죠. 하지만 제가 퇴근 후 집에서 원석을 보고 미소 짓는 걸 보더니 아내도 이해해주더라고요. 지금은 아내와 자녀들도 원석 수집을 돕고 있어요. 수집품 중 일부는 아내와 가족들이 사서 선물로 준 것입니다.”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더 심도 깊은 취미활동을 위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광물을 향한 지극한 사랑에 전국 방방곡곡의 각종 소모임이나 연구 단체를 꾸준히 찾았고, 관련 서적을 수십 권 독파했다. 광물을 더 자세히 관찰하고 직접 표현해보기 위해 그림도 배웠다. 민자연사연구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모든 전시물에 대한 역사와 과학적인 유래를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기 위함이다.
그는 대한민국이 여전히 자연과학에 대한 투자나 관심이 부족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연과학은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의 안내 책자에는 건축에 사용된 재료에 대한 설명이 면밀히 적혀 있습니다. 웬만한 과학 교과서보다 훌륭하더군요. 내부의 예술품들을 보기 전 외관의 요소부터 이해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광물은 그 무엇보다 인간의 역사와 생활에 밀접한 대상이거든요.”
미국 혹은 유럽처럼 대중이 지구과학을 친근하게 느끼도록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설명이다. “우선 접근성을 높여 사람들이 다양한 광물을 접할 수 있도록 250개의 표본을 모두 모았어요. 아름다운 원석을 보면 ‘신기한 빛깔과 결정 모양은 어떤 원리로 만들어진 걸까?’ 궁금해하고, 자연스레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도 늘어날 테니까요.”
‘격물치지’ 위한 광물 이야기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으로 젊은 시절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문학가로 알려졌지만, 광물학 연구에도 상당히 힘썼다. 지질 현상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소설이나 영화로 널리 알려진 ‘폼페이 최후의 날’ 들끓던 베수비오 화산을 네 번이나 등반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 소장 역시 어릴 적부터 동네의 유명한 ‘알고잽이’였다. 뭐든 알고 싶어 한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다.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보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본 다음 날이면 그것을 줍겠다며 아침 일찍 집을 뛰쳐나가기도 했다. 그와 괴테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다름 아닌 호기심과 그에 따른 행동력이었다.
이 소장은 제대로 된 환경만 만들어주면 한국에도 괴테가 많이 탄생할 것이라 힘줘 말했다. “꿈은 박물관에서 자랍니다.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수집의 세계로 뛰어든 저처럼 말이죠. 학생들의 질문에 시달린 지구과학 선생님이나 꼬마 광물 박사의 성화에 연구소로 오는 부모님들을 보면 내심 뿌듯하기도 해요. 광물을 눈에 담으면서 설명을 듣는 것은 사진으로만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어떤 것이 계기가 되든 간에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라는 건 확실해요.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지만, 길가의 흔한 돌에도 지구의 시간과 우주의 신비가 켜켜이 쌓여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생각의 초석을 다질 수 있는 책
by 이지섭
돌의 사전 (야하기 치하루 저)
“긴 세월 돌과 인류는 항상 함께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공간이 돌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몰라요. 이 책은 광물이 어떻게 생성되고 발견됐는지, 어떤 성분으로 이뤄졌는지, 또 우리 주변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돌이 만들어지고 순환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어요. 특히 리엘가, 쿤자이트와 같이 연관성을 유추하기 어려운 돌 이름에 얽힌 신화와 전설은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너무 학술적이지 않아 광물과 원석, 보석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 좋을 것 같습니다.”
지구 이야기 (로버트 M. 헤이즌 저)
“카네기연구소 산하 지구물리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저자는 특유의 상상력과 시각으로 우리 행성이 수없이 반복해온 일들을 설명합니다. 원자 수준의 변화들이 어떻게 지구 구조의 극적인 전환들로 번역되는지 생생하게 그려낸 거죠. 사실 무수히 많은 돌은 인류 이전, 지구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됐어요. 빅뱅 이후 원시 광물의 탄생, 태양과 지구의 형성 등 총체적인 우주의 역사를 이해하면 오늘날 광물의 가치가 더 특별하게 다가올 겁니다.”
