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용기

기사입력 2017-01-31 15:39 기사수정 2017-01-31 15:39

필자에게는 연년생으로 성별이 같은 아들 둘이 있다.

두 아이는 여친도 한 해 시차를 두고 생기더니 결혼도 한 해 시차로 한다. 배우자와의 나이도 한 해씩 연하이다. 그러다보니 가정의 모든 일들이 장남, 차남이란 연령별, 서열이 아예 없다. 아들들이 결혼하고부터 며느리들 주도로 필자 생일을 치룬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며느리들 간에는 생각이 같을 확률은 드물다. 해마다 생일이 오면 큰 며느리는 분위기 있고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조금 화려한 디너를 갖자는 생각이다. 전망이 그럴싸한 레스토랑을 미리 예약한다. 특별한 꽃꽂이도 하고 생일케이크도 특별하다고 이름 난 집에서 먹기 아까울 정도의 고운 장식을 한 것으로 선택한다. 그러다보니 짧은 시간 즐기는 것에 대비하여 경비가 크다. 생일을 맞이한 필자에게 돌아올 선물에 투자 할 돈은 적다.

작은 며느리가 한 해 늦게 결혼했다고 처음에는 그냥 따라주더니 어느 해부터 이 생일축하 파티를 바꾸자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간단하게 일반식당에서 밥은 먹고 남는 경비를 합하여 어머니께 현금을 드리면 어머니가 유용하게 쓰실 수 있지 않느냐란 의견이다. 동서에게 말하면 기분 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동서에게 말하기 전에 필자더러 선택하라고 귀띔한다.

둘째 며느리 얘기를 듣는 순간 알뜰함이 기특하고 실용적으로 쓸 수 있겠다고 느꼈다. 한편 은근한 섭섭함이랄까 아쉬움도 있다. 필자는 물론이고 우리 세대 서민이라면 알뜰함이 경제적이다 못해 나를 위해서는 삶의 기본적인 것 외에 심지어는 문화비마저도 지출하지 못하는 인색함이 많지 않은가. 나를 위하여 호화롭거나 사치스런 소비에는 익숙치 않다. 내일을 대비하여 닥칠지도 모르는 어려움이 불안으로 엄습해오기 때문이다. 이 작은 불안을 물리칠 수 있었던 힘은 자녀들이 베푸는 효심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명분이다. 그 마저도 엄마답지 못한 치기였나 싶고 호사에 대한 동경이 드러났나 싶어 부끄럽기도 하다.

일단 큰며느리에게 작은 아이의 아이디어를 말했다. 큰며느리는 단연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늘 있는 일도 아니고 검소하게 평생을 살았는데 더 이상 경제적이고 실용적일 이유가 무엇이냐는 대답이다. 그보다 나를 정신 들게 한 것은 손자들에게 고급식당에서의 테이블매너를 가르쳐 줄 기회도 되고 아이들이 할머니와 함께 즐기는 시간의 고급스러움이 좋은 추억도 된다는 것이다. 그 경비로 가족들과 즐기는 것 외에 더 행복한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어온다.

큰며느리 의견을 받아들였다.

씁쓸함은 필자 자신이다.

엄마의 품위를 지키고 싶어하는 명분 찾기에 급급한 모습이 한심하다. 손자교육 운운 하는 말은 하면서 필자도 이제는 좀 고급스런 소비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필자는 늘 버리고 싶은 내가 있다. 좋아하기 때문에, 하고 싶기 때문에 하면서도 나중에 보면 자신에게 당당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친구들 앞에서는 늘 하는 말이면서도 자식들에게는 그 모습을 보여줄 용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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