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는 연년생으로 성별이 같은 아들 둘이 있다.
두 아이는 여친도 한 해 시차를 두고 생기더니 결혼도 한 해 시차로 한다. 배우자와의 나이도 한 해씩 연하이다. 그러다보니 가정의 모든 일들이 장남, 차남이란 연령별, 서열이 아예 없다. 아들들이 결혼하고부터 며느리들 주도로 필자 생일을 치룬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며느리들 간에는 생각이 같을 확률은
뉴욕이나 도쿄 등 선진국 대도시에 가면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다.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과 술은 물론 오페라와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문화를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겠지만 각 나라 방문 비용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싼 값으로 먼 나라의 문화를 맛보고 즐길 수 있다. 이때 제시할 수 있는 단어가 ‘문화력(文化力·Cultural
2016년 한 해 동안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이용자가 가장 많이 찾아본 신조어 중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츤데레’, ‘어남류’, ‘어그로’ 등에 이어 7위를 차지한 ‘졸혼(卒婚)’이다. 졸혼은 2015년과 비교해 2016년 많이 검색한 신조어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졸혼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생소
내가 처음 미국을 방문한 것은 1961년이었다. 그 당시 미국의 교수들을 비롯한 지성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말 중의 하나는 ‘인생은 60부터’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나이가 되면 인생은 끝나는 때라고 흔히 말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지금은 인생의 전성기가 60부터라는 관념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즐기기 위해 산다는 목표를
나이 듦은 원숙일까, 낡음일까. 누군가에겐 연륜으로 작용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고집불통의
외통수를 만들기도 한다. ‘불로초’를 찾아 헤매는 ‘영원한 젊음에 대한 집착’도 안쓰럽다. 또 ‘너희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로 나이를 계급장인 양 밀어붙이며 유세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여기 밥 잘 사고 젊은이들과 무람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지덕체의 균형을 이루며
인간과 인간이 만나 기품 있는 가정을 꾸리는 것은 어떤 예술보다 아름답고 귀한 일이다. 부부가 나누는 대화나 작은 감정표현에서도 우리는 기품을 느낀다. 괴테도 “결혼생활은 모든 문화의 시작이며 정상(頂上)이다. 그것은 난폭한 자를 온화하게 하고, 교양이 높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온정을 증명하는 최상의 기회다”라고 말했다. 이혼은 절대로 용납 못해 졸혼으로
사별한 김준기(79)씨는 15세 차이 나는 아내와 1995년 재혼했다. 현재 결혼생활 22년, 그러나 이들 부부는 아직 신혼이나 다름없다. 김준기씨는 평생을 농사꾼으로 살아왔다. 힘들고 고단한 농촌계몽운동, 야학, 4-H연구회 등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내와의 일상에 대해 묻자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가득해진다.
재혼한 부부에게 ‘가족’이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확정된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새해를 맞으며 부쩍 드는 의문이다. 하도 어수선한 지난 연말을 헤쳐 나오다 보니 세상을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 뉴질랜드 사는 친구가 교포들 사이에 유행하던 말이라며 ‘뉴질랜드가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던 말이 문득 생각난다.
인터뷰 내내 함익병(咸翼炳·57)은 시원시원하고 거침이 없었다. 성공한 피부과 의사이자 방송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했던 모습보다는 최근 TV조선의 시사 프로그램 에서 보여주고 있는 시사 닥터(?)로서의 모습이 더 강하게 드러났다. 인터뷰에서 그는 대통령 탄핵까지 가게 된 현재의 혼란스러운 정국에 대해 이 나라의 한 국민으로서의 분노를 여과 없이 쏟아냈다. 바로
부모에 대한 불평의 항목들을 설정해 자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면 단연코 1등은 부모의 잔소리가 될 것이다. 부모의 잔소리는 이미 아이들 대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속어가 됐다. 그러나 부모의 잔소리는 품위의 언어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교육도 있겠지만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교육은 더 크다. 양육과 교육은 부모의 성역이다. 임무이고 책임이고 권리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