광물, 그 호기심의 문을 열다 (이지섭 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쉽게 광물을 접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쓴 책이에요. 시중에 나온 책은 대부분 저자의 소장품 도록이 주된 내용이거나, 깊이 있는 전문 서적이었거든요. 배경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들죠. 광물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게끔 여행에서 만난 광물들, 그에 관련한 경험담을 많이 풀어냈어요.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더 재밌잖아요.”
이탈리아 기행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
“광물 하나에만 집중하기보다, 관련된 다른 현상을 함께 바라보며 복합적인 시각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괴테인데요. ‘이탈리아 기행’은 그가 1786년 9월부터 1788년 6월까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지인들에게 보낸 서한과 일기, 메모와 보고를 손질하여 엮은 책입니다. 괴테는 자연환경, 사회, 그리고 예술 분야에 조예가 깊었어요. 특히 식물학, 기상학, 지질학, 광물학, 색채학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연결성을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설정하며 세심한 관찰 기록을 남겼죠. 그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서 겉으로만 알던 지식을 직접 보았을 때의 진실한 기쁨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거예요.”
56세 강 씨의 아버지는 지병으로 병상 생활을 10년 가까이 지속했다. 강 씨는 아버지의 병간호와 병원비 부담은 물론 생활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지원했다. 반면 8살 터울의 남동생은 직장 구조조정이나 수험생인 딸 핑계를 대며 자식의 도리를 저버리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긴 재산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안 동생은 그제야 “나도 자식이니 똑같이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며 상속재산을 요구했다.
상속 분쟁은 피를 나눈 가족마저 등 돌리게 만드는 지독한 분쟁 중 하나다. 특히 ‘불공평한 분배에 대한 불만’으로 가족 간 다툼이 일어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부모 사망 후 유산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형제 사이에 충돌이 발생해 상속재산분할 심판청구가 제기된 건수는 2020년 기준 2095건에 달한다. 부모님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평생 헌신한 자녀와 본인의 편의를 위해 형제에게 부담을 지우고 선택적 효도를 한 또 다른 자녀. 두 사람이 상속재산을 똑같이 갖는 것이 과연 공평한 일일까?
특별한 부양일수록 달라지는 상속
피상속인(사망자)이 유언으로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분을 특정하지 않고 상속인들 사이에 협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민법에 따라 분배되는 비율을 법정상속분이라고 한다. 이때 같은 순위의 상속인이 여러 명이라면 그 상속분은 동일한 것으로 한다.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직계비속이나 직계존속과 공동으로 상속할 때 배우자의 상속분은 5할을 가산한다.
그러나 강 씨처럼 자신이 다른 형제 자매보다 부모를 더 많이 봉양해 재산을 동등하게 받는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면 기여분 제도를 고려해볼 수 있다. 기여분은 △공동상속인 중 상당한 기간을 동거, 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 재산의 유지·증자에 일정 수준 이상 이바지했을 경우 법원이 상속분 산정에 이를 고려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단 기여분은 공동상속인에 국한하므로 사실혼에 의한 배우자처럼 공동상속인이 아닌 사람은 기여분의 권리자가 되지 못한다.
기여분을 인정받기 위한 특별한 부양은 법률상 부양의무 범위 내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양의무의 성격상 1차적 부양의무자인 배우자에게는 더 높은 정도의 동거 및 부양의무를 부담시키기 때문에 기여분을 인정받으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성년 자녀는 부모에 대해 2차적 부양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장기간 그 부모에게 생계유지의 수준을 넘는, 혹은 자신과 같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부양을 했다면 기여분이 인정될 수 있다. 아버지가 경영하는 사업에 무급으로 종사한 첫째 아들, 공동상속인 모두가 부양 능력이 있는데도 모든 부양료를 지출한 동생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기여분 결정 방법
기여분은 상속재산분할 과정에서 대두되는데, 통상 상속재산분할 심판청구와 동시에 청구하거나 반심판으로 청구하게 된다. 공동상속인 중에서 ‘특별한’ 기여(또는 부양)를 한 사람의 수고를 인정할 것인가, 인정한다면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인가는 먼저 공동상속인들이 협의해 결정한다. 협의 시기는 피상속인 사망 후 최소한 상속재산을 분할하기 전까지다. 협의가 되지 않거나 할 수 없을 때는 기여자가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기여분 청구를 하면 기여의 시기, 방법 및 정도, 부양 비용의 부담 주체, 상속재산의 범위 등을 토대로 정해진다.
공동상속인들 간에 기여분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거나 법원에서 기여분이 인정되면, 전체 상속재산에서 기여자의 몫을 제한 뒤 나머지 부분을 가지고 각자의 법정상속분에 따라 공동상속인들에게 상속재산분할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기여 상속인은 총 상속재산에서 자기 기여분을 받는 외에도 기여분이 공제된 상속재산에서 자신의 법정상속분만큼 받게 된다.
기여분 제도는 일부 상속인의 공로를 인정해 재산분할 시 공동상속인 간에 공평성을 더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런 분쟁이 생기면 가족관계에 금이 가기 쉬우니 사전 증여, 유언장 작성, 녹음,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등을 통해 미리 재산을 정리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령자가 늘고 있다. 죽음 이후를 정리해줄 가족이 없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1인 가구의 종활(終活)이 주목받고 있다. 종활은 남은 가족을 생각해 시작된 개념이지만, 이제는 나를 위한 활동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종활은 말 그대로 ‘끝내는 활동’이라는 뜻으로,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간호나 치료에 대한 의향, 죽었을 때 장례와 무덤에 관한 형식, 유산 상속 내용, 물품이나 재산 정리 방법들을 미리 정해둔다. 일본에서 종활이라는 단어가 나온 건 2009년이다. 2010년쯤에는 신조어로 유행하며 대중에게도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이라는 개념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종활에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했는데, 최근에는 ‘1인 가구의 종활’에 맞춘 위임서비스가 강조되고 있다.
늘어나는 고령자 1인 가구
처음 종활이라는 개념이 나왔을 때는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생전에 의사결정 능력이 있을 때 재산이나 유품 등에 관한 것을 정리해두자는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남겨진 가족’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는 1인 가구가 많아지고 있다. 총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1인 가구 비율은 2010년 31.2%였지만, 2040년에는 약 4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65세 이상 1인 가구 비율은 48.2%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조사에서 말하는 1인 가구와 종활에서의 1인 가구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인구조사에서는 말 그대로 혼자 사는 사람이 1인 가구다. 종활에서는 자녀 없는 부부, 독신인 사람, 배우자와 이혼했거나 사별한 사람, 상속인이 아무도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고, 결혼했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가구가 증가하는 데다, 늘어난 기대수명으로 100세 시대를 향해 가다 보니 죽음 이후를 챙겨줄 가족이 없는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내각부가 발표한 ‘저출산 사회 대책 백서’에 따르면 50세 시점에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을 말하는 ‘평생 미혼율’은 2040년 남녀 각각 29.5%, 18.7%일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일본 법무성이 조사한 데이터에 따르면 55~59세 중 자녀 없는 사람은 31.2%, 60~64세는 22.3%, 65~69세는 16.3%였다. 연령이 낮을수록 자녀 없는 사람의 비중이 높은데, 이는 평생 미혼율과 비슷하다.
또한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에 따르면 75세 이상 여성의 약 65%는 배우자와의 사별, 자녀의 독립 등으로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 혼자 사는 여성보다 혼자 사는 남성이 고립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조사가 있어, 남성용 상담 창구를 통해 1인 종활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자체도 나타났다.
누구에게 무엇을 위임할 것인가?
이제 종활은 남은 가족이나 주위 사람을 고생시키지 않는다는 목적보다, 내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라이프 플랜을 세우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가족이 없는 고령의 1인 가구가 종활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위임’이다. 죽음 이후 사무처리를 누구에게 위탁할 것인지 미리 정해두어야 한다. 1인 가구의 죽음 이후 재산 처리, 장례 준비, 유품 정리 등을 대신 해줄 위임 서비스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재산 관리 위임 계약, 임의 후견 계약, 보수 계약, 사후관리 임명서, 민사신탁, 애완동물에 관한 계약 등을 통해 본인이 아프거나 인지 능력 저하로 의사 표시가 어려울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사이토 히로미치(齋藤弘道) 유증기부추진기구 대표는 칼럼을 통해 “자녀 없는 75세 이상의 비율은 현재 10% 정도지만, 20년 후에는 30%를 넘을 것”이라면서 “그동안 자녀를 포함한 가족이 표준이었다면, 이제는 1~2인 가족이 늘고 있다. 게다가 모두가 혈연관계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어서, 100세 시대에 건강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계약’이 필요한 일은 의사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스스로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할 때 준비하는 마음으로 종활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